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00화 (100/350)

제25편 큰길(大路)

원각정 정문 앞 거리,

정오(正午)쯤.

원각정 하녀단 소속의 하녀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허허. 낙양검가의 시녀들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줄곧 들어 왔지만, 한낱 하녀까지도 이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역시 대공자님을 모시는 하녀라 특별히 뽑은 것이겠지요?”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이가 끼어들었다.

“아마도 접객을 위한 하녀라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단이나 상회에서 나온 이들답게, 자연스럽게 어울려 대화를 나누었다.

“하하. 아마도 그렇지 않겠소?”

“저런 하녀들이 측간을 비우고, 세탁을 하거나, 야외에서 궂은일을 하지는 않겠지요.”

“물론이지요. 게다가 하인들도 있을 것인데, 저런 하녀들이 손에 물이나 묻히겠습니까?”

하하하, 하고 웃는 비단옷의 중년인들이었다.

그때 또 다른 긴 수염의 중년인이 혀를 차며 대화에 참여했다.

“여러분은 별로 이 낙양검가에 와 보신 적이 없으신가 보군요.”

나름 노골적으로 면박을 주는 말이지만, 겨우 이 정도로 불쾌감을 드러낼 사람이라면 치열한 상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낙양검가에 자주 오시는 분이신가 보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겠소?”

그러자 긴 수염의 중년인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하녀를 향해 턱짓했다.

“저 하녀가 등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이 보이시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눈이 있는데, 설마 검이 보이지 않겠소?”

그러자 긴 수염의 중년인이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낙양검가의 사람들은 절대 멋이나 장식으로 검을 소지하지 않소.”

“그렇소?”

“어째서 그러한 것이오?”

다들 흥미를 드러내자, 긴 수염의 중년인이 우쭐거렸다.

“낙양검가에서 검을 패용한다는 것의 의미는 언제든 검을 나눌 용의가 있다는 뜻이오. 즉, 자신이 무인(武人)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

주변인들이 감탄했다.

“그렇다면 저 하녀는 검수(劍手)이기도 하다는 것이오?!”

"설마 내공까지 가진, 무림인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다들 손사래를 쳤다.

“하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어찌 내공까지 지닌 검수를 고작 하녀로 쓴단 말이오?”

“무인이라고 해서, 전부 무림인이 아닌 것은, 아무리 천하의 낙양 검가라 해도 당연한 이치이지 않겠소?”

그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가(本家)에서는 내공을 가진 무인을 무림인이라고 칭하지 않고, 무사(武士)라고 부른답니다.”

그들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그 곳에는 그들의 대화거리가 되고 있던 그 대공자의 하녀가 있었다.

그들이 놀란 까닭은 자신들이 은밀히 나누던 대화를 들을 정도로 하녀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으니.

“어허, 이거 실례했소이다.”

“우리가 뒤에서 험담을 하던 것은 아니니, 부디 이해해 주기 바라오.”

“그나저나 놀라운 무공이시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곳은, 원각정 앞거리에 위치한 대기소였다.

그리고 이 층이었다.

놀랍게도 원각정의 하녀는 어느새 이 층 난간에 서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궁금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원각정의 하녀이면서 동시에 무사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손이 번뜩였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녀의 손이 만든 움직임을 좇아가지 못했다.

그저 바람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는데, 그들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색색(色色)의 전낭(錢囊)들이 전부 그녀의 손 위에 있었다.

“오오! 대단하시구려!”

“훌륭한 솜씨외다!”

다들 상기된 얼굴로 손뼉을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하나둘씩 전낭을 회수하자, 그녀는 살포시 몸을 숙여 그들의 칭찬에 답했다.

“낙양검가의 평범한 하녀가 아니라, 대공자이신 주인님의 하녀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요.”

다들 콧김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공자님이시군.”

“대낙양검가의 대공자님에게 어울리는 하녀로다!”

