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편 본조사
감찰부의 인원들이 내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서문집사의 집무실에도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활기가 돌고 있던 집무실의 공기가 대번에 무거 워졌다.
선임 집사가 서문집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도 나가서 마중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서문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자들의 면면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지.”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서문집사를 필두로 집사 무리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 * *
내원 본관의 정문 앞.
연소현의 곁에서 강호가 중얼거렸다.
“…과연 감찰부가 어느 각(閣)을 파견하느냐에 따라, 이 조사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일령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조사일각(調査一閣)이 나서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본가의 대공자께서 계시는 원각정에 관련된 조사니까요.”
이령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건을 축소하고자 하는 압력을 받지 않을 리가 없어요. 아무리 감찰부가 본가에서 독립적인 권한을 보장받는 조직이라고 해도….”
삼령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해도, 명백히 내원 내에서 최고위직에 속하는 육(六)계의 내원 회계비서가 죽었어요. 처음에는 조사이각이나 조사삼각이 나서도, 결국 조사일각이 나서게 될 가능성이 있죠.”
감찰부의 본조사가 들이닥칠 내원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연소현이 오늘 방문했을 때만 해도, 바쁘게 오가던 이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그야말로 폭풍 전야(暴風前夜)였다.
“한 무리의 인원이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쪽문이 열리며 서문집사와 그녀의 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연소현의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알은체를 하지도 않았다.
집사 하나가 긴장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속삭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 조사일각이 나서지는 않겠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이각이나 삼각이 나설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는 감찰부가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 써서, 일각이 나서긴 하겠지만, 그들이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서문집사는 딱딱하게 굳은 낯빛으로, 본관 안마당 너머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들어옵니다…!”
쪽문을 통해서 인원들이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붉은 비단정복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들 중 누구도 내원의 규모에 감탄하거나, 발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잡담을 나누는 이도 없었고, 시선은 전부 정면을 향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들은 모두 발을 맞추어 걸었다.
그것은 문사(文士)들이라기보다는 엄격한 제식훈련을 거친 군사조직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완벽하게 이열종대를 만든 인원들이 내원 안마당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였다.
“어느 각이지? 저들 중 알아볼 수 있는 자가 있나?”
선임 집사의 물음에 다들 웅성거리며, 아는 얼굴을 찾으려 눈살을 찌푸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이각이나 삼각의 조사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 없습니다.”
“그럼 조사일각이 아닐까요? 그들은 중요한 사건에만 나서는 만큼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
그 와중에도 조사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원으로 들어섰다.
“저들은 대체 누구란 말이야…?! 누구 알아보는 이가 없는가…?! 저들이 진정 조사일각의 인물들인가…?!”
선임 집사가 나직하게 외쳤지만, 누구도 선뜻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대답은 서문집사에게서 흘러나왔다.
“…저들은 조사일각이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비명에 가까웠다.
집사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 그럼 어디의 인원들입니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 다들 저기를 보시오!”
누군가가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조사원들이 전부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조사 지휘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 백발(白髮)?!”
“백발적의(白髮赤衣)라니?!”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멀리서 보아도 뚜렷하게 보이는 첫눈처럼 새하얀 백발은 한데 묶여, 바람에 흩날렸다.
강퍅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었다.
모두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그녀는 정문 앞에 서서, 오연히 내원의 본관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홍채는 일반인과 같았으나, 가운데 동공이 검지 않고, 순백색(糸屯白色)을 띠고 있었다.
“…백발백안(白髮白眼)의 귀신이 나타나다니.”
모두 혼비백산한 가운데, 서문집사는 그녀의 이름을 씹어뱉듯이 말했다.
“…중앙감찰각주(中央監察閣主), 독고야연(獨孤鋳變).”
* * *
“조사일각도 아니고, 중앙감찰각(中央監察閣)이라니….”
선조사를 하고 보고를 올렸던, 강호 본인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세쌍둥이 시녀들도 아연한 모습이었다.
”...저들이 장로회의까지도 감찰을 할 권한이 있다는 그 중앙감찰각인가요.”
“가장 엄중한 의혹만 파고든다는 이들이로군요.”
“원각정에 얽힌 사안이 저들이 나서야 할 정도로 중하다는 뜻인가요…?”
그녀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본관 앞의 계단 아래, 중앙감찰각의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을 마쳤다.
그들의 가장 앞으로 나선 중앙감찰각주가, 연소현을 향해 예를 올렸다.
“본가의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중앙감찰각의 모든 인원이 일치된 목소리와 동작으로 예를 표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형식 그대로의 예법이었다.
연소현이 손을 모아 답을 하자,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이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와 연소현의 앞에 섰다.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이옵니다.”
“연소현이다.”
중년에 접어든 지도 꽤 되어 보이는 그녀는 화장 따위는 하지 않았고, 주름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
긴 백발도 그저 대강 뒤로 묶었을 뿐, 어떤 장신구도 없었다.
무표정과 함께 특유의 백안이 연소현을 향했다.
“지금 시간부로 원각정의 예산과 관련된 조사는 중앙감찰각이 맡았음을 통지해 드리옵니다.”
