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83화 (83/350)

제8편 낙양검가 최고 운영 회의

낙양검가, 사공자 집무실.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사공자의 시녀장이 들어왔다.

“주인님, 이제 슬슬 업무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나요?”

원래 사공자의 책상이었던, 서류 더미 속에서 연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 이제 조금 남았어. 최종 점검 중이야.”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소년의 목소리에 시녀장이 미소를 지었다.

“자아, 지친 우리 주인님을 위해서 제가 당과(糖菓)를 준비해 왔답니다!”

“당과!”

서류 무덤 속에서 소년이 튀어 올랐다.

그는 시녀장이 들고 있는 쟁반 위에 놓인 당과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후와아….”

“후후. 너무 많이 드시고 식사를 거르시면 안 되니까, 일단 이걸로 참아 주세요.”

그녀의 말에 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밥을 먹어야 키가 크지!”

연비는 탁자에 걸터앉아, 당과를 조금씩 핥아 먹었다.

그 행복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시녀장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결국 대공자님은 무엇을 노리시는 것이었을까요?”

사공자가 해맑게 웃었다.

“몰라!”

“정말요?”

“나 같은 물총새(翡)가 어떻게 큰형님같은 대붕(大鵬)의 뜻을 알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계속 물어 주길 원하는 듯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연비였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저에게도 대공자님의 훌륭하고 대단한 뜻을 가르쳐 주세요. 주인님은 짐작하시고 계신 것이 있으시잖아요?”

그녀가 딱히 대공자에게 큰 관심이 있어서 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대공자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힘과 기운이 샘솟는 주인을 보기 위함이었다.

“후후. 그렇다면 내 특별히 가르쳐 주지.”

“와아!”

근래에 연이은 격무로 시달리고있는 주인을 보필하기 위한, 그녀만의 특별한 방식이었다.

“아마, 추측하자면….”

탁자 위에 걸터앉은 연비가 발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큰형님은 최고 운영 회의에 소환되어 출석하시는 것이 목표였던 것 아닌가 싶은데?”

“…최고 운영 회의에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장로 회의를 거쳐, 최고 운영 회의까지 가게 되면서, 대공자가 더욱 궁지에 몰렸던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지금 대공자님은, 그분의 칩거를 더욱 강화하고 싶은 이들에 의해서 위기에 빠진 상황이 아니신가요? 게다가 가주직인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최고 운영 회의가 개입하기까지 했고요.”

그녀의 물음에 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위기라는 말씀이신가요?”

“응.”

사공자가 당과를 열심히 핥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시녀장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말씀은. 대공자님이 위기에 빠진 것은 맞지만, 그것이 본인이 원하던 목표였다?”

사공자가 활짝 웃었다.

“정답!”

“와아!”

둘은 함께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렇다면 대공자님은 최고 운영 회의에 소환되셔서 도대체 어쩌시려는 것일까요?”

그녀의 물음에 사공자가 고개를 저었다.

“큰형님이 노리시는 것이야, 짐작이 가지만. 도무지 어떻게 하시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어.”

“그런가요?”

사공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자리는 나도 몇 번 출석한적이 있지만, 한 번도 내 뜻대로 뭐가 된 적이 없거든.”

“…그랬었죠.”

연비는 당과를 으드득 씹었다.

“그자들이 괜히 최고위원이 아닌걸. 아주 괴물들이 따로 없다고. 아홉명이한 몸처럼 몰아붙이는데….”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낙양검가, 최고 운영 회의.

변조된 목소리가 반구형의 거대한 석굴 안에 메아리쳤다.

“대공자. 아무리 그대가 본가의 대공자이며 가주직인을 소유했다고 하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습니다.”

연소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잘 모르겠소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어 목청을 높였다.

“그대는 감히 최고위원의 신원을 캐려고 하는 것이, 검가법전(劍家法典)상 얼마나 큰 죄가 될 수 있는지 모르고서 하는 말이오?!”

“본 회의는 그에 따른 처벌을 정식으로 집법원에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연소현이 피식 웃었다.

“무엇을 근거로 고발하겠소?”

“최고 운영 회의만의 회의록이 있으니, 그것이 근거가 되어 줄 것이오!”

연소현이 소리 높여 웃었다.

신입 최고위원들은 순간 당황했다.

감히 저런 태도는 지금까지 그 어떤 이도, 이 자리에서 보이지 못했었다.

“그대는 정녕 쓴맛을 볼 작정인가?!”

“대공자, 부디 이 회의가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겨우 웃음을 그친, 연소현이 목소리를 끊었다.

“미안하지만 이 회동은 어떤 기록도 남지 않소. 물론 회의록도 포함해서.”

두 명의 신입 최고위원이 침묵했다.

잠시 후, 그들 중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무(總務). 대공자의 말이 사실입니까?”

총무라 불린 목소리가 대답했다.

“예.”

“무슨 이유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오?”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기록에 남지 않은 회의가 얼마나 더 있었습니까?”

“대공자와의 회동 말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공자와의 그 회동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던 것이오?”

“그 또한 밝힐 수 없습니다.”

“저희가 이제까지 보았던 대공자가 출석했던 당시의 회의록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질문에는 연소현이 대답했다.

