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18화 (118/350)

제18편 금질(金蛭)

낙양검가, 이공자의 진영.

책사 한명휘의 집무실.

한명휘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허탕이라고?”

“…죄송합니다.”

복주(福州)에서는 살인 사냥개라고도 불리는 청부사, 납인렵구(納刃獵狗)의 태도는 그 악명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 허탕이라고…?”

“…죄송합니다.”

마치 발에 걷어차인 개가 꼬리를 말듯이 고개를 숙인 그였다.

“설명이라도 해 봐.”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한명휘가 이를 악문 채로 말했다.

납인렵구와 함께 움직였던 한명휘의 책사가 대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금주가 가졌던 검가동패를 되찾기 위해서, 암천존자(暗天尊者)라는 존재를 추적 중이던 저희는….”

“서론은 필요 없다.”

책사가 마른침을 삼키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암천존자의 마지막 목격담은 죄악의 골짜기 부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명휘가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대신 말했다.

"죄악의 골짜기는 이미 사공자의 통제 아래 있어서 제대로 조사도 하지 못했겠지. 하필 거기가 사공자와 대공자의 사업 구역이라서 말이지.”

"...."

“그놈 덕분에 대공자와 사공자만 누워서 떡을 먹었군.”

수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감찰부(監察部)의 소식은?”

“아직 감찰부가 검가동패의 회수를 위해서 움직였다는 정보는 없습니다만….”

“하지만 중앙감찰각의 동태는 알수 없지. 그러니 그쪽에서 벌써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겠지. 일반적인 검가동패 관련 사건과는 다른 성격이니.”

집무실에만 있던 한명휘가 직접 현장에서 뛰어다녔던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전부 하고 있었다.

"...."

수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그들의 조사가 부족했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래서 도대체 그 암천존자라는 놈은 정체가 뭐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명휘조차 추측하지도 못할 문제였다.

“저번 조사처럼, 무슨 귀신이니 어쩌니 하는 점쟁이가 하는 개소리말고, 그리고 헛소리나 하는 목격 자들의 이야기 말고, 좀 제대로 된 정보는 없나?”

"...."

처음은 자신이 검가동패의 수여를 추천했던, 금주.

그다음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대공자와 사공자의 사업지가 되어 버린 죄악계곡.

마치 이 암천존자라는 놈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부 나가.”

수하들은 황급히 집무실을 비웠다.

한명휘의 관자놀이에서 튀어나와 꿈틀거리는 혈관이 그의 분노를 짐작하게 했다.

암천존자, 금주, 검가동패, 대공자와 사공자의 사업. 손 장로가 불렀다는 새 지휘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는 새 지휘관이라는 자가 오기전에, 대공자와 사공자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안하고 시도했던 모든 수단은 이미 박살 났다.

'시간 정도는 끌어 줄 수 있을것이라 기대했었는데….'

인맥이란 인맥은 모조리 동원하고 없는 인맥을 위해서 빚까지 져가면서 수행했던 행정적인 지연작전이었다.

사공자 담당의 최 책사까지 일련탁생(一建托生)의 심정으로 함께했지만,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대공자…!”

한명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 괴물 같은 놈은 도대체 무슨 수단을 썼는지, 그는 시도조차 하지 못할 거물들의 힘을 빌려 행정부의 관료들을 일시에 치워 버렸다.

손 장로는 딱히 말해 주지 않았지만, 이번엔 그조차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공자 놈은 애초에 내가 상대할 수 있는 크기의 존재가 아니었던 것인가?’

한편으로는 그렇게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한명휘다…. 이대로는 쓰러지지 않는다….'

사고(思考)의 힘이야말로 그가 가진 전부였고, 상해(上海)의 수라장(修羅場)에서 길러 온 근성이야 말로 그의 근본이었으니.

“…뒈질 땐, 뒈지더라도, 놈의 발목 인대 정도는 물어뜯어 주겠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나자빠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 인정하자. 상대는 나보다 크다. 나보다 강하다.’

기회가 생겨 팔자에도 없던 낙양 검가에 와서, 이제까지 품격있는 척 무게를 잡고 있었다.

이공자의 권력에 기대어, 이공자보다 작은 자들을 눌러 버리고, 골탕 먹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원래 내 전문은 이쪽이 었어….’

그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상해의 불법 노예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날부터.

큰 놈을 진홁탕에 끌어들여 잡아먹고 살아남아 왔던 자신이었다.

“그래…, 진흙탕이다.”

상대를 진홁탕에 빠뜨리려면, 자신의 손을 더럽혀야 했다.

그의 머리가 때를 한꺼풀 벗은 것처럼 굴러갔다.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금방 그에게 필요한 이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금질.”

낙양의 암흑가에 군림하는 육 인의 지배자 중 하나이자, 금주의 양아버지.

이제까지 그와 자신은 제대로 된 교류도 없었고, 거래를 할 만한 신용도 없는 자였다.

심지어 한명휘보다 훨씬 큰 상대였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수양딸과 그 수양딸이 잘 키웠던 흑골파를 암천존자에게 잃었다.

그리고 대공자와 사공자의 사업 때문에 죄악계곡에 적잖이 있던 사업체의 재건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가 암천존자와 대공자, 어느 쪽에 불만이 있든, 충분히 자신과 거래할 용의가 있으리라.

한명휘는 즉시 자신의 집무실에서 뛰쳐나갔다.

