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80화 (80/350)

제5편 회의의 결말

낙양검가,

염 장로의 연무장(演武場).

“자, 다들 알겠죠?”

집법희(執法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집법사자, 염백하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지금 여러분이 듣는 교육은, 본가의 집법원으로부터 특별 교육 기간이 선포됨에 따라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녀의 앞에는 수십 명의 무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번 내원에서의 사태로 말미암아 본가의 기강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이죠. 여러분, 여기까지는 알아 들으셨나요?”

꾸벅꾸벅 조는 무사 옆에 앉아있던, 무사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저희도 다 알아듣습니다.”

다른 무사 하나도 웃었다.

“우리가 무슨 낙양 저잣거리의 건달들도 아니고….”

“너무 우리를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왁자지껄 떠들자, 졸고 있던 무사들도 따라서 웃는 시늉을 했다.

염백하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자, 그럼 학식과 교양을 두루 갖춘, 우리 무사들에게 질문 하나 하죠. 본가의 '최고 운영 회의'가 뭘 하는 곳이죠?”

무사 하나가 힘차게 대답했다.

“제일 힘이 강한 조직이 아닙니까?”

제일 무서운 곳입니다!”

“제일 중요한 조직이기도 합니다!”

염백하가 얼굴을 감싸 쥐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이 칼을 쓰는 만큼, 공부를 잘했다면, 무사가 아니라 전부 집법사자가 됐으리라.

그녀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스리며, 교육을 이어 나갔다.

“본가의 최고 운영 회의는 현재 본가의 가주 대행이면서, 동시에 현 체제의 명칭이기도 해요. 장로 회의나 각 하부 조직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강제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는, 본가의 최종 판단 의결 기구이지요.”

“…그게 가장 강하다는 것 아닙니까?”

“가장 무서운 곳이라는 뜻인 것같은데….”

“제 답이 맞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조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염백하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여러분 다 참 잘했어요.”

무사들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

염백하가 손을 내저어, 박수를 그치게 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최고 운영 회의는 몇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는 사람 있나요?”

“세 명 아닙니까?”

“…어, 나는 다섯 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염백하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예요.”

무사들이 그녀를 향해 야유했다.

“에이, 애초에 함정이지 않습니까?”

“몇 명이냐고 물어 놓고, 모른다가 답이라니, 우리를 우롱하시는 겁니까?!”

“…미안하군요.”

“괜찮습니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염백하의 미소 띤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자아, 최고 운영 회의를 구성하는 최고위원들의 인원은 물론이고, 그들의 신원도 알려져 있지 않아요. 어째서 일까요?”

“보호를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다들 무공을 익히고 있지는 않을 테니, 훌륭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제법 수준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인 호위는 그들의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런 것이리라.

“네에! 좋은 대답들이에요.”

다들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자 자.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함이에요.”

염백하가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들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대신,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침묵의 맹세를 지켜야 해요.”

“…어, 그렇다면 어디 가서 자랑도 못 하겠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나는 안 해야겠군. 내가 출세하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자랑거리인데.”

“…아, 예. 그렇죠. 그들은 낙양검가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고있는 거예요.”

가장 앞에서 듣고 있던 무사장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그러니 우리 모두도 그분들을 본받아 철저한 무사 정신으로 무장하고, 본가를 위한 무한한 희생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알겠나?!”

다들 큰 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염백하는 그만 주저앉고 싶었다.

'아아. 당장 그만두고 싶다, 이교육….'

주인이야 고통을 받든 말든, 백호가 연무장에서 폴짝폴짝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 * *

낙양검가.

장로원(長老院), 대회당(大會堂).

내원총관의 발언 이후, 장로들의 요구에 따라 휴회가 다시 선언되었다.

계파에 따라 모인 장로들이 속삭이듯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내원총관이 발언을 한 것은 또 오랜만이군.”

“이번에 대공자와 크게 한판 붙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저 양반이 그런 거로 눈 깜짝할 사람인가?”

“적어도 자존심은 상했겠지. 대공자가 자기 앞마당에서 출정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염 장로의 계파도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혹시 최고 운영 회의가 엉뚱하게 대공자의 칩거를 풀어 주게 된다면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들이 그럴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야기나 한번 해 보자는 것이오.”

“굳이 생각하자면, 칩거를 풀어 준다고 해도, 어떻게든 내전만 방지할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중립파에게 해가 될 것은 없지요.”

염 장로가 입을 열었다.

“게다가 어차피 대공자의 칩거는 언젠가 풀리게 되어 있소.”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수긍했다.

“그렇군. 그의 '혼약(婚約)'이 있었지.”

“…그렇다면 최고 운영 회의 또한 어떻게든 가주직인만 회수하려 하지 않을까요? 칩거가 문제가 아니니 말입니다.”

“대공자가 칩거와 가주직인을 바꾸기라도 할 것 같소?”

“저라면 절대 안 그러지요.”

