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5화 (25/350)

제25편 광기(狂氣)

연소현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뒷골목 특유의 악취- 대소변 냄새, 무언가가 썩는 냄새, 곰팡내, 하수로에서 올라오는 냄새, 그리고 녹아내린 내장과 끓어오른 혈액의 냄새가 상쾌했다.

그의 심장이 경쾌하게 박동을 할때마다, 제암진천경의 마기가 전신의 혈관과 혈도를 내달렸다.

현실을 왜곡하고, 침식하는 마기가 상단전을 휘젓고, 뇌리까지 치솟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시야 안에 들어왔고, 모든 것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불가능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느껴졌다.

그것은 전능감(全能感)이었으며, 동시에 광기였다.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 깊은 곳에서 거친 짐승의 소리가 그르릉하고 흘러나왔다.

연소현은, 제암진천경의 마인(魔人)은 복도에 길게 늘어선 먹잇감들을 바라보았다.

“……연회의 시작이다.”

거친 금속음으로 이루어진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주, 죽여!”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흑골파의 조직원들이 발작적으로 무기를 쳐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와라!”

연소현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가장 앞에서 덤벼드는 놈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고, 자포자기한채였다.

놈이 휘두르는 도(刀)는 도라고 부르기도 힘든 구질구질한 싸구려였다.

멋을 낸다고 도병(刀柄) 끝에 매달아 놓은 더러운 술의 가닥가닥이 흩날리는 것까지도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피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연소현은 가만히 서서, 머리로 그 일격을 받아 냈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담금질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불순물 가득한 도는 그대로 부러져 날아갔다.

부러진 칼날이 천장에 박혔다.

가렵지도 않았다.

연소현은 놈이 충격으로 놓쳐 버린 칼자루가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놈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폭음과 함께 놈의 머리통이 내리친 그 방향대로 폭발했다.

마치 강하게 내리친 채찍처럼, 놈의 뇌수와 피 그리고 뼛조각이 바닥에 쏟아졌다.

칼날을 잃은 칼자루가 그제야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통은 옆으로 휘청이며 반 바퀴를 돌더니, 복도 벽에 기대듯이 쓰러졌다.

그 모습에 연소현은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역시 연회에 춤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아니겠는가.

“으아아아!”

다음 놈이 도끼를 들고 뛰쳐 들었다.

연소현은 양손을 뻗어 놈의 양팔을 잡아 뽑았다.

놈이 소리 높여 비명을 지르는 동안, 연소현은 들고 있던 놈의 양팔을 바닥에 버렸다.

“내 파아아알......!"

잠시 그 기괴한 춤을 감상하던 연소현은, 놈의 아가리를 천천히 찢어 주었다.

그 틈에 두 놈•이 덤벼들었지만, 동시에 허리가 찢어져 날아갔다.

뒤에서 밀어붙이니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밀려왔던 놈은, 입을 쩍 벌린 연소현에게 붙들려 그대로 머리 통을 씹어 먹혔다.

연회에는 음식도 빠져선 안 되는법.

연소현이 그런 식으로 한가롭게 말할 동안에도, 칼날들이 날아들었고, 둔기가 내리쳐졌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고, 연소현이 몸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복도에는 신체일부를 잃은 시체가 늘어만 갔다.

냄새나고 더럽던 그 복도는, 노래와 춤과 음식이 가득한 최고의 연회장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 * *

연소현은 즐거운 미소와 함께 또 하나의 몸통을 수도(手刀)로 꿰뚫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졌다.

하지만 흑골파는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연소현이 몸통을 꿰뚫음과 동시에 반대편에서 시퍼런 칼날이 튀어 나왔다.

그 칼날은 가공할 속도로 연소현을 향해 치달았다.

"흐......!"

연소현은 나지막한 코웃음과 함께 몸을 뒤로 젖혀 그 칼날을 피해냈다.

몸통을 뚫어 버리고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그 장도(長刀)는 매끄러운 표면에서 시퍼렇게 빛을 반사했다.

그리고 그 칼날에는 폭력적인 기운이 넘칠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연소현이 그 일섬(一閃)을 피한 이유이기도 했다.

속도와 기술, 그리고 고급품이 분명한 장도까지, 드디어 무공을 익힌 실력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공격은 매서운 찌르기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괴뢰(傀儡)."

나지막한 읊조림과 함께, 물리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하듯이, 그 찌르기는 베기로 전환되었다.

두부를 갈라 버리듯 시체를 갈라버리며 시퍼런 칼날이 연소현에게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잡았다!'

장도의 주인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

이 괴물은 짐승과 같은 감각으로 사각에서 들어간 자신의 첫 일섬을 피해 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몸을 뒤로 젖혀 피한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그렇게 무게중심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는, 자신의 독문절기(獨門絶技) 괴뢰를 통한 연격(連擊)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그러나 시체를 가른 자신의 일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로질러 애꿎은 바닥에 깊은 상흔(傷痕)을 남겼을 뿐이었다.

“재미있는 기술이었다.”

그의 귓가에 차디찬 상대의 입김이 닿았다.

만약 칼 밥을 덜 먹은 애송이였다면, 그 순간 어쩔 줄을 몰랐으리라.

생각도 판단도 거치지 않았다.

수많은 실전으로 담금질된 그의 몸은 반사적으로 또 한 번의 기술을 펼쳐 냈다.

회륜(回輪).

회수(回收)와 공격을 일체(一體)시킨 또 하나의 독문절기.

입김이 닿았던 방향을 향해, 도신(刀身)이 발사되듯 튕겨 올랐고,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호흡에 수십 번의 연격을 퍼부었다.

“흐아압……!"

마치 칼날이 수십 개로 불어난 것처럼 공간을 갈기갈기 찢었다.

