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편 공격(攻擊)
염백하의 손가락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오늘 있었던 회의에서, 대공자님께서는 이 지점에서 투자단의 행렬과 합류할 것을 명하셨어요.”
염백하가 가리킨 지점을 보던, 염 장로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끄덕여졌다.
옆에서 수염을 쓰다듬던 노군사는 혀를 내둘렀다.
“흐음. 언제 한번, 대공자님과 군략(軍略)에 대해 논해 보고 싶구먼.”
* * *
난생처음 겪어 보는 난장판은 이런 상황과 연이 없던 아가씨 하나를 공황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꺄아아아악!”
그저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는 다선랑 아가씨를 끌어당긴 그힘은 가공할 정도였다.
자신들이 타고 왔던 마차에 그대로 밀어 넣어진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모습에 눈이 동그래졌다.
“자, 아가씨들. 이것으로 전원 탑승 완료하셨나요?”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마차에 올라탄 이는 처음 보는 중년의 여인이었다.
“다들 그쪽 창가에서는 좀 더 떨어지시고. 일단 창은 제가 미리 다 막아 두었지만….”
그녀의 말에 반사적으로 다선랑 아가씨들이 반대편으로 움직이는 그 순간.
마차 안쪽으로 무수한 화살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 ”
그녀들이 상황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기 전에, 그녀들을 마차에 모아 놓은 중년 여인이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제가 보기에 이 마차 정도라면 대포라도 끌고 오기 전엔 안 부서질 테니까요. 마차에다가 돈을 잘 바르셨네.”
그러면서 아가씨들의 팔을 붙잡아 반대편 가장자리로 배치하는 그녀였다.
“다, 당신은…?!”
상관난화가 물었지만, 슬쩍 마차의 창문을 열고 상황을 확인하던 여인은 딴소리를 했다.
“자, 두 번째 화살 비가 날아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번 마차의 벽면에 화살촉들이 우수수 솟아났다.
“하하.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제가 여기 있으니까요.”
그녀는 아직도 화살이 꽂히고 있는 마차의 자리에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자기를 소개했다.
“저는 청수(靑水)라고 합니다.”
중년 여인은 짧은 단발을 흩날리며, 개구쟁이처럼 미소 지었다.
“제 주군이신 검가의 대공자님께서 특별히 여러분을 호위하기 위해 보낸 사람입죠.”
* * *
“이번에 원각정에 새로 합류하게된 인물을 소개하도록 하지.”
연소현의 손짓에 뻘쭘하게 앞으로 나선 청수는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자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청수입니다…?”
너무나 간략한 자기소개에 좌중의 시선이 대공자에게 쏠렸다.
“그녀는 이번에 본가의 기관(機關)에서 은퇴했고, 이제는 내게 검을 바치기로 했지.”
기관이라는 말에 좌중의 시선이 놀라움을 담고 다시 청수를 바라보았다.
“아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이전, 연소현이 최고 운영 회의에 출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합류를 권했던 그 지휘무사였다.
'혹시 기관을 그만두면, 원각정으로 와라. 앞으로 실력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까.’
'어…, 제 이름은 청수(靑水)입니다. 만약 그때가 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던 그녀가 진짜로 기관을 그만두고 연소현을 찾아왔던 것이다.
연소현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그녀가 가진 뛰어난 능력은 차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 *
“으음. 적의 사격은 끝났고, 염 장로께선 공격을 하실 모양이시네? 역시 검악파산.”
창을 슬며시 열고 밖을 살피던 청수는 창밖으로 손을 쑥 뻗더니, 마차의 벽면에 박힌 화살을 하나 회수했다.
“호오?”
화살을 살피는 그녀에게 다선랑 아가씨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지만, 청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화살을 조심스럽게 챙길 뿐이었다.
'독(毒)화살이라:'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가씨들의 시선에 배시시 미소 지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미소였다.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심심한데 돌아가며 자기소개라도 해 볼까요?”
"...."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 *
“우리는 호위가 아니라 공격을 할 것이니.”
그렇게 아미파 총무사태의 입을 막아 버린 염 장로가 돌아보지도 않고 외쳤다.
“정륭(鄭隆)! "
정륭이라 불린, 서안 관병의 지휘관이 입가의 웃음기와 함께 외쳤다.
“얘들아! 염 장군님께서 오랜만에 우리 실력 좀 보자고 하신다!”
그의 외침과 함께, 솜씨 좋게 화살을 피해 숨어 있던 사십 명의 관병들이 일제히 피풍의를 벗어 던졌다.
기이할 정도로 실용적인 모양새의 경갑주(輕甲冑)를 드러내며, 그들은 등 뒤로 메고 있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휴대용 연노(連弩)였다.
“비단로유격대(緋緞路遊擊隊)! ”
마찬가지로 연노를 꺼내 든 그들의 지휘관, 정륭이 외쳤다.
“적들에게 진짜 사격이 무엇인지 가르쳐 줘라!”
* * *
인정사정없는 화살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무기를 앞세우고 달려들던 단원들이 흉포한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일제히 나자빠져 뒹굴었다.
“방패를 들어! 방패를 더 들어! 이 멍청이들아!”
부단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애초에 적의 화살은 아군의 방패를 뚫고 살과 뼈를 찢어발겨 버리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조화인지, 사격은 끊어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시 거세지길 반복했다.
가장 후열(後列)에 있는 자신에게까지 날아든 화살을 가까스로 잡아챈 단장이 이를 갈았다.
“철시(鐵矢)!”
