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편 가면(假面)
어떤 뛰어난 제도도, 훌륭한 법률도, 끊임없이 살피고 정비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쓸모없어지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일은 이렇게 유명무실해져 버린 지 오래였다.
“금질이나 금주에 대해서 더 아는 것이 있느냐?”
어딘가 서늘해진 연소현의 목소리에 가면 장인은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저희 같은 것이 알아봐야, 얼마나 더 알겠습니까요. 그저 풍문을 주워들은 것이 전부라, 대인의 귀를 어지럽힐 것입니다요.”
“알았다.”
연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가면 장인이 급히 일어나 연소현을 말렸다.
“이렇게 그냥 가신다니요? 저희가 언젠가 꼭 보답을 할 수 있게끔, 대인의 존성대명이라도……"
부인도 거들었다.
“저희가 아무리 무지렁이라지만, 이 은인을 이렇게 보내 드릴 정도로 무치(無恥)한 자들은 아닙니다.”
아이들도 뭔지 모르면서 거들었다.
“대인!”
“대인!”
또다시 시작된 이 일가의 혼란스러움에 연소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엉망이 되어 있는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하얀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거라도 받아 가겠다.”
그가 손을 뻗자, 가면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 잡혔다.
그 신기한 모습에 가면 장인과 그의 부인은 눈이 동그래졌고,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이것으로 모든 은원은 정리된 것으로 하지.”
가면 장인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 가면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연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았다.”
그 가면은 이 공간에 널브러져있는 다른 가면과는 전혀 달랐던 터였다.
“그 가면은 돌아가신 제 아비의 유작(遺作)인데, 그것이…….”
"가보(家寶)라면 가져가지 않겠다.”
가면 장인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요. 저는 그저 특별히 그 가면을 원하시는 연유가 궁금하여……"
나름 타당한 질문이었다.
그 가면은 눈구멍도 없고, 콧구멍도 없었다.
표면은 제대로 마감되지 않아 거칠었고, 칠 또한 되다 만 느낌이 강했다.
누가 보아도 미완성품 혹은 수준 미달의 작품에 지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 가면은 말년에 노망이 났던 제 아비가 숨이 넘어갈 때까지 만들던 것입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습니다요. 그래서 이렇게 엉망인 채로 내버려 두고 있었지요.”
가면 장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거기다가 얼마 전 그 가면이 불길한 물건이라는 이야기를 탁발승에게 듣기도 해서, 곧 파기(破棄)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말에도 연소현은 손안의 가면을 천천히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이 가면에 부친이 무슨 의미를 부여한 것 같은가?”
연소현의 손에 들려 촛불 빛을 반사하는 가면의 광택은 한결 더 불길해 보였다.
가면 장인은 몸서리를 치곤, 고개를 내저었다.
“광인(狂人)이 만든 물건입니다. 무슨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과연 그럴까?”
연소현의 하얀 이가 드러났다.
“예? 그게 무슨......?"
“부친이 광증을 얻기 전에 무슨 변고가 있지 않았던가?”
그 물음에 부부의 두 눈이 커졌다.
“그것을 어떻게……? 아닙니다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가면 장인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고했다.
“사실 제게는 형님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진 형님이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하옥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요.”
그의 목소리가 떨려 오자, 부인이 그의 손을 꼭 하고 잡아 주었다.
“아비는, 제 아버지는 나름 이름 떨치던 장인으로, 당시 낙양의 감찰관과도 인연이 있었습니다요. 그래서 아버지는 그 감찰관을 찾아갔지요.”
맞아서 부어터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분명히 형님의 사정을 알고, 무죄방면을 약조했던, 감찰관이 었습니다.”
아비의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아이들이 다가가 그를 안아 주었다.
그는 아이들을 안고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형님의 차가운 시신이었습니다. 얼마나 곤장을 두드려 맞았는지, 하체가 곤죽이 되어 있었습니다요.”
그의 몸이 떨려 왔다.
“심지어 형을 직접 집행한 것은 그 감찰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부인은 그에게 물잔을 건넸다.
그는 물잔의 물을 단숨에 비웠다.
“……나중에 사정을 알고 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그는 반쯤 흘러내린 물을 소매로 대강 닦았다.
“낙양에 유람을 온 황실의 고관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낙양의 고관이 내기를 했답니다.”
연소현의 눈매가 좁아졌다.
“둘은 자신들이 가진 귀중품의 가치를 견주는 것으로 내기를 걸었는데, 그 둘 중 하나가 아버지의 명작(名作)을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면 장인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겼겠지요. 그리고 패한 자는 화가 난 것이지요.”
그래서 그의 형님은,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죽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매일같이 관청을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연소현의 귓가에서 가면 장인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대신 그의 손에 들린 가면이 소곤거리며, 그에게 이야기를 보여 주었다.
아니면, 제암진천경이 가면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일까.
연소현의 눈에 늙은 장인이 관청의 정문에서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병들은 처음에는 곤란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늙은 장인의 발걸음에는 쉼이 없었다.
위에서는 관병들에게 불호령이 내려왔다.
점차 정문을 지키는 관병들은 모질어졌다.
그사이 점차 매일같이 관청 앞에서 호통치는 노인에 대한 소문이 낙양 거리에 퍼져 나갔고, 곧 감찰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저 고얀 늙은이가 내 앞길을 막으려 드는구나!’
