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34화 (134/350)

제9편 지분(持分)

낙양검가.

접객당이 운영하는 대연회장.

호화찬란하다는 말도 부족한 대연회장에는 노래와 연주가 끊이질 않았다.

유흥이라면, 낙양. 낙양 하면 유흥 아니겠는가.

그 낙양에서도 비할 데가 없는 낙양검가의 접객당이니.

그 접객력은 실로 천하에서 일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하겠다.

“좋구나! 이곳이 월궁(月宮)이고, 이곳이 천상(天上)이다! 그 어딜 둘러봐도 부족한 것 하나 보이질 않으니, 선계(仙界)의 연회가 부럽지가 않구나!”

당고규가 홍에 겨워 외치는 소리에 투자단의 일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밖의 정원까지 들려오는 그 소음에 사공자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되어 가고 있군.”

옆에서 연초를 태우던 유 장로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 먼 거리를 달려온 다음 습격까지 받았던 이들이, 연회라니까 눈이 뒤집혀서는….”

사공자가 웃었다.

“그 유쾌함이 사천 사람의 장점 아니겠어요? 게다가….”

그가 들려오는 노랫가락에 고개를 끄덕여 박자를 맞춰 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 투자단에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끌어낼지는 '전부 연회에 달려있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유 장로가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는 사천에서 아미파의 행태가 마음에 걸립니다. 과거보다 패악질이 심해졌다는 보고는 들어 왔지만, 이번에 다선랑의 사례를 보니, 그냥 넘어갈 수준이 아닙니다.”

“근래에 대리단가와 동맹을 구축하고 나자, 더 이상 당가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것이죠.”

사공자의 입은 들려오는 선율에 따라 미소를 그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웃음기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부터 자신들의 영향력하에 있던 사업체들의 수익을 기부 형식으로 상납받아 오던 그들이 이제는….”

유 장로가 말을 받았다.

“이젠 아예 지분을 강탈하고 있더군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역사 속, 그 이름 높던 아미파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 버리다니.”

그녀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아니면 그저 지금이 그런 시대일 뿐이고, 아미파는 시류에 탄 것 뿐인지….”

역사 속 구대문파의 찬란하던 위명은 이미 영락한지 오래였다.

사공자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유 장로도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사공자는 그저 연회장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릴 뿐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불러 주곤 했던 사천의 노래였다.

* * *

낙양검가, 원각정.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주면 안 되겠소?”

장도리를 들고 투덜거리는 탈명귀검의 모습에 하녀단의 하녀가 한숨을 쉬었다.

“…문 수리를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아직도 문짝 하나를 수리 못 해서 절절매고 있는 탈명귀검이었다.

“도대체 그 이해력으로 상승무공은 어떻게 익히셨는지….”

고개를 내젓는 하녀의 말에 탈명귀검이 발끈했다.

“아니…! 문짝 고치는 거랑, 무공이 대체 무슨 상관…!”

그때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공녀 연서린이었다.

“앗!”

막 온천욕을 끝내고 나온 그녀가 들고 있던 연습용 검으로 탈명귀검을 가리켰다.

“탈명귀검이잖아!”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던 탈명귀검이 화들짝 놀랐다.

“어, 어?! 어째서 이공녀님이 이 원각정에?!”

문을 수리하느라 하루 종일 원각정의 구석에 박혀 있던 그였기에, 이공녀의 방문 사실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은퇴했다는 소문만 남기고 사라졌던 양반이 내 동생 집에서 뭐 하는….”

그의 손에 들린 장도리를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공녀가 이를 드러내는 것인지 미소를 짓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탈명귀검! 오늘에야말로 도망치지 못한다!”

“제, 젠장!”

탈명귀검은 장도리를 내팽개치고, 고절한 신법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녀들의 눈에는 그 방향조차 짐작하기 힘든 아찔한 속도였다.

“거기 서라!”

이공녀가 대나무잎을 연달아 밟아 몸을 튕기며, 탈명귀검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추격했다.

남겨진 하녀들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문을 고치긴 글렀네.”

* * *

대공자의 집무실.

연소현이 의자에 몸을 깊게 묻으 며 입을 열었다.

“...지분 전체를 양도하겠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의 말에 상관난화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선랑 상회 전체를 드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연소현은 손을 팔걸이에 올리고,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먼저 밝혀 두겠소만, 그대들이 지분을 본 대공자에게 넘긴다 해도, 아미파의 보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오.”

상관난화의 태도에는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대공자께서 검가의 이름으로 다선랑을 보호한다고 선언하셔도, 아미파가 사천에서 '사고'를 위장하는 짓을 막으실 수는 없으실 테지요.”

“그렇소 만일 검가가 그 점을 트집 잡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군사를 일으킨다 하여도….”

상관난화가 말을 받았다.

“사천에서 검가의 영향력이 커지기를 원치 않는 사천당가는 그 분쟁에서 중립을 선언하겠지요.”

그녀의 풍부한 속눈썹 아래서, 깊은 눈동자가 연소현을 향했다.

“그렇게 되면 검가는 원정(遠征)의 부담 속에 아미파와 대리단가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겁니다.”

그녀가 짧게 정리했다.

“그러니 검가는 애초에 '사고'를 못 본 척하는 것을 택하겠지요.”

상관난화의 정세를 읽는 눈은 연소현의 기준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수준으로 평가할 만했다.

“잘 알고 있으시군.”

아무래도 젊은이의 치기로 내린 판단은 아닌 모양이었다.

