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편 진혼(鎭魂)
두 거한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거리는 여전히 소란스럽고, 복잡했지만, 누구도 그 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누구도 그 둘이 걷는 길을 막지 않았다.
그들은 걸으며, 옆의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이들의 술독을 빼앗아 들이켜기도 하고, 노점에서 굽던 꼬치도 몇 개 먹어 치웠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순찰하던 관병(官兵)들조차, 그들을 본체만체할 뿐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은 관병들보다도 머리 하나 이상 큰 키에, 사람이 아니라 황소처럼 보이는 덩치.
추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대강 걸친 상의 사이로, 수십, 수백개의 검은 해골 문신과 크고 작은 흉터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흑골파였으며,
그들은 무림인이었다.
기(氣)라는 신비로운 힘을 내공(內功)이라는 형태로 다룰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초인(超人)들.
누구도 그들을 막아서지 않았다.
* * *
잠시 후 그들은 가면 공방이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아, 저긴 거 같은데?”
가면 장인의 공방은 큰길에서 벗어나 한적한 안쪽 골목에 있었다.
그들은 골목 입구에 서서 가면 장인의 공방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도 그 가면 장인 놈으로는 안 보이는데.”
“그러게.”
가면 공방의 입구, 상점 가판대에는 백색 무명옷을 입은 소년이 앉아 있었다.
드문드문 지나는 이들이 있었지만, 묵묵히 손에 든 나무조각만 깎는 그 소년의 자세는 한없이 무료해 보이기도 했고,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제자……가 있었나?”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겠소.”
골목길을 지나던 이들이 거한들을 발견하고, 뒤를 돌아서 흩어졌다.
소년은 두 거한이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나무조각을 깎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어이.”
“가면 장인 놈은 어디 갔나?”
조각칼이 멈췄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작업을 하던 소년이 얼굴을 들었다.
“......?!”
두 거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소년의 얼굴에는 아무 문양도 없고, 눈구멍도 존재하지 않는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대충 마감된 가면에 흐르는 하얀 광택이 어째서인지 불길하게 번들거렸다.
"흠."
아무리 순간적이라지만, 가면 따위에 놀라다니.
평소의 자신들이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이, 꼬맹아. 어르신들이 묻지 않느냐.”
그는 은근슬쩍 기세를 흘렸다.
호랑이를 만난 심마니처럼,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오금이 저리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가면을 쓴 소년은 조금도 겁을 먹은 기색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비죽 하고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소년의 가지런한 하얀 이가 드러났다.
“혹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얼굴을 알고 있나?”
영 생뚱맞은 질문이 돌아오자, 거한들은 불쾌했다.
평소였다면, 둘 중 누구라도 주먹을 뻗었을 터였다.
그들의 주먹은 명백히 이 불길한 소년의 머리통보다도 컸고, 마른 낙엽을 바스러뜨리는 것보다도 쉽게 그 두개골을 박살 냈을 것이다.
허나, 그 둘 중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딘가 감이 좋지 않았다.
불편했다.
“하긴 네놈들과 무슨 불도(佛道)를 논하겠느냐.”
키득거리며, 소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들이 채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상점의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발소리도 없었다.
그저 소년의 나직한 웃음소리만 덧없이 울려 퍼졌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자, 소년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그저 나무 부스러기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허, X발.”
기세를 올리려 욕을 한마디 뱉어 보아도, 그저 허공에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백주(白晝)에 귀신에 홀린 꼴이 아닌가.
그들은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도, 곧바로 따라 들어가지도 못했다.
“……뭐였던 거요?”
“나도 잘 모르겠다.”
소년이 훌쩍 들어가 버린 상점의 안쪽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정오쯤의 햇볕이니, 밝은 만큼 그림자가 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어둠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잡아 족쳐야지 않겠소?”
내공을 힘껏 끌어 올리자, 그래도 조금의 자신감이 돌아왔다.
“……그래야지.”
사람의 목을 비틀어 뽑는 정도는 시시하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언제나 말보다는 주먹이 앞섰고, 나름 이름 있는 무림인도 몇이나 쳐 죽였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보이는 행동은 명백한 이상행동이었지만, 자신들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소년을 따라 상점의 안쪽으로 향했다.
상점의 벽면에는 가면들이 가득했다.
분명 어제 이곳에서 왔던 수하들의 보고로는 바깥부터 안쪽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리고 돈 될 만한 것들을 모두 가져왔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짙은 어둠이 드리운 상점에는 이리도 화려한 가면들이 어디고 할 것 없이 가득 걸렸는지.
형형색색으로, 다양한 형태로, 웃고 있기도 울고 있기도 한 가면들은 왠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무슨 사술(邪術) 같은 거 아니오?”
대답은 조금 있다가 들려왔다.
“……나도 몰라.”
그들이 보고 들은 사술이라고 해 봐야, 눈속임 따위로 감각을 속이는 잡기(雜技)에 불과했다.
인간의 한계를 부수는 힘, 내공을 가진 초인(超人)들에게 그런 잡기가 통할 리가 없었다.
“……이쪽인가?”
“……그런 것 같소.”
어째서인지 너무나 길었던 가면들의 복도가 끝나자, 쪽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직선 복도였으니, 소년은 쪽문을 지나쳐 들어갔을 터였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안마당이 있고, 공방으로 쓰는 공간과 거주 공간이 나오리라.
쪽문의 조금 열린 문짝 사이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고, 왠지 그 햇볕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어느새 정신이 한계에 가깝게 몰린 두 사람은 쪽문으로 빠르게 걸었다.
