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용봉지회(龍鳳之會)
“여기서 설마 용봉지회(龍鳳之會)를 모르는 사람 있나?”
사공자의 말에 좌중이 고요해졌다.
그 유명한 용봉지회를 모르는 이가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 의외로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큰형님?!”
그것은 다름 아닌 연소현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과거의 용봉지회는 아는데, 요즘엔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구나. 일단 규모가 대단히 커졌다고는 들었는데.”
“다 비켜!”
그러자 사공자가 연단으로 달려가 사회자를 들이받았다.
“후후. 큰형님께서 궁금해하시는데, 모자란 자에게 설명을 맡길 수는 없지요. 이 소제(小弟)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의 얼굴이 흥분되어 발갛게 물들었다.
세상모르는 것이 없는 자신의 큰 형님에게 설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거창하게 설명할 것 없다. 결국엔 자신을 뽐내고 싶은 무림인들을 한군데 모아 놓고 싸움을 붙이는 것이니.”
그의 말에 좌중의 무사들이 술렁 거렸지만, 딱히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여기가 낙양검가의 다른 곳이었다면, 무사들이 분노를 표했을지도 몰랐다.
무검자가 무예를 겨루는 신성한 행위를 깎아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이들이 많았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사공자의 진영(陣營).
기본적으로 큰형님의 위대함에 대해, 하루에도 수십 번을 떠드는 주군을 모시는 이들이었다.
“역시 정확하십니다! 하지만 지금의 용봉지회는 그 쌈박질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소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돈이지.”
“정확하십니다! 무예를 겨루는 무림인들의 피 튀기는 혈전은 이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들을 보기 위해서 몰려오는 수많은 관중! 그 관중들은 중원국의 경제적, 기술적, 제도적 성장과 더불어, 이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국외(國外)에서도 관중들이 몰려들고 있지요! 지금의 용봉지회는 그야말로 대륙의 대제전(大祭典)이 된 것입니다!”
“돈."
“아주 정확하십니다! 역시 큰형님다운 혜안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거대한 규모에 어울리는 엄청난 이익을 보장하는 이권들이 산적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낙양검가에서도 십여 년간의 노력 끝에 용봉지회의 유치권을 따낸 것이죠!”
“돈 ”
“그렇습니다! 새로이 건설되는 상가(商家)! 새로이 늘어나는 객잔! 새로이 단장되는 거리! 대로(大路)의 정비! 대운하의 정비! 그 모든 것에 국비(國費)가 정해진 비율로 지원되며, 지금도 중원국 전체에서 크고 작은 투자금이 밀려들고 있지요!”
“돈."
“맞습니다! 당연히 우리 낙양검가에서도 거금을 투자하고 있습니 다! 사실상 엄청난 수익이 보장된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사공자는 단상에 준비된 차를 들이 켰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용봉지회는 무엇이다?”
“돈. 그리고 더 많은 돈.”
“정답입니다!”
* * *
다시 사회자에 의해서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사공자가 연소현에게 속삭였다.
“물론, 진짜 돈이 되는 것은 본가에서 직접 집행하고, 개중 큰 조각 몇 개는 이미 이공자와 삼공자가 차지하고 있어요.”
“흠."
자신의 형들을 이공자와 삼공자로 칭하는 연비였다.
“저희에게 떨어진 것은 콩고물 정도지요. 하지만 저희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어,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거예요.”
“그렇구나.”
사공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큰형님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 큰형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소제는 너무 기뻐요!”
“나도 기쁘다 녀석아.”
연소현은 동생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주었다.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설명회는 대단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 그럼 사업 계획에 따라, 새로운 상업 단지가 들어설 부지를 직접 보시도록 하시겠습니다!”
사회자가 신호를 주자, 양쪽에 배치된 인원들이 한쪽 천막을 일제히 걷었다.
천막이 걷히자,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저 너머의 풍경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음."
연소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다가갔다.
완만한 언덕이 넓게 펼쳐진 그곳은 현재 거대한 빈민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가요, 큰형님. 입지가 좋지요? 남향에, 완만한 경사, 낙양 중심가와도 가깝지요.”
