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66화 (66/350)

제16편 감찰조사원

낙양검가의 염 장로는 어느 날 그의 수하에게 말했었다.

'대공자는 무검자여서 무시당했던 것이 아니라, 무시당해도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무검자라고 불렸다.'

* * *

“부르라니까, 감찰부.”

연소현이 말했다.

“대, 대공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서문집사가 말렸다.

“다들 비키도록 하십시오! 주인님께서 하명하신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세쌍둥이 시녀들이 다그쳤다.

“어허! 조금 기다려 보라지 않느냐?! 대공자님?! 대공자님?!”

복도를 막아선 집사들이 아우성쳤다.

“대공자님.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면...."

“나오면?”

서문집사가 외쳤다.

“감찰부라니요?! 겨우 책 대금 때문에 감찰부를 부르시겠다는 것이옵니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해 주질 않으니 그렇지 않나?”

“감찰부가 나서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신 것 같사온데….”

“어떻게 되는데?”

“애초에 감찰부가 겨우 책 몇 권의 대금 때문에 나설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그러면 너희는 왜 막는데?”

“그건….”

연소현의 천진난만한 표정에 서문집사가 이를 갈았다.

“지금 내원 전체를 뒤흔드시겠다는 것이옵니까?!”

연소현이 웃었다.

“너희가 지금 내원 전체를 대표 한다고 생각하느냐?”

“대공자께서 겨우 이런 일에 감찰부를 끌어들이시면, 결국 내원 전체가 대공자께 적대감을 품게 될 것이옵니다!”

연소현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내 명을 수행하려는 시녀를 막아서고, 겨우 책값에 대한 의문에도 대답하지 않으며, 대공자가 직접 찾아와도 의전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충분히 적대적인 것 같구나.”

서문집사가 악을 썼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적대하게 될 것이라는 뜻을 못 알아들으시는 것이옵니까?!”

그녀의 말에 연소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하는 꼴이 가관이구나.”

보아하니, 더 이상 대공자에겐 어떤 말도 먹히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정아를 바라보았다.

“시녀장, 잘 들으세요.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진정으로 그대의 주인을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정아는 무표정했다.

“주인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으로 주인을 위한 일이겠지.”

그녀의 싸늘한 눈빛이 서문집사를 향했다.

“너는 이 내원이라는 곳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주인님의 의지를 한낱 위력으로 막으려 드는 것이냐?”

그녀의 말이 서문집사를 꿰뚫었다.

“그리고 대관절 내원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이기에, 가문의 직계혈족이신 대공자님을 겁박하려 드는 것이냐?”

"...."

내원은 본가의 가주를 중심으로하여, 그 직계혈족의 시중을 드는 부서다.

그것은 모든 내원의 인원들이 가장 먼저 교육받는 사항이었다.

“게다가 내원이 가문의 적자이신 주인님을 적대하겠다고?”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요? 대공자님의 행동이 내원의 적대감을 부추길 것이라고 했지요. 시녀장은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잠시 당황했던 서문집사였지만,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은 맞았다.

그래 봐야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지만.

“말꼬리를 잡든, 말싸움을 걸든, 상관 않겠다.”

정아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이미 늦었으니.”

“…그게 무슨?”

서문집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설마…?!”

그때 복도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요…?”

한껏 움츠러든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서문집사의 말에 복도를 막고 있 , 집사들이 물러섰다.

세쌍둥이 시녀들도 물러났다.

“아, 감찰부에서 나왔는데요…?”

몸을 한껏 움츠린 모양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젊은 문사(文士)의 모습이었다.

젊다기보다는 어리다에 가까운 그는 감찰부의 정복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시선을 피하며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감찰부에서 나온 감찰조사원(監察調査員)입니다만….”

집사 중 하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감찰조사원…입니까?”

그러자 그가 부끄럽다는 듯이 뒷 머리를 긁었다.

“아, 예. 작년에 수습 기간이 끝나긴 했지만.”

그의 안경이 흘러내렸다.

“누가 그것을 물었나요? 감찰부의 패찰(牌札)이나 보여 주시죠.”

서문집사가 인상을 썼다.

“아, 아. 죄송합니다….”

그가 허둥거리며, 소매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

반대쪽 소매를 뒤지고, 품속을 뒤진 후에야 그가 패찰을 꺼내 들었다.

“여, 여기….”

집사 중 하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패찰을 받아 들고 서문집사에게 전달했다.

“조사원, 강호(姜浩)?”

이름을 불린 청년이 부끄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예, 제가 강호인데요. 그냥 편하게 강 조사원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서문집사가 피식 웃었다.

“책값 조사를 해 달라고 하니, 그에 어울리는 인물을 보낸 모양이네요.”

강호가 헤헤 웃었다.

“죄송해요. 고발이 들어오면 조사를 하긴 해야 하거든요. 절차가 있어서….”

다른 집사들도 안심했다.

서문집사는 미소 지었다.

'그럼 그렇지. 고작 무검자 놈의 책값 때문에 감찰부가 내원을 뒤집어, 관계를 망칠 이유가 없으니.’

강호가 대기실 안쪽을 기웃거렸 다.

“어, 저기 혹시 고발인이 여기 계신가요?”

연소현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다.”

그러자 강호가 펄쩍 뛰었다.

“아! 대공자님!”

그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연소현에게 예를 표했다.

“본가의 말직에 있는 강 모(某)가 본가의 대공자님을 뵙사옵니다!”

정중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모든 동작이 정확했다.

“쓸데없는 예는 되었다. 여기 고발과 관련된 증거가 있으니 참고하도록 해라.”

정아가 원각정의 예산과 관련된 장부를 넘겼다.

