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28화 (128/350)

제3편 외강(外剛), 내강(內剛)

“이공녀님! 여기서 나가시면 안됩니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이공녀의 앞을 막은 것은, 공동파의 무사를 데려왔던 그 여인이었다.

“수련관주(修練關主). 비켜라.”

단호한 말에도 수련관주라 불린 여인은 비켜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것은 당신의 스승이시자, 호위각주께서 직접 저희에게 내린 명령입니다!”

“상관없다.”

무학자 하나가 안절부절못하며, 이공녀를 말렸다.

“이, 이공녀님! 지금 이 폐관수련장을 벗어나시면, 진법의 효과가 급감하게 됩니다!”

“다시 깔아.”

"이공녀님! 영약이…! 영약이…!”

“새로 연단(鍊丹)해.”

우르르. 인원들이 육탄으로 달려들어 이공녀를 잡아 보려 했지만, 무공을 모르는 이들의 손길이 그녀의 옷깃 하나 스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공녀님.”

복도를 통과해 입구로 나선 이공녀를 맞이한 것은, 일단(一團)의 무사들이었다.

“비켜라.”

“그것은….”

무사들은 어물쩍 그녀의 시선을 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서지는 않았다.

급히 뒤따라온 수련관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본가의 무사들이여! 그대들이 받았던 명령을 기억하라!”

그 말에 무사들의 책임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공녀님 이 명령이 어디서 내려온 명령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단지 이공녀님의 스승이신 호위각주님만의 명령이 아닙니다.”

이공녀의 눈살이 꿈틀거렸다.

"...."

그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무사는 조금 더 용기를 얻어서 강하게 설득했다.

“그뿐 아니라, 이번 폐관수련은 수많은 이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실로 중차대한….”

이공녀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말이 많다.”

그녀는 자신의 검대에서 연습용 검을 뽑아 들었다.

“언제부터 대낙양검가의 무사들이 검이 아니라 혓바닥으로 웅변을 토했나?”

"...!"

그녀의 말에 무사가 얼굴을 붉히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순순히 물러나길 택한 것은 아니었다.

“전 인원, 검진(劍陣)을 구성하라!”

이공녀의 말처럼, 낙양검가의 무사답게 일을 해결하려고 마음먹었을 뿐.

“본가의 검진을 모르는 녀석은 뒤로 빠져라!”

그 명령에 공동파의 무사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서 자세를 잡았다.

'이 상황은 대체….'

그의 표정은 떨떠름하기 짝이 없었다.

검을 뽑으라는 이공녀나 그 말에 검을 진짜로 뽑아 들고 달려들려드는 낙양검가의 무사들이나,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미친 자들인가?’

낙양검가는 철저히 배분(配分)과 서열에 의해 돌아가던 과거의 사문과는 전혀 달랐다.

이 너무나도 거대한 문파의 복잡한 역학 구조와 낙양검가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이 합쳐져, 낙양검가 무사들만의 고유한 문화가 탄생했다.

이를 신입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무사들이 정렬을 끝내자, 책임자가 외쳤다.

“개진(開陣)! ”

공동파의 무사는 낙양검가의 무사들이 어떤 검진을 만든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 검진의 수준이 사문의 것과는 까마득한 수준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큿!”

검진이 형성한 압력에 의해 밖에있는 그의 무릎이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맹렬하게 움직이며, 무궁한 변화와 섬뜩한 예기(銳氣)를 드러내는 검진의 한가운데에 선 이공녀는 놀랍게도 광소(狂笑)를 터트리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핫!”

그녀가 연습용 검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래. 평소에도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녀가 이를 드러냈다.

“이쪽이 훨씬 수련에 도움이 될 것 같단 말이다.”

그 순간.

공동파의 무사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뒤로 신법을 펼쳤다.

그것은 이공녀가 이전에 칭찬했던, 그 쓸 만하다던 감각에 의존한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이 그를 구했다.

