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58화 (58/350)

제8편 고기죽 한 솥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정아였다.

그녀는 연소현에게 다가가, 작은 죽통(竹筒)을 공손히 내밀었다.

마지막 시술 이후, 끓는 물에 소독해 둔 그의 금침이 든 죽통이었다.

“네놈...! 네놈이 낙양을…! 내 가족들을…!”

연소현은 남자의 곁에 주저앉으며, 남자의 가슴을 쿡 하고 찔렀다.

“시 끄럽 다.”

부러진 갈비뼈에서 오는 고통에 남자는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연소현은 정아에게서 건네어 받은 죽통에서 금침을 뽑아 들었다.

“계속 말하면, 허파가 상한다.”

연소현은 남자가 어떻게 대응하기도 전에, 남자의 몸에 금침을 꽂아 나갔다.

“침이 꽂힌 채로 움직이면, 진짜 병신 된다.”

남자의 움직임이 멎었다.

* * *

연소현의 처치가 끝나고, 정아가 남자의 깡마른 몸에 붕대를 감았다.

그동안 엉망이 된 장내를 정리한 이들이 하나둘 다시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위를 지켰다.

연소현은 앉아서 한결 숨을 편하게 쉬는 남자에게 말했다.

“하는 김에 네 발목도 고쳐 두었다.”

남자는 그 말에 자신의 발목을 움직여 보았다.

신기하게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던 발목이 돌아갔다.

“며칠만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 것이야.”

남자가 떨리는 시선으로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너, 너는…. 당신은….”

연소현이 물었다.

“어디서 복무했었나?”

남자는 문신이 새겨진 자신의 어깨를 만졌다.

“…북부 전선이오.”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이들이 죽었지.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다쳤고.”

그의 말에 남자가 울컥하여 연소현을 쏘아보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 돌아오니, 가족들은 연이은 흉작에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지.”

남자의 눈이 커졌다.

연소현은 침을 정리하며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어.”

남자의 고개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연소현은 남자의 어깨를 짚었다.

“그래도 무사히 잘 돌아왔어. 고생했다. 병사.”

그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흘렀다.

“네가 조국과 가족을 지킨 것이다.”

눈물이 지나가며 땟국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 어떤 높은 사람도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치하한 적이 없었다.

아니, 전쟁이 끝났을 때도 어떤 지휘관으로부터도 치하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자네가 발목이 뒤틀릴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것을 보니….”

연소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여전히 자네가 보살펴야 할 가족이 남아 있지 않나?”

그의 말에 퇴역 병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주게. 황제나 검가 따위가 아니라, 자네 가족을 위해서.”

연소현이 말을 이었다.

“결코, 잘못된 선택은 하지 말게. 자네는 아직 밝은 태양 아래 서 있어.”

그 말에 병사가 고개를 들고 연소현을 바라봤다.

“당신은…?”

그때 사람들이 갈라지며, 세쌍둥이 시녀가 작은 솥에 고기죽을 담아 들고 걸어왔다.

연소현은 그 따뜻한 솥을 병사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병사는 그 온기와 향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 완전히 독기가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사는 그 말만을 계속 반복했다.

계속해서.

* * *

연소현은 대문으로 힘없이 걸어 나가는 퇴역 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솥단지가 보물이라도 되듯이 소중히 안고 있었다.

사공자가 아무 말 없이, 큰형님의 손을 잡았다.

연소현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느냐? 저 병사는 징집(徵集)되어 북부 전선에 투입되었다.”

“…징집요?”

연소현의 시선은 여전히 병사의 뒷모습에 박혀 있었다.

“황실(皇室)과 관(官)의 요청으로 검가가 직접 나서서 낙양의 청년들을 징집했었지. 가난한 집안의 이들이 그 대상이었다.”

사공자는 시선을 병사에게 향했지만, 이미 그의 모습은 시야에서 벗어난지 오래였다.

“구슬리기가 쉽다는 이유였어. 징집된 이들에게는 그 가족들을 보살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사공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무슨 이야기가 이어질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하지만 가족을 책임지기는커녕, 당장에 전비(戰費)도 모자란 상태였지.”

