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명부마도(冥府魔道) (3)
“이걸로 열하나.”
무슨 조화인지, 멀리서도 너무나 선명하게 들리는 암천존자의 목소리였다.
세아는 그가 금주의 심장을 입가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와그작, 하고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눈앞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 * *
“규!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해!”
세아는 갈증에 목이 갈라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외쳤다.
“여기 아무도 없어요?!”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억지로 마른침을 삼키자, 목구멍에서 피 냄새가 올라왔다.
수분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소리를 치며 다니다 보니, 목구멍에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욕이라도 실컷 퍼붓고 싶은데, 목구멍이 아파서 욕도 못 할 지경이었다.
“하아.”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끝이없이 펼쳐진 골목길만이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태양도, 달도, 별도, 구름도 없이, 새빨간 하늘만이 보였다.
'도대체 여기 갇힌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하루? 이틀? 적어도 사흘은 지나지 않았을 터였다.
사흘이 넘었으면, 지금쯤 자신은 완전한 탈수 상태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
자신이 배웠던 생존 요령들을 어떻게든 쓰고 싶었지만, 이딴 환경에서, 생존 요령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온통 폐허가 된 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나마 높은 건물에 올라가 보았었지만,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같은 풍경이었다.
이쯤 되니, 슬슬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진 것인지 확신이 들었다.
'이건 진법(陣法)이야.'
그것도 들어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아주 지독한 진법이었다.
솔직히 그녀가 아는 진법과는 급이 달랐다.
'아니면 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앞을 향해 걷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시 걷고, 또 걸었다.
자신의 수하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은 괜찮을까.
규는……, 내공이 있으니 자신보다는 상황이 나을 것이다.
암천존자, 대공자 연소현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그 괴물 같은 인간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진 않을까.
수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희망은 불안으로, 불안은 절망으로 변해 갔다.
더는 걸을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바닥에 엎어진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죽는 걸까.’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되게 억울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무수한 미련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흩어져 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자신의 동생,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
정아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아직 제대로 회포도 풀지 못했는데.......'
그저 못난 말만 퍼부어 댔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정아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면.
“불렀나요, 언니?”
한 여인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도톰한 붉은 입술, 같은 여자가 보아도 질투가 날 정도의 미색을 지닌 여인이었다.
“정아야?!”
세아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자신에게 놀랐다.
“어? 이게 무슨……?”
그런 그녀를 향해 정아가 마음이 편해지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아요. 이 결계(結界)가 원래 그런 결계일 뿐이니까요.”
“결계라고?”
정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런 종류의 진법을 결계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 여기는 어떻게……"
그때 세아는 정아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정아야! 너 눈이……?!”
원래부터 정아의 눈동자가 색조가 아주 옅은 편이긴 했지만, 결코 황금빛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동공(瞳孔)이 마치 뱀처럼 세로 동공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걱정하실 건 없어요. 별것 아니니까요.”
정아는 겸연쩍게 웃더니, 세아의 손을 잡아챘다.
“자, 언니. 손을 꽉 잡으세요.”
“아니, 자, 잠시만……!"
정아는 세아의 손을 붙잡은 채로, 거침없이 폐허의 허물어진 벽면을 들이받았다.
아니, 들이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벽을 통과했다.
찬 공기가 허파를 가득 채웠고, 한기에 몸이 떨려 왔다.
세아가 감았던 눈을 뜨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결계에 갇히기 전에 있었던 바로 그 거리였다.
“정아, 너 어떻게……?"
정아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에요.”
그 말에 세아는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손을 잡고 가는 방향대로 함께 걸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규는? 다른 사람들은?”
“언니가 제일 마지막이었으니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정아가 거침없이 걸어 나가며, 언니를 안심시켰다.
“네가 사람들을 구한 거야? 결계라고 했었지? 이게 그 금주가 딱 죽으니까 시작됐었거든?”
정신없이 몰아치는 그녀의 질문에 정아는 차근차근 하나씩 모두 대답해 주었다.
“네, 제가 다른 분들은 전부 안전한 곳으로 모셨어요 네, 결계라고 해요. 아뇨, 그녀는 죽지 않았어요.”
“뭐……라고?”
정아는 걷는 도중에 살짝 뒤를 돌아보고는 미소 지었다.
“지금 주인님께서 추적 중이시니, 우리도 늦기 전에 얼른 가 봐요.”
세아는 정신없이 끌려가며, 정아를 향해 외쳤다.
“아니, 우리가 왜 거기에 가? 금주가 살아 있으면, 위험하잖니! 우리가 먼저 만나기라도 하면……?!”
그러자 정아가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정아야?”
정아는 세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니는, 그분께 하실 말씀이 있었던 것 아닌가요?”
묘하게 강한 확신을 가진 목소리였다.
“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자신의 속을 전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네 말이 맞아. 나는 대공자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정아는 싱긋 웃었다.
“자 자, 그럼 빨리 가도록 하죠.”
다시 정아의 거침없는 걸음이 시작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갔던 이전과는 달리, 세아는 그녀와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그런데, 너 대공자님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지?”
“네.”
정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지금은 전부 보이니까요.”
* * *
혹골파의 본진.
“오, 온다!”
