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29화 (129/350)

제4편 검가성채(劍家城碧)

홍독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언했다.

“아미파는 사천당가를 견제하기 위해 대리단가(大理段家)를 동맹으로 끌어들인 상태입니다.”

사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도지사의 부인이 바로 그 대리단가의 사람이지.”

그 말에 염백하가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래서였군요! 상관난화가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다선랑에 대한 아미파의 노골적인 패악질을, 그 아버지인 성도지사가 막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애초에 성도지사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부터가 부인과 대리단가의 덕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연하응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미파를 성장시켜 당가의 견제를 맡긴다는 대리단가의 전략인가. 그런 이유로 자신의 딸을 압박받게 두다니. 지사부인은 무서운 사람이군요.”

“그리 드문 성격도 아니죠.”

“특히 고위층일수록.”

“하아….”

염백하가 옆으로 새려는 흐름을 막기 위해 질문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선랑은 어떤 상황인가요?”

“그들의 가문은 부유하지만, 그들의 사업 기반은 전부 아미파의 영역입니다.”

사공자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상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군.”

유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다선랑 또한 상관난화를 묶어 두는 인질이지요.”

* * *

낙양검가에 거의 도착한 안전 지점에서 염 장로와 병력들은 투자단에 작별을 고했다.

그들은 정비를 위해서 가까운 낙양검가의 외부 병영으로 향했다가, 전쟁부로 귀환하리라.

다들 짧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아미파 마차의 창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염 장로 또한 아미파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투자단 행렬은 낙양검가의 가도를 따라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리로.”

그리고 낙양검가에 거의 다다르자, 아미파 마차의 창문이 열렸다.

주름진 손이 밖으로 나와 까닥이는 모습에, 총무사태를 수행하는 비구니가 얼른 마차 옆으로 말을 몰았다.

“예, 총무사태님.”

어두운 마차 안에서 총무사태의 나직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아이들에게 절대 동요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도록 하거라.”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여 보인 비구니가 아미파의 인원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모두, 절대 두리번거리거나 정신을 파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주의하라는 총무사태의 명이시다.]

그 전음이 끝나기 무섭게 앞서 달리고 있던 행렬에서부터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오!”

투자단의 인원들이 누구랄 것 없이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저곳이 바로 낙양검가의 본가인가!”

“어이, 거기 머리 좀 치워 보쇼!”

“아니, 자네가 목이 짧은 것을 왜 내 탓을 하나?”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오자, 총무사태가 혀를 차며 창문을 거칠게 닫아걸었다.

그러든 말든, 투자단의 인원들은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마차에서 머리를 내밀고,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소란을 떨고 있었다.

꼬장꼬장한 황도(皇都) 사람들이나, 체면 차리기 좋아하는 낙양 사람들이 보자면, 체통 없는 모습이었다.

마차 지붕 위에 타고 있던, 연하응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이 유쾌한 사천 사람들의 특징이지.'

그의 생각처럼.

언덕 저편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낙양검가의 모습에 가장 흥분한 것은, 투자단의 대표인 당문의 현인(賢人) 당고규였다.

연하응의 옆에 앉아 있던 그는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연하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 현인께서는 과거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으셨지 않습니까?”

당고규가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요.”

그때 다시 와! 하고, 투자단의 인원들에게서 탄성이 일었다.

마차 밖으로 머리를 길게 뺀, 한 중년인이 홍분에 얼굴이 벌게진 채 당고규를 향해 외쳤다.

“당 현인! 당 현인! 저것이 바로 그 유명한 검가의 성벽입니까?!”

경사를 오르자, 불쑥하고 솟아오르듯이 모습을 드러낸 붉은 성벽의 모습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석양에 의해서 물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붉은 성벽이었다.

“어찌나 한결같은 반응인지!”

그 질문에 당고규가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검가에 처음 방문하면 그렇게 묻곤 하지만, 아닐세. 아니야!”

연하응이 웃느라 정신이 없는 당교규를 대신해 큰 소리로 설명했다.

“저것은 그저 토성(土城)입니다! 고대 왕조의 유적지를 본가가 발굴하고 복원해서 좀 다듬은 것이지요!”

붉은빛이 감도는 이유는 그것이 토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고규의 말처럼, 사람들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토성의 규모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행렬이 잘 닦인 마찻길을 따라 토성의 입구로 향하자, 낙양검가에서 개축한 관문 출입구가 눈에 들어 왔다.

“저기가 바로 검가로 향하는 첫번째 관문일세!”

과연 그의 말처럼, 토성의 출입구는 복잡한 목조 요새의 형태로 구축되어 있었다.

앞서 도착해 순서를 기다리던 마차들이 천천히 빠져나가자, 연하응이 마차에서 내려섰다.

“여어! 수고하십니다!”

그의 언제나처럼 활기찬 인사에 관문장(關門長)이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이거, 연 고문님 아닙니까?”

외원의 업무 특징상 제집 문턱처럼 안팎을 오가는 연하응을 관문장이 모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연 고문님이라도 검문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시지요?”

“물론이죠, 물론입니다.”

연하응은 자신의 품에서 호패와 낙양검가의 출입 신분증 그리고 투자단 행렬에 대한 사공자의 초대장을 꺼내 수문장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대기해 주시길.”

그사이 다가온 경비단원이 약품이 묻은 솜을 연하응의 얼굴에 문질렀다.

