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편 명부마도(冥府魔道) (4)
금주는 비밀 통로를 빠져나와 정신없이 경공(輕功)을 펼쳤다.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빈민가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곧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낙양 상업 거리의 뒷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급속한 팽창과 성장으로 계속된 난개발(亂開發)로 인해, 낙양의 뒷 골목들은 하나같이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최소 4, 5층의 높은 건물들은 서로 간에 조금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거대한 미로(迷路)를 형성하고 있었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또 몇 개의 모서리를 돌아서야 그녀는 멈췄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고 싶었지만, 호홉이 너무나 거칠었다.
원래대로 돌아온 내공 수준으로는 경신법(輕身法)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평소라면 건드리기는커녕, 보는 것만으로도 욕지거리를 내뱉던 더러운 뒷골목의 벽면이 그녀의 지친 몸뚱이를 지탱해 주었다.
“허억, 허억.”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을 쥐었다.
심장이 뽑혀 나가던 그 순간, '대비책'은 확실히 작동했다.
대주술(大呪術)의 효과는 금주 자신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괴물 같은 스승 밑에서, 그걸 배우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
두통이 내달렸다.
기억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걸 어떻게 배웠었더라? 주술을? 내가 주술을 배워?’
순간 잊고 있었던, 몇 가지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장난기 넘치는 태도로 자신의 내장을 휘젓던 노인의 손.
검버섯이 가득 피어 있던 말라비틀어진 손.
그 기괴한 웃음소리.
목구멍이 찢어져 버릴 정도로 비명을 질렀던 자신.
끔찍한 고통.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기억을 부정했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중요해.'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대주술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대주술은 그녀의 경지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녀가 목숨을 잃는 순간 결계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심지어 잃어버린 심장도 돌아왔다.
수백의 목숨과 수십 년의 수명이 아깝지 않은 효과였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 남은 구명책(救命策)은 없었다.
'이번에 잡히면 진짜 살해당한다……!’
그 하얀 가면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손속을 나누어 본 결과, 그녀는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것은 진짜 괴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스승과 동류(同類)였다.
상리(常理)에서 벗어나고, 이치(理致)를 무시하며, 법칙(法則)을 거스른다.
아무리 벽을 넘은 시늉을 한 것이라지만, 그 괴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다.
가지고 놀았다.
아무리 공격해도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것이 보였던 수법 중,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모든 공격을 맞아 주면서,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모두 가져갔다.
다시 자란 손가락이 시려 왔다.
되찾은 심장이 욱신거려 왔다.
심장에서 비롯된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아직도 그 괴물의 아가리가 자신을 씹어 먹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해.'
공포에 잠식당하기 시작한 그녀는 그렇게 뒷골목을 내달렸다.
복잡한 길들이 꼬이고, 또 꼬여있었다.
건물 위로 올라가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테지만, 반대로 자신 또한 노출될 터였다.
방향만 맞으면, 언젠가 이 골목은 끝나게 되어 있었다.
'낙양 뒷골목 출신인 내가 이런 곳에서 길을 잃을 리 없어.'
순간 헷갈렸다.
'아니, 나는 낙양이 아니라, 분명 어느 시골 산골의……?’
다시 두통이 내달렸다.
자신의 머릿속을 휘젓던 그 갈고리 같은 손이 떠올랐다.
심장이 너무나 아파 왔다.
놈의 이가 심장을 찢어 놓는 것 같았다.
'움직여야 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어느 순간 신발도 잃어버렸고, 몇 번 구르다 보니, 옷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이 방향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골목 사이로 올려다보면 보이는것은 짙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뿐이었다.
방향을 짐작하게 해 줄 아무런 지표도 없었다.
그녀는 방향을 찾기 위해, 잠시라도 건물의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쉽게 오를 만한 벽면을 찾아, 모서리를 또 한 번 돌자, 몇 개의 골목이 만나는 작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법(正法)에 이른 노승이 소나무 등걸을 뜯어 먹고,
치정(治定)에 힘쓰는 관리는 책장을 찢어 먹고,
득음(得音)한 시인이 달빛을 살라 먹는데…….”
낭랑하면서도, 섬세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내 상다리는 어찌하여 이리도 크게 휘어, 백성들 등골을 빼먹는가.”
공터의 한가운데에 서서, 시를 읊는 소년의 뒷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갈한 무명 백의(白衣)를 걸친 소년은 한낱 서생 정도로 보였다.
“이봐.”
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현지인이었고, 그녀는 그 소년에게 방향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봐, 안 들려?!”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에 잠긴 소년의 모습에,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서서 어깨를 잡아챘다.
“음?”
그녀의 아미가 치솟았다.
그녀를 돌아본 소년은 그녀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이게 누군가, 우리 얼마 전에 만났지 않았는가?”
“대공자……??"
그녀를 보고 알은체를 하는 것은 낙양검가의 무검자(無劍者), 연소현이었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만남이었지만, 어쨌든 아는 얼굴을 만나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뭘……, 아니.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그의 곁에는 그날 보았던 호위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당장 대로(大路)로 나가는 방향이나 알려 주시죠.”
연소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쩌다가 이런 골목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라도 나눠 봄이 어떻겠나?”
“뭐?”
