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3화 (33/350)

제8편 시산혈해(屍山血海)

혹조광견 (黑爪狂犬).

벗은 상의 전체에 검은 해골 문신을 빽빽하게 채운 그는 흑골파의 전문 해결사로서 악명이 자자했다.

무공을 익힌 주제에 관군(官軍)같은 일반인이나 좀 죽이고, 칼잡이들 몇 명 죽였다고 으스대는 흔해 빠진 흑도 무림인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는 흑골파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무림인을 전문적으로 사냥해 왔다.

생사결(生死決)을 자신의 업으로 삼은 타고난 승부광얘號負狂)이었다.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은 자신의 애병(愛兵)인 흑조였다.

단단하기 짝이 없다는 흑철(黑鐵)이 섞인 합금으로 만든 그의 조는 이제까지 수많은 적의 병장기를 부러뜨려 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흑철합금 조가 단 일수(一手^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

이제까지 쌓아 왔던 무수한 생사결의 경험도, 경험으로 쌓아 올렸던 예리한 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의 애병을 박살 내면서 들어온 상대의 손아귀는 그의 가슴뼈를 박살 내고, 심장을 찢어발겨 버린 후에, 척추를 끊어 버린 후에, 그의 등 뒤로 튀어나왔다.

거기까지 단 일수였다.

당랑귀마(螳螂鬼魔)라 불리던 이는 자신의 사슬낫을 한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삼등분되었다.

철주(鐵柱)라 불렸던 이는 최초의 일격 이후, 끔찍한 마기에 몸이 녹아들어 숨이 끊어졌다.

암운공(暗雲功)의 달인이던 이도, 마치 쌍검을 살아 있는 것처럼 다룬다던 쌍교수(双蛟手)도, 일살일문(一殺一問)도.

그들은 아무런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 허공에서 찢겨 나가, 피 안개가 되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낙양의 흑도 무림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도살(屠殺)이었다.

“미, 미친……?!”

엽호(獵虎), 강자무는 상황 파악을 빠르게 마쳤다.

가장 앞서서 탑을 타고 올랐던 이들이 토막 나 홑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자랑인 경신법을 펼쳐, 탑 외벽을 달려 내려갔다.

조금 과할 정도로 빠른 주제 파악과 뛰어난 경신법이 이제까지 그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 일등 공신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만났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허공에서 분해되었다.

그의 피와 살덩이가 뒤이어 탑을 오르던 이들에게 뿌려졌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어쓴 이들도 곧 같은 처지가 되었다.

탑의 외벽을 타고 오르던 이들이, 우수수 죽어 나갔다.

검은 마기를 휘감은 신형이 가로지르는 곳마다, 비린내를 풍기는 혈화(血花)가 피었다.

그 광경은 묵색(墨色)의 이무기가 탑을 타고 기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탑에 오르지 마!”

그렇게 먼저 뛰어든 이들이 허무하게 살해당하자, 뒤에서 따르던 이들은 운신이 어려운 탑을 오르는 것이 멍청한 일임을 깨달았다.

“넓게 포위해!”

순식간에 이(二)할에 가까운 이들이 살해당했지만, 그들은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괴물 같은 위용을 보여 준다고 하더라도, 벽을 넘은 고수들에게도, 내공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시간을 끌어! 어떻게든 시간을 끌라고!”

“정면으로 받아치려고 하지 마! 보법을 활용해! 측면에서 도와주란 말이다!”

그리고 개전 초기에 저런 식으로 마구 내력을 소모하면, 틀림없이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벽에 다다랐거나, 벽의 존재를 느낀 이들은 가장 뒤에서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놈의 내력만 바닥을 보이면...…!'

* * *

규와 함께 금주에 대항하여 싸웠던 미소녀는 현월각의 요원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지붕 위에 올라 있었다.

암천존자의 전투를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와, 말도 안 된다. 진짜.”

그녀의 작은 입이 크게 벌어졌다.

처음엔 그녀도 탑을 포기하고, 지상에서 암천존자를 넓게 포위한 이들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고수를 상대로는 차륜전으로 시간을 끌어, 상대의 내력을 고갈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암천존자는 그런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처음과 같은 위력과 속도로 장내를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마치 무한한 내력이라도 지닌 것 처럼.

“대단해……"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짜릿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존재를 영접할때 느끼는 감정, 외경(畏敬)이었다.

“미친……"

그런 그녀의 모습에 붕대로 거의 온몸을 감싼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반응에 미소녀가 볼에 바람을 불어 넣어 보였다.

“뭐가 미쳤는데?”

남자는 멀리서도 느껴지는 살을 엘 듯한 살기에 몸을 떨면서 대답했다.

“……네 머리통이 망가진 것을 진작 알고는 있지만, 저게 멋있다고?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암천존자가 한 흑도 무림인의 목을 비틀어 뽑아 버리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머리통이 붙잡히자마자 그 흑도 무림인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온 하얀 손들에 붙들려 제대로 된 저항은 하지도 못했다.

그사이에 두 명의 흑도 무림인이 각자의 무기로 암천존자의 뒤를 노렸다.

