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42화 (142/350)

제17편 가장 무서운 무사 (2)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 대회의장.

“역시 우리 예상이 맞았어!”

대회의장에 작게 환호성이 울렸다.

하후 장로가 껄껄하고 웃으며, 기세 좋게 연기를 뿜었다.

"대공자가 방문한 저택은 공씨가문의 것이 확실하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책사들 무리 속에 섞여 있던 장로 하나가 외쳤다.

“대공자가 공씨 가문과 함께 벌일 수 있는 예상 각본들은 거의 준비가 끝나 가오!”

“좋군! 좋아!”

하후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 과장된 큰 동작과 외침이 어느새 대회의장의 책사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모든 게 잘되어 가고 있어!”

그가 슬쩍 돌아서서 작은 목소리로 다른 장로 하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정보 전달이 늦는 것이오? 대선상회 또한 우리 작전에 완전히 협조하는 것이 아니었소?”

그가 말을 건 상대는, 대선상회를 책임지는 안 장로였다.

“물론. 대선상회는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이번 작전에 전력을 투입하고 있소.”

은근히 도발적인 말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안 장로의 줄신이 강남이었기 때문일까.

“지금 대선상회에서도 지체 현상의 원인을 찾는 중이니, 조금 인내를 가지시오.”

평소의 침착함 대신 격양된 모습을 보인 안 장로가 자신의 안경을 추켜올리며 다시 기밀 서류로 눈을 돌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미간을 잔뜩 좁힌 안 장로의 모습에, 하후 장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신경을 돌렸다.

실제 현장에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나가리라는 망상 따위는, 자신을 천하의 기재로 여기는 애송이 책사들이나 하는 짓거리였으니.

“좋아! 그럼 다음은 예상 각본들을 기반으로, 우리의 대응 각본을 짜나가 볼 시간이다!”

우렁찬 대답이 대회의장을 흔들었다.

* * *

낙양, 북망산.

검문소 근처의 번화가.

“뭐라고…?!”

이공자 측에서 현장으로 파견했던 강 장로가 펄쩍 뛰었다.

“지금 뭐라고 했소?!”

“아이고…!”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상대가 주변을 급히 살피며 몸을 낮추고는 손사래를 쳤다.

“장로님…! 목소리 좀 낮추시지요. 장로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문에 알려지면, 소인의 목이 남아나질 않을 것입니다…!”

황도십육가문 내에 있는 정보원의 가치는 감히 금전 따위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했다.

“미, 미안하오.”

퍼뜩 정신을 차린 장로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오?”

맞은편에 몸을 숨긴 공씨 가문의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 위험을 무릅쓰고 검가의 장로님 면전에서 허튼소리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가 조곤조곤 자신이 확인한 정보를 다시 강 장로에게 주지시켜 주었다.

“검가의 대공자님은 분명 전대 가주님이 직접 작성하신 초대장을 들고 본 공씨 가문을 방문했습니다요.”

강 장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신 자신의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대공자가 방문을 위해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초대장을 받았다고…?”

“그렇습니다…! 전대 가주께서 직접 대문까지 나오시어, 대공자님을 맞이하시는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강 장로는 일단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정보만 전달하면 분석은 대회의장에서 집단지성으로 처리할 일이었다.

자신의 역할은 현장에서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고, 지금은 거기에 집중해야 했다.

“그럼, 공씨 가문을 떠난 대공자가 향한 황씨 가문에서도 마찬가지 였소? 미리 황씨 가문에서 받았던 초대장을 가지고 들어갔다고?”

“다른 가문의 일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공씨 가문의 집사가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듣기로는 황씨 가문에는 초대장도 없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말에 장로의 머리가 순간 하얗게 변했다.

"...초대장도 없이?”

그의 반응에 공씨 가문의 집사가 한숨을 쉬었다.

집사 자신도 그 이야기를 황씨 가문의 집사에게 들었을 때,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기 때문이었다.

“못 믿으셔도 어쩔 수 없지요.”

“아니, 자네를 못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약속도 없이, 초대장도 없이, 황도십육가문을 드나들 수 있는 이가 중원국에 몇이나 있겠는가?

“일단 소인이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요. 그럼.”

공씨 가문의 집사는 자신이 아는것을 전부 털어놓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대공자가 초대장도 없이 들어 갔다고?”

이렇게 정보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는 장로는 쌩하고 사라지는 그를 잡지 못했다.

'도대체 일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차후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획득한 일차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대선상회의 전령을 찾았다.

“전령은?”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무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장로가 분노를 터트리기 전에, 무사가 급히 말을 이었다.

“그 대신, 대선상회의 정보요원이 직접 정보를 받아 전달하기 위해서 대기 중입니다.”

그 말에 장로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육두문자를 삼켰다.

"...좋아 역시 대선상회.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하는군.”

* * *

낙양, 대선상회 본사.

책임자 하나가 책상을 거칠게 내리 쳤다.

“대체 전령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야?!”

그의 집무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드나드는 이들로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전령들의 소재는 조사 중입니다!”

“조사 중이라는 말은 한 시진도 전부터 들었다고! 일을 하고 있는 것 맞나?! 대처는? 대처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다른 직원이 대답했다.

“전 지부에 경보 단계가 2단계로 격상되었음을 전파 완료했습니다!”

그녀가 쪽지들을 확인하며, 급히 외쳤다.

“본 상회의 지침에 따라 모든 전령은 철수! 대신 본 상회의 정보요원들을 배치하여 미지의 상황에 대응 중입니다!”

책임자가 이를 갈았다.

“상급 조사 요원들을 더 풀어라!”

* * *

북망산으로부터의 정보가 든 통을 소지한 대선상회의 정보요원이 좁은 골목을 빠르게 통과하는 도중이었다.

