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자애원(慈愛院)
연소현은 자신을 안내하는 노파의 뒤를 따라 구불구불한 빈민가의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느렸고, 일행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늦어지고 있었다.
그것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골목을 따라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이들은 연소현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여의치 않은 이들은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기도 했고, 그의 옷자락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빈민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 더럽고, 지저분했으며, 누구랄 것 없이 크고 작은 피부병을 앓고 있어 외모가 흉했고, 오물과 진물이 뒤섞인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그래도 연소현은 싫은 기색 하나 없었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고,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최대한 모든 이들이 그를 향해 표하는 예를 받아 주며, 묵묵히 걸었다.
'으음, 의연하게. 다들 의연하게 행동하도록 하세요.'
그의 뒤를 따르는 세쌍둥이 시녀들은 정신이 없었다.
'다들 시녀장님의 행동을 본받도록 하세요!’
정아는 감히 연소현에게는 할 수 없었던 빈민들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있었다.
“선녀님! 제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전선으로 떠난 제 남편이 무사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제 어머니가 하늘에서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정아는 그들 하나하나의 기원에 응답할 힘이 없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안아 주어야 마땅한 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야 마땅한 이를 쓰다듬어 주었으며, 슬피 우는 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 모습에 세쌍둥이들도 빈민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선녀교단(仙女敎團)의 신도들 인가.”
멀찍이서 뒤를 따르는 사공자의 젊은 모사 중 하나가 그들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빈민들 사이에서 그들의 교세가 강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태상대부인(太上大夫人)의 이름이 여전히 중원국 전체에 드높은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아드님에게까지 저렇게 예를 표할 줄은 몰랐네.”
“일종의 광신(狂信)인 것인가?”
사공자는 자신의 뒤를 따르며, 의견을 주고받는 젊은 문사들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저들의 행동을, 표정을 보고서도 모르겠나?”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는 멀찍이서 보이는 큰형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들은 큰어머니가 아니라, 큰 형님에게 예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에 반해서 빈민들이 자신들 일행에게 보이는 반응은 어떠한가.
사공자의 일행이 바로 옆에서 지나가고 있어도, 그들의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다.
“주인님”
그의 옆에서 걷던 통통한 시녀가 물었다.
“이렇게 가난한 이들이라면, 그저 돈 몇 푼을 쥐여 주면, 알아서들 동네를 떠나는 것이 아닐지요?”
사공자는 그녀의 귀여운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
“그런가요?”
그는 통통한 시녀의 손을 잡고, 설명했다.
“저들이 이곳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 하겠느냐?”
그에게 손을 잡힌 통통한 시녀는 뺨을 붉혔지만, 성실히 대답했다.
“어… 또 다른 빈민가인가요?”
“그렇지. 하지만 어디에도 저들 모두를 받아들일 만큼 여유가 있는 빈민가는 없지. 저들은 뿔뿔이 흩어져 여러 빈민가로 들어가야 하고, 그곳에서 그들이 받았던 그 몇 푼은 순식간에 사라지겠지.”
“사라져요?”
동그랗게 눈을 뜨는 시녀에게 사공자가 웃어 보였다.
“저들이 아무렇게나 뭉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판잣집이든 움막이든 결국 전부 돈이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돈을 노리는 이들도 많겠지.”
좋게 이야기했지만, 현실은 훨씬 더 끔찍하고 잔혹할 터였다.
“아….”
사공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들이 안심하고 떠나려면, 결국 저들이 빈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이주 자금이 필요하겠지.”
“그런가요….”
부유한 집안 출신의 통통한 시녀는 대답하면서도 약간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저들은 모두 거지들인가요? 열심히 일하면 이런 동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녀의 물음에 사공자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저들 대부분은 모두 일자리가 있다.”
“예?”
“그리고 저들은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이들이지.”
* * *
연소현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입 맞추는 외팔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남은 팔에는 군적(軍籍)에 몸을 담았었음을 보여 주는 문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드러난 신체에는 전투에서 얻은 흉터보다, 그 이후에 생긴 더 많은 상처가 있었다.
연소현은 자신의 발에 입 맞추는 노파와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노파와 아이들의 몸에 드러난 상처들과 흉터들은 학대 따위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손이 연소현의 손을,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부러진 손톱, 아예 흔적도 없이 빠져 버린 손톱, 곱은 손가락, 잘려 나간 손가락, 손에 가득한 잔상처 들.
그것은 지독히도 가혹한 노동의 흔적이 었다.
* * *
“저들은 아이도, 어른도, 시간도, 장소도 관계없이 일자리가 있는 곳이면 어떤 일이든 하는 사람들이야. 그저….”
사공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이 받는 임금으로는 이곳을 벗어날수 없을 뿐이지.”
가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저들은 급격히 소모된다.
다치거나, 병이 들면,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으면, 안 그래도 적은 임금은 더욱 줄어든다.
저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이곳에 서도 살아갈 수 없었다.
“저들이 이곳을 빠져나가서 갈수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이야.”
황하(黃河).
한 줌 재가 되어, 강물에 흘러가는 것뿐.
듣는 이들의 코에, 시체가 타는 냄새가 스치는 듯했다.
* * *
“주인님. 선두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사공자는 보고를 듣고 자신의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이제부터 잘 보아라. 어째서 큰형님이 이들에게 신앙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인지.”
그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왜 큰형님을 지분을 드려서라도, 우리 계획에 초청한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
모두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그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것은 기와지붕이 있는 건물이었다.
주변의 판잣집들이 너무나 허술하고, 지저분했던 탓에, 그 건물은 낡고 그리 거대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잡아끌었다.
