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41화 (141/350)

제16편 가장 무서운 무사 (1)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 대회의장.

하후 장로는 물고 있는 새 여송연에 불을 붙일 생각도 못 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손 장로와 강남 패거리들은 최근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대공자에게 휘둘렸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공자 진영이 가진 전력의 극히 일부였다.

실제 예시로, 이전에 이공자 진영이 총력을 기울였었을 때는 결과가 전혀 달랐지 않던가.

그때 자신들은 분명히 승리했었다.

'우리는 대공자가 칩거에서 풀려나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그 대신, 그가 가진 가장 위협적인 요소인 '가주직인'을 회수하는 것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공자 진영의 사실상 총력이 이곳에 투입되고 있었다.

모든 힘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래. 그때와 다르지 않아.'

지금은 상대의 첫수를 본것에 불과하고, 대국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저 상대가 갑자기 꺼내 든 '북망산'이라는 패에, 순간적으로 평정이 흔들린 것에 불과했다.

그때 책사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

“하후 장로님. 장로님들께서 모두 모이셨습니다.”

하후 장로는 삼매진화를 일으켜 여송연에 불을 붙이며, 좌중을 향해 돌아섰다.

'침착하게 대응만 해내면, 이번에도 우리가 승리한다.’

그의 입가에 평소처럼 자신만만한 미소가 돌아왔다.

* * *

낙양검가.

장로원, 대회당.

아무도 말을 걸어 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 앉아 있는 손 장로였지만, 그는 고립감이나 고독감 따위를 곱씹고 있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집중력을 동원하여,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복기할 뿐.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는가…?’

분명 대공자는 자신들의 책략에 휩쓸려, 그가 가졌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가주직인을 반납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직후부터는 달랐다.

사공자와의 합작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공자는 요리조리 모든 방해를 피해 냈다.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제대로 된 승리를 안겨 주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자신의 팔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설마?,

만약 대공자가 가주직인 반납을 통해 그들을 방심시킨 것이라면?

어쩔 수 없던 가주직인 반납을 통해서 오히려, 그들을 기만한 것이라면?

그렇게 해서 가장 취약한 지점이었던 합작 사업 초기에, 충분히 상대할 만한 전력만 아군측이 투사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라면?

그의 이마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르는 순간.

“오늘은 완전 텅 비었구먼!”

목청 커다란 장로원주의 한마디에 그가 유지하던 극한의 집중 상태가 무너졌다.

"자 자! 다들 기운 차리고! 여기서 내가 제일 바쁘고 피곤한 사람이니까!”

개회 선언과 함께, 손 장로의 머릿속에서 대공자에 대한 '불길한 망상'이 밀려났다.

'애초에 가정에 가정을 더한 발상이다. 더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그에게는 같은 계파 동료 장로들의 위임장 전체가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누구와 상의를 할 수도 없는 상황.

장로회의에 온전히 집중해야 할 때였다.

* * *

조금 전.

낙양, 북망산.

초호화 저택 구역 입구, 검문소.

“소속은?”

아미파의 부총무 비구니는 급히 대답했다.

“아, 아미파입니다.”

“신분증은?”

상대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차 안을 홅는 동안, 부총무 비구니는 급히 품을 뒤져 자신의 호패와 아미파의 신분증을 꺼내 주었다.

그것은 마차 안의 다른 비구니들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상대는 별로 특별한 의미 없이 낸 소리였겠지만, 부총무 비구니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우, 우리 신분은 앞의 마차에 타고 있는 상관난화. 그러니까 상관 아가씨께서 증명해 주실겁니다.”

그녀가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다.

“상관 아가씨는 사천 성도지사님의 따님이시고, 신분이 확실한….”

“됐소.”

상대가 그녀의 말을 끊어 버리고는 신분증들을 돌려주었다.

“검문 협조 감사하오.”

거의 던지다시피 돌려준 신분증들이었지만, 부총무 비구니는 감히 항의 따위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화, 황군(皇軍)!’

그랬다.

상대는 황실 소속의 군인

아침 태양이 없더라도 은빛으로 번쩍이는 교룡(蛟龍)의 비늘로 만든 갑주.

금색 실과 보라색의 실이 섞여 휘날리는 풍성한 투구의 술.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검과 함께 허리의 검대에 걸려 있는 황실에서 하사받은 것이 분명한 검까지.

부총무 비구니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러한 특징을 통해, 이들의 정체를 추측해 냈다.

'…중원국 황실 직속 제이근위여단(第二近衛旅團).'

각 마차마다 검문을 마친, 근위여단 소속의 군인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집합하는 모습은, 그것만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기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검문을 마친 것은 연 현의 철갑요새에 올라탔던, 여단 지휘관이 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철갑요새에서 내려선 그는 두 손을 모아 연소현에게 예를 표했다.

“정문 개방!”

그의 명에 따라, 대로를 막고 있던 검문소의 장벽이 움직여 길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사실 검문소라기보다는 요새의 입구에 가까운 형상이었다.

“통과!”

그가 외침과 함께 수신호를 보내자, 대공자 연소현을 실은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성벽처럼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북망산 지역으로 진입했다.

"...여, 여기가 대체 어딘데 낙양의 경비대도 아니고, 관군도 아닌, 황군이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떨리는 목소리로 무승 하나가 묻자, 행정 비구니가 손에 가득한 식은땀을 문질러 닦으며 답했다.