휘적휘적한 걸음걸이와 함께 귀신이 걸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오는 하얀 가면을 쓴 암천존자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력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깡그리 몰살당하는 순간을 모두가 목격했었다.
그들이 아직도 본진에 남아 있는것은, 금주의 결계 탓에 어디로도 도망갈 수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귀, 귀신이다! 악귀야!”
“으아아아악!!”
단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남아있던 흑골파의 세력이 모두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암천존자다! 암천존자가 우릴 모두 죽일 거야!”
개중에는 그들에게 사신이나 다름없는 그의 명칭을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도, 도망치지 마! 도망치는 놈은 전부 목을 베겠다!”
간부의 외침은 허무하게 흩어졌다.
순식간에 넓디넓은 마당에 중간 간부만이 멍하니 남아 있게 되었다.
휘적휘적, 암천존자가 그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그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소현은 천근추(千斤墜)의 수법으로 그를 밟고 지나갔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졌다.
발걸음을 따라 피 보라가 흩날렸다.
암천존자는 휘파람을 불었다.
예의 그 곡조였다.
음산하기도, 처절하기도 한 음색이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진 흑골파의 본거지를 감싸고 돌았다.
누구도 도망치지 못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붉은 발자국이 그를 따랐다.
그는 거침없이 냄새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는 본진 지하에 있는 거대한 동공(洞空)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기다리고 있었소.”
그의 앞에는 금주의 총관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망연하면서도 어딘가 후련했다.
불길하게 빛을 반사하는 하얀 탈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이런 상황이 오게 될 것을 예전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금주라면 저쪽의 작은 방 안에있는 비밀 통로로 빠져나갔소. 기관에 의해 감춰져 있지만…….”
그는 묻지도 않은 말에 답했다.
“뭐, 당신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암천존자는 그의 뒤를 바라보고있었다.
“이것은……"
총관의 뒤에 자리한 그 넓은 동공 전체가 시체로 가득했다.
“금주가 전투 능력이 없는 모든 이들을 이 동공에 가두라 지시했소.”
그녀가 암천존자를 맞이하기 위해서 본진을 떠난 뒤, 총관은 급히 이곳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시야에 모든 것이 죽어 있는 광경이었다.
어린 것도, 소녀도, 소년도, 남자도, 여자도, 하녀들도, 하인들도, 전부 죽어 있었다.
동공의 바닥에는 그들의 갈라진 배에서 홀러나온 내장과 피가 무언가 대단히 불길한 문양들을 그려낸 채 말라붙어 있었다.
대주술의 흔적이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시신들의 마지막 표정과 마지막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다.
누구 하나 눈도 감지 못한 채였다.
“나는 그때야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을 느꼈소.”
연소현의 시선이 구석을 향했다.
그곳에는 한 구, 한 구, 정성스럽게 누워 있는 시신들이 있었다.
그가 오기 직전까지 늙은이가 그들을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두 죽은 이들인데,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소.”
“소용없지.”
총관은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뒷골목 생활로 목숨을 연명한 지, 한 갑자(甲子)가 넘었다.
그동안 못 볼 꼴도 많이 보았고, 그가 자신의 손으로 저지른 악행도 부지기수(不知其數) 였다.
이제야 가책을 느끼는가?
아니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악행을 방조(傍助)하고, 손수 실천했다.
그리고 그 변명은 더 큰 악행을 보고 넘기게 했고, 더 큰 악행을 저지르게 했다.
지금에 와서 이런 행동을 하는것은.......
'그래, 이 늙은이의 작은 변덕에 불과한 것이지.'
투욱-.
어딘가 조금이나마 개운한 미소를 짓는 머리통이 바닥에 굴렀다.
"......."
암천존자의 시선이 그의 머리에 남아 있는 미소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의식에 동원되어 죽어 나자빠진 이들의 고통에 젖은 얼굴에 머물렀다.
그들은 수백이었다.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가.
그들이 약하게 태어난 것을?
그들이 다른 길을 찾기 힘든 환경 속에서 태어났음을?
그저 누군가가 살려고 발버둥 치면, 누군가를 해하고야 마는, 그런 장소에서 자란 것을?
그런 곳이 무수하고, 그런 이들이 부지기수로 많은 낙양이라는 도시를?
그 바로 맞은편에서 밤조차 잊고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도심을?
그리고 그런 도시들이 대도시라 칭송받는 이 세상을?
원망하려거든 어질지 않은 하늘을, 땅을 원망하라.
“그리고 나를 증오하여라.”
자신만 깨끗한 채 있고 싶어,
그저 두 손을 놓고 시 짓고, 악기를 연주하며 세상에 눈 돌렸던 무검자를 저주하라.
그는 그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검자 연소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암천존자였다.
지금의 그는 사상가(思想家)가 아닌 집행자(執行者)였다.
그는 그저 휘파람을 불었다.
그 곡조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구슬펐다.
아무도 살아 있지 않은 곳에서,
누구도 듣지 않는 곡조가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 곡조는 누구를 위해 그리도 구슬프게 동공 안을 메아리치는 것일까.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그의 발걸음에는 피가 묻어 나왔다.
그 피는 결코 마르지 않을 것처럼 끊임없이 그의 족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하얀 가면 밑으로 이슬이 반짝였다.
그 이슬은, 너무나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