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9화 (9/350)

제9편 허기(虛飢)

자신의 마흔다섯 평생, 한 사람이 저렇게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마 객잔을 물려준 자신의 아버지도, 처음 객잔을 열었던 조부도 이런 광경은 못 봤으리라 확신했다.

진짜 배 속에 아귀라도 들었는지, 저 호리호리한 청년은 혼자서 지금 쟁자수 단체 손님들을 상회하는 양을 먹어 치웠고, 심지어는 지금도 먹고 있었다.

객잔 주인장이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점소이에게 꺼낸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돈은? 선불로 받았겠지?”

그는 황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명의 점소이들의 뒤통수를 한 대씩 후려갈겼다.

그리고 혹시나 누가 들을까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이런 육시랄 놈의 새끼들……! 너희가 객잔을 말아 처먹으려고 오늘 아주 날을 잡았구나……!”

뒤통수를 부여잡은 후배 점소이가 낑낑거리면서, 역시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요, 주인 어르신……! 저, 저자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니까요......!"

“이런 미친놈이……! 그럼 더더욱 선불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 냐……?!"

주인장이 다시 손을 치켜들자, 선배 점소이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어르신, 이놈 말은 그게 아닙니다요. 그냥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저자는 어딘가 기이하다니까요……!”

“기이해......?"

주인장의 두꺼운 볼살이 꿈틀거렸다.

“무림인이더냐?”

무림인이라면,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맞았다.

무림인과 객잔.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면,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가 생겨나곤 했다.

이는 낙양객잔협회에서도 '객잔효과'라고 부르며, 협회원들에게 필히 조심하길 권고하는 사항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팔 하나가 없는 것이 그 때문이 아니던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요……!"

주인장이 인상을 썼다.

“그러면, 어디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자식이더냐?”

고관대작의 자식들은 옷차림과 행동 따위로 구별하기는 쉬웠지만, 일이 터졌을 때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

자신의 조부가 고관대작의 자식에게 시비가 걸려 관가(官家)에서 곤장을 맞고 장독이 올라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아뇨,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요.”

낙양에 사고 치고 다니기로 유명한 고관대작 자식들의 용모를 줄줄이 꿰고 있는 후배 점소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란 말이야……?!"

점소이는 발작하듯이 낮게 외쳤다.

"저자는 아귀라니까요……!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그 지옥에 사는 아귀 말입니다요……!”

“새끼들이 겁은 많아서 지랄은.......”

두 명의 점소이들이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주인어른께서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요......!"

그쯤 되자, 주인장도 마냥 타박만을 할 수는 없었다.

입맛을 쩝 하고 다신 그가, 남은 층계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내가 직접 가 봐야겠다.”

“아이고, 어르신 조심하십시오……!"

“어르신……!"

걱정은 했지만, 말리는 놈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군.'

자기들끼리 조용히 한다고는 했지만, 저기 돌아앉아 왜소한 등판만 보이는 놈이 자신들의 대화를 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허름한 서생 복장을 한 그자는 자신이 다가가고 있는 것도 모르는지, 그저 머리를 처박고 음식을 먹어 치우기 바빴다.

발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이렇게 거슬렸던 적이 있던가.

주인장은 어째서인지 흘러내린 식은땀을 소매로 닦고, 조여 오는것 같은 옷의 목 부분을 흔들었다.

“흐, 흐흠!”

대여섯 걸음 뒤에서 멈춰 선 그가 헛기침을 해 보았지만, 상대는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주인 어르신……! 조금 더 가까이 가셔야죠......!"

“조심하세요……!”

'썩을 놈들이 자기 일 아니라고 말하는 본새하고는.’

어째서인지, 더는 조금도 다가가기 싫었지만, 35년 동안 쌓은 경험과 근성을 발휘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결국 그는 서생의 바로 뒤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서생은 그에게는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저기……."

곁눈질로 서생을 바라본 그의 눈이 켜졌다.

서생은 젓가락도 사용하지 않고, 양손으로 음식을 주워 꾸역꾸역 입에 처넣고 있었다.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주인장은, 식은땀이 가득한 손바닥을 자신의 바지에 흠쳤다.

어느새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낙양의 가운데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일이던가.

조부나, 아비의 꼴을 보고서도 지금까지 객잔을 일궈 온 그였다.

“저기, 공자……"

그런데 목소리는 왜 이리 모깃소리 같은지.

그는 목청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게 아니야. 이걸로는 부족해. 이런 게 아니다. 이게 아니야. 이걸로는 부족해……"

주인장의 전신에 오한이 치달았다.

분명 객잔에는 지금 저자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치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쉴 틈 없이 음식을 입으로 처넣는 것을 지금 자신이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끊임없이 속삭이는 소리는 누가 내고 있다는 말인가?

“……이걸로 부족해. 이런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을 자세히 들어 보면 뭔가 사람의 목소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그때 서생의 손이 뚝, 하고 멈춰섰다.

“……!!"

그리고 서생의 머리가 천천히, 주인장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장의 동공은 이미 풀린 지 오래였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 것처럼 후들거렸다.

그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뒤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서생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충분히 먹었군. 총 얼마인가?”

“어, 어, 어......?"

창백한 얼굴의 서생은 입 주변에 묻은 양념을 소매로 닦으며 다시 물었다.

“자네가 객잔 주인 아닌가?”

주인장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요.”

서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흘린 음식물과 양념으로 그 옷은 더럽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태연히 돈주머니를 꺼내 든 그가 다시 물었다.

