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41화 (41/350)

제16편 천살성(天殺星)

[이 아이는 천살성(天殺星) 아래서 태어났습니다.]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말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선고(宣告)였다.

[이 아이의 삶은 필시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바다를 만드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였다.

산파(産婆) 역할을 했던 노파가 산모에게 고한 그 말은 산모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 노파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현기(玄機)가 깃들어 있었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노파의 손에는 이국의 언어로 새겨진, 주술 문신이 가득했다.

'범어(梵語)도 아니고, 저건 나도 모르는 언어로군.'

연소현은 생각했다.

[……이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산모는 달이 부끄러울 정도의 미인이었다.

방금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운 미색(美色)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낯빛은 너무도 어두웠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기를 종용받았다.

[……죽여야 합니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던 노파는 망설였지만, 결국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세상을 위해서라도]

개개인의 감정이 앞설 문제가 아니었다.

[아가야…….]

산모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봉목(鳳目)이라고 할 만한 아름다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죽어야 하나요……?’

소현은 질문했다.

'……제가 천살성 밑에 태어났기 때문에?’

하지만 저들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산모가 입을 열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넘쳤다.

[명령입니다.]

그녀의 엄중한 시선이 노파에게 향했다.

[이 아이를 살릴 방법을 찾아 주세요.]

노파는 고개를 깊이 숙여, 명을 받았다.

주인이 바라는 이상 어떤 일이라도 해내야 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배워 온 주술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아이는…… 내 손으로 반드시 바르고 착한 아이로 키워 내고 말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어머니는, 너무도 일찍 제 곁을 떠나셨지요.'

소현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저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건 꿈이었으니까.

그의 무의식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꿈.

이제까지 그가 잊고 있던 기억.

* * *

어느새 배경이 바뀌었고, 장면이 흘러갔다.

[도련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인(殺人)을 하시면 안 됩니다.]

노파가 간곡한 어조로 고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걸어 놓은 모든 주술이 깨어져 흩어질 것이고, 도련님의 운명은 다시 천살성 아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노파는, 그 몇 년 사이에 수십 년을 더 늙어 버린 것 같았다.

천살성을 속일 만한 주술을 위해, 얼마나 큰 주력(呪力)이 들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연소현의 어머니는 환히 미소 지었다.

[이 아이는 문인(文人)이 될 겁니다. 아직 두 살밖에 안 됐지만 벌써 서책을 손에 쥐고 놓지를 않아요. 놀랄 만큼 명석한 아이입니다.]

문틈 사이로 엎드려 책을 읽는 어린 연소현의 모습이 보였다.

노파는 잠시 그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의 주인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저는 모든 것을 아가씨께 바친 늙은이니 언제 죽어도 좋습니다. 아가씨의 뜻을 위해 죽는다면 그것은 홍복(洪福)입니다. 몇백 번을 죽는다 해도, 그저 즐거이 죽지요.]

노파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하지만 아가씨는…….]

소현의 어머니는 곱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生氣)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제 수명이 얼마나 남았나요?]

노파의 주름이 가득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깡마르고 허리가 휜 노파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법의 대가로 굳이 아가씨의 명(命)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노파의 목소리에 노기(怒氣)가 어렸다.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들. 세상을 좀먹기만 하는 잡것들의 명(命)을 대신 사용하기만 했어도, 아가씨께서는……!]

연소현의 어머니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이의 생명을 대가로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남의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것들의 목숨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하늘도 감히 탓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늘이 용서하더라도,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노파가 탄식하며 바닥에 엎드려 예를 표했다.

노파의 주인은 누구보다도 굳건 했으며, 끝이 없는 선의(善意)의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생전(生前)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던 노파가 자신의 남은 생(生) 모두를 그녀를 섬기는 일에 바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 수명은 얼마나 남았나요?]

노파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리석 바닥에 노파의 눈물이 떨어져 얼룩이 졌다.

[……앞으로 두 해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소현의 어머니는 천천히 다가가 노파를 품에 안았다.

[저 아이는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소현이의 운명은 제 목숨을 대가로 보호받을 겁니다. 한낱 별 따위가 소현이의 운명을 지배할 수 없어요.]

노파가 흐느꼈다.

[도련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으로 성장하실 겁니다. 분명, 분명 훌륭한 대학자가 되실 겁니다.]

* * *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는 생명을 존중하고, 사람을 아끼며,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머리로는 바른 것을 생각했고, 입으로는 좋은 말을 했다.

얼마나 영특한지, 어미를 도와 무수한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까지했다.

하지만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소현아. 우리 소현아. 마지막으로 어미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니……?]

어린 소현은 어머니 옆에 엎드린 채로 울음을 참았다.

[……물론입니다, 어머니.]

