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39화 (139/350)

제14편 선수 교체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

야외 구석지고 그늘진 자리에서 연초를 태우는 책사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결국, 주군을 섬기는 모든 장로가 모여 만들어 냈다는 회의의 결과가 이건가?”

맞은편의 책사가 좌우를 슬쩍 둘러봤다.

자신들과 같은 파벌 소속의 책사들만 모여 뻑뻑 연초를 피우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결국에 그런 것이지. 이제까지 손 장로를 위시한 우리 강남사단이 결과를 못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강남 출신의 나이 든 책사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애초에 대공자 대응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 사공자 대응에는 이전부터 별다른 지원도 없었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 우리 강남 파벌에 그 책임을 묻는다고?”

젊은 책사가 잘 피우지도 못하는 연초를 들고, 눈치를 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공자…, 아니. 주군의 진영은 '낙양 파벌'과 '강남 파벌'로 나뉘어 있었습니까?”

그의 말에 다들 코웃음을 쳤다.

“처음은 개뿔.”

“애초에 몇 년 전만 해도, 낙양 파벌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어.”

그 말에 젊은 책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존재하지 않았다고요?”

“주군의 어머니이신 구양 태상부인이 어디 출신이신가? 강남 사(四)개 성, 강소(江蘇) 절강(浙江) 복건(福建) 광동(廣東)을 세력권으로 삼고 있는 사패천 출신이 아니시던가?”

“사패천련주(四覇天聯主)의 따님이시니, 당연히 원래 주군의 세력은 우리 강남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었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그 시절만 해도 주군의 세력이라기보다는 구양 태상부인님의 세력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었지.”

“그야 주군께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책사가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진영이 지금처럼 두 갈래로 찢어지게 된겁니까?”

늙은 책사가 부채를 펼쳐 들었다.

“주군께서 장성하시고, 그 영민함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가자, 그 인품과 덕에 반한….”

책사들이 손을 내저어 그의 입을 막았다.

"자네는 헛소리하지 말고, 연초나 마저 피우게.”

“능력이면 몰라도 무슨 인품 같은 소리를….”

다들 그렇게 늙은 책사에게 눈치를 주는 동안, 책사 하나가 젊은 책사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려울 것 없어. 가문의 소가주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후계자들은 나이를 먹었지. 결국에 우리 주군께서 소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낙양 출신 장로들이 합류하게 된 것이야.”

그렇게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젊은 책사가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새로운 질문을 꺼냈다.

“그럼, 어째서 나중에 생긴 낙양 파벌이 원래부터 있던 우리 파벌과 힘을 겨룰 정도로 강해진 겁니까?”

그러자 계속해서 질문에 답해 주던 책사들이 화를 냈다.

“자네도 책사라면 생각을 좀 하게, 생각을!”

“지금 자네가 있는 이 가문이 어디에 있나? 어디 이 가문이 황도(皇都)에라도 있나?”

젊은 책사가 이마를 쳤다.

"아, 낙양…!”

”그래. 낙양. 낙양검가가 낙양에 있으니, 낙양 파벌의 힘이 그만큼 빠르게 강해진 것이지.”

그때 저 멀리서 책사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다들 대회의장으로…!”

* * *

“다들 반갑다!”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인사를 건네는 노인은 장군가의 태생답게 무골(武骨)이라 풍채가 훌륭했다.

대회의장을 가득 채운 책사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인사에 답했다.

“…반갑습니다.”

“하하! 다들 활기가 넘치는 것이 아주 보기가 좋구먼그래.”

얼굴은 낮술이라도 한잔 걸친 것처럼 벌건 혈색이 짙게 도는 노인이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다들 알다시피 노부는 하후 장로라 부르면 된다!”

하후 장로가 껄껄 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억지로라도 함께 웃음을 지을 정도로 정신이 나간 이는 없었다.

그러든 말든, 자신이 웃고 싶은만큼 웃음을 터트린 후에야, 본론으로 들어가는 하후 장로였다.

“아무래도 본 장로가 이렇게 앞에 선 것을 낯설게 느끼는 동지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싱글거리는 얼굴로 좌중의 책사들을 둘러보았다.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여러분은 삼공자 대응을 포함한 필수 인력을 제외한 전 인원이야. 주군 아래 함께 땀 홀려 일하는 한 식구들이지. 그래, 맞아. 한 식구!”

혼자서 그렇게 자신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껄껄 웃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디 출신이냐는 문제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말이다!”

그가 거침없는 말투로 좌중을 향해 외쳤다.

“애초에 이번 결정 자체가 문책성 인사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단지 현 상황에 좀 더 적합한 대응법을 구사하기 위한 인사교체일 뿐이란 말이다!”

그가 자신의 두꺼운 가슴팍을 두드렸다.

“이 하후 장로가 하는 말을 못 믿겠는가?!”

몇몇 군데서 대답이 나오긴 했지만, 그들은 전부 강남사단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철면피라도 무안하기라도 할 터인데, 하후 장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 그렇지! 여러분 하나하나가 다들 훌륭한 책사고, 뛰어난 모사들이니, 이런 이야기 몇 마디에 넘어가면, 그것 또한 말이 안 될 일이 아니겠나.”

