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26화 (126/350)

제1편 금사사(金邪蛇)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

강남사단 본부.

“…다른 방법을 더 찾아볼 생각은 없는가?”

사공자 대응 담당, 최 책사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이제 남은 방법은 이것뿐이네.”

“하지만….”

책사 한명휘는 번들거리는 눈길로 말을 이었다.

“결국에 우리 책사들은 남의 목숨을 던지기는 우습게 알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책략을 펼치지는 않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가 대공자와 사공자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주려면, 우리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

최 책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네, 이대로면 좌천일세. 알고는 있겠지? 우리에게 지금 마지막 남은 방법은 금….”

금질의 이름을 말하려던 한명휘는 최 책사의 따가운 눈길에 말을 삼켰다.

“…어쨌든 금 씨 그자에게 협조를 얻어 내야 한단 말일세.”

이미 구석으로 몰린 한명휘의 머릿속에는 손 장로의 엄중한 경고 따윈 밀려난지 오래였다.

“…알겠네.”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은 최 책사가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세.”

“어디로 갈 것인가?”

최 책사는 외투를 챙겨 들며 말했다.

“이전에 내가 '금 씨' 그자의 뒤를 캤을 때, 알게 된 이가 있다네.”

* * *

점차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며, 지상 모든 것이 핏빛으로 젖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노을도 낮은 곳에서 길게 드리우며 영역을 넓혀 가는 어둠을 어쩌지 못했다.

피풍의를 둘러 얼굴을 감춘 최 책사와 한명휘는 어둠이 이미 드리운 골목을 걷고 있었다.

드문드문 길을 확인하며 복잡하고 더러운 뒷골목을 걸어 나가는 최 책사에게 한명휘가 물었다.

“...위험한 지역이군. 호위없이 우리끼리 와도 괜찮겠는가?”

최 책사는 음침한 인상의 행인들을 피해 걸으며 대답했다.

“그자는 우리가 누군가를 데려간 순간 모습을 감출 걸세.”

“대체 그자가 뭘 하는 작자이길래…."

습관처럼 투덜거리던 한명휘는 최 책사가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추자 그 뒤에 부딪칠 뻔했다.

“이곳일세.”

최 책사는 낡고 지저분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낡은 목재 계단이 삐걱거리며, 유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의 아가리 속으로 이어졌다.

"...."

이따금 한명휘는 생각했다.

낙양의 어둠은 그가 있던 강남의 잔혹한 어둠과는 또 다른 깊이가있는 어둠이라고.

끈적끈적하게 옥죄어 오는 그 낙양의 어둠은,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하려는 이를 삼키려는 것과 같다고.

한명휘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최 책사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 * *

'지하 도박장…?’

연초 연기로 가득한 그곳은 나직하게 내뱉는 욕설과 되지도 않은 음담패설을 중얼거리는 도박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신종 마약에 취해 핏발 선 눈알들, 앵속(罂粟)에 취해 흐리멍덩한 면상들.

싸구려 기름을 태우는 깜빡이는 유등이 드문드문 목매단 시신처럼 매달려 있었다.

어두운 실내를 가로지른 그들은 이윽고 가장 안쪽 탁자에 도착했다.

가장 구석인 만큼 가장 어두운 자리.

탁자는 비어 있었다.

최 책사는 아무 말 없이 낡아 빠진 의자를 빼내어 앉았고, 한명휘또한 그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토사물의 비릿한 악취, 싸구려 술의 더부룩한 냄새, 제대로 씻지도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불쾌한 냄새.

역겨운 환경에 꼬인 하루살이와 파리 따위가 얼굴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주정뱅이 혹은 마약 중독자들이 중얼거려대는 의미 없는 혼잣말이 귓바퀴에 맴돌기 시작하자, 한명휘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도대체 만나기로 한 그자는 언제쯤….”

“또다시 쫓지 말아야 할 것을 쫓고 있는가?”

한겨울 바다에 빠진 것처럼 한기가 척추를 따라 치달았다.

“……?!"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비어 있었을 터인 자신의 정면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깊게 눌러쓴 삿갓의 찢어진 틈사이로 죽은 자의 것처럼 보이는 눈알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명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우, 우리는 그자를 찾아야 하오!”

“…모르는가?”

삿갓을 쓴 자는 내리깔리는 듯한 깊은 목소리를 냈다.

“세상에는 반대편을 바라봐서는 안 될 것도 존재한다.”

그자는 벌레가 썩어 가는 음식을 사각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깨진 주술 거울의 뒷면을 보지않는 것처럼, 찢어진 부적 사이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처럼. 썩은 고목의 둥치 사이를 엿보지 않는 것처럼.”

한명휘는 자신의 옆을 보았지만, 최 책사는 삿갓을 쓴 존재가 등장한 순간부터 식은땀만을 뻘뻘 흘릴뿐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가만 보니, 그는 눈을 감고 열심히 염주를 돌리는 중이었다.

'한심한 작자 같으니!’

그 모습을 보자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한명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는 미신 따윈 믿지 않소!”

삿갓 아래로 검게 물들인 이빨이 드러났다.

“명명백백(明明白白)한 것이 있으면, 암암묵묵(暗暗墨墨)한 것도 있는 법 왜 그 당연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지.”

한명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홀러내리던 식은땀이 좌우로 튀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예전 강남 뱃사람들에게서도 지겹게 들었소. 나는 그저 금 씨 성을 쓰는 자와 만나고 싶을 뿐.”

“금 씨…?”

삿갓 틈 사이로 보이는 눈알이 웃음기를 띄고 휘었다.

“아(我)는 그 '되다 만 괴물' 따위를 두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한명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금질이 되다만 괴물이라는 말이오?”

“그렇다.”

