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71화 (71/350)

제21편 꼭두각시

낙양.

내원과 계약을 맺고 각종 가구(家具)를 공급하는 한 대형 공방(工房).

태양이 서쪽으로 슬금슬금 모습을 감춰 가는 시간.

공방의 정문을 지키던 이들이 제 자리에 선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평소에 왈패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한 경비 하인들이었다.

두툼한 가죽 갑옷에 각반에 손목 보호대까지 차고 있는 꼴이 제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옆구리에 찬 몽둥이에는 손을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 공방에는 무, 무슨 볼일이십니까요?”

“비켜라.”

한 마디면 충분했다.

공방 주인의 안채를 오가던 아랫것들이 성큼성큼 들어오는 이들의 모습에 대경하여 흩어졌다.

그들이 입은 검은 정복(正服)은 낙양 전체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정복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리 밖이 소란스러운 게야?!”

한창 첩실과 좋은 시간을 보내던, 늙수그레한 공방의 주인이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옷을 반쯤 걸친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떨리는 눈길로 검은 정복을 입은 이들의 견장(肩章)에 은실로 새겨진 글씨를 보았다.

“검가의 호법원(護法院)…?!”

앞으로 나선 여인이 차게 미소지었다.

"자네가 이 공방의 주인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제가 이 공방의 주인인 이(李) 아무개입니다.”

그는 대번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나는 낙양검가의 호법사자(護法使者)다."

“예, 예. 호법사자 어르신!”

그녀는 품속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네가 본가의 내원과 맺은 계약에 대해서 조사할 것이 있으니, 지금부터 묻는 말에 솔직히 답하라.”

공방 주인이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예,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물어 보시지요.”

이런 광경이 낙양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낙양검가, 내원.

호법원에 의해서 완전히 봉쇄(封鎖)되어 버린 내원 근처는 오가는 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다른 일이라면 호기심에라도 기웃거렸을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내원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검은 정복의 인물들 때문이리라.

내원의 정문에는 외부에 있다가 압송당한 이들이 줄줄이 끌려 들어오는 행렬과 잡으러 나가는 이들의 행렬이 교차했다.

본관 곳곳에서는 고문을 당하는 곡소리가 심심찮게 홀러나왔고, 모진 심문에 못 견딘 이들의 비명도 울려 퍼졌다.

필수적인 내원의 인원들만이 호법원의 엄격한 감시 아래, 지옥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 * *

내원 본관,

임시 합동수사본부, 지휘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화자찬하며 호탕하게 웃는 것은 호법원의 호법육부장(護法六部長)이었다.

"...."

하지만 좌중의 분위기가 호응을 해 주지 않았음에도, 그는 특유의 두꺼운 낯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이는 여기 중앙감찰각주께서 신속하고 훌륭하게 선조치를 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은 말없이, 고개를 까딱하고 숙여 보일 뿐이었다.

“하하. 앞으로 남은 조사에 있어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그가 입맛을 다셨다.

“내원 안에서 수사는 거의 끝나 가는데, 이후에 합동수사본부는 어디에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하. 그러면 이후 합동수사본부는 저희 호법원에서….”

“예.”

짧게 대답하여 쓸모없는 대화를 끊어 버린 독고야연의 시선은 상석(上席)에 앉아 있는 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 노골적인 경계의 시선에, 육 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상석을 바라 보았다.

“혹시 대공자께서는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지요?”

대공자, 연소현이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내원 내의 사건 수사는 오늘 내로 전부 종료되는 것인가?”

“물론 자세한 사항을 전부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대공자님이시니 특별히 말씀드리자면….”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원 내의 수사가 끝나더라도, 외부에서 진행 중인 수사는 며칠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가 연소현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히 본가의 대공자님을 우롱했던 자들의 처벌은 외부 조사가 끝나는 대로, 즉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잘되었군.”

“저희만 믿으시지요.”