걷는다기보다는 뛰는 것에 가까웠다.
먼저 쪽문에 도달한 거한이 쪽문을 밀어젖힌 순간,
“......엇?!”
안에서부터 뻗어 나온 하얀 손이 그의 목줄을 잡았다.
“큭?!”
이미 내공을 끌어 올려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상황.
거한은 내공으로 붙잡힌 목을 보호하며, 동시에 그 팔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자신의 타고난 거력과 내공의 힘이라면 그 얇은 팔 따위는 마른 나뭇가지보다도 쉽게 으스러트릴 터 였다.
하지만,
".......!"
그 하얀 손아귀는 너무도 쉽게 내공을 끌어 보호한 목을 쥐어뜯듯이 파고들었다.
온 힘을 쏟은 자신의 손아귀는 상대의 팔을 으스러트리기는커녕, 그 차가운 피부에 손톱자국도 남기지 못했다.
그러고는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채, 쪽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혀, 형님?!”
홀로 남은 거한이 놀라 자빠졌다.
그는 구르듯이 몸을 일으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자신이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이, 신법인지, 보법인지조차 헷갈렸지만, 목숨을 걸고 몸을 날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바로 저기, 햇볕이 내리쬐는 골목 풍경이 멀게만 느껴졌다.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크흑!”
마음만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다리가 꼬여 자빠졌다.
꼴불견이 었다.
이런 꼴불견이 또 따로 없었다.
강자에게 복종하고, 권력에 굽힐지라도, 언제 그가 이렇게 모양이 빠졌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는 그조차도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바로 그 새하얀 손이었다.
"으, 으아아악!!”
발목이 얼어붙는 것 같기도 하고, 불타는 것 같기도 했다.
수십 마리의 우마(牛馬)가 단번에 잡아당기면 이러할까.
그 손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으로 그의 몸을 안쪽으로 끌고 갔다.
거한은 끌려가지 않으려 땅에다 손가락을 박았다.
내공이 담긴 손가락이 바닥에 깔린 포석에 박혀 들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불꽃이 튀고, 손톱이 부러졌다.
손가락이 부러져 나갔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사, 살려 줘! 살려……!”
마지막 내공을 다해 문틀을 잡고 버티려 했지만, 부질없었다.
그가 붙잡았던 문틀 자체가 부서져 나가 버렸고, 그의 모습이 쪽문 안으로 사라졌다.
덜컹- 덜컹-
텅 빈 상점에는 두 사람을 먹어치운 쪽문만이 한가로이 흔들렸다.
어쩐지 가면들이 웃고 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 * *
연소현은 자신이 가면 장인의 공방에서 모습을 보이면, 흑골파가 사람을 보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가로이 조각이나 하며, 멀리서 기웃거리던 잔챙이들을 놓아주었고, 그 잔챙이들은 제대로된 대어(大魚)들을 데려왔다.
무림인이란 흑도든 백도든 귀한 이들이었고, 당연히 내부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높았고, 알고 있는 정보의 질도 좋았다.
그것은 이 대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소현은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니, 아니. 이거였던가.”
그는 홁바닥에 쭈그리고,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고는 뒤로 조금 물러나서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표정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는 다시 다가가 두 개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몸통은 온데간데없고, 머리만 남은 거한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인 채였다.
혀는 길게 빼물었고, 부릅뜬 두 눈알은 실핏줄이 모두 터져 핏물이 갈래갈래 흘러나와 말라붙어 있었다.
그 옆에 구르는 머리통도 사정 또한 표정만 대동소이할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쩝…….”
괜히 입맛을 다신 연소현이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자신이 열심히 깎던 조각을 들었다.
그것은 얼굴 부분이 조각되지 않은 관세음보살상이었다.
“아무래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기억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보았던 수많은 탱화(頓書)들을, 가장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도 모두 기억했다.
하지만…….
“모양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데 말이지.”
끊임없는 자애(慈愛)와 자비(慈悲)를 상징하는 부처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가.
자신의 마음속에 부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던 연소현의 조각칼이 춤추듯 움직였다.
그가 손대지 않았던 잡기는 뒤에서부터 세는 것이 빠를 정도였고, 조각 또한 그의 영역 중 하나였다.
거침없이 움직이는 손이 선명하게 형태를 이루어 냈다.
“……완성이군.”
연소현은 뒤돌아서서, 완성된 조각을 봉분(封墳) 위에 올렸다.
조각칼도 함께 두었다.
연소현이 만들어 주었던, 가면장인 일가(一家)의 합동 묘였다.
그저 시뻘건 홁으로 덮여 있을뿐인 새 무덤에 한낮의 따스한 햇볕이 드리웠다.
연소현의 관세음보살상이 그 위 에 누워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 관세음보살의 얼굴은 자애로운 표정 대신, 가면이 조각되어 그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연소현이 받았던 그 가면과 같은 모양이었다.
삐뚤삐뚤한 표정이 세상을 조롱하고, 뚫리지 않은 눈구멍이 세상에서 눈 돌리고 있었다.
“……흑골파, 그리고 금주.”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연소현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롱하고, 비웃어라. 우롱하고, 모멸하라. 그것이 너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될 터이니…….”
그리고 아마 지금쯤.
쓸데없이 성실한 '문지기'는 낙양 바닥을 전부 뒤지고 다닐 기세로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 뻔했다.
쿡쿡, 하고 웃음을 터트린 연소현의 모습이 무덤가에서 사라졌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홁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머리통 두 개를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