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40화 (140/350)

제15편 북망산

낙양검가 장로원, 대회당.

곧 개회를 앞둔 대회당에는 평소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용하구먼….”

가만히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던 장로 하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가장 시끄러운 이들이 없으니.”

옆의 동료 장로의 말에 그가 고개를 들어 대회의장을 슬쩍 둘러보았다.

“삼공자 계파의 장로들은 엊그제부터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지에 생긴 '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고.”

“아무래도 쉽사리 끝날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삼공자 계파의 자리 쪽에는 한두 명의 장로만이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들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향했다.

"...이공자 계파는 이 틈을 노려 대공자와 사공자의 합작 사업을 완전히 백지로 되돌려 버릴 생각인가 보군.”

“사실상 정치적 총력전을 선언한것과 마찬가지인가….”

이공자 계파의 방향에는 단 한명의 장로, 손 장로만이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결석한 장로들의 위임장만 있으면 표결에는 문제가 없으니, 양 진영에서 최소한의 장로만 남겨 둔 모양새였다.

"...."

달리 말을 걸어 주는 이도 없이, 그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손 장로를 바라보던 장로가 중얼거렸다.

“…강남 파벌이 낙양 파벌에 한방 먹었다더니, 정보가 사실이었나 보군.”

“저쪽도 내부가 복잡하구먼.”

두 사람의 대화가 멈췄다.

"...."

“…망할.”

오늘 다룰 의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자, 결국 서류를 치워 버린 장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폭풍 전야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맞아떨어지는 상황도 드문데.”

“뒤숭숭하구먼, 뒤숭숭해.”

어째서 이리도 기분이 묘한 것인가.

“…이공자 측이 총력전으로 나온 이상, 당연히 이공자 진영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일 텐데.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아무리 대공자의 지혜가 신산(神算)이라 불릴 경지에 이르렀다고들 하지만, 결국 일을 기책(奇策)으로 풀어 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장로 전체일세. 이공자는 자기 계파의 장로 전체를 동원했어.”

“그렇지.”

그것은 반드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공자와 사공자를 짓눌러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렇지.”

그럼에도 대회당의 분위기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공자는 정치적 자원 전체를 동원하고 있었다.

대공자와 사공자의 전력은 그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이공자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했다.

“...대공자가 칩거 이후 첫 외출을 했다지?”

“그렇게 들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덕거리는 장로들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묘한 기류가 있었다.

그들은 대공자를 응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약자를 무심코 응원하는 무의식적인 심리에 휘둘릴 정도로 애송이들도 아니었지만.

묘하게 그들의 속을 간질거리는 물음이 하나 있었다.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순수하게 그저 감각에서 비롯된 궁금증 하나.

'과연 자신들의 계산처럼 이공자가 압도적인 전력으로 대공자를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인가?’

* * *

같은 시각.

낙양검가, 어딘가.

최고 운영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용봉지회 경기장 부지에서 발생한 소요(騷擾)에 대해서는….”

“당분간 삼공자 측의 대응을 좀더 지켜보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삼공자의 진영은 낙양 행정부와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하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그럼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변조된 음성들이 석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의제로….”

다들 부스럭거리며, 새로운 서류를 펼쳐 들었다.

“원각정의 지원에 대한 긴급명령 기한을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라.”

잠시 석굴이 침묵으로 빠져들자, 의장의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들 대공자께서 외출하셨다는 정보는 받으셨을 것이오.”

“그렇습니다만….”

회의가 진행 중일 때도 중요한 정보는 전부 그들에게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낙양검가의 정보부처들로부터 들어온 정보는 기관으로 전달된다.

그렇게 들어온 정보는 기관에 의해서 각자 최고위원에게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이는 대공자께서 모든 준비를 끝내셨다는 뜻이라고 본 의장은 해석하는 바이오.”

신입 여성 최고위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아직 대공자 측의 전력은 사공자 측과 합해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비교 열세임이 틀림 없습니다.”

신입 남성 최고위원 또한 떨떠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지금처럼 이공자와 삼공자 측이 납득한 명분이 있을 때 조금 더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

그들은 절대 이 후계 경쟁에서 대공자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공자가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것 또한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맞는 말씀들이긴 하지만….”

그 말에 다른 최고위원의 그림자가 고개를 저었다.

“긴급명령에 의해서 이보다 더 지원이 이어진다면, 오히려 대공자께 다른 계파에 속한 이들이 꼬투리를 잡을 만한 일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공자의 공세가 시작되는 현재, 큰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원각정에 대한 지원은 유지가 되어야….”

“그것도 그렇지만….”

잠시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의장이 끼어들었다.

“그대들은 대공자께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시오?”

신입 남녀 최고위원들이 멈칫거렸다.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대공자의 가진 바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발언에 잠시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소리들이 홀러나왔다.

“크, 크흠.”

“…저희도 같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의장이 그런 그들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저 앞으로 대공자님의 행보를 지켜보라고 하는 수 밖에 없겠구려.”

대공자의 능력은 실로 기이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대공자의 능력과 그 능력으로 이루어 낸 업적은 불완전한 기록과 가변적인 기억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어라는 불완전한 소통 수단으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

잠시 좌중이 침묵에 싸인 사이, 의장이 자신의 방에 설치된 금속관으로 전해져 온 쪽지를 펼쳤다.

