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73화 (73/350)

제23편 사건종결(事件終結) (2)

강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중앙감찰각이 본조사에 나섰다.

내원총관과의 거래를 통해 감찰각과 공을 나눠 먹으려던 호법원주는 두 개의 부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중앙감찰각을 상대로 공을 대부분 빼앗길 테니까요!”

“원래라면 호법육부 정도만이 나서도 될 일이었지.”

“결국 대공자님은 저 하나를 소환한 것만으로 중앙감찰각을 움직이고, 호법원에서 두 개의 부가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그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리고 내원총관이 일을 덮지 않고, 오히려 빠르고 효율적으로 썩은 껍데기를 제거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기까지 하셨지요!”

연소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늙은이도 덮을 수 없다면, 그 방안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지.”

“그럴 수가, 그럴 수가….”

강호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중얼거렸다.

“잠깐, 기밀 보고서!”

그는 감찰부주가 할아버지와의 친분 때문에 자신에게 비밀 임무를 맡긴 줄 알았다.

연소현이 미소 지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강호가 연소현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네게 기회를 준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네 할아버지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인물인 모양이구나….”

사실상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은 연소현이었다.

그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좌중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저앉은 채로 중얼중얼했다.

그 광경에 세쌍둥이 시녀가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시, 실성한 것인가요?”

“아마도 자신을 제갈량을 만난 주유에 비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으음. 제가 봐선 저 공자가 주유처럼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때 강호가 고개를 번쩍 쳐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럼 대공자께서는 어떻게 제가 소환에 응할 줄 알고 계셨던 것이옵니까?!”

그가 대공자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안경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고, 옷자락은 엉망이었다.

“제게 선조사를 권했던 직속상관은 저에게 분명 이렇게 말했사옵니다! 네가 하기 싫다면 결코 강제로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감찰부주는 할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위험할 수 있는 조사를 강제할 수 없었다.

“그야, 네가 혼자서 원각정에 대한 내원의 비위를 조사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그러고 보면 연소현은 이전에 그에게 자연스럽게 물었었다.

원각정에 대한 비위에 관련된 집사들이, 약 십여 년 안에 두각을 드러내고 급속히 부상한 자들이 맞느냐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정아가 입을 열었다.

“감찰조사원, 강호.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 텐데요?”

“예?”

정아가 그를 향해 조곤조곤 말했다.

“주인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감찰조사원 강호는 혼자서 내원총관이라는 노괴물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군요.”

세쌍둥이 시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저희 주인님께서 구명지은(救命之恩)을 내리신 것이지요.”

“역시 주인님. 친우의 손자를 그냥 두실 수 없었던 것이로군요.”

연소현의 앞에서 무릎 꿇고 있던 강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샘솟았다.

"대, 대공자님…. 일면식도 없던 저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한 일들은 아니다. 그저 내가 가던 길에 네가 있었을 뿐이지.”

“그런 건 상관없사옵니다…. 대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결국 멍청이처럼 굴다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옵니다.”

연소현은 그런 그의 머리를 두드려 주었다.

“네가 은혜를 갚을 방법이 있다.”

강호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만 해 주시옵소서! 이 사나이 강호! 한목숨 바쳐 수행해 보이겠사옵니다!”

연소현이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런 건 필요 없고. 네가 기억하고 있는 내원의 장부들에 대한 모든 내용을 나한테 먼저 넘겨라.”

“예?!”

“그리고 장로회의에 올라갈 기밀 보고서의 초안을 나와 함께 작성하는 것이다. 어떠냐?”

“그, 그것은….”

그의 안에서 맹렬하게 갈등이 치솟았다.

내원의 장부와 관련된 모든 기밀사항을 연소현에게 넘기고, 연소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고서를 쓰겠다는 소리였다.

“쯧쯧. 방금 전,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쳐 수행하겠다던 사람 어디 갔나요?”

“요즘 남자들은 전부 말뿐이라니까. 역시 우리 주인님 같은 분은 주인님밖에 없으시죠.”

“한심한 남자로군요. 사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요.”

세쌍둥이 시녀들의 말에 강호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사나이 강호! 이제 앞으로는 대공자님의 말씀만을 따르겠사옵니다! 앞으로 저 강호는 대공자님을 주군으로 섬기며 살아갈 것이옵니다!”

도발의 효과가 너무 좋았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아니옵니다! 필요 없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소생의 목숨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할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 받은 그였다.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호. 너는 내 옆보다, 앞으로 감찰부에서 해 줘야 할 일이 많다.”

“저는 이제 감찰부에 심어진 대공자님의 정보원이 되는 것이옵니까? 명하신다면 감찰부에 보관된 모든 기밀을 기억해 전해 드리겠나이다!”

“아니, 아니.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고.”

그가 강호를 억지로 일으켰다.

“한 번에 하나씩 하자. 하나씩.”

“예! 하명하소서!”

“일단 아까 내가 말했던 것을 하고 난 이후에는 평소와 똑같이 지내는 것이다. 알겠지?”

“먼저 출세하여 대공자님을 섬길 자격을 증명하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알겠사옵니다!”

연소현은 포기했다.

“…그래. 공을 세우겠다고, 어디서 객사하지만 말자. 임무가 주어지면 항상 내게 보고하고 움직이는거다?”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때 정아가 연소현에게 보고했다.

“주인님. 누군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세쌍둥이 시녀가 강호에게 달려 들어 그의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강호가 얼굴을 붉히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저, 저기 제 안경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안경요?”

“예, 저는 안경이 없으면 하나도 제대로 보이질 않아서….”

