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9화 (39/350)

제14편 무간지옥(無間地獄)

금주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차가운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머리에 차가운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올려다보자 길게 자란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그녀가 의식을 잃었던, 바로 그 동굴 안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동굴 안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도 살아난 건가?”

아무래도 추측해 보자면, 대주술의 효과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어디에도 문제는 없었다.

손가락들도 그 자리에 있었고, 자신의 심장도 두근거리며 존재의 주장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놈에 의해 물어뜯겼던 얼굴도 멀쩡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안심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녀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동굴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동굴 밖으로 나서자, 환한 태양이 그녀를 맞이했다.

잠시 그 태양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바라본 그녀는 오솔길을 따라 숲을 내려갔다.

그러자 빈민가가 모습을 드러냈고, 빈민가를 지나자 낙양 상업지역의 뒷골목이 나타났다.

최대한 빠르게 낙양을 벗어나야했다.

평범한 여염집 아낙으로 꾸며, 상행에 끼어서 무사히 낙양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낙양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산으로 접어들자, 그녀는 상행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재물 중 값어치 있는 것들만 챙겼다.

새 출발을 하는 것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하남성에서 떠나, 최대한 먼 곳으로 향했다.

여비가 부족해질 때마다, 상행을 습격하거나, 행인들을 습격해서, 주머니를 채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운남성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그녀는 산채를 하나 습격해, 그곳의 두목이 될 수 있었다.

딱히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곳이 , 관의 시선 또한 멀었지만, 차(茶) 상인들이 많이 지나는 곳이었기에 벌이가 제법이었다.

곧 그녀는 일대를 호령하는 여두령이 되었다.

낙양에서만큼 호화롭지도, 몸이 편하지도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나름 즐거웠다.

“두목! 두목! 이번에 오는 상행은 꽤 크답니다!”

“두목이 아니라 채주라고 부르라니까!”

그녀는 멍청한 부하를 한번 걷어차 주고, 기세 좋게 호령했다.

“얘들아! 손님 맞을 준비 해라!”

“예!”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던 중이었다.

“꽤 즐거워 보이네.”

그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름…….”

그녀의 몸이 굳었다.

코에서는 진한 유황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운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디찬 한기가 느껴졌다.

“너, 너……?!”

고개를 돌리자, 하얀 가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따가울 정도의 태양과 섬뜩하기 짝이 없는 하얀 가면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하나.”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 * *

“허억! 허억!”

이번에도 그녀가 깨어난 것은 그 동굴 안이었다.

그녀는 가장 빠른 속도로 낙양에서 벗어났다.

이번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 괴물은 자신의 흔적을 쫓아왔을 터였다.

그렇다면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그녀는 짐승을 사냥하고, 계곡물로 목을 축이면서, 계속해서 동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기마 부족을 만났고, 그들의 장사들을 거꾸러트린 다음, 그들의 작은 부족을 이끌 수 있었다.

내친김에 그녀는 주변의 부족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통합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또 그것이 찾아오면 큰일이었으니.

하지만 결국 그것은 그녀를 찾아 냈다.

“하나.”

* * *

그녀는 이번에는 살생을 저지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놈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녀는 한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아무것도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홀가분한 것은 또 사실이었다.

그리고 달이 휘영청 밝은 날 밤에 놈을 만났다.

“하나.”

* * *

그녀는 억울했다.

이번에는 동굴에서 나서자마자 낙양 거리에서 크게 분풀이를 했다.

“하나.”

* * *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살아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살든, 그것은 찾아왔다.

착하게 산다고 해서 늦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악행을 마음껏 저지른다고 해서 빠르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아무 때나 그녀를 찾아왔다.

빌어도 보았고,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하나.”

* * *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깨어날 수 없는 악몽(惡夢)에 영원히 사로잡혔다는 것을.

계속해서, 계속해서, 자신이 잡아 먹히는 것으로 순환(循環)하는 끔찍한 나날만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영원할지도.

* * *

그녀는 결코 알 수 없었지만, 그 끔찍한 굴레에 빠진 것은 그녀만은 아니었다.

연소현에게 먹힌 모든 이들은 같은 굴레 속에 있었다.

상상 속에서나 등장했던 수많은 방법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로 끔찍한 형벌을 통해서.

모든 악인(惡人)들은 자신이 쌓은 악업만큼 자신의 영혼을 부수는 고통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껏 모든 연자들이 잡아먹었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인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절규하기도 한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미칠 수도 없다.

정신이 망가져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은, 절대 허락받지 못했다.

* * *

까마득한 옛날.

어쩌면 고대의 어느 시간.

어쩌면 신화 속의 어떤 곳에서.

어쩌면 다른 어떤 세계에서.