연소현이 사공자가 가리키는 곳이 아니라 그 옆을 보고 있자, 문사들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 지금 대공자님께서 보시는 쪽은 저희의 사업 예정지가 아니옵니다.”
“그쪽은 낙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빈민가 중의 하나이옵니다.”
사공자가 하하 웃었다.
"저긴, 우리가 아니더라도 감히 누구도 손을 못 대고 있는 곳이에요.”
“그렇구나.”
연소현은 다시 사공자의 설명에 집중했다.
사공자는 이리저리 손짓해 가며 말을 이었다.
물론 문사들이 거대한 조감도(鳥瞰圖)를 대령했음은 당연했다.
“이렇게 이 부지 전체를 상업 단지로 탈바꿈하려는 거지요. 객잔부터 기루(妓樓)며 다루(茶樓)며, 등 등등. 온갖 업주들이 돈주머니를 들고 모여드는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입지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구나. 그럼 이제 문제점을 말해 보자꾸나.”
사공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투자금 유치예요. 본가의 용봉지회 관련 예산 편성은 이미 작년에 끝났고, 이공자와 삼공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추경(追更)은 어림도 없지요.”
“너의 외척인 사천당가(四川唐家)의 자금은 벌써 끌어왔겠지?”
“예. 본가인 당가(唐家)뿐 아니라, 당문(唐門) 전체에서 끌어올 수 있는 급전(急錢)은 전부 쓸어 왔어요.”
연소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 사천(四川)의 돈줄을 노리는 거구나.”
그의 말에 사공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큰형님!”
그가 돌아서서, 손뼉을 쳤다.
“자, 일단 설명회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자! 큰형님께서는 이미 본론으로 들어가셨으니까.”
그의 명에 설명회는 그 자리에서 종료되었고, 문사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오늘의 경험을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사천에서 투자자들이 오면 좀 더 완벽하게 해 보자고.”
주변의 문사들이 큰 소리로 대답하자, 사공자는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큰형님과 직접 대화를 통해, 너희들의 의문을 풀어 주도록 하겠다.”
문사들이 역시 대답은 크게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눈에는 연소현을 향한 강한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의문이라?”
연소현의 물음에 사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왜 큰형님께 지분까지 드리려는지를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연소현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게 네가 아직 말하지 않은 두 번째 문제이기도 하구나.”
“예. 역시 정확하세요.”
사공자의 시선이 멀리, 사업 예정 부지를 향했다.
“바로 저 빈민가를 철거하는 문제이지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보상을 충분히 할 수만 있으면, 그나마 좀 낫겠는데, 자금이 제한적인 것이 문제네요.”
그가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큰형님이 나서셔서, 적은 액수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지분도 아깝지 않다. 이런 논리인 것이죠.”
주변의 참모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연소현이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분은 크게 아깝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예상하기로, 연소현이 나서 봤자, 지분은 지분대로, 돈은 돈대로 들어가리라 판단한 것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연소현을 향했다.
도대체 무검자라는 오명이 가장 유명한 대공자가 무슨 재주로 저 많은 빈민을 수월하게 쫓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소현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 거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지.”
그가 손가락을 세 개 펼쳐 보였다.
“세 가지나요?”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는 전통적으로 검가가 행하던 방식이다. 관을 통해 통지를 내리고, 관군을 동원하여 따르지 않는 자들을 전부 내쫓는 것이지.”
사공자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능한 방법은 아니군요.”
“그럼 둘째.”
연소현의 입가에 불길한 미소가 걸렸다.
“이건 네 둘째 형이 주로 쓰는 방식이다. 암흑가의 힘을 동원하여 저들의 집을 부수고, 가재도구를 박살 내고, 겁간하고, 핍박하는 것이지. 그럼, 결국에 모두가 떠나게 되어 있지.”
사공자가 치를 떨었다.
“사파(邪派)의 핏줄을 이어받은자다운 혐오스러움이네요.”
