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7화 (27/350)

제2편 암천존자(暗天尊者)

첫닭이 울었다.

한겨울이 지난 낙양 거리는 조금씩 일러지기 시작한 여명(黎明)을 맞이했다.

먹고살기 위해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리에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네 들었는가?”

패물점(佩物店) 장 씨가 넌지시 운을 던졌다.

“……혹시 그건, 지난밤의 흑골파에 대한 소문 아닌가?”

평소라면 장 씨가 하는 이야기들을 풍문일 뿐이라며 손사래 쳤던 목기점(木器店) 탁 씨가 의외로 그의 말을 받아 주었다.

하지만 소문의 대상이 대상인지라 그들의 말은 나지막하게 오갈수밖에 없었다.

“하룻밤에 다섯 군데의 소굴이 박살 났다더군.”

“다섯 군데? 내가 듣기로는 일곱이라고 하던데?”

“어허, 이 사람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가?”

탁 씨가 장 씨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장 씨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자 탁 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손위 처남이 관아에 있지 않나? 밤새 낙양 전체가 비상이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관아에서 조사 한 바에 따르면……"

“하룻밤 만에 일곱 군데라고?”

탁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내가 듣기로는 열 군데라고 하던데?”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탁 씨가 깜짝 놀라 자빠졌다.

당황한 기색의 탁 씨가 주변을 보자, 어느 사인가 모여든 상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아냐, 왕 서방이 그러는데 열다섯 군데라고……

“무슨 소리야? 나는 서른 군데라고 들었다고!”

백성들이 흑골파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만큼,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빠르게 퍼졌다.

이윽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사람이 조금이라도 모이는 곳이라면 흑골파에 관한 이야기로 정신이 없었다.

“글쎄 소굴에는 시체 하나 남지 않았다더라고요.”

“시체는 무슨, 피도 한 방울 안남았다는군!”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 버린 인원이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하더라고!”

이런 이야기들은 항상 같은 질문으로 끝났다.

“과연 누가 그랬을까?”

* * *

“그러면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금주의 옷이며 치장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아도, 지금 그녀가 있는 실내(室內)의 호화로움에는 한 수 이상 밀리는 감이 있었다.

“내가 언제 네년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나? 대(大)낙양검가가 정보가 없다고?”

상석(上席)에 앉은 중년인의 나직한 물음에, 금주는 자신의 뒷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깊이 숙인 금주를 향해 중년인이 혀를 찼다.

“주제도 모르는 것 같으니. 겨우 그 정도 일을 가지고, 나를 이 바쁜 아침부터 귀찮게 해?”

겨우 그 정도 일이라는 말에 금주는 속으로 발끈했지만, 더욱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실제로 자신의 앞에 있는 이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흑골파와 관련된 일은 사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중년인이 손가락을 들어 귀하디 귀한 혹단목(黑檀木) 탁자를 두드렸다.

“내가 설마 네 아비의 영향력 때문에 검가동패를 네년에게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금주의 양아버지인 금질은 낙양 암흑가에서는 무시무시한 위명을 떨치는 인물이었지만, 감히 낙양검가의 이름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소녀,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납작 엎드렸다.

중년인은 흑단목 탁자 위에 놓인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네년 때문에 낭비한 시간이 일각(一亥IJ)이 다 되어 간다.”

그는 업무 보조 하녀가 정중히 건네는 서류 뭉치를 받아 들고 말했다.

그 하녀 이외에도, 다른 하녀들이 서류들을 한 아름씩 안고 줄을 이어 대기 중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

절을 올리고 물러나는 금주의 뒤로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만 더 나를 실망하게 하면, 검가동패는 다른 이에게 넘기도록 하겠다.”

안색이 붉어진 금주는 빠른 걸음으로 거대한 규모의 전각을 빠져나왔다.

'젠장, 검가의 고수를 초빙하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잖아.'

분위기상 아마,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면 그 자리에서 처분을 당했을 터였다.

큰길로 나선 그녀는 한 무리의 무사들을 볼 수 있었다.

얼핏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검(劍)을 패용(佩用)한 낙양검가 무사(武士)들의 무리가 질서 정연하게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딱 봐도 그녀가 부리는 흑도 무림인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 느껴지는 이들이었다.

'……제기랄.'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방법을 생각하며, 몸을 틀었다.

“어이쿠, 죄송.”

그녀와 부딪칠 뻔한 남자가 짧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저도 실수를……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남자는 급한 발걸음을 재촉하여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이 개 같은 검가!’

뒤에서 금주가 노려보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는 남자는 서둘러 상관(上官)의 거처로 향했다.

명백히 외곽에 있는 작은 거처는 그들 부서가 받는 천대의 수준을 알 수 있게 할 만큼 초라했다.

그는 단숨에 상관의 방문을 열어 젖혔다.

“일어나시오! 해가 중천이오!”

천문에 관한 서책들과 먼지 쌓인 천문관측의(天文觀測儀) 따위가 그들의 직책을 짐작하게 했다.

그들은 검가의 대표적인 한직(閑職), 천문관(天文官)들이었다.

물질주의(物質主義)가 팽배하는 시대, 미신(迷信)을 믿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의 존재 가치는 희미했다.

게다가 날씨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상관(氣象官)들이 떨어져 나가며, 그들 천문관은 더욱 할 일이 없어진 탓도 컸다.

“드르렁.”

상관은 일어날 기색도 없었다.

남자는 술 냄새가 가득한 방 안의 공기에 코를 감싸 쥐고는 인사불성의 상관을 걷어찼다.

“어, 어?! 무슨 일이야?!”