“논의가 엉망진창이군.”

“애초에 그들도, 대공자도, 어떻게 판단을 하고 움직일지 짐작을 못 하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오?”

염 장로가 끼어들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저들의 결정을 지켜보면 결론이 날 것 같소.”

그들의 시선이 염 장로가 가리킨 저들, 즉, 이공자와 삼공자 계파의 장로들을 향했다.

* * *

“우리는 이 안건을 최고 운영 회의로 올리는 것에 찬성하오!”

“우리 또한 동의하는 바요!”

염 장로의 계파에 속한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염 장로의 예상이 맞았군.”

“자신들이 모시는 후계자들에게 해가 될 결정을 저들이 내릴 리가 없으니.”

“최고 운영 회의가 대공자를 막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나 보군.”

“우리야 대공자에게 유감은 없지만….”

“그래도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일으킬 수 있는 이를 그냥 풀어 둘 수는 없지요.”

“그럼 우리도 찬성을 표하도록 합시다.”

염 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속은 복잡했다.

최고 운영 회의가 대공자를 소환하면,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충돌할지 자신도 예측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낙양검가 모든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최고 운영 회의가, 대공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크게 제약을 가할 것은 뻔해 보였다.

자신의 마음이 안 좋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대공자가 원각정 안에 갇히는 결말을 바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딸을 치료받는 건에 관해서도, 부담이 크게 줄어들리라.

그날 연소현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한낱 의원이자 무검자일 뿐인데, 그대는? 그대는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일 수 있소?’

그가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을 때, 표결이 시작되었다.

* * *

“이 안건은 최고 운영 회의로 올리게 되었음을 알리는 바요!”

원로원주가 의사 진행 봉을 강하게 두드렸다.

결론이 났다.

“그럼 다음으로는, 본가 내부 개혁 관련 안건입니다. 최근 내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한….”

장로원이 대공자의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 결론을 내리기까지, 불과 한 시진밖에 걸리지 않았다.

* * *

장로원 정기 회의가 종료되고, 갇혀 있던 장로들이 우르르 대회당을 빠져나갔다.

“허허, 그럼 다음 정기 회의에서 뵙겠습니다.”

“부디 보중하시길.”

대회당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품위와 교양이 있는 장로들로 돌아왔다.

다들 흩어져 제 갈 길을 가는 가운데, 장로 하나가 손 장로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아까 그 말씀, 사실이겠지요?’

손 장로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고 운영 회의는 절대 대공자의 손에 가주직인을 남겨 두지 않을 것입니다.’

'믿어도 되겠소?’

'그럼요.'

그가 무한한 믿음을 담아 전음을 보냈다.

'이공자, 제 주군께서 제게 직접 하신 말씀이니까요.’

* * *

텅 빈 대회당.

“이것이 최선이었겠지요?”

호법원주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소?”

집법원주 또한 물었다.

“…방법이야 있었지. 많았어.”

장로원주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최고 운영 회의로 올려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판단이었소.”

“모든 권력과 권한을 가진 그들이라면 최악의 결과는 막아 낼 겁니다.”

장로원주가 숨을 들이켰다.

“그것이 문제요. 최선의 판단이라 할 만한 것이 하나뿐이었다는 것.”

그의 시선이 대회당의 정문을 향했다.

대회당에는 정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가든 들어오든, 그 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호법원주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이번 내원 사건은 단 한명의 감찰조사원에게서 시작되었다더군요.”

장로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강호였던가? 그 아이의 조부와 친분이 있어, 이름을 알고 있지.”

“그리고 그 강호를 지명해서 소환한 것이 대공자였다고 합니다.”

장로원주가 침음했다.

“…결과적으로 대공자는 말단에 불과한 감찰직 단 한 명을 움직여, 내원을 흔들어 놓은 꼴이지.”

집법원주가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기다가 사전에 소문을 통한 작업으로, 나로 하여금 아무런 선택 사항을 남겨 두지도 않았소. 집법원이 중앙 광장에서 그 난리를 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오.”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는, 십년 동안 칩거하던 한 사람이 벌인 일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장로원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원총관, 그 노괴(老怪)마저 불시에 일격을 얻어맞았지….”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이건 우리가 대공자를 적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그가 지나치게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인 것이오.”

“그가 가장 약한 지금, 싹을 잘라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고 운영 회의라는, 우리가 본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소. 우리의 판단은 옳소.”

“…알고들 있는가?”

장로원주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나누기 이전에 이미 이 모든 사항을 알고 있었고, 각자 판단을 마쳤어.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 모여 또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지.”

호법원주와 집법원주가 침묵했다.

그것은 그들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계산을 마치고,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로원주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째서인지 그 '혈사(血史)' 때가 떠오르는 기분이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장로원주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단 하나의 출구를 향해서.

“…오랜만에 가문의 원로(元老)분들을 찾아뵈어야겠군.”

그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누르며, 답답한 기분에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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