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편 긴급명령(緊急命令)
장로원주가 원로원으로 향했던,
새벽녘.
낙양검가.
최고 운영 회의, 행정각(行政閣).
어젯밤부터 비상근무 태세에 들어갔던 행정각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행정각, 그중에서 행정각주의 서무실 인원들은 차를 마시거나, 옆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거나, 서무실 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행정각주의 집무실 문을 흘긋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집무실에서 회의를 끝낸 행정각의 각 부서를 책임지는 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책임자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고 있을 때, 행정각주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현 시간부로 최고 운영 회의의 결의(決意)에 따라 긴급명령(緊急命令)이 발령됨을 알린다.”
서무원들이 지침에 따라 일제히 움직였다.
서랍이 열리고, '긴급'이라는 자수가 선명하게 박힌 완장(腕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장을 받아 착용한 서무원들은 행정각주의 뒤를 따라 상황실을 개방하고, 운영하기 위해 위해서 움직였다.
* * *
행정각의 책임자 하나가 몇 층을 내려가, 문을 열자 커다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오십여 명에 달하는 필사원(筆寫員)들이 각자의 책상에 지필묵을 놓고 대기 중이었다.
“최고 운영 회의의 긴급명령이다!”
그들은 건네어 받은 각종 명령장과 협조 공문 그리고 방문 따위를 거침없이 필사해 나가기 시작했다.
서무원들은 끊임없이 새 종이 뭉치를 날랐고, 필사를 마친 종이들을 수거해 검수원(檢收員)들에게 전달했다.
검수를 거친 종이들은, 책임자가 최종 점검을 마친 뒤 직인을 찍어, 공식 문서가 되었다.
서무원들은 공문을 봉인하여 행선지가 표기된 비단 주머니에 넣고, 다시 한번 단단히 묶었다.
비단 주머니들은 즉시 일 층으로 향했는데, 일 층에는 체신국(遞信局)에서 긴급 증파(增派)된 이백여명의 사환(使喚)들이 있었다.
비단 주머니를 받은 사환들은 가죽 통에 넣어 뒤로 단단히 맸다.
그들은 곧 수령증을 품에 넣고, 낙양검가의 곳곳을 향해 바람처럼 큰길을 내달렸다.
그들의 등에서 긴급(緊急)이라 적힌 붉은 깃발이 거칠게 펄럭였다.
* * *
낙양검가, 집사부(執事部).
공식 업무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한 집사부의 넓은 안마당이었다.
“긴급이오! 모두 길을 비키시오!”
붉은 기를 등에 단 체신국 사환은 그 안마당을 아무런 제지 없이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사환은 깜짝 놀란 시종에 의해 곧바로 집사부장의 집무실로 안내 받을 수 있었다.
집무실에서 밤을 지새운 집사부장은 사환을 희미한 미소로 맞아들였다.
수령증에 직인을 찍어 준 집사부장은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봉인을 풀었다.
최고 운영 회의 행정각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공문을 읽어 내린 그가 큰 소리로 광소(狂笑)를 터트렸다.
“게 누구 없느냐?!”
그의 일갈에 밖에서 시녀 하나가 급히 뛰어들었다.
“당장 가서 당직자를 불러들여라! 그리고 즉시 갑종 특수반 교육 담당에게 호출을 넣어라!”
“예! 집사부장님!”
그의 성격을 아는 시녀는 대답을하며 급히 달려 나갔다.
“드디어…!”
그는 희열에 찬 얼굴로 붓을 들었다.
* * *
낙양검가, 사업단(事業團) 소속,
검가건축(劍家建築) 사업부.
낙양검가 본사(本社).
밤 동안 별 사고 없이, 여유롭게 야간 당직을 마무리하고 있던, 당직자의 집무실이 벌컥 열렸다.
“무, 뭐야?!”
그곳에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사환과 사환을 안내한 사무원의 모습이 있었다.
붉은 깃발을 본 그는 엎지른 차를 닦지도 못하고, 수결을 해 준 뒤 급히 봉인을 뜯었다.
“어? 어어?!”
그가 급히 책상에 놓여 있던, 야간 당직자용 지침서를 거칠게 뒤지며 외쳤다.
“체신국에 협조 구해서, 본사에서 근무하는 고위 간부(幹部)들 전원 불러들여!”
무슨 일인가 싶어 모여든 이들 중 하나가 아연해서 물었다.
“저, 전부 말입니까…?”
“그래! 전부! 비상소집이다!”
그가 비상 연락 체계가 적힌 부분을 찾아냈다.
“본사의 사환들을 전부 내 집무실로 불러! 그리고 너희는 이 공문을 필사하기 시작해라! 임원(任員)분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 * *
낙양검가, 외원(外院).
특유의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다리 달린 소문(有脚風聞), 연하응이 집무실을 나섰다.
평소의 느긋하고 교양 넘치던 외원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급히 오가는 이들로 뒤숭숭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외무회관(外務會館)에 도착 하자, 장로(長老) 하나가 정신이 없던 와중에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오! 잘되었군. 안 그래도 고문(顧問)을 호출하려던 참이었소.”
연하응이 사람 가벼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비볐다.
“붉은 깃발을 단 사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도움을 드릴 것이 없을까, 찾아왔습니다.”
“잘되었군! 지금 시종들이고 시녀들이고 할 것 없이, 본원(本院)의 인사들을 호출하기 위해서 전부 내보내서 말이오.”
그가 손수 차게 식힌 차를 연하응에게 대접했다.