* * *

“뭐라고?”

하지만 호기롭게 뛰쳐나간 것과 달리 시작부터 계획이 꼬이는 것을 느끼는 한명휘였다.

“어, 죄송합니다만, 한 책사님. 금질이라는 자는 저희도 접선법이 없습니다.”

한명휘가 상대의 황당한 대답에 자신의 이마를 긁었다.

“대선상회(大仙商會에서도 접선법을 모른다고?”

대선상회는 상회라는 말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공자 직속의 정보 공작 조직이었다.

“분명 금질 그자와 우리는 협력 관계가 아니었었나?”

“…그건 맞습니다만.”

잠시 망설이던 대선상회의 조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조직원이 문을 열고 나간 사이, 한명휘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강남사단의 본부에서도, 심지어 대선상회에서도 금질과의 연락법도 접선법도 모른다고?’

기이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협력 관계라는 것이 그동안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

“한명휘 책사님 되십니까?”

한명휘가 돌아보자, 그곳에는 대선상회의 간부가 있었다.

* * *

'대선상회의 간부도 금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한명휘는 강남사단의 본부로 돌아와 자료실을 뒤지는 중이었다.

'분명 그 간부도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것이지?’

강남사단 본부에 있는 자료실 내에는 결코 밖으로 누출되어선 안되는 낙양검가의 기밀도 있었지만, 강남사단의 최고등급 기밀 취급 권한을 가진 그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는 없었다.

그런데.

“…어이!”

한명휘가 부르자, 미분류 서류에 파묻혀 있던 자료실 관리 문사가 벌떡 일어났다.

“예! 책사님!”

한명휘는 얇은 서류 몇 장을 흔들며, 그에게 물었다.

“금질에 대한 문서는 이게 전부인가?”

문사는 그에게 서류를 건네어 받아 색인을 확인하고 자료 목록을 뒤졌다.

“어…, 예. 그렇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

그때 한명휘는 자신이 무언가 꺼림칙한 것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 * *

금질.

그에 대해 남아 있는 정보라고는, 한명휘가 금주와 거래를 하기 전에 형식상으로 알아봤던 수준의 정보가 다였다.

과거 어느 날 낙양에 나타나 고리대금과 인신매매, 도박장 운영 따위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한 인물.

그 과정은 지극히 효율적이었고, 잔혹했으며, 효과적이라, 그가 낙양 암흑가의 거물이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째서 이 정도밖에 정보가 없는 것일까….”

한명휘가 텅 빈 집무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이 열렸다.

“누구…?”

“한 책사…!”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공자 담당의 최 책사였다.

“…왜 그러나?”

“쉿!”

한명휘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은 최 책사는 문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걸어 잠근 뒤에 한명휘에게 다가왔다.

“조용히 대답해 주게.”

그러고서도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최 책사였다.

“…자네 오늘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가? 대선상회에서 손 장로에게 자네에 대한 긴급 보고가 들어갔네.”

역시 뭔가 있는 게 확실했다.

잠시 망설이던 한명휘는 금질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과연 ’그자'라 그래서 대선상회가 긴급 보고를 넣었던 거였군.”

“그자? 자네는 금질에 대해 뭔가 알고 있나?”

최 책사가 급히 한명휘의 입을 막았다.

“그자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게…!”

입이 막힌 한명휘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최 책사를 바라봤다.

“말하지 말라면 하지 말게! 알겠나?!”

한명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한명휘의 입을 막았던 손을 뗀 최 책사였다.

“…도대체 그자는 뭔가? 대체 뭐하는 작자길래 이름조차 입에 못 담게 하나?”

한명휘의 질문에 최 책사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모르네.”

“아니, 지금 나랑 장난…!”

한명휘가 성질을 내려던 차에 최 책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자의 이름을 입에 담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주(咀呪)에 걸린다는 건 알고 있네.”

“…저주?”

한명휘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자네, 그런 미신 따위를 믿는 사람이었나?”

최 책사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가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중요치 않네.”

“상식적으로 생각하게, 제발 상식적으로.”

한명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그 저주인지 뭔지가 걸렸다면, 낙양에 사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문제가 생겼지 않겠나?”

하지만 이어진 최 책사의 말에 한명휘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지만 손 장로조차 그자의 이름을 결코 입에 담지 않더군.”

"...."

손 장로는 한명휘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미신과 거리가 먼 사람중 하나였다.

“과거 나는 어떤 이유로 그자의 조사를 한 적이 있었지. 지금 자네처럼. 그리고 손 장로에게 더 이상 그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지. 아마, 조금 있으면 자네 또한 손 장로에게 직접 듣게 될 걸세.”

"...."

“내가 그 당시에 알아냈던 것 중 하나는….”

최 책사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그자는 이공자님, 우리의 주군만이 그 접선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어.”

“…오직 주군만이?”

한명휘는 이제, 자신이 꺼림칙한 것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끔찍한 것의 아가리에 머리부터 밀어 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 달았다.

“도대체 그자는 무슨….”

한명휘가 뭐라 말을 하려던 차에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명휘 책사님. 손 장로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

마른침을 삼키는 한명휘에게 최 책사가 급히 조언했다.

“무조건 알겠다고만 대답하게. 알겠나?”

그때 한명휘는 생각했다.

그렇게 위험한 자라면, 충분히 대공자나 암천존자를 진흙탕 속에 끌어들일 수 있겠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