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45화 (45/350)

제20편 재녀(才女)들

삼(三) 인의 소녀들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이 한겨울에 알몸으로 서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단 한 명의 여인 때문이었다.

여인의 화려한 옷차림과 반짝이는 장신구들,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처음 본 순간에는 세 명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이 여인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위장이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여인의 황금빛 두 눈에서는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 그들을 꿰 뚫는 것 같았다.

“너희는 대공자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삼 인의 소녀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치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저 모든 것을 바쳐 따를 뿐입니다.”

정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소녀들의 신체에서 전해지는 모든 반응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느꼈다.

그들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복식을 갖추어라. 그리고 짐을 챙겨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소녀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너희는 이제 나와 함께 원각정으로 갈 것이다.”

그녀들의 입가에 떠오른 것은 분명 환희의 미소였다.

그들은 주인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 * *

“세쌍둥이. 내 최고의 역작(力作)이지.”

밖에서 정아를 기다리던 집사부장의 말이었다.

“훌륭합니다.”

정아는 감탄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특수반이라고 하셨었지요.”

“그렇다. 특수반은 대외적으로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심각한 결점을 가진 문제아들에게 특수 교육을 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집사부장이 고르고 고른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주군, 연소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이들로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세쌍둥이 전원이 무공을 사용합니까?”

“높은 수준은 아니야.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는 그게 한계였다.”

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아이들의 재능은 내 확실히 보장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의 말에 정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낙양검가가 아니었다면,

집사부장의 광기 어린 충성과 집념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중원국 어디서 저런 인재들을 한낱 시녀로 부릴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어르신 덕분에, 앞으로 원각정의 인원 보충에 대해서 걱정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는 껄껄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기나긴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나도 주군을 위해서 뭔갈 제대로 해 볼 수 있게 되었구나!”

* * *

지급 받은 원각정의 시녀복을 갖춰 입은 소녀들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미색(美色)이 고왔다.

그들의 등허리에는 하나같이 소검(小劍)이 매달려 있었다.

세쌍둥이의 똑 닮은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드디어……"

주인을 섬길 날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은, 혼신(渾身)의 힘을 기울여 그들을 키운 집사부장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주인님을 위해서 활약할때가 되었어요.”

“첫 임무로는 어떤 일을 맡게 될까요?”

“추적, 암살, 파괴 공작, 공포 확산, 그 어떤 분야도 두렵지 않군요.”

“정보 업무도 좋지요. 조사, 분석, 예측, 방첩(防諜), 그 어떤 분야도 자신 있어요.”

“저는 일상 시녀 업무 쪽도 기대가 되네요. 원각정의 품격을 귀빈들에게 보여 드려야죠.”

그들의 얼굴에서 강한 자신감이 흘렀다.

그 모든 끔찍한 훈련과 꿈에서도 이어졌던 교육을 거쳐 살아남았던 그들이었다.

이제 자신들은 드넓은 세상으로 나갈 때를 맞이했다.

“두려울 것이 없군요.”

“우린 최고니까요.”

“오호호호.”

그때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비는 다 마치고 수다를 떠는 것이냐?”

정아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으로도, 그들의 목덜미가 바짝 곤두섰다.

그들은 순식간에 채비를 완료하고, 문 앞으로 일사불란하게 늘어섰다.

“시녀장님. 준비 완료했습니다!”

문이 열리고 정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 하나하나를 향했다.

그 시선에 세쌍둥이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확인을 마친 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줄발하지.”

* * *

화려한 차림새에 빛나는 미모의 정아를 위시하여, 그 뒤를 따르는 아름다운 시녀들의 모습은 발 닿는 곳마다 시선과 탄성을 자아냈다.

“어머, 너무 예쁜 분들이에요.”

“어디 소속이실까, 너무 부럽네요.”

세쌍둥이의 콧대가 점점 높아졌다.

'후후, 아주 좋아요. 계속 그렇게 우리 원각정 시녀들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도록 하세요.'

'아, 이것이 주목받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로군요. 행복해요.'

'완벽한 첫 등장이에요. 자 자, 좀 더 우리를 우러러 바라보도록 하세요.'

정아는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세 쌍둥이들의 기분에 쓴웃음을 지었다.

발랄한 아이들이었다.

비록 망가졌지만.

한참을 걷고, 또 걸어, 이윽고, 정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자, 이곳이 원각정의 대문이다.”

세쌍둥이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원각정의 대문은 경비대원의 복장을 한 이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개중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던 탓이었다.

'어, 엄청난 고수예요!’

'역시 검가의 심장부!’

'우리는 권력의 중심으로 가고 있어요!’

벽에 기대앉아 고개를 숙인 채, 흉신악살(凶神惡煞) 같은 기세를 흘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문지기, 탈명귀검(奪命鬼僉)이었다.

그의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의 동료들도 멀찍이 떨어져 있을 정도였다.

정아는 그의 그런 모습에, 직감적으로 자신의 주인이 무언가 그를 자극했음을 느꼈다.

“이들은 원각정의 새 시녀들입니다. 앞으로도 이 아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정아는 통과 절차를 마치고, 바짝 얼어붙은 세쌍둥이를 대문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자 자, 정신들 차리거라. 이 안에서는 절대 숲길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녀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정아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담시녀, 아니. 이제는 시녀장이라고 불러야겠군.”

