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편 해방(解放)
깊은 밤.
호두 마을, 사공자 측 임시 거점.
어둠 속에서 유등을 든 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사태 파악을 위해, 사공자의 집무실에서 파견된 당가 출신의 무사는 현장 책임자의 안내를 받으며 물었다.
“이전 보고에 따르면, 암흑가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매서운 무사의 눈길이 현장 책임자를 향했다.
현장 책임자는 찬 밤공기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 그것이, 저희가 외부에서 정찰 정도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로는 그것이 가장 유력한 설명이라고 판단하여….”
애초에 죄악의 골짜기에 제대로된 정보원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무사도 잘 알고 있었다.
“'암천존자'라는 자에 대한 소문은 그동안 계속해서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자에 대한 최초 보고서조차 올리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떨면서도 안내를 하던 현장 책임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 그 암천존자라는 자는….”
하지만 그의 몸은 이전보다 더욱 떨리고 있었다.
“그자는 아직 존재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소문만이 무성 할뿐더러, 그 소문마저 지극히 기괴하고, 괴상하여….”
무사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뜬소문이라 여겼고, 그다음에는 은둔하고 있는 기인이나, 유랑하던 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그는 현장 책임자가 사공자의 집무실에서 파견된 자신을 두려워하여, 떠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존재'에 대한 이야기들은, 목격담들은, 저희가 이전에 접할수 있었던 은거기인에 대한 소문의 양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현장 책임자의 손이 떨리며, 그 손에 들고 있던 유등도 함께 떨렸다.
그들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흔들렸다.
“그, 그 목격담은 마치 귀신이나, 유령에 대한, 미신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무엇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었고, 그, 그래서 저희는….”
무사는 눈을 찡그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는데, 스산한 한기가 몸을 감싸는 것처럼 느껴 졌다.
“…허튼소리는 그만하고, 확보한 생존자에게 안내나 하거라.”
은근하게 내공이 담긴 목소리에 현장 책임자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죄, 죄송합니다!"
현장 책임자의 발걸음이 지하로 깊이 향하자, 무사는 인상을 썼다.
“생존자는 중한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들었다. 아무리 암흑가의 쓰레기라고 하여도, 현재는 중요한 목격자인데 어찌 지하에 가두어 두었단 말이더냐?”
그러자 앞서서 지하로 내려가던 현장 책임자가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것이, 생존자라 해야 할지,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목격자는 맞사온데….”
무사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현장에서 물러선지 몇 년 만에 현장의 기강이 심각하게 해이해졌다고 생각했다.
“저, 저 안쪽입니다.”
현장 책임자는 손을 들어 안쪽을 가리켰다.
빛 한 점 없는 지하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무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군. 이미 죽은 모양이다. 귀한 목격자를 이리 취급하다 죽이다니. 너희는 단단히 문책받게 될….”
그때 어둠의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무슨…!”
그것은 목소리라기보다는 바람이 새는 소리에 가까웠다.
무사는 한달음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어둠 속으로 향했다.
"...!"
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다래졌다.
“죽음은 영원한 안식의 시작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의 굴레에 불과하다.”
목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려오지만, 그의 날카로운 기감으로도 아무런 생기(生氣)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반으로 갈라진 몸을 양손으로 껴안고 있는 시체에 불과했으니.
시체는 입술을 움직여 바람이 새는 소리로 목소리를 겨우 만들어 내고 있었다.
“두려워하라. 공포에 떨어라. 무심한 하늘을 대신해, 지상의 업을 징벌하는 그분께서 오셨으니….”
목소리를 자아내는 와중에도 갈라진 틈 사이로, 끊임없이 내장이 흘러나오고, 이미 바닥은 혈액으로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이미 죽은 자의 눈동자가 뒤룩거리며, 무사를 향했다.
“너희 또한 악업을 쌓아 간다면, 결국 그분을 만나게 되리라.”
말을 마친 사자(死者)는 모든 힘이 빠진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간신히 붙들고 있던 양팔이 풀리자, 사자는 불쾌한 소리를 내며, 양단되어 무너졌다.
미동도 없는 시체로 돌아간 그것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무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낙양검가 외원(外院).
어느 집무실.
다리 달린 소문, 유각풍문(有脚風聞), 연하응의 책상에는 낙양 곳곳의 명문가(名門家)에서 날아든 각종 초대장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답장을 쓰던 서신 위에 붓이 흉하게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방금 원각정의 세쌍둥이 시녀 중 한 명인 이령에게서 몰래 전달받은 쪽지를 펼쳐 들었다.
'…대공자께서 결국 칩거를 해금 하셨어!’
그는 쪽지를 화로에 던져 넣었다.
평소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의 얼굴이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의 눈동자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모습이 비쳤다.
'역시 내가 억울하게 빼앗긴 개봉연가(開封淵家)의 소가주 자리를 찾아 주실 수 있는 것은 그분뿐이다.'
낙양검가, 염 장로의 집무실.
“아버지. 드디어 마음을 굳히셨나요?”
염 장로가 정보원으로부터 얻은 쪽지를 불태웠다.
“그吼 그러니 너도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해라.”
백호를 안아 든 염백하가 미소지었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 * *
낙양검가 호법원(護法院).
호법육부장(護法六部長) 집무실.
“실례하지.”