일평생 하늘에 떳떳한 삶을 살았던 늙은 장인이 감찰관에게 외쳤다.
'네놈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네놈의 죄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감찰관은 늙은 장인을 잡아다가 지독한 형벌을 가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 감히 관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죄목 이었다.
늙은 장인은 다행히 목숨은 건져 돌아왔지만, 그 이후 광증을 얻었 고, 형벌의 후유증으로 머지않아 사망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아비도 울고 있었고, 어미도 울고 있었으며, 아이들도 울고 있었다.
소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도 이 가면에 담긴 의미를 모르겠느냐?”
한참을 고민하던 가면 장인은 고개를 숙여 연소현에게 청했다.
“아버지의 유품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입니다요.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불민한 저에게 제발 가르침을 주십시오.”
연소현의 입가에서 나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새어 나온 웃음소리는 점차 커져 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웃음은 비웃음 같기도 했고,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가면 장인은 그 웃음소리가 광증이 들린 부친의 웃음소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방에서 발작처럼, 비명처럼 터져 나오곤 하던 웃음소리!
연소현은 보았다.
감찰관은 늙은 장인의 두 손을 모두 두들겨 부숴 버렸다.
평생을 가면만 만들어 온 그가 다시는 가면을 만들지 못하도록,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동네 청년들에 의해서 업혀 돌아온 늙은 장인은 미쳤다.
머리는 풀어 헤쳤고, 그 입에서는 침을 흘렸다.
그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작업장 벽에 똥칠하고, 옷을 벗고 동네를 기어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자신의 공방에 틀어박혔다.
그는 구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르며, 가면을 깎았다.
가면이 어설플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잃어버린 두 팔을 대신해서 발가락으로 가면을 깎았다.
서툰 칼질에 두 발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구멍 난 천장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 마시며, 곡기(穀氣)는 끊어 버린 지 오래였다.
다 죽어 가는 그를 이승에 붙잡아 둔 것은 세상을 향한 증오와 고통으로 가득한 분노였다.
그리고 가면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는 절명(絶命)했다.
그렇게 귀물(鬼物)이 탄생했다.
눈구멍은 파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파지 않은 것이었다.
한참을 웃던 소현의 웃음이 잦아 들었다.
그가 눈을 뜨고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커먼 어둠에 잠긴 방 안은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살림살이들은 하나같이 박살 나있었고, 바닥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방금까지 그곳에 있던 가면 장인 일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소현은 덜렁거리는 문짝을 열고, 천천히 안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아이들을 꼬옥 안고 차갑게 식은 부인의 시신이 있었다.
무자비하게 당한 탓에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서 희미한 달빛을 반사했다.
연소현은 천천히 다가가 하얗게 서리가 내린 아이들의 머리칼을 넘겨 주었다.
아이들의 입은 모두 찢어진 채, 혀가 길게 내려와 어미의 어깨를 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메고 왔던 가면 장인의 시신을 그들의 옆에 뉘여 주었다.
애초에 그는 너무 많이 맞아 숨이 끊긴 상태였었다.
연소현은 그의 한 맺힌 영혼을 따라 이곳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가 폭행당하고 있었을 무렵, 부인은 모진 일을 당하고 있었고, 아이들까지 달려들어 저항하자, 흉수들은 그들을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사지가 뒤틀린 채 죽은 아비, 밑으로 피를 쏟고 목이 졸려 죽은 어미, 입이 찢어져 죽은 아이들.
그들 일가는 그렇게 죽어서 다시 만났다.
연소현은 천천히 가면을 썼다.
그리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늙은 장인은 눈구멍조차 없는 가면을 만들었는가.
연소현이 답했다.
"..차마 눈 뜨고 이 세상을 봐 줄 수가 없구나.”
가면 밑으로 반짝이는 것이 흘러 내렸다.
* * *
“금질의 딸이라 알려진 금주라는 자의 이름을 들어 보았느냐?”
연소현의 말에 정아가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언니의 서신에서 그 이름을 읽었던 것도 같습니다.”
연소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가 정보상이라고?”
“예, 주인님.”
연소현은 들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
“못 본 지 오래되었겠구나.”
정아의 눈이 쓸쓸한 빛을 띠었다.
“예, 무척……"
연소현이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
“내일은 네 언니를 만나러 가 보자꾸나.”
정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그래.”
화색이 만연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정아였다.
“묵지는 못하더라도, 반나절 정도는 머물 수 있을 터이니, 마음껏 회포(懷抱)를 풀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소현은 연신 절을 올리는 그녀에게 손을 내저어 보이고는, 품에서 자그마한 항아리를 꺼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연소현은 대답 없이, 봉인되어 있던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정말 소박한 양의 찻잎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아가 그것을 살피더니 말했다.
“……보아하니 이름 없는 하품(下品)의 찻잎이로군요. 보관 상태도 엉망입니다.”
연소현이 정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 찻잎은 아주 귀한것이다.”
“……그렇습니까?”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어딘가 처연해 보였다.
“제대로 베풀지도 못한 은혜의 대가로 받은 귀한 선물이지……
두 사람은 채 한 사람 몫도 되지 않을 찻잎으로 차를 우려내 마셨다.
어째서인지 그 차는 유난히도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