검가비검(劍家秘劍),

검가육십일검법(劍家六十一劍法), 일천광풍뢰(一千狂風雷).

일천의 검광(劍光)이 벼락이 되어 광풍처럼 사위(四圍)를 휩쓸고.

검가비검(劍家秘劍),

검가육십일검법 (劍家六十一劍法), 굉음적소뢰(轟音寂素雷).

우렁찬 검명(劍鳴)이 창백한 번개가 되어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며.

검가비검(劍家秘劍),

검가육십일검법(劍家六十一劍法), 만악천초뢰(萬岳天初雷).

태초에 하늘을 열어 만 개의 산악을 내리치던 낙뢰가 있었다.

이공녀가 실제로 익혀 내기 전에는 단지 이론상에서만 완벽한 검법이라 불렸던, 검가육십일검법.

낙양검가가 수집하고 개량하여 탄생한 각 문파 육십일종 무공의 오의(奧義)만을 엮어 낸 환상 속의 검법.

그 검가육십일검의 오의 세 가지가 일순(一瞬), 한 호흡에 펼쳐진 순간이었다.

검광과 검명이 사그라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단 하나.

이공녀 연서린뿐이었다.

“자네.”

그녀가 기절해 버린 무사들 사이에 우뚝 서서, 홀로 떨어져 있는 공동파의 무사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대로 감이 좋군.”

이공녀가 무사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자네는 역시 형산의 무상검형이나 본가의 검심검명을 익히는 편이 낫겠어.”

이공녀가 저 멀리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무사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이 무릎을 꿇을 '자유'를 얻었다.

"...!"

거친 호흡을 다스리지도 못한 채 그는 이공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바로, 무림인 모두가 천고의 기재로 손꼽는 '천의무봉' 연서린의 진면목인가!’

낙양검가의 수위무사 중 일인.

묘령에 이미 벽을 넘어 버린 그녀는 용봉지회에 단 한 번의 출전도 없이, 과거로부터 후기지수(後起之秀) 중 압도적인 일인자로 꼽혀왔다.

그리고 그녀의 별호가 말해 주듯, 그녀는 사실상 이미 후기지수의 규격에서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 * *

쏟아지는 석양빛 속에서, 투자단의 행렬이 낙양검가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원래라면 낙양의 성문을 통과하여, 간단히 구경이라도 한 이후에 낙양검가로 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습격으로 인해 행렬은 낙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낙양검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오오! 다들 이 초대장들을 보세요!”

막내 다선랑이 초대장을 한 아름 안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지나칠 길목을 어떻게 알았는지, 낙양의 여러 가문에서 파견한 이들이 낙양검가로 향하는 길목에서 대기하다 전해 주고 간 초대장들이 었다.

“다들 이름 있는 집안에서 보내 온 초대장이네. 조금 걱정했는데, 낙양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호의적인 도시였어.”

키가 큰 다선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름이 낙양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모양이야!”

기뻐하는 다선랑의 모습을 보며, 마차 구석 자리에 앉은 청수가 미소를 지었다.

'이름 높은 사업가들이라 해도, 이렇게 보면 한창 나이대의 아이들같군.’

그렇게 훈훈한 기분으로 마차 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상관난화와 눈이 마주쳤다.

“청수 님이라고 하셨던가요?”

그녀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청수에게 말했다.

“혹시 장신구에 관심이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장신구라고는 하나도 없는 청수를 보고 한 말인 것 같았다.

“아, 그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아무래도 예전 직장의 규율이 엄격해서….”

장신구든 화장이든 관심은 많았지만, 기관이라는 조직이 가진 특수성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통제해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시면, 받아 주세요. 저희가 올봄에 선보일 새 상품이랍니다.”

머쓱해하는 청수에게 상관난화가 한 쌍의 귀걸이를 불쑥 내밀었다.

“예? 안 됩니다. 이런 귀한 걸 그냥 받다니요.”