“못 들어 보았는가? 여기가 바로 그 북망산이네.”

질문을 했던 무승의 입이 떡 벌어졌다.

“부, 북망산요? 그 황도십육가문(皇都十六家門)의 별장들이 있다는 그 북망산?”

황도십육가문이라는 단어를 들먹 이자 모든 이들이 그 무게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

부총무 비구니가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대대로 황위(皇位)를 보위해 온 제국공신가문(帝國功臣家門)들.”

창밖으로 보이는 저택의 담장 하나하나가 작은 성벽이나 마찬가지 였고, 마차 안에서는 그 끝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 십육 개 가문들의 은퇴한 권신들은 중원국에서 가장 풍수가 좋다는 이 북망산에서 여생을 보내고 그 천수가 다하면, 조상들과 함께 북망산 저택의 제실에 모셔진다고 하지.”

행정 비구니 하나가 황도십육가문에 대한 가장 유명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 상단 하나 없으나 대륙의 부가 그들에게 흘러들어 오고, 그들을 지키는 사병 하나 없으나 황실의 권위가 그들을 보호한다.”

행렬은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 만났던 저택의 높은 담은 아직 그 입구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낙양검가의 대공자라면, 평소에 이런 이들과 어울리는 겁니까?”

무승의 질문에 부총무 비구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것은 검가의 가주라도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무리 낙양검가가 천하제일가라 하더라도, 그들은 황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최고의 정치권력 가문들이었으니.

“그저 이곳을 찾아온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아니. 그렇다면…?”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미리 약속이 있었다?”

* * *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 대회의장.

부총무 비구니가 한 추측을 이공자 측 장로들이 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여기! 여기 있소!”

장로 하나가 서류 더미 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런 일이 있을지 몰라, 내 조사를 해 놓았었지.”

그가 조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이것은 칩거를 끝낸 이후, 원각정에 축하 서신을 보냈던 모든 이들의 명단이오.”

서신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했던 이들이 원각정의 입구에서 큰 소리로 자신들의 가문과 서신의 주인을 밝혔기에 가능한 조사였다.

“자, 그쪽 끝을 잡고 풀어 보게!”

처음엔 무슨 두루마리지 했던 이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명단이 너무 길어 두루마리의 형태로밖에 정리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여러분! 어서 십육가문 중 대공자에게 서신을 보낸 가문을 찾아보시오!”

사람의 키를 넘어서 늘어난 명단에 모두의 시선이 못 박혔다.

“여기!”

속독 기술이 좋은 책사 하나가 목록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공(孔)씨 가문! 삼대를 이어 재상(宰相)을 배출했던 가문이로군!”

만세사표(萬世師表), 사문재자(斯文在玆), 덕제주재(德齋幡載), 성집대성(聖集大成), 생민미유(生民未有).

공씨 가문은 그런 빛나는 수식어로 불리는 위대한 스승, 공자(孔子)의 직계 후손 가문이었다.

“으음….”

축하 서신 목록을 만들었던 장로가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기억을 되새겼다.

“공씨 가문에서 대공자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

외원 소속의 장로가 손뼉을 쳤다.

“기억났소! 오래전에 은퇴했던 전대 가주가 때때로 대공자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던 적이 있소!”

“하필 전대 가주라니…!”

다들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하후 장로가 고개를 들어 대회의장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현장에서 소식이 안 들어왔나?! 대공자가 방문한 가문이 공씨 가문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입구에서 대기 중인 책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아, 아직입니다!”

주변에서 다른 장로들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겨우 강(姜) 장로가 본가를 벗어났을 시간일세.”

그 말에 하후 장로가 여송연을 잘근 씹었다.

애초에 북망산은 정보원을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고, 정보 요원이 직접 들어가 정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장로 하나를 직접 현장으로 보냈던 것이다.

“…일단, 대공자의 방문 예정지가 공씨 가문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예상 각본들을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겠군.”

한 장로의 중얼거림에, 하후 장로가 고개를 들고 책사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들었겠지! 즉시 시작해라!”

그가 외치기도 전에 이미 기민한 책사들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 십육가문 중 하나라고 하지만,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만 한다면, 우리 쪽에서도 충분히 개입이 가능하다!”

* * *

낙양검가, 최고 운영 회의.

“공씨 가문?!”

최고위원들이 웅성거렸다.

정보부처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공자의 행적을 파악 중인 최고위원들은 낙양검가 내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분명 대공자가 공씨 가문의 전대 가주와 친분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기억나는군요.”

신입 여성 최고위원의 말을 듣고는 신입 남성 최고위원이 중얼거렸다.

“칩거를 끝내고 방문했던 공씨 가문의 일원들을 통해 만남을 요청해 두었던 것인가…?”

“확실히 대공자의 인맥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군요. 그 나이에, 모계의 배경도 없이, 그것도 칩거 생활 중에 이런 인맥을 만들어 두다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고위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대공자가 만남을 요청했다. 과연 그럴까요?”

그의 말에 두 신입 최고위원이 의아함을 표했다.

“그게 무슨…?”

“그럼 요청도 없이 대공자가 친분만 믿고 방문하겠다고 찾아갔다는 말씀입니까?”

다른 최고위원이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공씨 가문에서 먼저 대공자님께 축하 서신과 함께 초대장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