큰소리를 치는 육부장에게 연소현이 미소를 보냈다.

“믿음직스럽군. 그렇다면 저들이 착복하여 그동안 내가 받지 못한 예산 또한 다시 받아 갈 수 있겠나?”

“아, 아. 그것은….”

그가 머릿속에서 주판을 빠르게 튕겨 보인 후에 자연스럽게 이어서 답했다.

“액수도 액수고, 애초에 예산과 관련된 사항이기에, 아무래도 장로회의에서 결론이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소현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면 그것은 그렇다 치고, 이정도 규모의 비위(非違)가 밝혀졌으니, 앞으로 내원 전체를 대상으로 수사가 확대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 그것은….”

손을 들어 말을 끊은 것은, 이제까지 잠자코 앉아 있던 호법일부장(護法一部長)이었다.

“아직 수사가 제대로 종결되지도 않은 시점입니다. 지금은 일단 합동수사본부의 취지에 맞게 눈앞의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옳겠지요.”

“하지만….”

일부장의 묵직한 시선이 연소현을 향했다.

“그 이상은 월권(越權)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니, 대공자께서는 주의해 주시길.”

연소현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독고야연을 바라보았다.

“중앙감찰각은 입장을 밝히고 수사하지 않습니다.”

연소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가 일어섰다.

앉아 있던 인원들이 황급히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오늘 내로 내원 내의 조사는 끝나는 것이겠지?”

“아, 예. 늦어도 새벽녘에는 종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들을 것도 없으니, 나는 돌아가서 저녁이나 먹어야겠다.”

육부장이 그를 바라봤다.

“원각정으로 돌아가실 거면 제가 임시 통행증을….”

“아니. 본가의 대공자가 함부로 봉쇄 명령을 무시하고 다니면 되겠는가?”

육부장이 황당해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내원에서 식사를 하신다고요?”

밖에 나가면 지금도 곳곳에서 비명과 피 내음이 흐르고 있는 곳이 내원의 본관이었다.

“그래. 내원의 의전비서(儀典祕書)가 사죄의 뜻을 담아 최고의 만찬(晚餐)을 대접하고 싶다더군.”

“…아니, 혹여나 음독(飮毒) 걱정은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연소현이 피식 웃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여기 자네들이 전부 있으니, 금방 범인을 잡아 주겠지.”

그가 몸을 돌렸다.

“자, 그럼 다들 수고하게.”

말을 마친 연소현은 그들이 채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잠시 그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던 육부장의 얼굴은 기괴한 것이라도 목격한 표정이었다.

그사이 일부장과 중앙감찰각주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허, 참….”

그가 고개를 내젓더니, 품에서 연초(煙草)가 든 작은 함을 꺼내 들었다.

“혹시 필요하신 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연초를 하나 꺼내어 삼매진화(三昧眞火)로 불을 붙였다.

연기를 한차례 천장을 향해 뿜어 올린 그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사건. 저 혼자만 이렇게 찜찜하게 느끼고 있는 겁니까?”

일부장과 중앙감찰각주 모두 대답은 없었지만, 그것은 동의하는거나 마찬가지인 침묵이었다.

그가 입에 연초를 물고 말을 이었다.

“겨우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 호법원의 일부와 육부가 동시에 동원 되다니요? 저는 이제 호법원의 말단 부장이 되었지만,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나도 처음이네.”

일부장의 동의에 육부장이 입맛을 다셨다.

“게다가 일부와 육부, 모두 진행중이던 사건이 몇 개나 있던 참이 아닙니까?”

그의 연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좀 더 터놓고 말해 볼까요.”

그가 빈 찻잔에 재를 떨었다.

“저는 호법육부의 가용 가능한 모든 인원을 동원해서, 최단기간에 수사를 종료하라는 지시를 들었습니다."

묵묵히 있던 일부장이 입을 열었다.