“인피면구(人皮面具), 역용(易用) 여부 확인 마쳤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수문장은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서 호패와 출입 신분증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미리 들어와 있던 사공자의 투자단에 대한 출입 협조 요청과 초대장을 꼼꼼히 대조한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닙니다. 하하.”

연하응의 물건들을 다시 건네준 수문장이 수하들에게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통과!”

그러자 경비단원들이 목조 방해물들을 치워 길을 열어 주었다.

토성 위에서 행렬을 겨누고 있던 연노들도 고개를 돌렸고, 곳곳에서 화살통에 손을 얹고 있던 경비단원들의 시선도 다음으로 다가오는 마차를 향했다.

“자, 다시 이동합니다!”

방해물은 치워졌고 투자단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는 없었다.

갈지자(之)로 휘어 있는 관문 내부 구조 때문이었다.

"...."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던 이들이 침묵을 지켰다.

언제든지 십자포화를 퍼부을 수 있게끔 갈지자 통로 위에 배치되어있는 병력들의 모습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다시 마차 안으로 넣는 이는 없었다.

관문이 끝나자마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오오오!”

이번에야말로, 그들이 바라던 낙양검가의 석조 성곽이 그 장엄한 위용을 드러냈다.

사다리를 걸치는 정도로는 올라설 수도 없을 정도의 높이.

사람의 시야를 넘어서는 그 길이.

감히 일개 가문이 축성(築城)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규모였다.

경이로움.

"...."

열심히 떠들어 대던 투자단의 사람들마저, 입을 다물었다.

혹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외적의 침입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낙양 땅에 이런 거대한 규모의 성곽이 있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지독한 위화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연하응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항상 이 길을 오가는 나조차도 볼 때마다 말을 잊기 마련이니….'

그때 당고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연하응에게 말했다.

“저치들의 안색을 보니, 내 다섯살 생일 때 먹고 체했었던 떡이 다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의 말에 연하응이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미파 인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멍하니 성곽의 위용을 바라보다, 말을 엉뚱한 곳으로 모는 비구니.

딴 곳을 바라보는 척하면서도, 슬쩍슬쩍 순찰 중인 경갑기마대의 장비를 살피는 비구니.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안색이 어딘가 창백한 비구니.

비구니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승복과 사치스러운 장신구들이 단번에 빛이 바래 버리고 있었다.

“과연 이것이 천하제일가….”

“황실 아래로 모두를 아래로 두고 있다는 말은 과장이 없구먼.”

“변방도 아니고, 이런 중원국의 한복판에다 성채 도시라니. 검가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인가?”

“만일 그렇다면, 효과 하나는 확실하군. 이 모든 것을 한 가문이 이룩했다니, 다리가 떨릴 지경이오.”

“허허. 이런 광경만 보아도, 낙양검가의 적들은 오금이 저릴 것이 아닌가?”

두런두런 들려오기 시작한 이야기에 연하응이 중얼거렸다.

“과연 그럴까…?”

그 목소리에 성곽을 구경하던 당고규가 물었다.

“제가 정신이 팔려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연하응이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시 의아하게 연하응을 바라보던, 당고규는 다시 두리번거리며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성벽을 아무리 높이 올려도, 성벽을 아무리 두껍게 쌓아도, 남의 것을 탐하고, 차지하려는 이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연하응은 점차 가까워져, 고개를 꺾지 않고는 그 끝을 볼 수 없는 성곽을 올려다보았다.

'많이 가졌을수록 그 이상으로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고, 많이 얻을수록 남의 것을 더 탐한다.’

낙양검가가 쌓아 올린 이 허영과 과시의 탑을 보아라.

철권통치와 철권제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과 같은 이 벽을 보아라.

피아(彼我)를 불문한 피와 시체로 쌓아 올린 역사를 보아라.

기꺼이 낙양검가를 증오하는 이들을 보아라.

'아미파의 백발성성 고독노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어두운 마차 안에서 노파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낙양검가의 성곽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무림맹 시대가 끝나고, 아미파는 세가들의 성공 사례를 답습하여,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공을 누리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며 다른 많은 문파가 몰락했지만, 노파는 성공적으로 아미파를 부흥시켰다.'

그럼에도 노파는 낙양검가를 증오했다.

단지 자신들보다 위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낙양검가를 질시했다.

낙양검가를 따라잡기 위해서 과연 저 노파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성벽을 쌓아 올리는 낙양검가도 아귀였고, 그 위치를 탐하는 이들 또한 아귀였다.

세상은 아귀들의 전쟁터였다.

'하긴 나도 이런 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지.’

연하응은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자신부터가 개봉연가를 손에 넣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루에도 골백번을 어떻게 가문을 손에 넣을지, 아니면 모두 불태워 버릴지 생각하는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 자신이 어찌 다른 이들을 손가락질하랴.

그의 시선이 다선랑이 타고 있는 마차를 향했다.

그녀들 또한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난생처음 보는 낙양검가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과연 저들은 어느 쪽일까.'

자신들을 산 채로 먹어 치우려는 아귀들이 덤벼드는 상황.

이 아귀다툼에서 살아남을 각오가 되어 있을까

그녀들은 기꺼이 한 마리 아귀가 되어, 먹고 먹힐 준비가 되었을까.

“이 성곽 안쪽이 그 유명한 성채 도시란 말이오?”

그 질문에 당고규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역시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소! 하하하!”

연하응이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고, 큰 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이 성곽은 외성에 불과하고, 외성 거주 구역을 지나 내성이 있습니다!”

그랬다.

심지어 낙양검가의 성채 도시는 이중 성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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