연소현은 조금 더 진지한 표정으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깍지를 꼈다.

“그런데도 본 대공자에게 지분을 전부 넘기겠다는 것이오?”

그것은 가문의 희생을 감수하겠냐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였다.

"...."

바위가 짓누르는 것 같은 분위기속에서 그 질문에 입을 연 것은, 상관난화가 아니었다.

“그 질문에는 상관난화 대표보다는… ”

앉은키만 보아도 상관난화보다 머리 하나가 큰 다선랑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저 안송경(顔松瓊)이 대답을 올리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알겠소.”

그것은 아미파가 보복한다고 하여도, 성도지사의 딸인 상관난화의 가문이 화를 입을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관난화 대표를 제외하고, 저희 다선랑의 공동대표 전원과 공동 대표 전원의 가족은….”

긴장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 태도에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미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각오를 마쳤습니다.”

가문, 가족의 누군가가 보복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각오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원국의 어떤 사업가라 하여도, 결코 쉬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딜 보아도, 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종류의 괴물들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으니.

"...."

연소현의 시선이 다선랑 하나하나의 시선과 마주쳤다.

속을 파헤치는 듯한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떨면서도, 누구하나 시 선을 피하는 이가 없었다.

가장 어린 다선랑 막내마저도.

그의 귓가에 시녀장의 전음이 들려왔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들의 각오는 진심입니다.'

연소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좋소.”

그가 의자에 묻었던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그의 눈이 깊어졌다.

“그렇다면 내 필히 그대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봐야겠소.”

* * *

시녀들이 식어 버린 차를 물리고, 새 차를 내어 왔다.

그러나 다선랑의 누구도 그 차로 입을 축이는 일은 없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의자에 등을 기대는 이도 없었다.

조금 전, 목욕하고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만 해도 천근만근으로 피로를 느끼던 그녀들이었다.

"...."

하지만 지금 그녀들 중 누구도 그 피로감을 느끼는 이는 없었다.

긴장 때문이었다.

눈앞에 기이할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낙양검가의 대공자가 있었으니.

무검자라는 이름에 얽힌 소문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그녀들 모두가 실감하고 있었다.

“그대들의 각오는 잘 알겠소.”

시녀들이 모두 물러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본 대공자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대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할 계획이시오?”

안송경이 대답했다.

“저희가 보낸 전서를 받는 즉시, 가족들은 고향땅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할 것입니다.”

“아미파가 감시의 눈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할 리가 없을 텐데?”

안송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또한, 가족들은 각오를 마쳤습니다.”

낙양검가의 대공자가 그들을 보호한다는 선언이 사천 땅에 퍼지면, 분명 보복이 있을 테지만, 모두가 죽을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선언을 기다리지 않고, 탈출을 감행하겠다는 행동의 의미는..."

'자신들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것이 아닌, 그 스스로가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연소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가족 이외에 가문의 나머지 친척들은 어떻게 할 계획이오?”

안송경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나머지 다선랑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긴장의 표정이 아닌, 분노의 표현이었다.

“...짐작이 가는군.”

연소현의 말에 안송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선랑이 상회로 성공했을 때, 가장 빠르게 손을 내밀며 다가왔던 이들이 친척이었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던 다른 다선랑이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아미파가 저희에게 패악질을 부리자, 가장 먼저 그 협박에 동조했던 것도 저희의 친척이라는 자들이 었습니다.”

그들이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다선랑이 겪었을 그 모든 일들이 눈에 선했다.

친척 집 어린 딸이 돈 좀 만진다는 소리가 나기가 무섭게, 사돈의 팔촌까지도 귀신같이 몰려드는 어른들의 모습.

부모와 평생 남처럼 살았던 이들이, 언제 도원에서 결의라도 한 것처럼, 어릴 적에 기저귀를 갈아 주었던 이야기까지 꺼내며 세상 둘도없는 가까운 가족인 척 구는 이들.

오줌이 마려운 개처럼 집에 찾아와서 기둥을 끼고 할 일 없이 빙빙 돌고만 있는 이들.

무슨 일이든 생기면 맡겨만 달라고, 자신의 건너건너 인맥까지 자랑하던 이들.

그러다가 아미파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누구보다도 먼저 칼을 들고 나타났던 이들.

마치 아미파의 속가제자라도 된 양 굴면서, 친척이라는 명분으로 안방까지 쳐들어와 으름장을 놓았던 이들.

“잘 알겠소.”

연소현이 어찌 그런 상황을 모르겠는가.

그 자신부터가 형제들이 칼로 서로를 겨누고 있는 가문의 장자가 아니었던가.

“그대들은 이 낙양에서 다선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모양이군.”

상관난화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내게 지분을 넘기는 조건은, 다선랑의 재건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일 테고."

그 말에 상관난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대공자께서는 그 이름만 빌려주셔도 충분합니다.”

최소한의 보호만 있다면.

“저희는 다선랑이니까요.”

얼마든지, 몇 번이든, 다시 성공해 내겠다는 각오.

가족들은 딸들을 위해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 친척들은 아미파의 먹이로 던져 버리며, 그렇게 아미파의 원한을 사더라도 자신의 것은 한 푼이라도 내어 주지 않겠다는 각오

바닥보다 낮은 지하에서, 어떻게든 다시 기어 올라가겠다는 집념.

그녀들은 이미 세상의 아귀다툼에서 살아남을 자격 그 이상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훌륭하군.”

연소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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