사공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가는 그리고 관은, 당장에 그들 모두의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이들이 숨을 죽이고 연소현의 말에 집중했다.

그들은 전쟁에 승리한 후 살아남은 이들을 대상으로 전리품을 분배하면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하지만….

“전쟁은 승리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고, 실제 이익은 아무것도 없었다.”

황실은 그 전쟁을 다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 흔한 개선식(凱旋式)도 없었고, 식량과 물자를 소모할 뿐인 징집병단(徵集兵團)을 해체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전쟁 중에 중원국은 흉년(凶年)에 시달렸다.

겨우 살아온 이들을 맞이해줄 가족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이 목숨 바쳐 싸웠던 전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돌아온 병사들은 남아 있는 가족 이라도 지키기 위해, 가혹한 노동 현장으로 향해야 했다.

혹여나 그들이 사달을 일으킬까 두려워했던 관과 검가는, 구심점이 될 만한 이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런….”

철저하게 암흑 속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비사(祕史)였다.

충격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가운데, 사공자가 두 손으로 연소현의 손을 꼬옥 하고 쥐었다.

“비록 한 사람이지만, 큰형님이 그라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연소현이 반대 손을 들어, 사공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그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을 대신 한 것뿐.”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고기죽 한 솥이 오히려 그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연소현의 시선이 대문 밖을 향했다.

“내 말 따위가 아니라, 그의 가족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다.”

연소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고기죽 한 솥이 있었기에 희망을 품고 돌아갈 수 있었던 것뿐이다.”

그의 시선이 사공자에게 향했다.

“앞으로 네가 큰일을 하려거든 기억해 두거라.”

그것은 한 집단을 책임지고 있는 막냇동생을 위한 무거운 충고였다.

“지도자는 절대로 자기 연민이나 자기애에 빠져, 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사공자는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내 말 백 마디보다, 고기죽 한 솥이 더 큰 힘을 가졌던 것을 반드시 기억하거라.”

“예, 큰형님.”

주변의 젊은 문사들이 고개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연소현의 말을 새겨들었다.

그때 한 의녀가 다가와 연소현에게 말했다.

“대공자님. 이제 자애원이 닫을 시간이옵니다.”

서쪽 하늘에는 노을이 점차 드리우고 있었다.

연소현은 막냇동생의 손을 꼬옥하고 쥐고 흔들어 보였다.

“자, 이제 우리도 슬슬 돌아가자꾸나.”

사공자가 활짝 미소 지었다.

“예!"

* * *

모두가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을때, 연소현은 노파, 선녀교단의 무녀를 만나고 있었다.

“예?! 정말이시옵니까?”

노파의 손이 떨려 왔다.

연소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네.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뿐이라….”

그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 병사가 떠들었던 말들을 곱씹어 보자니 말이지….”

모든 것의 원흉은 검가.

낙양은 사육을 위한 거대한 우리.

어미를 팔아 우민을 현혹하는 종교.

“빈민 출신의 병사가 쉽게 떠들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서 배웠을 가능성이 있네.”

“…확실히. '그들'의 방식과 유사한 점이 있사옵니다.”

그의 말에 침음한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을 풀어 확인해 보겠사옵니다. 허나, 당장에는….”

“모든 자원이 부족한 상태지. 알고 있네. 지금은 그의 집을 확인해 보는 정도라도 해두게.”

노파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 능력이 부족하여 송구하기가 이를 데가 없사옵니다.”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대들의 탓이 아니야. 이 낙양땅이 얼마나 넓고, 사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가 돌아서서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도록 해. 곧 상황 이 나아지기 시작할거야.”

* * *

병사는 어두워지는 골목을 한달음에 달려 한 움막에 도달했다.

만약 발목이 뒤틀린 그대로였다면, 솥에서 죽을 쏟을까 두려워 지금보다 시간이 열 배는 더 걸렸을 터였다.

낙양검가의 대공자가 말하길 며칠만 쉬면 예전처럼 발목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더는 절반으로 깎일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와 그의 동생이 입에 풀칠도 못할 걱정은 그만해도 좋았다.