그들도 연소현이 일각에서 무검자라고 불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단의 사람답게 누구도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후후. 감사합니다.”

그녀는 공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물었다.

“주인님께서는 지금 미리 약조가 없으셨던 손님은 받지 않고 계신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이들에게 들었소.”

그녀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곳에서 대기하고 계신 것인지요?”

그들의 대답은 그녀가 오늘 다른 이들에게서 들었던 대답과 큰 차이가 없었다.

“허허. 우리 같은 상단에서는 중요한 분이라면, 단지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파견하는 법이오.”

“그렇지요.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낙양검가의 대공자께서 칩거를 끝냈다고 하시는데, 어찌 하남성에서 장사를 한다는 상단이나 상회가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있겠소?”

“게다가 이렇게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서 안면이라도 익혀 두면, 그것이 바로 금상첨화가 아니겠소이까?”

그들이 껄껄하고 웃었다.

그녀는 입가를 가리고 함께 웃었다.

“이것도 인연이니, 제가 특별히 여러분들의 궁금증 하나를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주변인의 초롱초롱한 시선이 하녀에게 몰려들었다.

“오호! 과연 어떤 궁금증을 해소해 주실 것인지 기대가 되오.”

그녀는 우아하게 눈웃음을 그려내며 입을 열었다.

“원각정에는 하인은 없습니다.

모든 허드렛일은 제가 속해 있는 하녀단에서 처리하지요.”

그녀가 덧붙였다.

“측간을 비우고, 세탁도 하며, 야외서 하는 궂은일까지, 전부 저희가 한답니다.”

큰길을 분주히 오가던 그녀는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밭도 갈고, 소도 친다니까요 후후.”

그들이 무안해하려는 찰나, 그녀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저는 맡은 임무가 있어 물러나겠습니다.”

그녀가 우아하게 공중제비를 돌아 큰길에 착지하자, 그들은 뒤에서 감탄을 터트렸다.

"저런 하녀들이 밭을 갈고, 소를 몬다고?!”

“하녀단이라고 했었지요? 그들 한 명 한 명이 전부 무림인이라는 것 아닙니까?!”

“저런 하녀들을 거느리시다니, 역시 대낙양검가의 대공자님답습니다!”

그때 다른 대기소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약왕이다! 약왕이 나타났다!”

그러자 모두가 난간으로 몰려들었다.

그 대기소뿐만 아니라, 큰길을 따라 늘어선 대기소마다 다들 목을 길게 빼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엣헴. 이놈들. 나처럼 이름 높은 어르신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다들 정신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로구나.”

거들먹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늘은 일찍 귀가 중인 약왕이 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는 좀 달랐다.

“…저 늙은이가 그 유명한 약왕 어르신이라고?”

“꼴이 꾀죄죄한데? 생긴 것도 볼품이라고는 없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저 늙은이는 약왕 어르신일리가 없다. 그분은 고매한 신선과도 같은 풍모를 지닌 분이라고 들었다.”

좌우 건물에서부터 사정없이 날아와 꽂히는 말들에 약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

“이, 이, 눈이라고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놈들이…?!”

그때 원각정의 하녀복을 입은 여인이 우아한 경신법으로 약왕 앞에 나타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대기소에 있던 이들에게 용무를 묻고 다니던 바로 그 하녀였다.

“약왕 어르신. 오늘은 일찍 귀가 하셨습니다.”

그녀가 약왕의 작은 짐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그의 기분이 대번에 좋아지고, 입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음음. 오늘은 저녁쯤에 또 나가 봐야 하는구나.”

“역시, 약왕 어르신 정도 되시는 분이시니, 바쁘기가 그지없으시겠습니다.”

“허허. 뭐 그렇지. 나 정도 되는 사람이면 공사(公私)가 다망(多忘) 할 수밖에 없는 게지.”

하녀의 옆에서 걷는 그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보아하니, 혹시 때때로 흉통이 있지 않으냐? 이 내가 몇 번 주물러, 아니. 촉진(觸診)을 해 보면 금방 확인이 될 터인데.”

