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깊어 가는 밤
낙양검가의 어딘가.
회담을 마친 아미파의 총무사태 가 마차에 올라탔다.
“회담은 만족스러우셨는지요?”
뻔히 표정에서 만족스러움이 묻어났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는 부 총무 비구니였다.
“그래, 만족스럽구나.”
그렇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성질을, 돌다리 짚어 보듯 점검해 본 후에야 본론을 꺼내는 부총무 비구니였다.
“…혹시 가족들의 희생까지 무릅쓰고 다선랑이 치기 어린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비구니들에게는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 불안함이 남아 있던 그녀였다.
“그 아이들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제가 어리석은 탓에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지금 대공자의 처소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 않습니까.”
“상관없다.”
총무사태가 주름을 일그러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에 대공자와 사공자의 합작사업을 무너뜨리면, 다선랑은 그들에게 필요 없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총무사태가 끌끌 하고 웃었다.
“그렇게 되면, 다선랑은 결국 우리 아미의 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법.”
그리고 자신은 그런 다선랑에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새겨 줄 것이다.
* * *
낙양검가 내원.
내원의 모든 집사는 평생을 내원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내원에 숙소용 전각들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이유였다.
깊은 밤.
휘영청 빛나던 달도 짙은 구름에 얼굴을 감추었다.
사계(四階)집사 하나가 유등을 들고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유난히 업무가 늦게 끝난 날이었다.
어둠에 잠긴 숙소의 복도에 차가운 바람이 스쳤고, 유등의 빛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의 소음이 유난히도 거슬렸다.
그 오랜 시간을 생활해 온 공간이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모든 것들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렀다.
뚝 꺾인 복도의 끝이.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불안하게 어른거리는 문풍지 너머가.
부주의로 열린 어느 숙소의 문틈 사이로 보이는 짙은 어둠이.
무언가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는것 같은 느낌에,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며칠간 연속된 격무에 피로하고 그로 인해 신경이 곤두선 까닭이리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도, 자신의 숙소에 도착해서 자물쇠를 잡는 그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
열쇠를 돌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심야 시간의 복도에 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연 그는 유등을 먼저 들이밀어 안을 살폈다.
평소와 마찬가지인 방의 모습에 안심한 그는 얼른 들어가 작은 빗장을 걸어 문을 잠갔다.
잠시 호흡을 고른 그는, 긴장하느라 모르고 있던 잠기운이 한 번에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의복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드러누운 그는 몇 번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기절하다시피 깊은 잠에 빠졌다.
잠이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을 삼키며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알이 이리저리 굴렀다.
그가 가져왔던 유등은 이미 꺼져 방은 어두웠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이 방 안의 전경을 비추고 있었다.
거칠게 뛰는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바람에 삐걱거리는 목조 전각 특유의 소음을 뚫고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무것도 아닌가?’
그의 무거운 눈꺼풀이 다시 감겨왔다.
'뭔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던 거 같은데.'
거기까지 기억이 살아난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닿은 것은 숙소의 문이었다.
문을 잠그기 위해서 걸어 두었던 작은 빗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
그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문은 분명 걸어 잠갔건만.
아니다. 너무 피곤한 탓에 문도 제대로 걸어 잠그지 못하고, 잠든것일지도 몰랐다.
문을 잠그기 위해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 그는 목이 답답한 것을 느꼈다.
“...어?"
그의 목에는 올가미가 걸려 있었다.
“어, 어?”
그 순간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그를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무어라 비명을 지르며 올가미가 조여 오는 틈 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다.
목이 단번에 조이는 것은 막았지만, 밧줄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그의 몸을 복도로 끌고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튕기다시피 한 그의 몸에 부딪힌 문이 바깥쪽으로 거칠게 열어젖혀 졌다.
복도를 등으로 얼굴로 문지르고 부딪치며 사정없이 끌려갔다.
꺾인 복도에서는 관성에 의해 반대편 벽면에 충돌했고, 계단을 끌려 내려갈 때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사정없이 목을 졸라 오는 올가미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컥컥거리는 소리뿐.
그렇게 끌려가기를 한참.
그의 몸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의자에 강제로 앉혀졌다.
주변을 급히 돌아보는 그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켜졌다.
타오르는 화톳불을 등 뒤로 하고, 하얀 두건을 쓴 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 당신들은…?!”
그가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그의 입에 재갈이 물려졌고, 발버둥을 쳐 보려 했지만, 이미 그의 몸은 밧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물어보지도, 아무것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선 이가 시뻘겋게 달군 부지깽이로 그의 왼쪽 안구를 후벼 팠다.
"으, 으으으으으으!"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목에 시퍼런 핏줄이 곤두섰다.
고기를 지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얀 두건을 쓴 이가 다가와 그의 재갈을 걷었다.
그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들어 가 터져 버린 안구에서 내달리는 격통에, 그저 신음과 함께 피거품 섞인 타액을 줄줄 흘릴 뿐이었다.
하얀 두건을 쓴 이들 중 가운데 있던 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군.”