“최대 사흘. 수사 권한의 한계는 현장에 가 보면 알 수 있을 것.”

육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도 자네와 같은 지시를 받았네.”

“제길….”

육부장은 전부 타 버린 연초를 신경질적으로 눌러 끄고, 새 연초를 꺼내 물고 입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와 보니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내원 회계비서는 이미 자살해 나자빠진 뒤더군요. 게다가….”

그의 시선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독고야연을 향했다.

"감찰부의 협조 요청이라고 듣고 왔더니, 중앙감찰각주께서 계신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압니까? 아니, 도대체 중앙감찰각이 왜 이런 사건을 조사하는 겁니까?”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지난 십 년간 본가 내부에서 권력 조직과 마찰을 일으켰던적이 없던, 그 대공자가 고발인이라고요?”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연기가 공기를 뿌옇게 만들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려 주실 분이 계십니까?”

그가 시선을 두 사람에게 향했다.

“여기 계신 두 분 모두, 당연히 저보다는 아는 것이 많을 터가 아닙니까?”

“중앙감찰각은 타 조직과 내부정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독고야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육부장이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명성답게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기분이 안 좋은 건 확실해 보이니. 그녀도 아는 것이 딱히 없어 보이는군요.”

그가 작게 탄식했다.

“가장 많은 기밀을 품고 있다는 감찰부에서, 그것도 중앙감찰각주가 결국 무대 위에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그가 자리에 주저앉아, 두 눈을 문질렀다.

“…선배.”

“그래.”

예전 그 시절처럼 일부장을 부르는 그였다.

“저는 이런 꼴을 당하기 싫어서 이 자리까지 바득바득 기어 올라왔습니다.”

그의 연초가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게 타올랐다.

“호법원의 부장쯤 된다면,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고, 누군가와 거래를 할지언정, 조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부장입니다. 부장.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호법원의 부장이라고요.”

위의 공기는 연기로 뿌옇게 물들어 천장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군요.”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일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겨우 본가의 장로위(長老位)에 올라선 나도 느끼는 바일세.”

“...선배?!”

일부장이 육부장의 함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어 물고 불을 붙였다.

“장로회의? 대단한 곳이지. 감히 다른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보들이 오가고, 본가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의사 결정들이 내려지지만….”

호법일부장이자, 낙양검가의 장로 중 일인이 된 이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때때로 잠자리에 누우면 그 생각을 한다네.”

그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내가 호법원주(護法院主)가 되면 달라질까? 장로원주(長老院主)가 되면 달라질까? 아니면 은퇴하고 원로(元老)에 선정된다면 달라질까? 가장 희박한 확률을 뚫고 최고위원(最高委員)이 되면 결국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될까?”

"...."

육부장은 입을 채 열지 못했다.

마저 닫지도 못했다.

그는 그저 연기 섞인 한숨을 쉬며, 고개를 처박았다.

그런 그의 머리에 가득한 새치들을 바라보던 일부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까마득한 후배가 벌써 여기까지 쫓아 올라온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그도 낙양검가의 진면목을 조금씩 접해야 할 때가됐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말하지 않도록 하게. 아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었던 내용 자체를 잊어버리게나.’

갑자기 들려온 전음(傳音)에 육부장이 잠시 움찔했다.

'이 모든 일의 뒤에는 대공자와 내원총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게 무슨 말씀....'

'말했듯이, 잊어라.'

일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우리도 다시 업무로 돌아가자고.”

'잊어 자네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태연하게 어깨를 풀며, 문을 열었다.

"...."

문을 나서던 그가 잠깐 돌아보았다.

육부장은 그 자세 그대로 굳은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틀림없이 지극히 혼란스러울 것이었다.

동시에 이제까지 말이 되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환희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공포도.

그 모습은 과거 어느 날, 자신이 부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훗날, 누군가에게 자신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리라.

일부장 자신이 과거, 선배에게 들었던 이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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