그가 잡아챈 화살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내공을 담은 손길에도 화살은 휘어질 뿐, 부러지지도 않았다.
“제기랄, 그 관병 놈들! 서안의 비단로유격대였나?!”
이 바닥에서 장사한다는 그가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옥문관(玉門關) 근처에서나 놀아야 할 놈들이 무슨 이유로 여기에 있는 것이냐?!”
* * *
비단로유격대의 연노 사격은 강력했지만, 그들의 수는 적었고, 적들은 많았다.
거기다가 애초에 휴대용으로 제작된 연노의 내구성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화살꽂이가 된 시체를 넘어 닥쳐 오는 적들의 모습에 정륭이 외쳤다.
“좋아! 우리는 이선(二線)으로 후퇴한다!”
적의 예봉(銳鋒)은 충분히 꺾었고, 그것으로 그들의 역할은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뜀걸음으로 물러나는 비단로유격대 사이로 거대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만족하셨습니까?!”
“잘했다.”
짧게 치하의 말을 건넨 염 장로는 밀려오는 적들을 향해, 검을 앞세웠다.
그는 천천히 공기를 들이마셨다.
“죽여 버려!”
“달려들어 이 새끼들아!”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피 냄새, 찢어진 내장에서 홀러나오는 악취, 죽어 가는 이가 홀리는 얕은 신음, 죽이려는 이의 악에 받친 고함, 반쯤 뒤집혀 핏발이 선 눈알, 병장기에 먹였던 기름의 냄새, 공포와 살의가 한데 뒤섞여 자아내는 그리운 전투의 향기.
전쟁의 냄새.
고향의 냄새.
“이 씨X!”
가장 먼저 치달아 온 것은 왼팔이 철시에 꿰뚫린 자였다.
거검(巨劍)을 든 채, 마치 땅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서 있는 거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위압적이었다.
'죽여, 죽여, 죽여 버리면 돼!’
하지만 근접전이 펼쳐지기 직전에 투여한 마약은, 그에게 충분한 용기를 부여했다.
“뒈져라!”
그는 자신이 손에 든 철퇴를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그는 분명 철퇴를 내리쳤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자신의 눈에는 철퇴의 머리 부분이 두 개가 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마약을 너무 과다 복용한 탓일까.
그때 자신의 이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어?'
그는 자신의 머리를 만져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마위로 절개되어 버린 머리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 죽었…?’
* * *
아미파의 무승(武僧)들은 뱉은 말이 있기에, 투자단 행렬의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지켜야만 했다.
분명 격전을 예상한 그들이었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날아오는 화살을 쳐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호위 책임을 버리고 적들 한가운데로 뛰어들 수도 없었다.
결국에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진형에서 혼자 돌출된 염 장로를 향했다.
괴성을 지르며 육박해 오는 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염 장로의 모습은,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염 장로의 앞에 첫 번째 적이 도착했다.
“아!”
멀리서 안력(眼力)을 돋우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미파 무승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의문에 가까운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들 중 누구 하나 제대로 염 장로의 검이 언제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그저 검격을 마친 염 장로의 자세를 보고서야, 그것이 '가로 베기'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그 일검(一劍)에는 어떤 기세도, 강렬한 기파도, 일말의 살기도, 심지어는 기척마저도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물결처럼 닥쳐드는 적들 사이에서 염 장로의 거검이 산들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산들바람의 결과는 실로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기가 부딪치는 소음도 없었다.
적들의 사지가 사방으로 사납게 흩날리지도 않았다.
단말마도 없었다.
그저 적들은 달려들던 그 자세 그대로 신체 부위들을 잃고 허물어지듯이 쓰러져 갔다.
마치 자신이 달려들던 기세에 못이겨 넘어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단 몇 번 숨을 내쉬는 동안, 염 장로의 주위에는 아무도 살아 숨쉬는 이가 남지 않았다.
"...."
자신들이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던 광경에 무승들의 머리가 텅 비어 버렸다.
“…잘 보아 두거라.”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입을 연 것은, 총무사태였다.
“처음 염곽추를 보게 되면, 누구나 그를 패도적인 무공을 주로 사용하는 이로 예상하곤 하지. 너희도 그러했을 것이다.”
무승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체(自然體)에서 시작하는 극한(極限)에 달한 외공(外功). 그 외공에서 비롯된 지독할 정도로 효율적이며 일절(一切) 낭비라고는 없는 검술.”
늙은 비구니는 깊은 주름 아래서 석탄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염 장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저 검격(劍擊)에는 분명 범상찮은 내력이 깃들어 있건만, 그 운용이 얼마나 섬세하고 절묘한지.”
적들 사이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내공을 지닌 암살자들이 튀어나왔다.
암살단에서 스승이라 불리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자아낸 공격은 수천 번 수만 번 호흡을 맞춘 것처럼 완벽했다.
“도무지 내공을 소모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기이한 검술.”
염 장로의 전후좌우를 파고든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내공을 쏟아넣은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살인기예(殺人技藝)를 쏟아 냈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가 염 장로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들마저도 자신들이 훈련시킨 암살자들처럼, 그저 조각나 바닥으로 흘러내리듯이 쓰러졌을 뿐.
“상대는 마치 검으로 만든 바위와 겨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적의 중진(重鎭)을 그렇게 분쇄 해버린 염 장로의 모습은, 그저 처음과 달라진 것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호홉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피와 살이 튀는 현장에서 혼자만 고요한 호수가 된 것처럼.
“저자의 별호에 검악(劍岳)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