“물론, 기록에 남겨야 했던 내용만 빼고는, 다 총무위원의 창작이 아니겠소?”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연소현은 짐짓 그들을 다독이기라도 하듯이 손을 들어 보였다.

“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겠지만 잘해 봅시다.”

작은 굴의 안쪽, 장막의 건너편에 앉은 신입 최고위원이 이를 악물었다.

'...이게 무슨!’

그녀는 연소현이 도착하기 전에 있었던 사전 회의를 떠올렸다.

* * *

“도대체 사전에 최고위원들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합의하지 않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해결책만 합의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책 자체를 수립하지 않겠다는 뜻이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이 문제가 얼마나 본가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오?!”

“알고 있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본 회의가 미리 어떤 사항도 합의할 수 없다는 것일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최고위원분들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그냥 이대로 넘기실 것이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신입 최고위원 남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 이 어두운 굴 밖으로 뛰어나가 다른 최고위원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침묵의 맹세'를 깨는 중죄였다.

최고위원들은 그 자신들 또한, 동료 위원의 정체를 알려고 해서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잠시 후 침착함을 어느 정도 되찾은 여성 신입 최고위원이 입을 열었다.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이 논의는 당사자, 대공자 연소현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논의이기 때문일세.”

“그 당사자가 본 회의가 막아야 할 문제의 핵심 인물인데, 그자가 없는 곳에서는 논의를 할 수 없다니….”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유는 곧 자네들도 알게 될 걸세.”

* * *

여성 신입 최고위원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기록이 남지 않는 상황은 이해하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대공자 또한 충분히 본 회의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이해는 하겠소만….”

그녀의 부드러운 요청에도 연소현은 낄낄거릴 뿐이었다.

“최고위원을 놀려도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참기가 어려워서….”

“대공자!”

남성 신입 최고위원이 발작처럼 외쳤다.

“무엄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야?! 내 당장에라도….”

“그만!"

새로운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쯤 했으면, 되었네. 어째서 대공자께서 자네들을 도발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목소리가 신입 최고위원들을 질책했다.

이 또한 연소현을 제외한 다른 어떤 이들도 이 최고 운영 회의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리라.

“자네들이 말을 한마디씩 더 할 때마다, 자네들이 누군지, 그 정체를 대공자께 고해바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제쯤 눈치를 채야지!”

변조했지만, 유독 연륜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신입 두 명이 침묵하자, 그 목소리는 연소현을 향해 울려 퍼졌다.

“대공자께서도 매번 신입 최고위원을 놀리는 것은 그만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연소현에게 부탁했다.

연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향해 정중히 예를 표했다.

“오랜만이오, 의장(議長).”

최고 운영 회의 의장이 답했다.

“오랜만입니다, 대공자.”

의장이 말을 덧붙였다.

“못 본 사이에 놀랍도록 헌앙해지셨군요.”

"그대는 어찌 더 늙은 것 같소.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는 이 가문을 통치하기가 쉽지는 않은가 보오?”

“허허, 이 노부(老夫)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온화했다.

서로 안부를 나누다니?

결코, 이 최고 운영 회의에서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의장에게 일갈을 당했던 두 신입 최고위원들은 입을 쉬이 열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최고위원이 되어 회의에 참석했을 때보다도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연소현이 안부를 묻는것 도 의장에게만이었다.

그는 굳이 다른 최고위원들에게까지 안부를 묻지 않았고, 최고위원들도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허허. 이제 본격적으로 이 회동을 시작해야겠구려. 총무는 진행을 부탁하오.”

총무위원이 평소의 다른 회의와 마찬가지로, 진행을 시작했다.

“이번 최고 운영 회의 개최의 목적은 본가의 대공자 연소현을 소환하여, 현재 본가의 최상층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대공자에 대한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총무위원이 연소현에게 물었다.

“소환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연소현.”

“본가에서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가주직인을 소유한 대공자.”

“소환인은 이 소환에 대해 사전에 고지받았으며, 이에 동의하여 출석한 것이 맞습니까?”

“그렇소.”

“소환인은 이 자리에서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할 것을 본가의 신성한 법전 앞에 맹세합니까?”

“그렇소.”

"위대한 낙양검가의 영령(英靈)들이 이 자리를 축복하시길.”

이어서 의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면 최고위원들은 소환인에 대한 질의를 시작하도록 하시오.”

여성 신입 최고위원이 입을 열었다.

“대공자 연소현.”

특수 장막 너머에서 그녀의 시선이 연소현을 직시했다.

“그대는 과거 이 회의에서 본인이 소지한 검가금인(劍家金印)이 후계자 경쟁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할 것을 맹세했었습니다.”

그녀가 물었다.

“이 기록이 사실입니까?”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소. 좀 다르긴 하지만.”

그가 답했다.

“어떻게 다릅니까?”

“나는 과거에, 내가 소유한 가주 직인이 본가의 후계자 경쟁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소.”

그가 말을 이었다.

“…그게 어떻게 다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연소현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 약속이란 것은, 당신들이 내게서 '이끌어 낸 성과' 같은 것이 아니오.”

“그럼….”

“그 말은, 내가 당시의 최고 운영 회의 측에 ‘먼저' '자진해서' 꺼냈었단 말이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가주직인 문제로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당신들을 돕기 위해서!”

그가 이를 드러냈다.

“그런데 당신들은 당시에 그 사실을 공표하지도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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