"억?!”

경고를 들었던 그는 경공까지 써가며 이동 중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화가 되었다.

허공에 걸려 있는 천잠사를 확인하지 못한 탓에 그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면서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함정인가?!’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무림인답게 대비되지 않은 그 짧은 순간에도 낙법을 펼치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온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속에서, 어떻게든 대응을 하려던 그의 뒤통수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큭!”

그대로 다시 쓰러진 정보요원의 흐릿해지는 시선에 골목 곳곳에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보였다.

“용모파기 확인 대선상회의 정보요원이 맞군.”

그것이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목소리였다.

* * *

또 다른 대선상회의 정보요원은 대로를 통해서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이동하고 있었다.

“…읍읍?!”

그런 정보요원을 덮친 것은 상여(喪輿)를 지고 이동하던 삼베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제대로 반응을 하기도 전에 물먹인 두꺼운 삼베 끈으로 경동맥이 사정없이 조여진 그는 흰자위를 드러낸 채 의식을 잃었다.

삼베옷을 입은 이들은 요원을 상여에 집어넣어 버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

오가는 이가 극심하게 많은 낙양의 길거리에서 이변을 느낀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이공자 진영, 대회의장.

“제길…!”

대선상회의 책임자, 안 장로가 방금 전해진 쪽지를 거칠게 집어 던졌다.

하지만 그래 봐야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쪽지인지라, 허공에서 힘없이 나풀거릴 뿐이었다.

“본인은 대선상회로 돌아가 봐야겠소!”

벌떡 일어나 한 무리의 정보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이동하기 시작한 안 장로를 향해, 하후 장로가 외쳤다.

“무슨 일인지는 말을 해 주고 자리를 비워야 할 것이 아니오?!”

안 장로가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금방 돌아올 것이오!”

그의 뒤로 문이 거칠게 닫혔다.

“으음."

하후 장로는 안 장로가 집어 던졌던 쪽지를 주워 들었다.

'지급(至急). 정체불명의 첩보 조직으로부터 대선상회를 향한 공작이 진행 중. 상부의 지침이 필요.’

* * *

낙양, 어딘가에 위치한 지휘용 안전가옥.

가옥의 창은 모두 막아, 그 안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대선상회에서 요원들을 전부 거두고, 검가의 무사들을 전령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신속하며, 영리하기까지 한 안 장로의 결정이었다.

“역시 그 유명한 대선상회인가. 빠른데?”

보고를 받은 현월각주, 세아가 연기를 길게 뿜으며 미소 지었다.

“현장의 우리 측 요원들 전부 철수시켜. 검가의 무사를 건드려, 검가의 정보부처와 마찰을 일으킬 수는 없지.”

그녀가 뿜은 연기가 등불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났다.

“작전의 중단을 명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손에 든 곰방대를 흔들었다.

“아니. 이미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녀의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대선상회의 요원들을 '납치'할 수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그 말에 현월각의 요원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지휘관.”

세아는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나의 주군께서 명하신 대로, 그들에게서 쥐어짤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어 내도록.”

“충(忠)!”

어둠 속에서 하나 남은 그녀의 눈이 매력적으로 호선(弧線)을 그렸다.

“자아, 계속 저항해 보렴.”

그녀가 후후, 하고 웃었다.

“거칠게 저항할수록 너희의 거대한 몸집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 * *

낙양검가, 최고 운영 회의.

“그래서 그 현월각주라는 자에 대한 정보가 그것밖에 없다는 말인가?”

최고위원의 말에 낙양검가 정보부처에 파견 근무 중인 기관의 고급 요원이 고개를 숙였다.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현월각이라는 단체 자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낙양에 존재하는 흔한 정보상에 지나지 않았….”

“사공자의 검가동패를 부여받은 이후에라도 제대로 조사를 했어야지!”

신입 남성 최고위원이 호통을 쳤다.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고급 요원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절차에 따라 일차 조사는 마쳤습니다. 현재 심층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만….”

다른 최고위원이 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 세아라는 자에 대한 정보가 아직 이것뿐이란 소리인가?”

“출신 가문 알아냈고, 대공자님의 시녀장과 혈연관계인 것까지는 파악했지만. ...죄송합니다.”

“낙양에서 정보상으로 자수성가 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느 정도 알려 졌지만, 그 이전의 행적이 불투명하다는 것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잠시 후, 고급 요원이 물러나자 여성 최고위원이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그 현월각주라는 자의 정체가 궁금하군요. 지금의 현월각은 그저 빠르게 성장하는 정보상 수준이 아닙니다.”

“이공자 측의 대선상회와 첩보전을 벌인다니. 그건 명백히 정보상의 범주를 넘었소.”

“이젠 하나의 첩보 단체라고 봐야 하는 것이지.”

신입 남녀 최고위원의 시선이 의장이 있는 동굴 쪽을 향했다.

“이 현월각이라는 단체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대공자님을 만난 이후부터로군요.”

“이 단체의 배후에도 대공자께서 있다고 봐야 하는 겁니까?”

의장은 빙긋 미소 지었다.

“이제 그대들도 조금씩 대공자님의 흔적에서부터 그 영향력을 파악 할 수 있게 된 모양이군.”

"...."

"...."

두 사람의 신입 최고위원이 충격속에 입을 다물었다.

“그 현월각주라는 자의 과거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 봅시다. 이제 본가의 정보부처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으니 금방 단서라도 찾아낼 것이오. 그것보다는….”

의장이 새로 들어온 쪽지를 펼쳐 들었다.

“대공자께서 초대장도 없이, 벌써 네 번째 가문에 방문하셨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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