“그대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최고 운영 회의에서 전달된 공문의 필사본을 꺼내어 들자, 연하응이 손을 저었다.
“아, 그 사항이라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장로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역시 우리 외원의 걸어다니는 정보국(情報局)이라 불리는 고문답소!”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낙양검가의 외무(外務)를 담당하는 외원답달까.
급한 와중에도 중간중간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에야 본론에 들어가는 장로였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고문도 이 명단에 있는 가문의 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주시기 바라오.”
연하응이 문서를 받아 들고, 명단을 확인했다.
“오오…! 이분들은 낙양에 거주 하시는 전직(前職) 고관대작분들이 아닙니까?”
그가 호들갑을 떨자, 장로가 미소를 지었다.
“대공자님과 친분이 있는 고문이라면 성격 까다로운 그분들도 좋게 봐주시겠지. 그렇지 않소?”
연하응이 품에 문서를 넣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몇몇 분들은 이미 친분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하! 고문만 믿겠소!”
* * *
체신국의 옥상에서는 쉴 새 없이 전서구(傳書鳩)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올랐다.
붉은 깃발을 멘 기마사환(騎馬使喚)들이 엄청난 속도로 낙양검가의 본가를 벗어났다.
호위각(護衛閣)의 기마무사(騎馬武士)와 기마 병력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중원국 전역에 있는 낙양검가의 사업소(事業所), 봉신가문(封臣家門)과 방계가문(傍系家門)등으로 향했다.
* * *
이른 아침,
낙양검가의 창고 구역.
야간 근무의 끝 무렵, 교대 시간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창고 하인이 눈을 부릅떴다.
“어어?!”
졸음 때문일까.
눈을 비볐지만, 눈앞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 뭐야? 어디서 오는 거야?”
짐수레나 짐마차 그리고 짐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이! 조심해! 부딪힌다!”
“정렬! 정렬하라고!”
그것은 한 번에 들이닥치기에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였다.
그들의 행렬에 치이면서도, 교대 조원들도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원래의 교대 조원뿐만 아니라, 다른 조의 하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어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그의 외침에 교대 조원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자네는 모르겠군! 새벽녘에 긴급명령이 떨어졌어!”
“긴급명령?!”
그들은 주변의 소음에,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래! 긴급명령! 바로 그 최고 운영 회의에서 직통으로 떨어진 명령이래!”
“최고 운영 회의?!”
그는 펄쩍 뛰었다.
그가 지금껏 낙양검가에서 일하면서, 처음 받아 보는 정상급 명령이었다.
고작해야 창고 하인에 불과한 그가 언제 최고 운영 회의의 명을 받아 보았겠는가?
“무, 무슨 명령인데?!”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밀려들어 온 각양각색의 운송하인들이 창고마다 존재하는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도대체 검가건축의 자재운송반(資材運送班)이 얼마나 동원된 거지?”
“심지어 전투수송당(戰鬪輸送堂)의 마차도 있어!”
“식료 운송용 마차까지….”
마치 낙양검가 내의 온갖 조직에서 여유가 있는 운송 인력이란 인력은 전부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야! 이 쌍놈들아! 거기서 뭘 하고 자빠졌어?! 당장 튀어 오지 못해?!”
그것은 그들의 창고장이었다.
원래라면 아침 시간이 끝날 즈음에야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그들의 창고장이 이 꼭두새벽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가, 갑니다요!”
어제까지만 해도, 그들의 창고장은 두꺼운 솜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 다녔는데, 오늘의 그는 웃통을 훤히 까고 있었다.
거기다가 손질할 때나 꺼내던, 검은 채찍까지 어깨에 칭칭 감고 있었다.
“뛰어! 이 새끼들아! 뛰어!”
그들이 후다닥 달려, 동료들의 뒤에 정렬했다.
거의 전원 집합이나 다름없는 인원들을 앞에 두고, 창고장이 하얀 입김을 뿜으며 조례를 시작했다.
“먼저 야간조는 두 시진의 연장 근무를 한다!”
야간조원들의 입에서는 불평 한 마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배운 것이 없을지언정, 눈치가 없지는 않았으니.
“오늘 오전 업무 시작과 함께 발효된 긴급명령으로 인해, 우리는 유관 부서와의 임무에 무조건 협력한다!"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좌중을 훑었다.
“너희가 평소에 운송하인들과 사이 안 좋은 건 이 창고장도 알고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거 없다!”
창고장은 자신의 살찐 가슴팍을 두드렸다.
“지금부터 긴급명령이 종료되기 전까지, 협조와 협력이 없으면, 다 뒈지는 거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이 정도 우렁찬 대답이면, 평소의 창고장이었다면 박수를 치고 좋아했을 터였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오늘의 그는 오히려 눈에 불을 켰다.
“긴급명령이 종료될 때까지, 감독원(監督員)들은 물론이고, 집사부의 계도원(啓導員)들! 그리고 너희가 평소에 절대 뵐 일이 없는 높은 분들조차도 불시에 우리를 둘러보실 수 있다!”
모두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켜 댔다.
“그러니 절대 기강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대답이 두 배는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런 커다란 대답 소리는, 이 창고 구역에 존재하는 창고마다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고참 하인 하나가 손을 들었다.
“창고장님! 저 친구들은 전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창고장은 한마디로 대답했다.
“원각정(原各庭)!”
* * *
점차 오가는 이가 늘어가는 낙양검가의 곳곳에 사환들이 방문을 붙였다.
'본가의 대공자 연소현에 대한 칩거 명령을 철회한다.’
최고 운영 회의 행정각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