"...."

그러더니 그가 단상에서 내려와서 바닥에 걸터앉았다.

“뭐, 강남 동지 여러분의 마음도 이해해. 사실 단합이니 뭐니, 그깟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있으면, 애초에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지.”

그러고는 두꺼운 특제 여송연(呂宋煙) 하나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음, 맛 좋군.”

두꺼운 만큼 짙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래도 말이다….”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강남 출신 책사 하나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었다.

“너, 내가 우습냐?”

“예, 예?! 아, 아닙니다!”

“방금, 예라고 한 거냐? 아니라고 한 거냐?”

“아닙니다! 우습지 않습니다!”

하후 장로가 그를 다시 자리에다가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외쳤다.

“그런데 왜 다들 사람 우습게 보는 것처럼 대답도 안 하나?!”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내 말이 그렇게 뭣 같으냐?”

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있던 책사들이 허리를 급히 세우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러자 하후 장로가 표정을 바꾸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다들 활기가 넘치는 것이 아주 보기가 좋구먼그래!”

그 말은 그가 좌중 앞에 서서 인사말 다음에 했던 말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차이점이 있다면, 다들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처음과는 다르게 억지로라도 함께 웃는다는 점이 었다.

"강남 동지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후 장로가 여송연을 든 손을 공중에 휘저었다.

“그래. 강남땅 뭣 같지. 나도 잘 알아. 그런 곳에서 낭인 책사로 살아남다 보면, 세상사 쓴맛은 다 본것 같지, 아마 그럴 거야.”

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이 낙양에 오니까, 여긴 젖과 꿀이 흐르는 동네처럼 느껴지나? 아주 만만해?”

그럴 리가 있는가.

“아닙니다!”

하후 장로가 여송연을 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나 거기나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은 거기서 거기다. 이 지옥 구덩이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쳐야 간신히 코로 공기라도 마실 수 있는 것은 똑같다는 말이다.”

"...."

모두의 시선이 또렷하게 자신에게로 모인 것을 확인한 하후 장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커다란 가문의 후계자 정쟁에서 패하면, 어차피 여러분이나 나나 뒈진 목숨인 것은 매한가지다!”

그가 손에 든 여송연을 으스러뜨려 가루로 만들었다.

“뒈지기 싫으면 먼저 죽이란 말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회의장을 울리는 커다란 대답 소리에 그가 껄껄 웃었다.

“좋아. 아주 좋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회의장에 들어오기 전에 받았던 쪽지를 펼쳐 읽었다.

“우리의 대공자님께서 즐거운 첫 공식 행보를 시작하셨군.”

그가 좌중을 향해 외쳤다.

“이제부터 각자 골방에 틀어박혀서, 밑에 애들만 데리고 골머리 썩히는 일은 없도록 한다!”

그가 손을 들어 바닥을 가리켰다.

“모두가 이 대회의장에서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가 크게 한 번 박수를 치고, 기합을 넣었다.

“우리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자원과 인력이 주어졌다!”

세상 어느 책사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두의 눈에 독기와 열의가 가득 차올랐다.

“자! 이제 대공자의 예상 이동 경로를 먼저 구상한 다음! 우리에게 주어진 진영 전체의 힘으로, 놈의 계획을 박살 내 버린다! 알겠나?!”

대답 소리가 우렁차게 돌아왔다.

* * *

원각정의 사두장갑마차에 타고있는 비구니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밖에서 지나가는 풍경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공자에게 얼떨결에 동행 수락을 받아 낸 부총무 비구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꾸 홀러내리는 식은땀을 화려한 승복의 소매로 홈쳐 내기 바빴다.

'왜? 어째서?’

지금 부총무 비구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질문의 요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왜, 그리고 어째서.

'검가의 대공자는 적대 관계가 분명한 우리 아미파의 비구니들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행렬에 합류시킨 것이지?’

심지어 머릿수가 많은 그들을 위해서 추가로 마차까지 구해 태운 대공자였다.

흑단목으로 만든 이 장갑마차는 비구니들이 타고 왔던, 아미파에서 가장 호화로운 마차와 비교도 되지않을 정도로 고급품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속으로 시내를 질주하는 와중에도, 너무도 훌륭한 승차감을 보여 주고 있었다.

손에 닿는 모든 곳이 보랏빛 우단(羽緞)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밑으로는 부드러운 솜으로 꽉 들어차 푹신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이 훌륭한 승차감이 더욱더 가시방석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란스럽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낙양 거리의 풍경이 거짓말처럼, 대공자의 행렬은 아무런 거침도 없이 거리의 대로를 질주하는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낙양의 관병들이 나서서 모든 길목과 대로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골목마다, 교차로마다, 통제당하고 있는 마차들과 수레들 그리고 사람들로 한바탕 난리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사천에서도, 심지어 당가라고 할지라도 이런 짓을 하면, 온갖 욕을 들어먹을 터였는데.

어째서인지 이 낙양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저 마냥 신기해하고 순종적인 얼굴로 행렬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낙양은 이상한 곳이야. 검가는 더욱 이상한 곳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의문은 따로 있었다.

'도대체 이 행렬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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