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소문(所聞)과 공작(工作)
어느 날을 기점으로 낙양검가에 소문이 돌았다.
“대공자님이 칩거를 끝내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자네 들어 보았나?”
한 하인의 말에 다른 하인이 귀를 후볐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무검자(無劍者)….”
“어이, 말조심해. 여긴 큰길(大路)이라고.”
그들은 어르신들의 회의가 마치길 기다리며, 큰길에서 대기하던 하인들이 었다.
“크흠. 어쨌든 그분이 칩거하지 않으면, 뭐 어쩌자는 거야? 무림행(武林行)이라도 하신대?”
심심해하던 다른 하인이 끼어들었다.
“애초에 무공에도 재능이 없고, 검을 잡으려는 의지도 없어서, 태상가주님께서 칩거를 명하셨다고 들었었는데.”
하인들이 숙덕거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도,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뭐. 원망스러울 만도 하지만, 한 가문의 대공자라면 그럴 때일수록 더 나서야 했었는데 말이지.”
“태상가주님께서 진즉 알아보셨던 것이겠지.”
“하긴 그러니까 그 어린 나이에 칩거를 당했던 것이 아니겠어?”
늙수그레한 하인 하나가 혀를 찼다.
“옛날엔 명석하고 총명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분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젊은 하인이 코웃음을 쳤다.
“다 헛소문이었던 거 아니겠어?”
다른 하인도 거들었다.
“그렇게 뛰어났었다면, 애초에 태상가주님께서 칩거를 시키셨겠나? 다 이유가 있는 거지.”
다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보다는 태상가주님께서 허락을 하셨단 말이야?”
“하긴.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마음대로 칩거를 풀지 못할 텐데?”
그때 대문이 열리며 비단옷을 입은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화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끝이 났다.
대기하던 하인들은 제각기 자신들이 모시는 어르신을 찾아 급히 그 뒤를 따랐다.
나이 지긋한 문사(文士)들은 바쁜 발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풍문은 들었는가?”
“내 누군가에게 비밀스럽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저 풍문이라기보다는 거의 확실한 것 같소이다.”
“그 첫 행보가 사공자님과 이번에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들었소.”
"어허.”
그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분^서 허락을 내리셨단 말인가?"
그분은 태상가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풍문이 사실이라면, 그분과 본가의 최고 운영 회의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마음대로 칩거를 풀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오.”
“그렇기에 그분께서 쓰러지셨을때도, 대공자가 칩거를 깰 수 없었던 것이 아니오?”
“허. 한동안 시끄러워지겠구먼.”
“지금 나선다고 해도, 소가주가 되기엔 이미 틀린 분이 아니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소이다.”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과 뒤를 따르던 하인들은 일제히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앞으로 고위층에 속하는 인물들의 행차가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들으셨지요?”
“암, 들었습니다.”
그들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심각한 어조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거,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몰아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시기에 대공자께서 칩거를 깬다고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본인도 예상을 못 하겠습니다.”
그들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쪽 파벌의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미 소문만으로도 다들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불부체(魂不附體)이지요.”
“우리 파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공자님의 과거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어요.”
그들은 연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태상가주님께서는 어떤 판단으로 지금 시점에서 대공자의 칩거를 풀어 주신다는 것인지….”
“설마, 최고 운영 회의가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허, 그들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태상가주님께서 두문불출하시지만, 여전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계신데요?”
“하긴. 최고 운영 회의는 태상가주님께서 쓰러지신 이후에 그분을 훌륭하게 보필해 왔지요.”
“근 십 년 내에 본가는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지요. 그들의 공이 없다고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겁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낱 소문에 휘둘려서는 안 될 터인데요.”
그가 혀를 찼다.
“그만큼 과거의 대공자가 남긴 그림자가 본가에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칩거한 지 십 년이 다되었는 데, 여전히 이런 존재감이라니….”
“…지금에서야 무검자니 뭐니 해도, 알 만한 이들은 아는 것이지요.”
다들 무거운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때 그들의 앞에서 인도하던 시종들의 걸음이 멈췄다.
“본가의 장로님들께서 행차하신다! 모두 길을 물렀거라!”
“장로님들이 행차하신다!”
시종들이 따라 알리며, 일제히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위직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일단의 장로들은 무장한 호위들과 수하들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다른 가문이었다면, 다들 가마든 마차든 원하는 대로 타고 다녔을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상무정신(尙武精神)이 살아 있는 낙양검가였다.
지엄한 가법(家法)에 따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두가 두 발로 걸어야 했다.
'이런, 빌어 처먹을. 대공자 그자는 갑자기 이제 와서 왜 깽판이랍니까?’
'하. 그 마귀(魔鬼) 놈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어떻게 도는지 알면, 내가 검가에서 장로를 하고 있겠나? 황궁(皇宮)의 재상(宰相)을 하고 있지.'
그들은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공이 없는 장로들은 각자 최측근에 속하는 무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제야 무검자라는 멸칭을 대중에게 익숙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는데, 곤란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것보다는, 그자의 발목이라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오?’