“얼마냐니까?”

서생이 떠난 잠시 뒤, 점소이들이 기절해 버린 주인장을 업고 의생을 찾아 낙양의 밤거리를 달렸다.

다음 날 깨어난 주인장이 재산을 털어 굿판을 크게 벌이는 것을 막으려는 점소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 * *

“이상하군, 이상해.”

객잔을 나선 서생, 연소현은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험 삼아 객잔에서 한계까지 음식을 섭취하려 해 보았지만,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나 많은 양을 먹었다면, 토하기라도 해야 할 터인데.

그저 밀어 넣으면 밀어 넣는 그대로 전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목구멍을 통과한 음식물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어느 정도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이런 걸' 먹어도, 허기가 사라질 일은 없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엇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그때 그의 코끝이 어딘가로 향했다.

'냄새……"

그것은 이제까지 맡아 보지 못했던, 너무나 향기로운 냄새였다.

너무나 '맛있는' 향기였다.

그의 허기를 자극하는 냄새였다.

'이게 무슨 냄새지……?’

의문을 품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는 본능에 이끌렸다.

그의 발걸음은 어두운 낙양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곧 어둠 속에 묻혀 사라졌다.

* * *

고대 적부터 유서 깊은 대도시 낙양(洛陽).

여러 왕조를 거치며, 몇 번이고 전화(戰火)에 휘말렸던 도시건만, 지금도 여전히 중원을 대표하는 거대 도시로서 그 자리에 굳건히 존재하고 있었다.

수백만에 이르는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답게, 엄청난 규모의 유흥가를 품고 있기도 했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휘황찬란한 유등(油燈)들이 낙양의 밤을 잊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밝은 빛이 있는 곳은, 그만큼 짙은 어둠도 따르는 법.

그 아름다운 유흥가의 이면에는 그만큼 추악하고 뒤틀린 질서가 있 다.

그 수많은 질서 중 하나를 꼽아 보자면, 금거머리, 즉 금질(金蛭)이라 불리는 암흑가의 거두(巨頭)를 꼽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지금, 이 더럽고 축축한 뒷골목에도 그 금질이 만든 질서가 착실히 돌아가고 있었다.

“옷까지 벗겨서 탈탈 털어.”

“알겠습니다, 형님!”

불행인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인지, 도박에 손댄 끝에 가산을 탕진한 중년 남자가 미약한 저항을 해 보려 했다.

“이 새끼가……?!”

“족쳐 버려!”

당연히 돌아오는 것은 덩치들의 호된 주먹 찜질이었다.

잠시 후, 중년 남자는 아직 숨을 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진 고깃덩어리와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이 되었다.

“찾았습니다, 형님!”

결국, 중년 남자의 속옷 안에서 나뭇조각을 찾아낸 덩치가 그것을 들어 보였다.

호패(號牌), 즉 신분증이었다.

주소를 비롯하여 가족 사항 등이 모두 기재되어 있는 신분증을 빼앗았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가져 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의 작은 상점도, 처도, 자식들 도.

“아아……, 제발…….”

다진 고깃덩어리를 방불케 하는 중년 남자의 얼굴에 절망이 짙게 드리웠다.

대조적으로 덩치들의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짙어졌다.

절박한 처지인 이들은 사기도박인 줄도 모르고 하루가 멀다고 걸려들고, 그렇게 속은 멍청한 이들을 처분하여 부를 늘려 간다.

그것이 금질이라 불리는 이면의 질서가 가진 일면(一面)이었다.

“감히 어르신의 돈을 떼어먹고 네가 멀쩡히 낙양 거리를 돌아다닐수 있을 줄 알았느냐?”

물론 여기 있는 덩치들은 형님이라고 불리는 사내까지 포함해도, 금질의 직속 부하이기는커녕, 그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소속은 금질이 외주를 주는 단체 중의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질서의 이름을 등에 업은 이상, 적어도 이 뒷골목에서는 그들이 왕이었으니.

“아이고, 제발 어르신들……"

그때였다.

“휘파람?”

그것은 기이한 곡조의 휘파람 소리였다.

애절한가 하면 처절했고, 홍겨운가 싶으면 절망적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광기(狂氣)가 깃들었다고나 할까.

“어떤 새끼야?!”

중년 남자의 호패를 들고 희희낙락하던 덩치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평소였다면, 동료들은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상대를 위압하는 것을 즐거워했겠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저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보다, 그 외침이 연약 하게만 들렸다.

덩치는 호패를 내팽개치고,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어떤 X같은 새끼야?! 당장 나오지 못해?!”

그러자 다른 이들도 발작적으로 무기를 꼬나들고 사방에다가 외쳐댔다.

“죽고 싶어?!”

“어디서 장난질이냐?!”

“이 시X 새끼가?!”

그때 형님이라 불리던 작자가 낮게 호통쳤다.

“……다들 닥쳐!”

그나마 평정을 유지하던 그의 목소리에 다른 덩치들이 입을 다물었다.

“닥치고들 가만히 있어……!"

그의 눈에 초조함이 스쳤다.

자신의 동생들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조차도 순간 휘파람 소리를 견디다 못해, 함께 고함을 지를 뻔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단지 휘파람 소리로 사람의 심령(心靈)을 흔드는 것은, 일단 엄청난 위험신호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사방을 향해 포권했다.

“어느 방면의 고인이신지 모르겠지만, 저희에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휘파람 소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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