조금 더 다가가자, 입구에 수많은 이들이 줄을 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이가, 안력을 돋우어 건물의 현판(懸板)을 읽었다.
“자애원(慈愛院)?”
그들은 미리 비워 둔 중앙의 대문을 통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안은 북새통이었다.
“식사는 이쪽! 식사는 이쪽 줄이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릇을 하나씩 들고, 길게 줄을 선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거대한 솥에서 끓이고 있는 죽이었다.
“아픈 이들은 이쪽! 이쪽으로 서도록 하시오!”
이리저리 낡은 천막을 엮어 만든 천장 아래는 수많은 환자가 그저 짚단 한 겹을 깔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심부름꾼인지 뭔지 구별도 되지 않는 소년과 소녀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줄 선 이들을 대상으로 미리 환자의 경중(輕重)을 가리는 의원들의 목소리와 상태가 안 좋은 이들을 살리려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돕는 수습의원이나 의녀로 보이는 이들은, 온몸에 천을 감고 있었다.
“…나병(癩病) 환자?”
시녀 하나가 입을 가리며 기겁을 하자, 시녀장이 그녀를 나무랐다.
“나병은 그 전염성이 낮다. 괜히 지나친 반응을 보이지 말도록 해라.”
그때 의원 하나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들은 모두 완치된 이들로, 흉이 심하게 남아 가리고 있는 것뿐, 환자들이 아닙니다.”
사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병의 정복. 큰어머니께서 남긴 업적 중 하나지.”
“맞습니다. 저들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의술을 수련하여, 저희를 돕고 있습니다.”
의원이 미소를 지었다.
“그분을 큰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낙양검가의 사공자님이시군요.”
그는 안쪽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통통한 시녀가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을 대표해서 물었다.
“빈민가에서 음식을 팔고, 의술을 행하는 것이 장사가 되는 겁니까?”
앞장서서 안내하던 의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윽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여기는 장사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공자가 말을 받았다.
“이곳은 빈민들을 대상으로 음식과 의료를 무상으로 베푸는 곳이야. 모두 큰형님께서 비용을 치르며 운영하시고 계시지.”
그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공자의 시녀장이 그의 말에 덧붙였다.
“낙양 내에 존재하는 대형 빈민가들에는 반드시 이 '자애원'이 있지요.”
의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모든 자애원은 저희의 스승이신 약선녀님을 모신 사당이기도 합니다.”
* * *
사공자는 손에 든 향을 두 손으로 공손히 잡고 공중에 두어 번 흔들었다.
커다란 향로에 그 향을 꽂은 사공자는 물러서서, 수하들과 함께 공손한 태도로 합장을 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경의를 표한 그는 머리를 들고, 향로 너머의 탱화(幀畫)를 바라보았다.
가뭄과 홍수가 뒤섞인 세상에 백성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굶주리고, 헐벗고, 병에 신음하는 이들이 뒹굴고, 울부짖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구원하는 이가 있었다.
불타는 대지 위에 맨발로 선 여인은 아름다웠으며, 입가에는 자애로움이 넘치는 부처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는 보리수 가지를 들었으며, 한 손에는 바닥이 없는 약(藥) 주머니를 들었다.
그녀의 발치에 모여든 중생들이 배를 채우고, 지혜를 배우고, 깨달아 구원받으니.
그녀가 바로 약사여래(藥師如來)의 현신이라 일컬어지는 약선녀(藥仙女), 약소유였다.
“부디 저희를 살펴 주시길….”
짧게 축문(祝文)을 읊조린 사공자가, 돌아서서 밖으로 나섰다.
그의 수하들은 숙연한 태도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또 한 무리의 빈민들이 기원을 올리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도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밖에서 길게 줄을 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공자가 자신의 문사들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저들이 거짓 신앙에 취한 광신도로 보이느냐?”
감히 부끄러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는 저들이 큰형님을 왜 그리도 신실한 태도로 맞이하였는지 알겠느냐?”
다들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공자는 그들에게 혀를 찼다.
“항상 입으로는 세상사에 대해 이리저리 전부 아는 척 떠들지만, 결국 너희 눈은 높디높은 본가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누가 입이 두 개라 항변하겠는가.
“큰 사업을 벌이고, 권력을 다투는 이들이, 자신을 책사니 모사니 떠드는 이들이, 없고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
그는 고개를 숙인 문사들을 바라 보았다.
“저들은 우리가 취급하는 어떤 상품도 구매할 수 없으니까. 저들은 그저 푼돈으로 부리다가 부서지고 망가지면 대체하면 그뿐인 이들이니까.”
사공자가 손뼉을 쳤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너희는 알아야 한다. 결국, 천심(天心)은 민심(民心)에서부터 시작되며, 민의(民意)는 곧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작고 어린 소년은 그 여린 입에 천의(天意)를 담았다.
“너희가 앞으로 날카로운 기책(奇策)을 찾고 단단한 책략(策略)을 세워, 한 사람의 모사이자 책사가 되려면, 반드시 그 이치를 마음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젊은 문사들이 두 손을 모아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사공자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나의 큰형님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분이신지 알겠느냐?”
문사들이 일제히 대답하려다가 머뭇거렸다.
그것과 이것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런 멍청한 놈들!”
보다 못한 시녀장이 펄쩍펄쩍 뛰는 주인을 붙들었다.
“자, 자, 대공자님께서 주인님을 기다리시고 계신답니다.”
“아!”
그 이야기에 사공자가 달렸다.
“큰형니임! 이 불민한 소제가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