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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진천경-11화 (11/350)

제11편 포식(捕食/飽食)

“여기구나.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이…….”

눈에서 시퍼런 귀화를 흩날리며, 연소현은 광소했다.

그 웃음소리는 철판을 박박 긁는 것처럼 끔찍했다.

입안에는 톱날과 같이 날카로운 이빨들이 섬뜩하게 빛나고, 시뻘건 목구멍은 심연과도 같아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으...., 으아아아!”

그 기괴한 광경에 바지에 오줌을 지렸던 사내가 발작적으로 달려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앞의 악몽과도 같은 광경에 넋이 나가 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수라장과 같은 낙양의 뒷골목을 누벼 온 이들이었다.

그들이 비록 내공으로 정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피와 폭력 속에서 다져 온 그 기백만은 진짜였다.

“죽어라!”

그의 손에 들린 날붙이가 번쩍였다.

눈속임은 없었지만, 스스로가 감탄할 정도로 깔끔하고 빠르게 들어간 일격.

".......!"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손목이 상대에게 붙잡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 그는 상대의 손바닥이 작고, 굳은살 하나 없이 말랑말랑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겨울의 강물보다도 차가웠다.

손목에서부터 서리가 내려앉을 정도로.

“으아아아……!"

그는 상대를 발로 걷어찼다.

아니,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손을 쥐어짜는 쪽이 훨씬 빨랐다.

뼈도, 근육도 없는 것처럼.

마치 식어 버린 만두를 으깨어 버리는 것보다도 쉽게.

툭!

날붙이를 쥔 그의 손이 바닥에 구르며 피를 흩뿌렸다.

“……끄아아아아!"

'괴물'의 악력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해서, 그대로 손이 잘려 나간 탓이었다.

그가 피가 펑펑 솟아나는 팔뚝을 붙잡고 뒤로 나자빠질 때, 덩치 중 하나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양손으로 날붙이를 단단히 말아 쥐고, 몸의 체중을 실어 단숨에 괴물의 몸통에 칼날을 박아 넣을 생각이었지만…….

카칵!

괴물의 손바닥과 칼날이 만난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억!”

돌벽에 칼을 내갈긴 것 같은 충격에, 덩치는 날붙이를 놓쳤다.

그는 황급히 물러나서 다음 기회를 보려 했지만, 그보다 괴물이 그의 양 손목을 잡아채는 것이 훨씬 빨랐다.

“이, 이거 놔......!"

그는 뭐라 괴성을 지르며, 모든 힘을 쥐어짜 상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상대의 손아귀는 꿈쩍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쥐어짜였다.

“으아아, 그만, 그마아안......!"

마치 그 행동은 처음에 너무 쉽게 쥐어짜서, 팔목을 끊어 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천천히 힘을 더해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기라도 한 듯, 느긋했다.

마기를 끌어낼 필요도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여유롭게, 완력을 더해 갔다.

곧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덩치는 상대를 마구 걷어찼지만, 담벼락을 걷어차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부러져 버린 그의 발목이 덜렁였다.

“끄아아아……!"

뼈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피륙이 쥐어짜이는 소리가 비명과 함께 뒷골목에 울려 퍼졌다.

수분이 풍부한 과육(果肉)을 쥐어짠 것처럼, 짙은 혈향과 함께 피안개가 피어올랐다.

“……끄럴럭럭.”

나자빠진 덩치는 더러운 뒷골목에서 몸 일부가 으깨어진 벌레처럼 온몸을 뒤틀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고통에 부러져 버린 이빨이 혈액과 뒤섞여 입으로부터 줄줄 흘러내렸다.

가만히 두면, 그대로 출혈 과다와 끔찍한 고통으로 사망할 덩치였지만, 상대는 그를 그대로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덩치는 자신의 양쪽 발목이 붙잡혔음을 느꼈다.

다음 순간 그의 다리가 한 번에 한쪽씩 찢겨 나뒹굴었다.

잡아 뽑힌 것이나 마찬가지인 다리에서 흩날리는 혈액이, 골목의 벽면에 길게 호선을 그렸다.

그것은 무공도 무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순수한 폭력이었다.

압도적인 완력에 의한 농락이었다.

“으어……"

덩치는 아주 잠시간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으음?”

시체를 바라보던 연소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바닥의 어둠으로부터 창백한 손들이 솟아올라 그 시체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새하얀 손이었다.

그중에는 아이의 손도 있었고, 노인의 손도 있었으며, 여인의 손도 있었다.

그렇게 시체는 바닥의 짙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그가 흩뿌렸던 혈액들도 어느샌가 전부 흡수되듯 가라앉아 버렸다.

두근! 두근!

연소현은 자신의 단전이 크게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활력이 더욱 높아지고, 고양감(高揚感)이 치솟았다.

“호오?”

연소현은 시퍼런 귀화가 솟아오르는 눈을 반개하고, 그 상쾌한 기분을 즐겼다.

"......으, 으아아아!”

그때, 그 악몽 같은 광경에 온몸이 굳어 있던 사내 중 하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뒷골목은 어두웠고, 장애물도 많았다.

그는 발이 걸려 오물 구덩이에 구르고도, 무언가에 걸려 옷과 피부가 찢어지면서도 달렸다.

허파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골목이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뒷골목이라지만, 누구도 밖을 내다보는 이가 없었다.