문이 벌컥 열리며, 일부장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어? 선배?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사건 서류를 검토하다, 잠이 들었던 육부장이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났다.
“자네의 연초(煙草) 좀 빌리지.”
일부장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책상 위의 함을 열어, 연초를 꺼내 물었다.
“…꼭 갚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이럴 때 빌린다는 표현을 쓰곤 하죠.”
육부장은 하품을 하며 자신도 연초를 꺼내 들었다.
집무실이 금방 연기로 가득 찼다.
“…정말 연초 때문에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일부장이 연초를 뻑뻑 하고 피워 대다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 아니, 내가 허락할 때까지 최고위층이 얽힌 사건은 전부 호법원내 다른 부로 이관하게.”
“...예?”
마치 물가에 내어 놓은 자식을 대하는 듯한 일부장의 말에 육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불만이 있겠지. 당연할 걸세. 하지만 자네 가족을 생각해서 머리를 숙이도록 하게.”
일부장에게서 가족을 생각하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첫 번째는....
일부장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대공자가 칩거에서 풀려났어.'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것과 제가 무슨 관계가….'
일부장이 뿜는 것이 연초 연기인지 근심 가득한 한숨인지 구별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대공자는 사실상 세력이 없는 상태네.’
'그건 그렇지요.'
방금 칩거에서 십 년 만에 풀려난 이가 무슨 세력이 있겠는가.
'그 이야기는, 지금 대공자는 필요하다면 손에 잡히는 것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휘두를 것이라는 뜻이네.'
일부장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리고 그가 휘두르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맞은 이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고, 휘둘러진 이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육부장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이미 내원의 사건을 통해서 대공자의 두려움을 일부나마 엿보았던 그였다.
'이제부터 들어오는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를 두 번 세 번 다시 확인 하도록 하게.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 * *
낙양 교외(郊外) 지역,
어느 장원(莊園).
약왕이 등을 드러내고 누운 중년인의 등에 침을 놓고 있었다.
“소유(素愈)의 아들, 소현이가 이제 곧 움직일 걸세.”
그 말에 중년인의 등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가, 다시 풀렸다.
“…축하할 일이군요. 어르신께는 손자같은 아이 아닙니까?”
“자네에게는…?”
중년인이 피식 웃었다.
“제가 평생 섬기는 것은 그분'이지만, 그분의 아들은 그저 그분의 아들일 뿐이지요.”
“소현이는 특별한 아이일세.”
“그분의 아들이 어릴 때부터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을 '우리' 중에 모르는 이가 있었습니까? 단지 그분 같은 분은 세상에 또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일 뿐이지요.”
약왕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그래서 자네는 관심이 없다, 그 말인가?”
중년인이 침묵했다.
“소현이가 내게 어머니의 지인들과 연락을 취해 줄 것을 부탁하더군.”
“…직접 만나려 하지 않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내가 맡아 하겠다고 했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중년인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의 부탁이니. 지켜는 보겠습니다.”
약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네.”
약왕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소현과 약소유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아는 손자라면, 약소유의 매력과는 전혀 다른 마력(魔力)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으니.
* * *
낙양검가.
태상가주의 거처, 심부(深部).
태상가주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통로가 있는 작은 전각.
그 안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어슴푸레 비치는 달빛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구부정한 노인은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취하고 있었다.
일각에서 노괴(老怪)라 불리며, 장로의 신분이면서도, 원로와 같은 대우를 받는 인물.
내원총관(內院總管)이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리고,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들리시옵니까, 가주님?”
그 목소리에는 희미한 감정들의 파편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가주님의 큰아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사옵니다. 하늘에는 천살성(天殺星)이 떠올랐고, 가문에 큰 혼란이 뒤따를 것이옵니다.”
그의 깊이를 잴 수 없는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다.
“이 늙은이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무엇을 바쳐서라도, 약속하신 그날이 올 때까지 가주님을 지킬 것이옵니다.”
* * *
낙양검가, 당(唐) 태상부인의 처소.
사공자의 어머니, 당 태상부인이 언제나처럼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숙소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입김이 홀러나왔다.
“…소유 언니.”
사공자의 전서응이 뚫려 있는 천장으로 떨어트리고 간 쪽지는, 이미 그녀의 손에서 녹아내려 자취를 감춘 뒤였다.
“언니의 아이. 소현이가 모든 제약과 봉인을 풀고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바닥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언니는 약속을 지키지도 못한 저를 탓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언니라면 언제나처럼 괜찮다고,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라고, 저를 안아 주시겠지요.”
그녀는 눈을 꼬옥 감았다.
“언니와의 약속과는 달리, 언니께서 하셨던 부탁과는 달리, 저는 소현이가 그 모든 것들을 떨쳐 낸 것을 기뻐하고 있답니다.”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저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길 바랍니다.”
그녀의 감정이 격해지자, 그녀의 피부가 갈라지며, 진물이 새어 나다.
“저는 그 아이가 이 가문의 모든 어둠을 불태워 버리길 바랍니다.”
공기는 혼탁해졌고, 끔찍한 기운이 방 안에 가득 찼다.
“저는 그 아이가, 서방님을 그렇게 만든 모든 이들을 찾아내어 가장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해하길 바랍니다.”
그녀의 눈이 열리자, 짙은 녹색 안광이 번뜩였다.
“그 아이가 그 누구도 용서치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