그녀가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저희 건강은 주인님께서 직접 살펴 주시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허?! 그 고얀 놈이 또?!”

그들이 대문을 지나 유유히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 거렸다.

“…약왕 어르신이 맞긴 맞는 모양이군.”

“실제로 보니, 조금 변태적인 늙은이 같긴 했지만, 뭐. 소문이라는 것이 다 그런게 아니겠나?”

몇몇은 다른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이름 높은 약왕 어르신 정도 되는 분이라야, 저렇게 환대 받으며 원각정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로군.”

“예끼, 이 사람아. 먼저 약왕 어르신이 낙양검가의 원각정에 머물고 계신다는 것에 놀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구먼!”

그들이 웅성거리며, 의견을 교환하고 있을 때, 큰길의 저편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낙양검가의 장로님께서 행차하신다! 다들 예를 표하거라!”

그 소리에 다들 몸가짐을 바로 하고, 정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밖을 내다 보는 행동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전망이 좋지 않은 곳에 있던 이들은 밖으로 쏟아져 나와 거리의 좌우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들의 옆으로 칼 찬 무사들의 행렬이 먼저 당도했다.

중원국 어디를 가든지 대접받을 무사들이 발까지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에 좌중이 술렁였다.

“중무장한 무사들이로군…!”

“저들이 든 깃발을 보게. 검악파산(劍岳破山)이라고 적힌 것을 보니….”

“검악파산 염곽추…!”

“과거, 화산(華山)의 검군(劍君)을 일천(一千) 초식 끝에 쓰러트렸다던 그 검악파산 말인가!”

“북부 전쟁의 영웅!”

무사들의 뒤를 이어, 염 장로의 시녀들이 조신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시녀들 역시 아름답군!”

“허허. 저들 중 아무라도 좋으니, 내 새로 장가를 들고 싶구먼.”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반응도 있었다.

“…그래도 아까 그 원각정의 하녀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아무래도 저들은 평범한 미인들이고, 그 하녀는 무사였기 때문이 겠지.”

속닥거리던 그들의 눈동자는 곧 화등잔처럼 커졌다.

“백호(白虎)다!”

“아니, 저렇게 큰 호랑이를 본적 있는가?!”

"다른 이들과 발을 맞추어 걷는 것을 보게! 영물(靈物)이 틀림없어!”

그리고 그들은 그 백호 위에 옆으로 올라탄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우아하기 짝이 없는 궁장을 입고, 얼굴은 면사(面紗)로 가리고 있었다.

"...검가에 저런 아가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자태가 너무나 고운 아가씨로군.”

“아마도 검악파산과 관련이 있는 아가씨가 아니겠는가. 영애(令愛)일 수도 있고, 아니면 검악파산과 동행하는 지인일지도.”

저 뒤편으로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입을 닫기 시작했다.

곧 좌중이 침묵 속에 잠겼다.

그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바닥만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백호 뒤로 호위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장정들 세 명을 묶어 놓은 듯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의 덩치보다도, 험상궂은 인상보다도 더욱 눈길을 끄는것은 그의 등에 매달린 묵색(墨色)의 거검(巨劍)이었다.

필시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들어볼 엄두도 내지 못할 거검은, 화산검군을 일천 초식 만에 패배시켰다 일컬어지는 바로 그 거검이었다.

이윽고 행렬이 원각정의 대문에 다다르자, 그가 직접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뒤를 백호를 탄 여인이 따랐다.

그를 발견한 정문을 지키던 특임 대원들이 일제히 포권(抱拳)하며 외쳤다.

“본가의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가 정중한 태도로 그들의 포권지례를 받아 주었다.

“안에 기별해 주게. 본가의 염 장로가 그의 딸과 함께 감히 대공자님을 뵙길 청한다고.”

제암진천경 -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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