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8화 (38/350)

제13편 명부마도(冥府魔道) (5)

“네년들……!"

금주는 이리저리 비틀거렸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살기는 모골을 송연하게 할 정도였다.

“당장 이 뒷골목을 나가는 방법을 말해! 그러지 않으면……!"

“뒷골목이라니?”

세아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래! 이 빌어먹을 뒷골목 말이다! 대체 끝이 없어! 그놈이 오기전에 빠져나가야……

정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의 세아에게 말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이미 전신(全身)이 주인님의 기운에 침식당했어요.”

“기운에 침식당했다고?”

“네. 그녀는 여기를 어딘가의 뒷 골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화를 주고받는 자매의 모습에 금주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뭘 너희끼리 떠들고 X랄이야?!”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자매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까워지자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세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산발이 된 금주의 머리는, 군데군데 뽑혀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두피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귀는 한 짝이 찢겨 피가 타고 흐르고 있었고, 눈알은 실핏줄이 모두 터져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모두 시커멓게 물들어, 죽은 이의 피부 같았는데, 그 위로 혈관들이 울룩불룩 치솟아 꿈틀거렸다.

“전부 죽여 버리겠어!”

그녀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줄기줄기 홀러나왔다.

그 기세를 느끼자, 세아는 지금 자신들이 무림인을 앞에 두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에 보았던 것처럼,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기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도 분명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에 비하자면 초인(超人)이나 다름없는 무림인이 아닌가?

“물러서세요, 언니.”

세아의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정아였다.

그녀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주섬주섬 자신의 손에 착용했다.

“정아야, 그건……?"

정아는 자신의 손에 낀 것을 들어 보였다.

가죽과 철심, 그리고 작은 철판들로 보강된 권갑(拳鉀)이었다.

“언니를 만나기 전에 결계에서 구해 드린 소저에게 빌렸어요.”

정아는 태연하게 설명을 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여기서……!"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얼굴에 악귀와 같은 표정을 지은 금주가 그들을 덮쳐 왔기 때문이었다.

반응할 틈도 없었다.

금주의 모습을 잠시 놓쳤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미 금주는 정아의 뒤를 습격하는 중이었다.

"......!"

세아가 다음 순간 볼 수 있었던것은 정아가 자신의 어깨 위로 튀어나온 금주의 팔을 양손으로 잡아챈 모습이었다.

“합!"

짧고 날카로운 기합이 동굴에 채 메아리치기도 전에, 금주의 몸은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림 같은 업어치기였다.

“크헉……!"

금주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튀어 나왔다.

“저, 정아야 너 내공을……?"

정아는 잡고 있던 금주의 팔을 놓아 버리고, 물러섰다.

“아니요.”

그녀는 충격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컥컥거리는 금주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제 눈이 가진 힘을 잠시 끌어 쓰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고는 금주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참이지?”

“이, 이 개 같은 년이……!"

금주가 내력을 끌어 올려, 그 자리에서 발사되듯 정아를 덮쳤다.

그러나 그녀의 두 손은 정아에게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멈췄다.

그 손 아래로 파고든 정아의 팔꿈치가 정확히 금주의 명치에 틀어박혀 있었다.

“쿨럭……!"

내장을 꿰뚫는 중격에 금주가 피를 토했다.

정아는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면 서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금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황금빛이 번쩍 였다.

“흡!”

정아의 반대편 팔꿈치가 수직으로 치솟아, 금주의 턱을 강타했다.

입에서 부러진 치아 조각이 튀어 오르며, 그녀는 뒤로 튕겨 나, 통로 구석에 처박혔다.

구석에 처박힌 금주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정아는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아직 멀쩡한 것, 내게는 다 보이니까…….”

정아는 권갑을 낀 두 손을 앞으로 들어 자세를 취했다.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아 주면 좋겠어 아직 갚아 줄 것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 말에 엎드려 기습을 준비하던 금주가 비척거리면서, 일어났다.

“너어……!”

그녀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여 버리겠어!”

금주의 왼손이 살아 있는 뱀처럼 정아를 향해 쏘아졌다.

궤적을 예측할 수 없는 예의 무공이 펼쳐진 것이었다.

하지만 정아는 그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보았다'.

권갑에서 불꽃이 번쩍이며, 금주의 공격이 비껴갔다.

동시에 정아의 반대쪽 권갑이 금주의 복부에 꽂혀 있었다.

“크아아아!”

하지만 내력으로 자신의 복부를 보호한 금주는 정아를 향해 연격을 퍼부었다.

사방에서 불꽃이 튀고, 날카로운 굉음이 연속적으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크억......!"

순식간에 수십 합의 공격을 주고받은 끝에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것은 금주였다.

그녀의 얼굴에 극심한 고통과 함께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수십 합을 주고받으며, 눈앞의 계집은 자신의 모든 공격을 비껴냈다.

그리고 동시에 십수 발의 권격을 정확하게 성공시켰다.

비록 내력이 실리지 않은 공격이라, 치명적인 타격은 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한낱 시녀 주제에……!’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상대는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낱 일반인 계집에 불과했다.

그랬는데…….