괴물은 이번엔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 수십의 연격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기다란 손톱들이 그의 도신과 부딪칠 때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허억, 허억!”

이윽고 연격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들이켰다.

단 몇 수 만에 상당히 소진되어 버린 내공도 문제였지만, 무리한 기술의 연계가 이어진 것 때문에 거칠어진 호흡 때문에 내력의 흐름이 무너져 버린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망할 괴물 새끼.'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벌써 끝인가?”

자신은 상대의 손톱에 전신이 난도질당해, 자기 피로 목욕을 하고 있었지만, 하얀 가면의 괴물은 옷자락 하나 베인 곳이 없었던 것이었다.

“막 흥이 오르던 참이었는데, 아쉽군.”

괴물의 거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긁었다.

“……X 까!”

그는 지금의 일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남은 내공도, 집중력도, 모두 쏟아부었다.

물론 지금까지 보여 준 괴물의 능력을 보면, 자신의 마지막 일격은 허무하게 막힐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괴물 양쪽 옆의 복도가 부서지며,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두 명의 무림인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상대가 가장 방심한 순간을 노린 완벽한 기습이었다.

'됐다……?!'

그러나 그가 다음 순간 본 것은 그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그의 도신은 괴물의 이빨에 물려 그대로 박살 났고, 동시에 기습 협공이 괴물의 양손에 허무하게 막혀 버렸던 것이었다.

괴물이 도신 조각을 뱉었다.

“이게 최선인 것이냐?”

그때 그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처음부터 괴물을 사냥할 확률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괴물은 그저 자신들을 잡아먹기 전에 가지고 놀고 있는 것뿐이었다.

“으아아!”

그의 시야에 괴물의 완력에 붙들린 무기를 포기한 두 명이 각각 부무장과 적수공권으로 덤비는 것이 들어왔다.

이어서 무언가 번쩍거리고, 굉음이 이어졌다.

그때야 그는 자신의 내력이 모두 바닥났음을 깨달았다.

흩뿌려지는 피 안개와 치솟는 피분수, 그리고 소음이 잠시 이어졌다.

그도 남은 체력을 동원해 다시 괴물에게 덤벼들어 보았지만, 내력도 없이 덤빌 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괴물의 가벼운 손짓에 의식을 잠시 잃었던 그가 깨어난 것은 끔찍한 비명 소리 때문이었다.

“끄아아아!”

괴물은 자신에게 등을 보인 채, 무림인 하나를 산 채로 뜯어 먹는 중이었다.

복도는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 지는 소리, 그리고 비명으로 가득했다.

그는 무력함과 공포에 사로잡힌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울기도 하고, 빌어 보기도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 *

“미친 괴물 새끼!”

마기를 거두어들인 연소현은, 마지막으로 남은 소굴의 두목에게 물었다.

“내가 미친 괴물이라고?”

두 다리의 무릎이 완전히 박살난 두목이 악에 받쳐 연소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지X하네. 그럼 네놈이 미친 괴물 새끼지, 뭐 대단한 고수라도 되는 거 같으냐?!”

연소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지하의 공간에 마련된 도축장이었다.

한곳에 모은 내장이 커다란 솥에 삶기고 있었고, 그보다 많은 내장이 쌓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쪽에는 발골(拔骨) 작업이 한창이었었는지 뼈와 고기가 너부러져 있었고, 구석에는 엄청나게 쌓인 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대기 중인 커다란 고기들이 갈고리에 걸려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소현이 서있는 곳이, 고기에서 피를 빼는 작업이 진행 중이던 장소였다.

바닥은 홍건한 피로 커다란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었고, 고랑을 따라 하수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는 거꾸로 매달려있는 '인간의 시체들'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소현은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시신을 바라봤다.

뼈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었다.

특이한 점은 어째서인지 여인의 배가 갈라져 있다는 정도였다.

연소현은 아직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시신의 눈을 감겨 주며, 두목에게 물었다.

“……내가 미쳤다고?”

지하 인육 공장의 책임자가 부서진 하체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연소현의 말을 받아쳤다.

"멍청한 새끼야! 이건 다 그냥 사업일 뿐이라고!”

"......."

잠시 할 말을 잊었던 연소현이 책임자의 책상에 있던 그릇을 들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한창 식사 중이었는지, 그릇과 내용물은 여전히 따뜻했다.

연소현은 그 안에서 고기 건더기 하나를 건졌다.

크기로 보아 태아의 것이 분명한 손목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어째서 여인의 배가 갈라져 있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그냥 사업이라고?”

책임자가 발작처럼 외쳤다.

“미친놈아! 사업이 뭔데?! 사업을 왜 하는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잖......!"

순간 사라지다시피 한 연소현이 책임자의 머리통을 붙잡아 벽면에 처박았다.

“끄아아……!"

연소현은 책임자의 머리통을 벽면에 천천히 바르듯이 문지르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먹는 것은 광기고, 저들이 사람을 죽이고, 팔고, 먹는 것은, 사업이라고 한다.

이들은 사람을 죽이고, 도축하고, 팔아 치우고, 먹어 치우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아, 힘든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연소현은 머리가 반쯤 갈려 죽은 책임자의 시체를 빈 갈고리에 거꾸로 박았다.

그 갈려 나간 머리통에서 피가 쏟아져 내려와 바닥에 튀었다.

너무 빠른 죽음인 것 같지만, 연소현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지하층 어딘가에 분명 신선한 고기를 위해 살아 있는 이들을 가둬두는 우리가 있을 터였다.

그들을 찾아야 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자기 자신을 향해 질문했다.

미친 것은 나인가,

아니면 이 세상인가.

제암진천경 -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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