하지만 암천존자는 머리통을 잃은 몸통만 남겨 둔 채 사라진 뒤였다.

목표를 잃은 이들이 잠시 당황한 사이, 암천존자는 그들의 뒤에서 스윽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양손이 번뜩였다.

두 흑도 무림인은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허리가 갈라져 죽었다.

그들이 갈라져 죽는 모습 너머로, 암천존자는 그가 비틀어 뽑았던 머리를 물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벌어진 '그것'의 '아가리'가 그 머리통을 단숨에 씹어 박살 냈다.

그것이 광소를 터트렸다.

광소에 타격을 입은 흑도 무림인들이 주춤거렸다.

그것의 아가리에서 박살 난 머리통의 내용물들이 이리저리 홀러내 렸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붕대를 감은 남자는 혐오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저건, 사람일 수가 없어.”

암천존자.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비웃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천벌을 내린다니.

유치하기 짝이 없잖은가.

또 어디선가 정의감에 불타는 별난 협객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경을 느끼기도 했다.

그 강력한 혹골파를 단 이틀 사이에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위업이라니, 그로서는 꿈에서나 그릴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암천존자는, 그의 막연했던 상상과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저것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위를 온통 감싸고 있는 알 수 없는 소름 돋는 기운,

기괴한 소리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습,

바닥에서부터 솟아올라 시체를 삼켜 버리는 하얀 손들,

송곳 같은 이빨이 가득한 아가리로 사람을 산 채로 씹어 먹는 것까지.

최악의 악몽 속에서 지금 막 뛰쳐나온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저것과 자신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덕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것의 목표가 자신이 아니었던 덕분이었다.

“마물(魔物)……"

그 외에 무슨 말로 저것을 지칭 할 수 있을까.

* * *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그는 가장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놈의 힘이 빠지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는 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금주에 의해서 고액을 받고 특별히 초빙되어 온 그는 즉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절기를 퍼부었다.

“으아아아아아!”

내공의 배분도, 싸움의 뒤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그야말로 모두 퍼부었다.

무수한 무림인들을 쓰러트렸던, 절기들이 전방을 초토화했다.

구조가 불안정했던 건물 몇 채가 그대로 무너져 내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이 정도로 절기를 퍼부은 적이 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순간 한계 너머를 언뜻 엿보았다고 느낄 정도로 완벽하게 펼쳐진 공격들이었다.

“허억, 허억.”

그는 자신의 장도(長刀에 기대어 겨우 버티고 섰다.

내력이 급속도로 모두 소진되며, 눈앞이 핑핑 돌았고, 혈도가 모두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우웩!”

말도 안 되는, 평소의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무리한 내기의 운용이 었다.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했다.

단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자욱하게 솟아오르는 흙먼지 너머에서 느껴지는 놈의 시선을.

그 얼어붙을 것 같은 살기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음을.

“X발……!"

마지막 순간,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쩍 벌어진 아가리 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이빨들이었다.

* * *

'말도 안 돼……'

금주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도 말이 되는 것이 없었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끔찍한 기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놈에게서 피어나는 유황 냄새에 코가 썩어 떨어질 것 같았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마지막까지 버텼던 이들도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그 미치광이 스승에게 배운 비술까지 사용한 자신이라면 이길 수 있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홀로 남아, 처음보다 훨씬 더 강해진 놈을 상대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아니야, 아니야……'

그녀는 아까부터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을 흩어 버리려 노력했다.

저것이 보이는 강함은 계속 그녀에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이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저것은 마치 자신의 스승과 같았다.

풍기는 기운도, 기세도, 외양도, 전혀 달랐지만, 같은 점이 분명 있었다.

아무런 상식도 소용없다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어떤 것도 말이 되질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녀 따위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까지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지금 벽을 넘었다고! 나는 지금 고수가 되었다고!’

비록 일시적이지만, 지금 자신은 벽을 넘은 상태였다.

모든 이가 내공을 얻는 그 순간부터 꿈꾸는 경지.

극히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나 마찬가지인 경지.

인간이 그 종으로서 한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나는 그 경지에 자신은 지금 도달해 있었다.

'나는 지금 강하다, 나는 강하다고……!'

이 비술을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수명까지도 희생했다.

그것도 수십 년의 수명을.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운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여 버리겠어! 저놈을 죽여 버리고, 그 계집들도 전부 찢어 죽여 버리겠어! 나를 비웃었던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 죽여 버릴 테다!’

일시적이나마 진정한 강자의 길에 발을 디뎠음에도, 낡아 빠진 건 물 속에 숨어서, 마음속으로만 죽이겠다고 외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력을 끌어 올리지도 못하고, 살기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귓가에 조금 전부터 들려오던 휘파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도 인정하지 못했다.

그 처절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구슬픈 곡조(曲調)가 지금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점차 주변의 기온이 떨어져 가는 것도, 유황 냄새가 짙어져 가는 것도 모른 체했다.

"......."

하지만 결국 자신의 뒷덜미에 그것의 입김이 느껴졌을 때, 더는 외면을 할 수 없었다.

“여기에 있었구나, 금주.”

그가 자신의 말을 고쳤다.

“아니, 세유화라고 불러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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