하얀 두건의 눈구멍 사이로 너무 나도 차가운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본원(本院) 내에 존재하는, 사조직에 대해서 말해 보게나.”
"...!"
사계집사의 하나 남은 눈이 하얀 두건을 쓴 이의 허리춤을 향했다.
그곳에는 여섯 개의 금술이 걸려, 화톳불의 붉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 * *
총관비서가 보고했다.
“보안비서의 색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등불 하나가 밝히기에 전각 내부는 너무나 어둠이 깊었다.
“서두르도록 하여라.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 어둠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내원총관의 반개한 눈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 물론입니다.”
평소대로라면, 보고를 마치고 물러나야 했을 총관비서였지만, 오늘은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어 보였다.
“하온데….”
반개하고 있던 내원총관의 눈이 총관비서를 향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탁해 보이는구나.”
총관비서가 머리를 조아렸다.
“대공자의 첫 행보를 그저 이렇게 지켜만 보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보고 있지 않는다면?”
바닥에 엎드린 총관비서가 더욱 머리를 깊이 숙였다.
“이공자 진영의 움직임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활발합니다. 삼공자 진영도 필시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미파의 총무사태를 전 장문인 하나가 만났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서?”
물음에 물음을 거듭하는 내원총관에게 총관비서가 가르침을 구했다.
“대응을 위한 지침이 필요합니다.”
엎드려 고개를 조아린 총관비서의 뒷머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내원총관이 입을 열었다.
“총관비서라는 자리는, 내원총관의 수석 도제(徒弟)와 같은 위치지. 내원총관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언제든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내원총관이 혀를 찼다.
“하지만 네 하는 꼴을 보니, 내가 불상사를 당하는 날이 영영 오질 않도록 기도를 올려야 할 모양이구나.”
가혹할 정도의 평이었다.
하지만 총관비서는 한 점의 분함도 없이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부디 불민한 제게 가르침을….”
내원총관이 가부좌를 풀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쇠한 근육은 쇠퇴하고, 이미 관절은 삭은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그 골격을 지탱하는 것이 있다면, 한 줌의 내공 덕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 년을 넘게 바쳐 온 낙양검가를 향한 광기에 가까운 충정이리라.
“감히 본가 전장의 돈이 제 돈인양 여기는 도둑놈이 본가 적자의 대출 정보를 아무렇게나 흘리고 다니고….”
하루 절반 이상을 심처에 머무는 그였지만, 그런 그가 가문 내에서 모르는 정보가 얼마나 될까.
“대공자의 첫 행보를 망치면, 그 대공자를 후계 다툼에서 완전히 밀어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에 온 가문이 들썩이는구나.”
주름으로 가득한 내원총관의 얼굴에 노골적인 조소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이 일의 결말이 네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냐?”
내원총관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일이 결국 대공자가 원하는 대로 풀려 갈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어딘가 납득하지 못하는 총관비서의 말투에 내원총관이 자신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어리석은 놈.”
내원총관은 딱 잘라 말했다.
“본가의 누구도 대공자와 정면에서 수 싸움을 해서 이길 수 없다.”
"...!"
“아니. 본가가 아니라, 중원국 전체에서도 감히 그 대공자와 머리싸움으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그것은 십 년 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말씀은….”
대공자가 결국 승리하게 되리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말을 삼키는 총관비서의 모습에 내원총관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지금 진행하는 일이 무엇이더냐?”
“본원 내부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썩은 껍데기'들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다.”
내원총관이 히죽 하고 웃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 웃음은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든 것은 대공자의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지.”
제멋대로 후계자를 섬기는 이들을 처벌하는 일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들 후계자 중 누군가는 낙양검가의 소가주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공자가 내원을 뒤집어놓은 이후, 장로원으로부터 견책을 받은 내원총관에게 명분이 생겼다.
“덕분에 우리는 이제 그 마지막 껍데기를 제거하는 단계까지 올 수 있었지.”
내원총관이 앙상한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하고 쳐 보였다.
“대공자의 수 싸움에 말려들어, 정면으로 대응해 봐야, 기다리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노림수뿐.”
연소현이 내원총관을 평하길, 낙양검가에서 흑막을 논하자면 반드시 꼽아야 하는 이라고 했던가.
“대공자가 던지는 것은,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서 이용할 뿐.”
노괴의 눈알이 등잔불에 번들거렸다.
“이미 판을 벌이고 있는 대공자를 노리려면, 마지막의 마지막에. 예상치도 못했던, 판 바깥에서 찌르고 들어가야 하는 법.”
허리가 굽고, 앙상한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박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총관비서는 마른침을 삼키는 것도 잊고 가르침을 받들었다.
“그때까지 너는 본원의 썩은 껍데기 모두를 제거해야 할 것이야.”
노괴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것이 내가 본원에 내리는 지침이다.”
* * *
밤은 더욱 깊어 가고, 어둠 속에서 각자의 계산이 교차한다.
패의 정렬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또 한 번의 대국이 펼쳐지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