빈 술병을 안은 채 자고 있던 상관은 그대로 침상(寢牀)에서 굴러 떨어졌다.

“큰일이오!”

남자는 그릇에 냉수를 가득 따라 상관에게 건넸다.

“……이 새벽부터 뭔 일이야?”

물론 지금은 늦은 아침이지, 새벽이 아니었다.

“아, 너무 마셨더니 죽겠네.”

상관은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건네받은 냉수를 대충 옆에 두고는 눈곱을 떼며 하품했다.

그러든 말든, 남자는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어젯밤, 당직(當直)을 서고 있었소.”

상관이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너 아직도 혼자 매일 당직을 서고 있냐? 참 내, 그걸 누가 알아준다고.”

남자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흉조(凶兆)요.”

상관은 인상을 찌푸렸다.

“흉조 정도는 흔하잖아.”

“대흉조(大凶兆)요.”

그제야 상관이 조금 정신을 차렸다.

“대흉조라고? 뭐였는데?”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지난밤 천살성(天殺星)을 관측한 거 같소.”

천살성이라는 말에 상관은 옆에 밀어 두었던 냉수를 그대로 들이켰다.

그리고 남은 물을 자신의 얼굴에 부었다.

“……진짜냐? 천살성이라고?”

남자는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천살성은 관측하기가 대단히 까다롭지 않소? 위치도 일정하지 않고, 형태도, 색도……"

“다양하지. 거기다가 관측 가능한 시간도 짧고.”

말을 받은 상관이 얼굴을 문지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확신해? 그 전설 속의 천살성이라고? 우리도 책으로 공부한 게 전부잖아.”

“……나도 확신하냐면,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철저하기 짝이 없는 성격의 부하가 그 정도로 표현하면, 정확하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미친……"

과거로부터 등장하면, 엄청난 혈사(血史)를 동반했던 것이 바로 천살성이 었다.

“위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소?”

상관은 한숨을 쉬었다.

“이걸 보고한다고? 요즘 세상에 누가 우리 말을 믿겠어? 그것도 천살성이라고?”

“그건……"

그 말에 남자는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로서도 따로 반박할 말은 없었다.

“그럼, 적어도 우리 기관의 책임 감독관에게라도 보고해야……"

“우리 책임 감독관에게 보고한다고? 하긴 해야겠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럴 거 같긴 하지만……"

그들 조직, 천문각(天文閣)의 감독관은 검가에서 가장 권력이 없는 권력자.

무검자, 연소현이었다.

* * *

낙양의 구석에서도 구석을 돌아, 골목에서도 골목에 있는 빈민가.

그 골목은 들끓는 빈민으로 가득했다.

필시 멀쩡한 사람들이라면 찾지 않을 장소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장사치와 고관대작들까지도 그곳을 찾곤 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곳에는 낙양 제일의 예언가가 살고 있었다.

'움'이라는 것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겨우 사람이 들어앉을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그 건물과 건물 사이의 움막에 들어앉은 늙은 맹인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 그렇 게 많은 사람이 이 위험천만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골목을 찾았다.

평소엔 믿지 않더라도, 인생이 막연해지면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마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오오……"

이름조차 알리지 않아, 그저 움막선생으로 불리는 노인이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태양이, 태양이 보이지 않아……"

그는 분명, 장님이었다.

무슨 이유에선가 두 눈을 잃은 그가 해를 보지 못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언령(言靈)이 담겨 있었다.

“하늘이……"

그는 살이라고는 없는 메마른 팔을 들었다.

그 두 팔이 사시나무가 떨리듯 떨렸다.

그는 하늘에서 태양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찬란하던 태양은 더는 그곳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이 칠흑 같구나. 해가 가렸어. 더는 태양을 볼 수가 없구나.”

그의 영안(靈眼)에 비친 하늘은 칠흑과도 같았다.

한 점의 빛도 없는 그 하늘은 너무나 짙은 구름에 겹겹이 가려져 있었다.

달도, 별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생 눈알을 뽑아 버리고, 영안을 얻은 지 일 갑자(甲子) 이상이 지났건만, 이런 광경은 생전 본적이 없었다.

“이, 이것은?!”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노인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그는 간신히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 문장을 만들었다.

“암천(暗天)……! 암천의 주인이 나타났다!”

빈민가에 자리 잡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걷지 않았다면, 근육이 모두 쇠하여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해야 하건만, 그는 일 어났다.

앙상하게 마른 다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렸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경(魔經)! 마경이 깨어났던 것인가?! 어둠을 살라 먹고, 하늘을 떨게 만드는 그 천고(千古)의 마물(魔物)이 나타났단 말인가?!”

한 쪼가리 누더기를 걸친 앙상한 육체가 움막에서 벗어났다.

그는 환희에 떨며 소리쳤다.

“암천의 주인이 나타났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악인들을 응징하실 그분께서 임하셨다! 못 가진 이들이여, 못 먹는 이들이여 환호하라! 무심한 하늘과 땅을 대신해서 검은 벼락을 내릴 암천존자(暗天尊者)가 오셨으니!!”

노인의 앙상한 몸이 마지막 생(生)의 불꽃을 태우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던 빈민들이 멀찍이서 웅성거렸다.

그들의 뇌리에는 노인이 남긴 최후의 예언이 선명하게 박혔다.

그리고 낙양에 이런 풍문이 더해졌다.

“흰 탈을 쓴 귀신을 만난다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라. 네 죄를 묻는다면 숨김없이 답하라. 그는 천벌(天罰)의 대행자, 암천존자(暗天尊者)이리니! 하늘이 두려운 줄 모르던 대죄인들은 누구도 감히 그의 앞에서 도망치지 못하리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