허락을 구하는 것도,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자치고 껑충한 신장의 그녀는 연소현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굳이 나에게 하는 이유는?”
그녀의 시선에는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원래 대공자께서는 해당 조사에대한 고발인이셨지만, 중앙감찰각이 조사를 맡은 이상, 대공자께서는 더 이상 고발인 신분이 아닌 단순증인 신분이 되었음을 알려 드리옵니다.”
조사에 기웃거릴 생각을 하지말란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군.”
연소현이 이죽거렸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조사를 시작하라!”
내공을 담은 섬뜩한 외침이 내원의 안마당에 울려 퍼졌다.
* * *
중앙감찰각의 특수 감찰조사원들은 내원 본관의 복잡한 구조를 마치 자기 집처럼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의 안내도 필요 없이, 미리 할당된 임무의 수행을 시작했다.
집무실 중 하나가 벌컥 열렸다.
붉은 정복의 모습에 집무실 내에있던 이들이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섰다.
“이곳은 중앙감찰각이 지금 시간부로 임시 사용하겠습니다. 전부 즉시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의 지시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내원 곳곳에서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내원의 인원들을 떨어트려 놓았고, 필요에 따라 고립시켰으며, 증거가 될 모든 자료를 확보해 나갔다.
* * *
“모든 대기실을 취조실로 사용해라. 그리고 내원에 방문했던 손님들의 퇴장 안내는?”
독고야연의 물음에 특수 감찰조사원이 즉각 답했다.
“퇴장은 진행 중입니다. 이 각내에 퇴장을 마칠 예정입니다.”
“일각 내에 마치도록.”
“존명!”
명을 받은 이가 움직이기 무섭게, 남은 이들을 향한 그녀의 지시가 이어졌다.
“감찰 대상에 속하는 고위직들의 확보는?”
“확보 완료했습니다. 특이 사항으로는 내원 회계비서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일차 조사 결과 자살로 보입니다. 현재, 시신을 수습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자세한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호법원의 검시의원(檢屍醫員)을 소환하여 타살 여부를 확정 짓도록.”
“존명.”
필요한 지시가 이어졌고, 지시에 대한 이행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차 조사에 필요한 감찰 대상과 증인 그리고 자료의 확보를 마쳤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의 조사를 시작하도록. 피조사 대상 누구의 동선도 겹치지 않게 주의하라.”
한 무리의 인원들이 움직임을 시작했다.
“화복.”
“예, 각주님.”
화복이라 불린 인상 좋은 사내가 그녀의 부름에 답했다.
“대상 중, 방 집사라 불리는 이계(二階) 여집사가 있다. 그 아이를 맡아라.”
“예, 알겠습니다.”
대답한 화복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지금부터 각주님은 그럼…?”
독고야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증인 1호, 대공자 연소현을 조사한다.”
* * *
그녀가 연소현의 대기실에 들이 닥쳤을 때, 그는 어디선가 구해 온 서책을 쌓아 두고 읽는 중이었다.
“대공자님에 대한 증인 조사를 시작할 것이니, 이외에는 전부 퇴장하도록.”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연소현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겨우 증인 조사에 다들 내보낼 필요까지 없다.”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사옵니다.”
“상관없어.”
연소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의 쏘아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 상관 않고 말씀드리겠사옵니다.”
“그래.”
그녀가 탁자 앞에 섰다.
“대공자….”
이제까지의 무감정한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으르렁거리다시피 하는 말투에, 좌중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당장에라도 터질 듯한 분노의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장장 십 년을 처박혀 있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튀어나와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겁니까?”
“아니, 얘네가 책값을 안 내어 주잖아. 그래서 감찰 요청을….”
“헛소리하지 마시지요!”
그녀의 과격한 언사에도 정아는 나서지 않았다.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또 누구와 장난질을 치고 있는 겁니까? 감찰부주(監察部主)? 내원총관(內院總管)? 아니면, 장로원주(長老院主)?”
우수수 튀어나오는 최고위직 중 최고위직들의 이름에 좌증의 이들은 마른침조차 삼킬 수가 없었다.
“에이, 무슨….”
연소현이 손을 내저었다.
“그런 대단한 인사들이 나 같은걸 상대나 해 주겠나?”
그녀는 연소현의 말을 무시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갑자기 이곳으로 배치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당신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연소현이 두 손을 들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몸짓을 했다.
"기억하십시오, 대공자. 과거의 당신을 알고 있는 모두가 당신을 주시하고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이를 드러냈다.
“…특히 내가 지휘하는 중앙감찰각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겠어!”
가공할 살기(殺氣)였다.
연소현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번엔 진짜 쟤네가 책값을 안 줘서 그런 거라니까. 난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연소현이 손짓을 해 가며 말을 이었다.
“너흰 너희의 조사만 하면 되고, 나는 여기서 서책이나 읽고. 내 시녀들은 오랜만에 남이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좀 쉬고.”
중앙감찰각주의 백안이 번들거리며, 연소현을 노려보았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그녀가 돌아서서 그대로 문을 박차고 대기실을 떠났다.
모두의 시선이 연소현을 향했다.
특히 강호는 살기의 여파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연소현을 바라봤다.
연소현이 그들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