그녀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이제까지 자신이 이루었던 모든 성취를 빼앗기고 도망치는 자신의 처지가 다시 떠올랐다.
지금까지 억눌러 놓았던,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쓸모도 없는 네까짓 게, 나에 대해서 알아서 뭘 할 건데?!”
그녀의 말에 대공자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게……"
그의 행동은 일견 자연스러웠지만,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느낌이 금주의 뒷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좀 이상해서 말이지.”
그의 동작은 어딘가,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저잣거리의 인형극(人形劇)에서 사용되는 인형과도 같았다.
부자연스러움.
위화감(違和感).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
연기 (演技).
“실컷 그렇게 열심히 도망가더니,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왔나?”
“......!"
그녀의 얼굴에서 급속도로 핏기가 빠져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들이, 심장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너, 넌 누구야?!”
대공자의 얼굴에, 아니, 그것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웠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세유화.”
들끓는 쇳물과 같은 목소리.
눈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시퍼런 귀화(鬼火).
그가 미소 짓자, 톱니와 같은 이빨이 빽빽하게 들어찬 것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열둘인가?”
그 끝없는 공포에 온몸이 떨려왔다.
“아니면 다시 하나부터 세야 하나?”
* * *
정아와 세아는 거대한 규모의 자연 동굴 안에서 어느 통로를 걷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엮인 동굴이었지만, 정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엄청난 규모네요, 언니.”
“그러게.”
또 갈림길이 나왔지만, 정아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방향을 정해 나아갔다.
“이제 흑골파는 사라졌는데, 이 모든 건물과 토지들은 어떻게 되는거죠?”
“금질이 가져가게 될 거야. 금주가 자신의 수양딸이었으니,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겠지.”
세아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서렸다.
“그게 자신의 '수양딸들'을 이용한 그놈의 사업 방식이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거지.”
만약 어떤 강력한 세력과 흑골파가 충돌을 일으켰다면, 금질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는 금주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수양딸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뿐이라 주장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정체불명의 고수하나라면?
그가 모든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다.
“……터무니없네요.”
세아의 손에 들린 횃불이 일렁여, 동굴의 벽면에 그림자들을 춤추게 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동생은 횃불도 없이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심지어 횃불을 가진 자신조차 몇 번을 미끄러질 뻔했다.
그러나 정아는 마치 잘 닦인 복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눈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물어보아도, 자신도 잘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잠시 후, 세아는 줄곧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너는 알고 있는 거지? 네가 모시는 주인의 정체.”
“네, 물론이죠.”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잠시 말을 잊었던 세아가 다시 자신의 동생에게 물었다.
“……무섭지는 않아?”
여러 가지가 함축된 물음이었다.
잠시 동굴에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접객당에서 떠났던 그날, 짐을 꾸렸어요.”
그녀가 대공자를 만나기 직전의 이야기였다.
“제 소유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겼어요. 전부 챙기고 나니, 작은 짐 꾸러미 하나가 되더군요.”
정아는 쿡쿡하고 웃었다.
“심지어 안에 든 것은 추억이 담긴 잡동사니들뿐이었죠.”
정아가 걸으며, 자연스럽게 한 바퀴 돌아 보였다.
연소현이 구해 준 고급 비단 옷가지가 곱게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검가에 들어온 이후, 저는 그 모든 나날을 투쟁처럼 여기며 살아왔어요.”
그녀의 머리에 꽂힌 보석 비녀가 횃불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결국 저는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세아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나부껴야 하는 이름 없는 들풀이었어요.”
정아의 걸음이 멈췄다.
세아는 정아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섭지 않냐고요?”
정아는 자신이 들고 있던 보따리를 옆에 내려놓았다.
“당연히 무섭죠.”
정아의 말투는 담담했다.
“그분은 늦여름에 모든 것을 부숴 버릴 듯 불어닥치는 태풍과도 같은 분이에요. 우리 같은 필부(匹婦)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존재지요”
그녀는 가만히 서서 통로의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를 알 것 같으면, 두 개가 숨겨져 있고, 둘을 찾아내면, 넷이 드러나죠.”
그녀의 두 눈에서 진한 황금빛 광채가 흘렀다.
“저는 그런 그분에게 의지하고, 보호받기 위해서, 그분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그때 세아의 귓가에 발소리가 만들어 낸 메아리가 들려왔다.
정아가 아까부터 서서 정확히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부터였다.
“헉, 헉.”
거친 호흡 소리에 불규칙하면서도 바쁜 발걸음 소리가 함께 들려 왔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판단을 채 내리기도 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녀들이 익히 아는 자였다.
“너희는……?!”
동굴 벽면을 짚고 거칠게 숨을 내쉬며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 세아가 숨을 삼켰다.
산발이 된 머리에, 전신에 피 칠갑을 한 그녀가 정아와 세아를 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살기가 실렸다.
“네년들……!"
그녀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외쳤다.
정아는 그녀가 그러든 말든 자신의 언니를 뒤돌아보았다.
“그분처럼 되기 위해서예요.”
세아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뭐라고?”
정아가 그런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주인님을 섬기는 이유 말이에요.”
그녀의 두 눈에서 황금빛이 진하게 번쩍였다.
“저도 그분처럼 되기 위해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