“으아아아아!”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다시 한번 정아를 몰아쳤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자신의 전력을 끌어 올린 공격도, 사각을 노리고 뒤에서부터 짓쳐 드는 공격도,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보냈다.

'저 눈깔……!'

불길한 황금빛을 흘리는 눈의 시선이 자신이 뭘 하든 전부 읽어 내는 것만 같았다.

어떤 시도도 그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크흑……!"

다시 한 번 안면에 되받아치기를 허용한 그녀는 단숨에 크게 거리를 벌렸다.

정아는 부쩍 숨이 거칠어졌지만, 금주를 향해 냉소(冷笑)를 보냈다.

“벌써, 포기한 것이냐?”

바드득, 금주는 거칠게 이를 갈았다.

상대의 약점은 내력이 없는 것과 그 탓에 체력이 부족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대로 시간을 들여 몰아붙이다 보면, 반드시 저 재수 없는 얼굴을 죽을 때까지 두들겨 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놈'이…….

“……언젠가 네년은 반드시 나한테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게 될 것이야.”

지금은 물러서는 편이 정답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그녀는 바닥을 보이는 내력을 겨우 끌어 올려, 자리를 박찼다.

아니, 박찰 생각이었다.

그녀의 다리를 붙잡은 수많은 하얀 손들이 아니었다면.

“으아아아아!”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온 손들이 그녀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이거 놔아아!”

금주는 거세게 저항했다.

몸을 거칠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상처투성이가 되어 갔다.

그녀의 몸이 금방 피투성이가 되 었다.

“으아아아악!”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기에, 손들이 그녀를 바닥에 처박아 억누를 뿐, 끌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벅, 저벅, 그녀의 귓가에 발소리가 울렸고, 서생 복장의 연소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아는 그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오셨사옵니까.”

연소현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힘을 실험해 보니, 어떻더냐?”

“아직 턱없이 부족하옵니다.”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주종의 모습이었다.

귀화도 없고, 특유의 마기를 두르지도 않은, 평소의 연소현의 모습이 었다.

세아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연소현에게 인사했다.

“대공자님.”

연소현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대도 고생 많았어. 그대의 수하들은 근처에서 대기 중이니 안심해도 좋아.”

“아, 감사합니다.”

세아는 이렇게 평온하게 대화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암천존자의 모습과 지금의 연소현의 모습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다.

게다가 옆에서 바닥에 단단히 억류된 금주가 괴성을 질러 대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더욱 그 괴리감은 컸다.

“당장 이거 풀어! 죽여 버릴 거야! 너희 연놈들 전부 씹어 먹어 버릴 테다!”

연소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세아에게 물었다.

“정아와 함께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이겠지?”

세아는 어떻게든 억지로 금주의 목소리는 무시했다.

“예, 그렇습……사옵니다.”

그의 앞에서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그녀도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투에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익숙하지 않은 극존칭은 억지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선 돌아섰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나누기전에…….”

금주는 이제 애원을 하는 중이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세요. 다시는 낙양에 발도 붙이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세상에 좋은 일만 하겠어요.”

전혀 대화라는 것이 통할 것 같지 않았던 암천존자와는 다르게, 연소현이 평범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보자 생각이 바뀐 탓일까.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연소현이 다가가자, 그녀는 더욱 열심히 빌었다.

“그래? 앞으로 세상에 좋은 일만 하겠다고?”

“예, 예. 물론입니다. 당연하지요. 지켜보시면 아실 거예요. 아, 아니면! 아예 저를 노예로 부리셔도 돼요. 시키시는 일은 뭐든지 할게요.”

연소현이 껄껄하고 웃었다.

그는 금주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살려 줄 것 같나?”

그의 말에 금주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네놈!”

그녀의 태도가 대번에 돌변했다.

“잊지는 않았겠지?! 나는 검가동패의 소유자라고!”

연소현이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검가에서 반드시 조사에 나설 것이야! 검가동패의 소유자가 사망하면, 무조건 조사를 하게 되어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

“네놈의 영향력으로는 그 조사를 무마할 수도 없을 거다! 검가의 조사관과 추적자들이 네놈을 쫓을 거다!”

연소현이 대답 없이 그저 비죽하고 미소 지었다.

금주는 그 모습에 자신의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네놈은 단기간에 너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어! 여기다가 검가까지 더해지면 네놈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으냐?!”

그녀는 마지막 모든 힘을 쥐어짜서 열변을 토했다.

“검가 전체가 네놈을 쫓을 거다! 네놈을 귀찮은 가시처럼 여기는 네놈의 형제들이 네놈을 직접 쫓을 것이라고!”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혈관들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다.

“네놈 혼자서 검가 전체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연소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라 그래.”

“뭐?”

연소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 아래서 홍측한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나를 쫓든, 쫓지 않든.”

금주의 시야에 연소현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졌다.

“모든 썩어 빠진 것들은, 결국 내게 먹힐 것이다.”

그의 얼굴이 더욱 가까워졌다.

“바로 너처럼.”

붉은 피가 분수처럼, 바닥에 쏟아졌다.

금주의 몸이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튀어 댔다.

고기를 탐식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녀가 내지른 단말마(斷末魔)가 메아리가 되어 끊임없이 동굴을 따라 울려 퍼졌다.

정아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세아는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지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소리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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