눈알이 한 바퀴 데굴 구르더니 답했다.

“너는 이미 '그것'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으니, 그것이 너를 찾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자가 나를 찾는다고…?”

“당연한 이치이지.”

검은 이빨 사이로 보이는 백태가 가득한 혓바닥이 역겨웠다.

“제대로 공양하지 않고 들판에 버린 사산아(死産兒)가 금줄을 타고 제 부모를 찾아오듯이. 원한으로 엮인 머리카락을 태워 날린 주살(呪殺)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듯 이.”

"...."

금질의 이름을 몇 번이나 입에 담았기 때문에, 금질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말인가?

'도대체 그게 무슨….'

한명휘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아까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소? 당신이 한 경고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오?”

눈알이 가늘어졌다.

“네가 쫓고 있는 것. 그것은 쫓아서는 안 되는 것. 들여다보지 않아야 하는 것. 알려 해서는 안 되는 것.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내가…? 나는 금 씨를:“

자신은 금질을 찾아서 무엇을 쫓으려 했던가.

한명휘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문득 말이 흘러나왔다.

“대공자.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암천존…. 음.”

겨우 이름을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눈알이 가늘어졌다.

“영리하군. 하지만 그것은 이름과 상관없는 존재.”

한명휘가 인상을 썼다.

“그 암천…. 그자가 그리도 위험하단 말인가?”

“'존재해선 안 될 존재'가 얼마나 위험하냐고?”

남만(南蠻) 주술의식의 영향으로 검게 물든 이빨 사이로 진득한 웃음소리가 스며 나왔다.

“원래 아(我)에게 질문을 하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이제 와 복채를 원하는 것인가.

한명휘가 자신의 품을 거칠게 뒤졌다.

"그래, 좋소. 얼마면….”

“그런데 왜 아(我)가 그대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 주고 있는 것 같은가?”

“그게 무슨…?”

삿갓 사이로 엿보이는 눈알이 한명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아(我)는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자를 위해서 공양하고 있는 것.”

삿갓이 손을 저었다.

“업보(業報)는 업보로.”

“그게 무슨…?!”

그의 손에는 한명휘는 알아볼 수 없는, 남만 주술문자 문신이 가득 했다.

“지금 이 한명휘가 곧 죽을 운명이라 이 말이오?!”

한명휘가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앉아 있던 의자가 세차게 뒹굴었다.

한명휘는 거친 숨을 씩씩거리며, 분노에 떨었다.

“자, 자네 왜 그러나?”

옆에서 최 책사가 아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멍청한 표정을 보니, 화가 더욱 치밀어 오르는 한명휘였다.

“지금 이자가 내게…!”

삿대질하려던 한명휘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이, 이게…?”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명휘가 당황하여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지른 탓인지, 좌중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퀭한 시선들이 기이하고 또 불길했다.

“자네, 상태가 좋지 않군.”

최 책사가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자가 오늘은 오지 않을 모양일세. 일단 여기서 나가지.”

어떻게 도박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왔는지, 한명휘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최 책사의 손길에 이끌려, 더럽고 좁은, 어둠이 내리깔린 뒷골목으로 돌아왔을 뿐.

"...."

넋이 나간 표정의 한명휘에게 최 책사가 물었다.

“자네, 무엇을 보았나 보군?”

"...."

한명휘는 대답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 책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네. 나도 이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그게 뭔지는 말하려 하지 말게. 일단 돌아가세나.”

두 사람은 몸을 돌려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좁고 더러운 뒷골목에 행인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최 책사가 당황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핏빛 하늘 아래,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는 그들밖에 없었다.

한명휘는 이를 악물었다.

“금질의 수하냐.”

최 책사는 한명휘의 말에 화들짝 놀라, 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방금만 해도 아무도 없던 그곳에 작은 인영(人影) 두 개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금사사는 금질의 딸.”

"금사사(金邪蛇)는 아버지의 수양딸”

어둠 속에서 인영(人影)들이 삐거덕거리며 다가왔다.

“너희는 어째서 아버지를 찾는가?”

“너희는 무슨 용무로 금사사의 주인을 찾는가?”

모습을 드러낸 그것들은 온몸을 덕지덕지 기운 것 같은 소녀들이었다.

“히, 히익?!”

한명휘를 부축하던 최 책사가 그만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익…!”

그에게 기대어 있다가 함께 쓰러질 뻔했던 한명휘는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어째서인지 지금의 그는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것들'은 방금 자신이 지하에서 보았던 것과 명백한 '동류'라는 것을.

“말하라.”

“고하라.”

그것들이 썩어 가는 것처럼 보이는 잇몸을 드러냈다.

한명휘가 소리쳤다.

“나, 나는 그대의 아버지와 손을 잡고, 공통의 적을 잡고 싶다!”

소녀들이 침묵했다.

“낙양검가의 대공자와 사공자가 죄악계곡을 점령했지 않는가? 나는 그들과 적이다! 그리고 금주와 흑골파가 암천존자에게 쓸려 나가지 않았나?! 나 또한 그에게 볼일이 있다! 그러니 나와 연합하…!”

“이미 아버지는 알고 계시다.”

“그대가 무엇을 쫓고 있는지.”

명백히 다른 이의 눈알을 꿰매 넣은 금사사들의 시선이 한명휘를 평가하듯이 훑었다.

이윽고 금사사들의 입이 열리고, 거기서 홀러나온 것은 중년 사내의 목소리였다.

“…좋다.”

“...좋다.”

금사사들이 동시에 중년인의 목소리를 자아내자, 그 목소리가 불길하게 메아리쳤다.

“그대에게 내 힘을 빌려주지.”

“그대에게 내 힘을 빌려주지.”

한명휘의 창백한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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