그 쪽지에 적힌 정보를 확인한 의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전 최고위원에게 정보를 전달해 드리게.”

그의 허가에 따라 각자의 작은 방에 설치된 금속관을 통해, 쪽지가 들어왔다.

“…이건?!”

“으음… ”

쪽지를 펼쳐 본 남녀 신입 최고 위원들은 아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뿐 아니라, 다른 최고위원들마저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침음을 흘렸다.

“대공자님의 첫 움직임을 보셨소?”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쪽지를 바라보며, 의장이 허허, 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대들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게 될 것 같군.”

* * *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

대회의장.

“대공자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 각본은 각자 준비가 잘되어가고 있겠지?”

하후 장로가 손에 든 여송연을 휘두르며, 대회의장 곳곳을 누비는 중이었다.

“처음부터 말했듯이 지금 단계에서는 의견 공유를 할 필요가 없어! 아예 하지 마! 각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서, 모든 사각(死角)을 없애야 한다!”

그가 그렇게 돌아다니며, 사기를 북돋웠다.

“우리에게는 대공자 쪽에는없는 무한에 가까운 자원이 있다! 지금 옆방에서는 우리측 장로님들 거의 모두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지혜를 짜내고 있다는 말이다!”

대회의장에 가득 찬 책사들이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붓을 휘갈기고 있었다.

그들은 대공자가 이번 합작 사업을 진행하며 벌일 법한 모든 가능성을 미리 구성해 보는 중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하후 장로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하후 장로님!”

그때 전령 하나가 뛰어 들어와 하후 장로에게 쪽지를 건넸다.

“급보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하후 장로에게 쏠렸다.

“앞으로는 내게 몰래 전달할 필요가 없다!”

그 쪽지를 건네받지 않은, 하후 장로가 전령에게 지시했다.

“이 회의실의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바로 발표하란 말이다! 알겠나?!”

“옙!”

전령이 쪽지를 펼쳐서 큰 소리로 읽었다.

“대공자! 현재 북망산(北邙山) 입구 통과!”

하후 장로의 몸이 굳었다.

“…뭐?”

그가 여송연을 다시 입에 물고, 전령이 들고 있는 쪽지를 빼앗아 들었다.

"...."

대회의당이 조용해졌다.

하후 장로는 대공자의 움직임을 상상하던 책사들에게 굳이 '북망산'에 대한 예측을 묻지 않았다.

그조차도 상정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신 전령에게 외쳤다.

“당장 옆방의 장로들 전부 다 오라 그래!”

* * *

그 시각, 중립 계파 장로와 만나고 있던 아미파 총무사태는 불편한 기색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다.

“...사천성에서의 이권이라.”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낙양검가의 장로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 구미가 동하는 거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천 쪽의 거래는 역시 당가 쪽이 낫지. 아니면, 대리 단가나.”

"...."

총무사태는 찻잔을 들어 올리는 자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겨우 참았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려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빌려야 하는 상황.

“…당장에는 그렇겠지만, 차후 5년을 내다보면.”

어렵사리 설득을 이어 가려던 총무사태의 말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이들에 의해서 끊어졌다.

장로의 뒤에서 들어온 전령과 총무사태의 뒤에서 들어온 전령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흐음.”

자신의 전령에게서 쪽지를 건네받은 장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쪽지를 건네받는 총무사태를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삼공자 측에서 정보 공유는 확실히 해 주는 모양입니다. 허허.”

"...."

감춘다고 감춘 자신의 행선지를 삼공자 측이 어떻게 파악한 것인지에 대해 침음하던 총무사태가 자신의 쪽지를 펼쳤다.

"...!"

“이것은…!”

노파의 두 눈이 부릅떠진 것과 장로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대공자 놈이 북망산으로 들어갔다고?!’

노파가 부들거리든 말든 장로는 연신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공자인가…. 북망산이라. 허, 그것참. 상상도 못 한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군.”

그가 이마에 핏대가 바짝 선, 총무사태의 얼굴을 살피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북망산에 대해서는 총무사태께서도 아시겠지요?”

총무사태의 반응만 보아도, 아니. 반응을 보지 않아도 노파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 북망산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이야. 북망산의 초호화 저택 구역이라니!”

하지만 굳이 장로는 북망산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 중원국 황실에서 최상위 품계에 올랐던 가문들이라면 반드시 확보한다는 바로 그곳입니다.”

예로부터 북망산은 그 풍수가 너무도 훌륭해, 명당자리를 찾는 고관대작들의 묫자리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북망산은 조상을 모시는 제실(祭室)을 포함한 초호화 저택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황실에서 은퇴한 이들이 낙양의 호화로움과 풍요로움을 즐기며 노후를 보내는 일종의 별장이기도 했다.

“대대로 최상위 품계에 오르지 못했다면, 감히 땅 한 조각조차 구할 수 없다는 그 북망산이라니….”

처음에는 아미파의 총무사태를 놀리고자 과장되게 감탄을 이어 나가던 장로였지만, 이내 그조차도 점차 아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곳의 가문들은 중원국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이들.”

그가 침음을 흘렸다.

"본가의 후계자라 할지라도 결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가문들일진대….”

대대로 황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했던 가문들.

감히 천하제일가의 후계자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은퇴한 황도의 거물들.

“도대체 대공자는 어떻게…?"

다실에는 침묵만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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