탈명귀검이었다.

“잠시 괜찮겠소?”

정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녀들을 대기시켰다.

조금 더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가 먼저 입을 뗐다.

“대공자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오?”

정아는 미소를 지었다.

예상이 맞았던 모양이다.

“제게는 최고의 주인님이시지요.”

그녀의 물음에 그가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그런 물음이 아닌 것 알고 있지않소?”

정아는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혼란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건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그녀가 그의 말을 끊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녀의 진지한 시선이 탈명귀검을 향했다.

“그분에 대한 모든 안 좋은 선입견을 버리고, 그분을 바라보도록 해 보세요.”

"......."

그녀는 그 자리에서 생각에 잠긴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 손님이 한 분 오실 겁니다.”

* * *

발걸음이 안쪽으로 향할수록 날씨는 따스하게 변해 갔다.

그와 함께 드러나기 시작하는 미려한 풍경에 세쌍둥이들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정아의 발걸음이 한 건물 앞에 멈췄다.

“자, 이곳은 현재 주인님께서 처소이자 집무실로 사용하고 계시는 장소다. 모두 다시 한 번 몸가짐을 정돈하도록 하여라.”

세쌍둥이의 얼굴에 명백한 긴장감이 흘렀다.

'드, 드디어 주인님을 뵙네요!’

'좋은 첫인상! 좋은 첫인상!’

'설마 여기까지 와서, 쫓겨나진 않겠지요……?’

정아는 그녀들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안을 향해 고했다.

“주인님. 정아이옵니다. 새로운 아이들을 데려왔사옵니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들어와.”

* * *

세쌍둥이는 의자에 몸을 기댄 연소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시선을 땅으로 향한채, 몸이 떨려 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었다.

'이, 이분이 바로 주인님이에요!’

'엄청난 위엄이에요!’

'아아, 주인님. 제발 저희를 거두어 주세요!’

한편, 연소현은 아무런 기세도 위엄도 흘리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얼굴에 떠오른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집사부장의 서신과 세쌍둥이에 대한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보던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집사부장……'

그는 정아를 바라보았다.

밥 짓고 허드렛일할 애를 데려오라니까, 집사부장과 무슨 짓을 벌인 거냐는 시선이었다.

정아는 그의 시선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주인님. 이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이옵니까?”

그 말에 엎드려 있는 소녀들이 더욱 몸을 크게 떠는 것이 연소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연소현은 한숨을 쉬었다.

용안을 가진 정아가 자신의 시선을 못 읽을 리가 없었으니, 이것은 그녀 나름의 의사 표시라 하겠다.

“좋다. 이 아이들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연소현은 손을 내저었다.

“이 아이들……. 앞으로는 '쌍둥이'라고 부르마. 쌍둥이들에 대해서는 시녀장에게 전권을 일임하도록 하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연소현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인 정아는 쌍둥이들에게 말했다.

“자, 따라오도록 하여라. 너희에게 첫 임무를 하달하도록 하겠다.”

첫 임무라는 말에 비장한 표정으로 소녀들이 정아의 뒤를 따랐다.

연소현은 '첫 임무'라는 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아의 장난기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 어쨌든 잘된 일이지……'

그의 시선이 다시 세쌍둥이의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향했다.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 아이들이 집사부장이 키운 아이들이었구나.’

그는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그렇군. 그게 그렇게 됐었던 거로군.’

그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 * *

“이,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세쌍둥이 중 일인은 연못에서 그물을 치는 중이었다.

“꺅!”

진흙이 온몸에 묻었고, 그물에 걸린 생선이 튀어 올라 물을 뒤집어 썼다.

“어째서 우리가 이런 일을……?"

다른 일인은 호미를 들고 밭에서 작물을 캐는 중이었다.

온화한 원각정의 날씨에 잡초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라 있었다.

“어째서 이 원각정에 하녀나 하인이 하나도 없는 거죠?!”

다른 일인은 아궁이에 열심히 부채질 중이었다.

“콜록, 콜록.”

매캐한 연기에 눈이 따가웠다.

'여, 연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 뿐이니까요……'

돌아다니며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정아가 쿡쿡하고 웃었다.

다들 불만을 쉴 새 없이 투덜거리고, 입술이 툭 튀어나와 있었지 만, 누구 하나 요령을 피우는 이가 없었다.

요령을 피우기는커녕, 땀을 뻘뻘흘려 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도록 하거라.'

그의 주인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원각정의 인원은 급속도로 늘어 갈 터였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선임시녀로서 진정한 임무를 맡아 역할을 다 하게 될 것이다.

* * *

“이공자와 삼공자가 네게 분노하고도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아느냐?”

정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노리던 시녀가 무검자에게 갔다는 소문은, 그들의 체면을 크게 상하게 할 수 있었다.

집사부장이 진중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당부했다.

“물길은 막아도 사람 입은 못 막는다는 말이 있지. 결국, 소문은 퍼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들은 너에 대해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정아는 그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

“시녀장!”

탈명귀검이 빛살 같은 경신법을 펼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입니까?”

그녀는 그에게서 놀라움과 다급함 그리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대문 앞에 지금 한 노인이 와 있소.”

“말씀드렸던 그분 말입니까?”

그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바로 그 약왕(藥王)이 왔소!”

암천존자가 아닌, 대공자 연소현이 본격적으로 행보를 시작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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