연소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그 사파스러움이, 정파(正派)의 핏줄을 이어받은 너의 셋째 형이 쓰는 세 번째 방법보다는 나을 거다.”
“그게 뭔가요?”
“빈민가에 마교(魔敎)가 퍼졌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곤 자신의 친위대를 동원해서 죽이고 불태우는 거지. 증거는 물론 만들어 주기 나름이고.”
"...."
“그러면 마교 토벌의 공도 세우고, 철거도 손쉽게 이룰 수 있지.”
"...."
사공자의 입이 벌어졌다.
주변의 참모들도 고개를 내저었다.
허공에 욕설하거나, 바닥에 침을 뱉는 이도 있었다.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인가요?”
사공자의 물음에 연소현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본가의 최상층부에선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사공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이공자와 삼공자는 제대로 미친놈들이네요.”
연소현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원래 그놈들은 싹수부터가 노랬다.”
“그래서 제가 그놈들이랑 어울리지 않는 것이죠.”
사공자도 큰형님을 따라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웃는 이는 없었다.
감히 그들이 끼어들 대화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좋다.”
연소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내 방식을 보고 싶은 게로구나.”
사공자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예, 그렇습니다.”
연소현이 손가락을 튕겨 보이자, 그의 시녀장인 정아가 다가와 그에게 두꺼운 외투를 걸쳐 주었다.
“그렇다면, 가 보자꾸나.”
“어디를요?”
연소현이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 빈민가 말이다.”
잠시 후 반대가 쏟아졌다.
위험하다.
빈민들을 자극할 수 있다.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진짜 마교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검가의 사람들이 고작 빈민들에게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대공자와 사공자에게 어떤 작은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야기들이었다.
사공자가 손뼉을 쳤다.
“그만!”
주변이 조용해지자, 사공자가 연소현에게 말했다.
“별일 없겠죠, 큰형님?”
사공자의 가장 큰 걱정은 내공이 없는 자신의 큰형님이었다.
“물론.”
* * *
잠시 후 빈민가의 입구.
근접 호위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입구에 선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공자가 입을 열었다.
“모든 호위는 검에서 손을 떼라. 명령이다.”
그의 명령에 호위들은 칼자루에서 손을 떼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무공이라고는 모르는 젊은 문사들은 모두 한군데 뭉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오히려 시녀들 쪽이 훨씬 더 침착해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골목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빈민들에게 향했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도 있고, 어미도 있었으며, 노인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었다.
어떤 여자는 코와 귀가 없었고, 어떤 남자는 팔이 없었다.
어떤 이는 눈이 멀었으며, 어떤 이는 다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온 이들은 골목의 입구에 길게 늘어섰다.
순식간에 백(百)이 넘는 이들이 벽을 치듯이, 연소현 일행을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가 갈라지더니,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팡이를 짚은 노파의 모습이었다.
굽은 허리로 힘겹게 걸어 나온 그녀는 인간 벽의 가장 앞에 섰다.
그러고는 가장 엄숙한 태도로 합장(合掌)했다.
그러자 빈민들 모두가 함께 합장했다.
온몸에 화상 자국이 가득한 사내도, 동생들의 손을 이끌고 나왔던 소녀도 합장했다.
절을 하는 이도 있었다.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이는 엎드려 절했고, 나이가 많아 제대로 설수 없는 이들도 엎드려 절했다.
그들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었고, 그들이 하는 경배의 모습도 전부 달랐지만, 그들의 경건함은 실로 진실되었다.
무슨 상황인지, 누구에게 하는 행동인지 몰라, 다들 허둥댔다.
그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연소현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이며 정중한 태도로 그들에게 합장해 보였다.
그는 모든 방향을 향해, 정중히 합장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합장을 거두자, 다른 이들도 한명씩 합장을 거두었다.
모든 이가 합장을 끝내자, 가장 앞에 섰던 노파가 연소현에게 허리를 숙여 절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이시자, 약사여래(藥師如來)이신, 약선녀(藥仙女)님의 아드님께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