'누가? 자네가 할 텐가? 그 연소현이야! 상대는 그 마귀 연소현이라고!’
'다들 진정하시지요. 아직 실체라고는 없는 소문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아직 어디에서도 소문이 진짜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고작해야 사공자의 사업에 그저 고문(顧問)으로 참여한다는 것만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식이 없는 가주님이 명을 거두실 리도 없으니 말이오.’
'현재 가주 대행 체제 중인 최고 운영 회의가 그런 결정을 내릴 이유도 없소.'
최상부에 속하는 장로들은 의식이 없는 태상가주 대신 최고 운영 회의가 낙양검가를 운영 중임을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소리!’
늙은 장로가 역정을 냈다.
'한낱 소문이 채 왜곡될 틈도 없이, 이리도 급하게 확산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마귀 놈의 공작이야! 왜 다들 그걸 모르는 겐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히 그런 낌새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대공자의 공작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그자가 무슨 재주로 이런 대규모의 공작을 하겠소?’
'본인은 사공자 측을 의심하고 있는 중이오.'
'칩거 중인 대공자보다 그쪽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전음 사이로 늙은 장로가 끼어들었다.
'칩거?! 말 잘했네. 애초에 가주님이 그 마귀 같은 놈을 칩거시켰던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는가?’
그의 감정이 거칠어지자, 전음도 들쑥날쑥해졌다.
'바로 그 끔찍한 혈사(血史)의 배경에 그 마귀 같은 천재 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건 그저 소문 아닙니까?’
늙은 장로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팍을 두드렸다.
'당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너무 많이 죽었다고!’
그의 전음에서 선명한 공포가 느껴 졌다.
'그 외에 달리 가주님이 당시에 그놈에게 칩거를 명할 이유가 있었는가?! 있었냐는 말이야?!’
누군가 혀를 찼다.
'칩거 명령의 이유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소. 넘겨짚지 마시오.’
'당시에 가주님과 대공자 사이에 불화설이 한창이지 않았었소? 그 외에도 나름대로 신빙성 있는 가설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뭐?! 그럼 내가 소문 따위나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럼, 뭔가 증거라도 있으시오?’
'증거?! 내가 바로 증거다!’
'진정들 하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들은 그때 당시 본가의 밖에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당시에 최고위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 하니 마니 할 수 있겠지.'
늙은 장로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자네들은 그놈에 대해서 X도 아는 게 없으니까!’
육두문자까지 나오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일단 이 모임에서 손을 떼겠네! 앞으로는 내게 이 모임과 관련된 연통은 절대로 하지 말게!’
늙은 장로와 함께, 그를 보필하는 한 무리의 이들이 덩어리에서 떨어져 제 갈길을 갔다.
남은 장로들이 그 모습을 일별했다.
'겁쟁이 늙은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 봐야, 고작 열일곱의 어린아이인 것인데. 겁먹기는.’
'그 혈사에서 겨우 살아난 늙은이가 아니오?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어쨌든.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이 소문을 퍼트렸는지, 그부터 찾아야 하네.’
* * *
“누가 퍼트렸냐는 중요하지 않다.”
염 장로가 의자에 기대어 일장토론을 벌이던 참모진들을 향해 말했다.
“어차피 모두 그 대공자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뿐일테니.”
그의 말에 토론으로 난장을 벌이던 좌중이 조용해졌다.
다들 납득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장로가 하는 말이니 일단은 수긍했다.
한 참모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영애의 치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돌려 한 것이었다.
대공자가 칩거를 깬다는 소문 때문에, 중립 계파에 속하는 염 장로가 딸을 치료받게 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일단 전부 물러가게. 내 곧 판단을 내릴 터이니.”
염 장로의 집무실을 채우고 있던 이들이 물결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이 전부 빠져나가자, 염 장로는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제길, 대공자. 아직도 뒷덜미가 서늘한데, 이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거요?”
그날 빈민가에서 보았던 연소현이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 같았다.
“…환장하겠구먼.”
한낱 무사로 시작하여, 장로에 오른 그의 무대는 거의 항상 외부였다.
그랬기에 과거의 연소현이나, 칩거 중의 연소현을 잘 몰랐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만났던 연소현에 대해서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대체 뭘 노리는 거요?”
* * *
“낙양검가 내에 그런 소문이 돈다는 말입니까?!”
현월각주, 세아는 곰방대를 떼고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래요. 제가 직접 검가 내의 소식통들에게 여러 번 확인한 내용입니다.”
정보를 사러 온 의뢰인이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이거, 검가의 사공자께서 진행한다는 사업에 대한 것을 확인하러 왔는데, 생각지도 않은 대형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가 혀를 내둘렀다.
“역시 현월각.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언제나 만족스럽지요.”
“후후.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세아는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아 앉았다.
게 사공자님이 추진 중이신 사업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정보도 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두 눈이 화등잔처럼 커진 의뢰인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그런데 이건 소문이 아니라, 전부 검증된 사실이라서 말입니다.”
그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 졌다.
“좀 비싸긴 하지만, 결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