어느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였다.

세쌍둥이 시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의전비서가 방문해, 임시로 사용할 침실들이 준비되었다고 알렸다.

* * *

이른 밤.

낙양, 대형 공방(工房).

한 시진 전에 호법원이 지나갔던 그곳에서, 두 명의 사내가 걸어 나 왔다.

한 시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경비 하인들은 입에 꿀이라도 든 것처럼 얌전했다.

두 명의 사내는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는데,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가 욕지거리를 입에 담았다.

“X발. 원래 임무만 해도 X나 빡세서 죽겠는데….”

그가 공방 주인에게서 얻은 정보를 기록한 문서를 등짐에 대강 쑤셔 넣었다.

그 모습에 민머리 사내가 인상을 썼다.

“어이 그거 나중에 우리가 다시 다 정리해야 하는 거 알지?”

흉터 사내도 인상을 썼다.

“정리해도 내가 할 테니까, 지금은 나 건들지 마쇼. 성질 뻗쳐서 터질 것 같으니까.”

그의 허리에 걸린 무기들이 덜그럭거렸다.

민머리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그 성질머리 안 고치면 출세하긴 힘들 거다.”

“당신 알 바 아니잖소?”

그렇게 날 선 말들을 주고받으며 그들은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하고 다니는 일들은 남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어디요?”

흉터 사내가 방문 목록이 적힌 서류를 들여다보던 민머리 사내에게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

흉터 사내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무기들을 향해 양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는 무기를 뽑지는 못했다.

그의 목 주변으로 검날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이라도 굴려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눈알 굴리지 마라.”

명백한 살기가 깃든 싸늘한 목소리에, 그는 무기에서 두 손을 떼고 위로 들어 보였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저항하지 않을 테니, 뭐든 물어보시오.”

그의 뒤에서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낙양검가의 호법원에서 하는 수사를 뒤에서 조사하고 다니다니, 간덩이가 제대로 부은 놈들이구나.”

낙양검가의 호법원이라는 말에 흉터 사내의 호홉이 거칠어졌다.

“저, 전부 사정이 있으니, 일단 들어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인이 차갑게 웃었다.

“어디 말해 보아라.”

“우리는 대선상회(大仙商會)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상회 이름치곤 특이했다.

“…대선상회라. 증명할 것은 있느냐?”

여인이 대선상회의 이름을 아는 기색이라, 흉터 사내는 속으로 조금 안도했다.

“품 안에 패찰이 있습니다.”

“꺼내라. 아주 천천히.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네 목이 먼저 떨어질 것이다.”

흉터 사내는 아주 천천히 패찰을 꺼내 들었다.

“맞군.”

여인이 수하들에게 명했다.

“전 인원. 검을 거두고 다음 합류 장소로 이동해라.”

“호법사자님. 하지만 이들은….”

“내 명이 우습게 들리느냐?”

“아닙니다!”

다른 이들이 전부 모습을 감춘 가운데, 흑의를 입은 여인, 호법사자가 흉터 사내에게 전음을 날렸다.

'홀로 노송 위에 우는 까마귀는?’

흉터 사내는 급히 전음으로 대답 했다.

'태산이 멀다 하여 울지 마라.'

호법사자가 피식 웃었다.

“한낱 사냥개 주제에 무공을 익혔구나.”

"...."

“안 그래도 바빠서 시간을 따로 만들기 힘들었는데, 너흴 만나서 잘되었어.”

아무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 흉터 사내에게 호법사자가 품속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던졌다.

'위에 전해 드려라.'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호법사자는 모습을 감췄다.

“쿨럭, 쿨럭…!”

구석에 점혈(點穴)된 채 처박혀 있었던 민머리 사내가 거칠게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사라지며 지풍(指風)으로 해혈을 해 주었던 것이었다.

“…X발. 십년감수했네.”

흉터 사내는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것을 느끼며, 황급히 품속에 건네어 받은 서류 뭉치를 숨겼다.

* * *

낙양검가.

이공자 진영의 한 집무실.

“대선상회로부터 '고급 등급'으로 분류하여, 즉시 전달되어 들어온 정보입니다.”

집무실로 전달된 서류 뭉치를 인원들이 책상 위에 보기 좋게 늘어 놓았다.

“…호법원의 내부 정보로군.”

이공자의 책사, 한명휘가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측근 중 하나가 문서들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상당량의 수사 기록이군요. 당장 기존의 자료들과 합치도록 하겠습니다.”

측근들이 집무실 밖으로 서류를 들고 나가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에서만 수십 명의 인원이 밤을 잊고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방에서 밀려들어 오는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호법육부의 정보원(情報源)으로부터 들어온 수사 정보다.”

서류 뭉치를 받아 든 인원이 달려간 한쪽 벽면에는, 책장(冊械)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호법부의 칸을 찾아 서류 뭉치를 넣었고, 곧 그 서류 뭉치는 한 분석관의 손에 뽑혀 이동했다.

분석관에 의해 간추려져 정리된 한 장의 서류는, 다른 이의 손에 들려 다시 한명휘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측근의 손에 의해서, 그런 서류들로 이미 가득한 벽면에서 올바른 자리를 찾아 붙여졌다.

한명휘는 유등들이 환히 비추고 있는 그 벽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이번 사건은 누가 만든 무대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시간이 흘렀다.

인원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벽면에 서류는 늘어 갔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한명휘의 눈은 여전히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말라붙은 입술이 벌어졌다.

“내원총관….”

그의 얼굴에는 자신이 찾아낸 답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무검자(無劍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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