그는 여전히 따뜻한 솥을 들고, 조심스럽게 판잣집의 문을 열었다.

“영아, 이거 좀 봐 봐. 이 형이 뭘 들고 왔게?”

판잣집 안은 온기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땔감조차도 전부 돈인 낙양에서, 빈민이 온기를 찾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영아, 자니?”

그는 어두운 판잣집 내부에서 혹여라도 죽을 쏟을까 조심해서 걸음을 옮겼다.

한시라도 빨리 동생에게 죽을 보여 주고 싶었다.

동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영아?”

그의 발걸음이 멎었다.

그의 동생은 평소에 해가 드는 자리에 누워 있길 좋아했다.

그랬기어1, 바로 그 자리에 동생이 누워 있었다.

"영아?"

전쟁을 겪었던 그는 한눈에 알수 있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동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큰형이 없는 사이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몸을 버려 가며 고생했던 동생이었다.

하지만 결국에 동생에게 남은 것은 못 쓰게 된 두 다리와 굶어 죽어 버린 가족들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솥이 바닥에 떨어졌다.

고기죽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입에서는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동생의 싸늘하게 식어 버린 몸을 껴안았다.

동생의 손목에는 선명한 자상(刺傷)이 몇 줄기나 그어져 있었고, 흘러나온 피가 이미 끈적하게 굳어 있었다.

자살이었다.

발목을 다쳐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형을 위해서, 쓸모없는 동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는 다른 손에 스스로 깎았던 어설픈 조각을 안고 있었다.

'형! 약선녀님의 조각이야!’

그의 동생이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었다.

'앞으로 이분이 우리 형제를 지켜 주실 거야!’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동생의 품에 안겨 있던 약선녀의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의 입에서 알수 없는 비명과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약선녀의 조각이 박살 났다.

그가 집어 던진 솥이 구겨져 뒹 굴었다.

바닥에 흘렸던 고기죽과 동생의 굳은 피가 뒤섞였다.

'그들'이 옳았다.

세상에는 구원이라는 것이 없었다.

진정한 죄인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최악의 악인들은 고통받지 않았다.

'결코, 잘못된 선택은 하지 말게. 자네는 아직 밝은 태양 아래 서 있어.'

검가의 대공자가 했던 말이 그의 머리에 잠시 맴돌았지만, 곧 사라졌다.

동생의 죽음으로 그는 그들이 말했던 '진리(眞理)'에 도달하고 있었다.

* * *

태양은 저물어 버린 지 오래였고, 그의 동생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느릿하게 썩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땅을 파내렷다.

언 땅을 파느라 손톱이 전부 부서지고, 손가락이 전부 찢어졌지만, 그는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구덩이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 상자 안에는 기이하고 불길한 문자가 새겨진 부적들과 피처럼 붉은 초가 하나 들어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서 배웠던 주문을 외우자, 초에서부터 검푸른 불길이 일어났다.

'열반(涅槃)은 거짓이다.’

부적들이 그의 몸 주변을 돌았다.

'낙원(樂園)은 없다.'

광풍이 불고, 초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보살(菩薩)은 죽었다.'

검푸른 불길이 그의 몸에 옮겨붙었고, 그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신선(神仙)은 떠났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멈추지 않았다.

음산하고 끔찍한 울림이 깃든 주문(呪文)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조차도 알지 못하는 의미의 주문뿐이었다.

온몸이 불타는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 그들이 들려주었던 말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기억하게, 형제여. 이제 종말의 때가 다가왔음이니.'

불길은 주변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 그의 몸을 전부 살라 먹었다.

그 불길은 그의 눈에서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눈물까지도 잡아먹었다.

'기억하게, 형제여. 이제 구원의 때가 다가왔음이니.’

그의 몸은 검은 재가 되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흩어졌다.

'진리는 오직 하나!'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그저 구덩이와 작은 상자만이 남았다.

'마교(魔敎)만이 이 더러운 세상을 태초의 모습으로 정화하리라!’

침묵이 찾아왔다.

한 소년의 시신에는 점차 서리가 앉고 있었다.

그리고 시신의 옆에는 약선녀 조각상의 머리가 구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 조각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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