하늘의 뜻이 지엄한지라 연소현의 어머니는 두 해를 넘지 못해야 했건만, 그녀는 초인과 같이 생의 의지를 발휘했다.

모두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바르게 자라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한계가 명확했다.

이제 그녀는 임종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는 앞으로…….]

검가의 대를 이어야 할 아이에게 절대 검을 쥐지 않아야 한다고, 어미로서 감히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사람을 결코 죽여서는 안 되며, 앞으로도 어미에게 배운 대로만 살아가라고 할 것인가.

그것이 유언으로서 좋은 것인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미의 손을 꼬옥 하고 그 작은 손으로 붙잡고 있는, 어린 연소현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애정이 가득했다.

그녀가 보는 연소현의 눈매는 자신을 똑 닮아 있었다.

그 크고 초롱초롱한 눈 안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이 아이에게 무슨 당부가 필요하겠는가.

그녀의 아들은 그녀가 그리도 소망하던 그대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새벽녘 풀잎 위의 이슬같이 깨끗하고 맑은 아이였다.

소현(昭賢), 그 이름 그대로 밝고 현명한 아이였다.

그녀는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밝게 미소 지었다.

[……되었다. 어미는 네게 그저 이 말을 하고 싶구나]

그녀는 마지막 숨을 쥐어짜, 소현을 꼭 안아 주었다.

[어미는 우리 소현이를 정말 사랑한단다.]

그녀는 곧 숨을 거두었다.

어린 소현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가문 내에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곡소리가 가득했다.

낙양 땅 모든 이가 곡을 했다.

낙양에 사는 이 중에 그녀에게 은혜를 입지 않았던 이가 없었다.

중원국에 살면서 그녀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보았던, 모든 이들이 슬퍼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녀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은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며, 그들 중 그녀의 별호(別號)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약소유(潘素愈)

방년(芳年) 27세,

약선(藥仙)의 후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당시에 유행하여 가장 끔찍했던 세(三) 가지의 역병(疫病)에 잘 듣는 특효약을 만들고, 그 조제법(調劑法)을 숨기지 않고 공표하였다.

그 조제법은 모두 들과 산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약재(藥材)로 이루어져, 가장 가난한 이도 그 약을 구할 수 있게 했다.

생전에 정리하여 펼쳐 낸 의서(醫書)만 하더라도 스물다섯 질(帙), 백 권이 넘었다.

빈부귀천(貧富貴賤)과 그 지위(地位)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재능 있으며 뜻이 있는 이들만을 제자로 들였다.

그렇게 수많은 제자를 가르쳐 세상으로 내보내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살피게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높이 황궁에까지 이르러, 어의(御醫)로 들라는 황실의 청을 거듭하여 거절하고 민초(民草)의 곁에 남았으니.

그녀가 자신의 일생 동안 구휼(救恤)했던 이는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녀를 지장보살(地藏菩薩)이라 부르며 칭송하며 경배했고, 혹자들은 그녀를 약사여래(藥師如來)의 현현(顯現)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다시없을 선인(善人)이 그렇게 이승을 떠났다.

모두가 그것이 하늘이 그녀를 필요로 하여 일찍 데려갔다 하였다.

황실에서는 그녀를 기려 중원국 전체에 사당(祠堂)을 설치하게 하니, 어디를 가도 그녀를 모시는 사당을 볼 수 있었다.

백성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에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사당 앞에 줄을 이었다.

* * *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연소현은, 다시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발에 걸리는 것이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작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그 것은 다름 아닌 인골(人骨)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묻힌 뼈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가 가는 길 전체가 백골(白骨)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썩지도 않은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고, 멀리서는 피가 강을 이루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으나 해는 보이지 않았고, 칼날과 같은 바람만이 불어닥칠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로 물든 손이었다.

한두 사람의 피가 아니었다.

피는 흐르고 홀러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마도 멀리서 흐르고 있는 피의 강은 자신의 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었다.

그저 걷기 시작한 길을 계속 걸어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 길은 누구도 걷지 않는 길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걸을 수 없는 길이었다.

[이 아이는…… 내 손으로 반드시 바르고 착한 아이로 키워 내고 말겠습니다.]

그는 이미 한번 죽었다.

그리고 제암진천경에 의해 되살아났다.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생명(生命)을 담보로 펼쳤던 대법(大法)은 이미 덧없이 깨졌다.

[어머니…….]

그 길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이제 누구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는 살을 엘 것 같은 바람을 뚫고 전진했다.

바람 소리가 귀곡성(鬼哭聲)같이 들렸다.

지독하게 차가운 북풍(北風)에 휩쓸린 그 사죄(謝罪)의 속삭임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Chapter 02.

무검자(無劍者),

개막(開幕)

In order for the light to shine so brightly the darkness must be present.

“빛이 찬란히 빛나기 위해서는 어둠이 존재해야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22~16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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