낙양의 밤거리에 그 흔한 불빛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눈앞의 골목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그의 배 속을 통과해 튀어 나온 손이 있었다.

그의 내장을 그러쥔 손아귀는 그의 혈액으로 물들어, 어둠 속에서도 번들거렸다.

“……!!"

그는 있는 힘껏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복강이 크게 손상되며 그의 횡격막도 찢겨 나가 버린 후였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필사적으로 자신의 내장을 그러모았다.

"......."

연소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일말의, 정말 일말의 인간성도 엿볼 수 없었다.

두근-.

그는 자신의 팔을 들어 사내의 등판에 박아 넣었다.

그의 관수(貫手)는 가죽 포대를 찢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상대의 몸통을 다시 한 번 뚫고 휘저었다.

마기도 필요 없이, 순수하게 완력만을 동원했기에,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그 거칢과 지저분함이 바로 그가 의도한 바였다.

연소현은 몸통이 찢어진 시신을 적당히 옆으로 밀어냈다.

두근一.

이전과 마찬가지로, 죽어 나자빠진 사내의 시체가 바닥에서 솟아오른 하얀 손들에 의해서 끌려 들어갔다.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두근-.

연소현의 이성은 날카로웠지만,

정신은 광기로 흘러넘쳤고, 자신의 심장은 환희로 날뛰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은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네 번째 사내에게서 비롯되었다.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이미 이 공간은 연소현- 제암진천경에서 홀러나온 마기에 침식되어 있었다.

자신이 골목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 번째 사내는 실제로 열 걸음도 도망치지 못했고, 옆에서 주저앉아 있는 사내는 이미 심령(心靈)이 제압당한 지 오래였다.

이것이 바로 연소현의, 제암진천경의 마기가 보여 주는 진정한 일면이었다.

이것에 비하자면, 오전에 하인들을 겁주고 위압했던 것은 그저 장난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가, 제암진천경이 본격적으로 뿜어내는 마기는, 이미 그것만으로 도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고, 이지를 뒤틀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는 마기를 이자들의 머리에 직접 주입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작정하고 마기를 일으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두근-.

심령이 제압당한 사내의 몸을 찢어발기는 일에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여러 갈래로 찢어진 사지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흠……?"

그때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손목을 비틀어 떼어 내 주었던 사내가 다른 골목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사내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도망쳤겠지만, 이미 이 영역은 연소현의 것이었다.

연소현은 나직하게 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땅을 박찼다.

암류화였다.

* * *

“X발, 여기가 어디지. 길이 어디냐고!”

자신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로 여기던 익숙한 뒷골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내는 자신의 팔목을 부여잡은 채, 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정확히는 복잡한 골목을 '口',자로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당장 그 끔찍한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미 마기에 심령이 침식당한 상태였다.

“누구 없어?! 누구 없냐고?!”

사내는 피를 토하며 외쳤다.

초점을 잃은 눈이 허공을 헤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귀신? 요괴? 사신?

물론 그 자신도 낙양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느 정도 미신을 믿어 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運命), 신(神), 운(運) 따위를 믿는 것이지, 아이들을 겁주는 괴담에 나오는 괴물을 믿는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건 뭐였단 말인가.

그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왜 이러냐고?!”

피를 너무 많이 홀려서였을까,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울부짖었다.

“……세상에 나쁜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나란 말이냐?!”

그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의 귓가에 선명한 입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짙은 유황 냄새와 강렬한 피 냄새가 섞인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날숨이 었다.

'그것'은 금속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시작일 뿐이다.]

그러고는 몸통째로 사내를 씹어 삼켰다.

* * *

"자네, 먹어 치우지 않았는가?”

노인의 질문에 연소현은 천천히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넘쳐흐르던 육즙.

익히지 않은 생고기의 식감.

막 식인(食人)이라는 천륜에 어긋나며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행위를 한 참이지만.

별다른 감상은 없었다.

그저 고통스러웠던 허기에서 벗어나, 슬쩍 느껴지는 포만감만이 만족스러울 뿐.

“악인(惡人)을 먹어 치우는 것은 제암진천경이 연자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요구이지.”

연소현은 기억을 되살렸다.

'무심하고 게으른 하늘을 대신하여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모든 어둠을 살라 먹을 역천(逆天)의 경전'이라고 했던가.

“게다가 악인을 먹어 치우면 먹어치울수록 그대는 더 많은 제암진천경의 힘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걸세.”

주는 만큼 받는다는 건가.

나름 합리적인 체계였다.

“그런데 어르신. 그 먹는다는 것이 제가 직접 먹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연소현은 무수한 손들에 의해, 바닥으로 끌려 들어가던 시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다네. 그 손들은 제암진천경의 아귀(餓鬼)들일세. 그것들은 그대가 마기를 이용해 펼친 '영역'에서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네의 '식사'를 도울 걸세.”

그때 천장으로부터 진동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돌가루가 흘러내리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천장의 틈에서 내려오던 빛기둥들도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

“그렇습니까……"

노인을 비추던 빛기둥 또한 점차 줄어들며, 그의 몸은 깊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어둠 속에서 노인의 눈알이 시퍼런 귀화가 되어 피어올랐다.

“그때까지 좋은 사냥 되길……"

연소현은 노인을 향해 길게 읍했다.

곧 지독한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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