청수는 다선랑의 장신구가 얼마나 가치가 높은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상관난화는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치마를 틀어쥐고 청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받아 주세요. 저희를 도와주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아니, 그건 그저 임무였던….”

상관난화는 청수의 귀에 직접 귀걸이를 걸어 주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우아해요.”

그 말에 청수의 입이 헤벌쭉 귀까지 걸렸다.

“우, 우아합니까? 하하. 그거참.”

어느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선랑 아가씨들이 박수를 치면서 함께 즐거워했다.

반대편 구석에서 말없이 앉아 있던, 호신술 선생이라는 무승도 흐뭇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수 언니! 너무 예뻐요!”

청수는 뒷머리를 긁으며,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끄럽네요. 하하….”

그때 아니나 다를까.

창가로 말을 몰아 다가온 이가 불호령을 내렸다.

“또 방정맞게 소란을 떨고 있는 게냐?!”

사감 비구니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청수가 미리 손짓으로 알려 주었기 때문에 다선랑 아가씨들은 놀라지 않았다.

대신 그 불호령은 가만히 앉아있던, 호신술 선생에게 떨어졌다.

“사매!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고, 뭘 그리 멀뚱멀뚱 있는 것이야?!”

호신술 선생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저.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감 비구니의 시선이 다선랑 아가씨들이 가지고 있던, 초대장을 향했다.

“그 초대장을 모두 본 사감에게 건네거라.”

다선랑 막내 아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에?!”

“이건 저희 사업을 위해서 필요한…!”

“시끄럽다!”

그녀들이 저항해 보려 했지만, 사감 비구니는 막무가내였다.

모든 초대장을 회수한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선랑 아가씨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사천 땅이 아니다. 이 낙양에서 너희가 방문하거나 만나는 이들은 모두 학도들의 보호 책임을 지고 있는 아미파에서 주관할 것이야. 알겠느냐?”

"...."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다선랑 아가씨들을 향해 사감 비구니가 다시 한번 다그쳤다.

“너희는 고향의 가족들이 누구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를 명심해야 할 것이야.”

그녀의 시선이 상관난화를 향했다.

“너 또한 지사부인께서 우리 아미파와 뜻을 함께하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상관난화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그런 상관난화를 향해 사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지사대인의 보호를 받더라도, 네 학우를 생각해서라도, 감히 함부로 처신해서는 안 될 것이야. 알겠느냐?”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청수가 혀를 차며 끼어들려고 할 때, 호신술 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저. 그 정도면 이 아이들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호신술 선생에게 날카로운 말을 퍼붓고서야 물러난 사감 비구니였다.

“아마도….”

무거워진 마차 안 분위기에 청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진짜 큰 가문의 초대장을 전달할 이들은 본가의 내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너무 상심하지들 마시고….”

“괜찮습니다.”

그녀의 말에 상관난화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오늘 겪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의연한 미소였다.

청수가 내심 놀랄 정도로.

“가장 중요한 초대장은 빼앗을수 없으니까요.”

그녀가 자신의 가슴팍을 지그시 눌렀다.

“숨겨 둔 초대장이 있었습니까?”

청수의 물음에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고, 입을 열었다.

“저들은 저희가 낙양으로 향하는 투자단에 합류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천당가의 피를 이은 낙양검가 사공자의 사업이었다.

아무리 아미파라 하여도, 다선랑을 투자단에 합류하는 것을 막는것은, 사천당가가 개입할 명분을 제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낙양검가로 향하고 있는 이상, 대공자님의 초청을 막을 수도 없었으니까요.”

무검자 연소현이라면 모를 일이었지만, 그가 칩거를 끝낸 이상, '일개 외부 세력'에 불과한 아미파가 낙양에서 대공자의 뜻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 상관난화의 모습에 청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녀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운 좋게 성공한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들은 아니라는 건가.'

하긴 그랬다면, 자신의 주군이 이들을 '선택'했을 리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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