인내(忍耐)와 인고(忍苦)를 통해, 높은 영성(靈性)과 불멸성(不滅性)을 획득해 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 그리고 부당함이 항상 외면당하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원망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제물 삼아, 천고(千古)에 존재한 적이 없던 마물(魔物)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그것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成長)시켰다.

발전(發展)시켰다.

개량(改良)시켰다.

향상(向上)시켰다.

그렇게 억겁(億劫)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까마득하게 거대해진 그것의 실체(實體)를 아는 이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연자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제암진천경은 연자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연자를 통해서 현세(現世)에 존재하는 것일 뿐.

쓸모가 다한 연자들은 다른 악인들과 마찬가지로 제암진천경에게 먹혔다.

그 소우주(小宇宙)에 갇혔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곳.

어떤 존재도 고통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는 곳.

모든 악업이 청산되어, 소멸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곳.

혹자들은 그곳을 일컫길,

지옥(地獄)이라고 불렀다.

* * *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저 닫힌 세계를 지옥로(地獄爐)라고 부른다네.”

영락한 신선이 연소현을 향해 손을 펼쳐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제암진천경이라는 경이로운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광기가 함께 묻어났다.

“저들은 저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제암진천경에게 양분을 제공하지. 그리고 제암진천경은 그 양분을 바탕으로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것일세.”

“그렇군요.”

연소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노인은 그런 연소현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있군.”

“별것 아닙니다.”

노인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대는 구하지 못한 이들이 마음에 걸리는 게로군?”

"......."

연소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가면 장인의 가족이 떠올랐다.

인육 공장에 걸려 있던 수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그가 흑골파를 없애는 동안, 그 사이에 죽어 간 무고한 이들이 떠올랐다.

지하 동공에서 보았던 엄청난 숫자의 시체 더미가 떠올랐다.

“조금만 더 암천존자가 활약했다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겠지.”

연소현은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대의 판단은 옳았어. 만약 그대가 더 무리해서 제암진천경의 힘을 사용했다면……"

“제가 제암진천경의 광기와 마기에 침식당했겠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암진천경과 연자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아니었다.

제암진천경에게 연자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애초에 원래 인간에 불과했던 연자 따위가, 외우주(外宇宙)의 존재에게 힘을 받으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길 바라는 것이 말도 안 되지 않는가.

“자네……"

노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연소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제암진천경이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로군.”

연소현은 노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원래 제암진천경이 원혼들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노인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닐세, 아니야.”

그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자네가 보는 그것들은 희생자들의 원혼 같은 것이 아닐세.”

“……무슨 말씀입니까?”

앞선 노인의 말에서 이미 무언가를 짐작한 연소현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그것들은 전부 제암진천경이 보여 주는 세계의 기억일 뿐일세. 인간의 영혼은 엔간해서는 물질세계에 붙들리지 않아.”

전부 제암진천경의 술수(術數)일 뿐이었다.

연자로 하여금, 더욱더 많이, 빠르게, 악인들을 먹어 치우게 하기 위한.

“……나의 경우는 가족이었지.”

노인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연소현은 그가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지, 감히 묻지 않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노인의 가장 무거운 고통과 연결된 일임이 분명했으니.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일부러 익살맞게 웃어 보였다.

"그대는 내 보았던 대로, 참 자애로운 사람이 분명하군.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원혼들이 보이다니.”

킬킬하고 노인이 웃었다.

연소현도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연자가 된 순간, 제가 모든 인간성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인간성을 잃은 것이 아니야. 제암진천경에 의해서 인간성이 비틀어진 것뿐이지.”

그리고 이어서 덧붙였다.

“인간성의 소모를 경계하게. 그리고 또 인간성의 과잉을 경계하게.”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성이 모두 소모되면, 제암진천경의 광기밖에 남지 않을 것이고, 인간성이 과잉되면 더 빠르게 미쳐 가겠지요.”

노인이 손뼉을 쳤다.

“역시, 영특하군!”

노인은 연소현에게 물었다.

“그대가 마기를 제어하는 방식도 대단히 흥미로웠네. 그렇게 자신과 암천존자를 구별하는 방법을 만들어 낼 줄은 나조차도 몰랐어!”

노인은 기뻐 보였다.

그가 연소현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네가 처음에 참조한 그 심법의 이름이……?"

“양의심공(兩儀心功)입니다.”

노인은 홍분하여 외쳤다.

“그래! 아주 훌륭한 응용이었네. 아마 무학(武學)에서는 그대가 나보다 몇 수는 더 뛰어날 걸세.”

감히 신선이었던 존재와 비교라니.

“별것 아닌 재주일 뿐입니다.”

“쓸데없는 겸양을!”

노인은 연소현의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이제 그러면 자네는 마기와 내공을 둘 다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의 말에 연소현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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