“받으세요.”

“아, 가, 감사합니다.”

강호는 정아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빨개져서 떨리는 손으로 장부를 받아 들었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차를 한 잔 드리지요.”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세쌍둥이 시녀들이 가까이 오자, 강호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아, 아닙니다! 고발인 측에서 저에게 이러시면 곤란해서요!”

그가 세쌍둥이 시녀의 시중을 거절하고, 후다닥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에 집사들이 팔짱을 끼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막 견습을 벗어난 애송이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애써 보아라. 아무 소용도 없을 터이니.’

서문집사는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애송이 감찰조사원이 후다닥 책장을 넘기는 꼴을 보았다.

아무래도 조사는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 시간을 끌 수도 없으니 장부를 보는 척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대공자가 상석에서 턱을 괴고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잘 계시느냐?”

그러자, 책장을 후다닥 넘기던 강호가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안경이 또 흘러내렸다.

“예에. 여전하시지요. 며칠 전에도 대공자님께서 답장이 없으시다고, 저에게 서신을 보내셔서 얼마나 닦달을 하시던지.”

그는 말하는 와증에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말직에 불과한 손자를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연소현이 웃었다.

“황제 폐하의 앞에서 치르는 전시(殿試)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네가 아니더냐? 그런 손자가 관직(官職)을 마다하고 낙양검가로 향했으니, 어련히 대접받고 있으리라 여기신 게지.”

그가 부끄러워했다.

“어찌도 대공자께서 그리 제 사정을 잘 알고 계시는지요?”

“네 할아버지가 내게 보내는 서찰에 온통 맏손주 자랑만 써 놓았더라.”

연소현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마 네가 특별 우대를 마다하고, 감찰부에서 수습부터 시작했다고 하면 당장에 본가로 말을 달리실 게다.”

“아이고, 대공자님.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터인데요….”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뭘 걱정하느냐? 내일모레면 연세가 아흔이 다 되어 가시는 분이 그리도 정정한데. 아직도 황실의 종친(宗親)분들과 사냥하러 다니신다고 하시더구나.”

"다른 게 아니라, 제 엉덩이에 불이 날 것이 걱정이지요.”

그가 불현듯 깨달아 몸을 움츠렸다.

"아, 아. 제가 가문의 대공자께 너무 허울 없이 굴었사옵니다.”

“하하. 괜찮다. 네 할아버지와 내가 친구나 마찬가지니, 그의 손자가 조금 허울 없이 군다고 흠이 되겠느냐?”

그 광경에, 그 대화에, 서문집사와 그녀의 집사들은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불안에 채 대응을 해 보기도 전에, 강호가 장부를 덮었다.

“확인을 마쳤습니다.”

그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본 고발과 관련하여, 발언하실 분이 있으신가요? 이 자리가 불편하시면, 옮겨도 되는데…?”

서문집사가 앞으로 나섰다.

“것보다는, 조사 결과가 어떠한지나 말해 주시죠.”

대공자가 친분을 과시하는 꼴이 불안했던 그녀였다.

어떻게든 빨리 '정해진 결론'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어? 그러면 피고발인과 참고인들에 대한 본조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고….”

“잠깐!”

서문집사가 끼어들었다.

“본조사라니요? 고작해야 책값에 대한 조사라면, 그저 간이 확인 절차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무슨 본조사 타령인가요?”

강호가 움츠러들었다.

“어, 아. 그것이… 아무래도 수상한 점이 있어서…."

“수상한 점이라니요?!”

집사들이 거들었다.

“혹시 조사원이 해당 조사에 사적인 감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방금의 대화를 들었을 때, 충분히 조사원의 저의가 의심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강호의 안경이 흘러내렸다.

“아? 어? 그것이 아니라….”

서문집사가 탁자를 내리쳤다.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고작해야 책값에 관련된 조사를 무슨….”

연소현이 혀를 찼다.

“누가 이게 책값에 관련된 조사라고 하였느냐?”

“예…?”

서문집사와 집사 일동의 사고가 정지했다.

연소현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강호에게 물었다.

“그래. 증거품을 확인한 결과가 어떠하더냐?”

강호가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어, 그러니까. 이 장부 자체로만 보아서는 문제가 없사옵니다."

서문집사가 외쳤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가요?!”

강호가 안경을 추스르며 말했다.

“이 장부에 표기된 원각정에 지급했다는 예산의 금액과 제가 확인한 금액이 다릅니다.”

"...!"

연소현이 미소 지었다.

“왜 그리 늦나 했더니, 내원의 장부서고를 먼저 확인한 모양이로구나.”

"아, 예. 아무래도 조사를 하려면 위에서부터 확인하는 것이….”

“거짓말이에요! 누, 누가 당신에게 장부서고의 출입 권한을 주었나요?!”

서문집사의 외침에, 강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사원에게 협조인의 신원을 캐묻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데요?”

서문집사가 발악처럼 외쳤다.

“당신! 도대체 지금 뭘 조사하고있는 건가요?!”

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밝힐 수 있지요.”

그의 안경이 또 흘러내렸다.

“저는 낙양검가의 장로회의에서 의결한 내원의 예산 중, 원각정에 할당된 예산에 대한 부정 사용 의혹 고발로, 감찰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예산 감찰…?!”

“부정 사용?!”

그가 안경을 추슬렀다.

“감찰조사원의 견해로서, 용의가 어느 정도 특정되고, 혐의가 상당히 입증되고 있어, 현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니….”

안경 너머에서 그의 시선이 서문 집사와 집사들에게로 향했다.

“이 시간부로 해당 조사에 관련된 모든 인원은 내원의 본관을 떠날 수 없음을 감찰부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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