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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79화 (179/180)

179화

179화

쿠구구....

소녀와 악마가 읊어낸 시가 끝나자 아주 미약한 진동이 그들을 감쌌다.

하지만 악마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 힘의 본래 주인이었으니까.

쿨럭.

쿨럭...!

악마의 힘을 빌려 힘을 사용한 소녀가 피 섞인 잔기침을 뱉었다.

신체의 무리가 갈 정도의 마력을 부담하며 속이 진탕된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도 마찬가지.

곧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무거운 몸과 똑같이 힘겹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때, 소녀의 안에 있는 악마가 담담하게 말했다.

-잡생각은 잠시 넣어둬라. 인간 따위의 몸으로 내 권능을 사용하는 것은 복이며 죄이니. 힘을 발현하고 유지에만 생각해라.

이전과 다르게 거친 억양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와 악마 특유의 차가운 말투가 잘 어우러졌다.

마치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으드득.

물론 그녀 역시 악마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수준으로서는 원래 사용도 못 할 힘이니까.

게다가 그 힘을 사용한 대가는 꽤나 힘겨울 것이 분명했다.

악마에게 손을 벌린 대가가 많이 무겁다.

그렇기에 어쩌면 쓰러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럼에도.

‘네.’

멈추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

2년 전부터 이어졌던 목표에 다다르기 직전이니까.

촤라락.

현세에 구현된 블랙홀에 저항하듯 소녀의 등 뒤에 있는 날개가 펄럭였다.

그녀의 날개는 어느새 변해 있었다.

소녀의 마력은 2년간 붙어있던 악마와 동화되어 검은빛의 지옥불을 다뤘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그녀의 날개는 악마와 똑같은 검은색.

거기다가 소녀의 어머니가 남긴 천사의 힘이 뒤섞이니 날개는 흑색과 백색이 조화를 이룬 회색빛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날개의 색은 완연하고 찬란한 백색인데다가 아까 전보다 크기도 작아졌다.

소녀가 가지고 있던 지옥의 불꽃까지 전부 지금 악마가 이루고 있는 권능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소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엄마의 빛이야.’

소녀는 날개에서부터 느껴지는 생생한 활기에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상처 입어 차가워진 몸을 데우고도 남을 만큼 따스하면서 악의로 물든 존재들을 태울 수 있을 만큼 거친 빛.

동시에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유산이 자신에게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짙은 결의와 함께 눈을 떴다.

소녀는 마음속에 남은 엄마가 목표를 향해 찬찬히 다가가는 자신의 노력을 돕는다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좋군. 내 계약자가 비둘기 녀석들의 힘에 안정을 얻는다는 건 싫지만 말이야.’

소녀의 안에 존재하는 악마는 아무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천사의 힘은 분명 자신들과 상극이지만, 어째서인지 소녀의 몸을 통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물론 한 몸 안에 천사의 힘까지 존재하고 있다라는 사실이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용해주지!’

생전에도 못 했던 비둘기 놈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에 악마는 소녀가 모르게 폭소했다.

이어서 악마는 천천히 웃음을 거두고서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집중해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알았어요.’

슈우우우...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바람이 고요하게 움직였다.

전후좌우 상관없이 모든 바람이 한곳을 향해 이끌린다.

아니, 바람뿐만이 아니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갈 섞인 흙먼지와 풀들, 나뭇잎 하물며 주변에 퍼져있는 마력과 이름 모를 기운들까지.

전부 악마의 힘으로 끌려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새까만 벌레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군집, 아니.

거대한 흑색의 나무였다.

“와...”

소녀, 하윤은 반사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나무는 검은 벌레들이 갉아먹은 데다가 가지나 몸통 부분이 다 말라비틀어져 썩어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기괴한 외형과 다르게 느껴지는 기세는 엄청났다.

지금껏 사용했던 힘의 주인인 대악마나 대천사.

그 강대한 존재들보다 비교조차 불가능한 힘이다.

-잘 보고 기억해라. 언젠가는 네가 완전히 다뤄야만 하는 힘이니까.

‘내가... 다룰 힘?’

-이 나무의 이름은 지옥을 부수는 [클리포트의 나무].

인계를 지키는 [세계수 위그드라실], 천계를 살리는 [세피로트의 나무]와 함께 세계를 지탱하는 세 번째 나무.

동시에 죽음만이 흩뿌려진 지옥에 뿌리를 내린 유일한 생명체이자 칠죄의 대악마들에게만 허가된 권능의 본래 주인.

-그리고 지금 내가 사용한 권능의 이름은 [가이키델]. [폭식]이란 죄에게 부여된 두 번째 껍질이다.

“가이키델...”

하윤은 폭식에게서 흘러나온 단어를 다시금 곱씹었다.

이름을 뱉는 순간, [가이키델]이란 힘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폭식에게 내린 지옥의 나무가 내린 힘은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먹어 치운다.

조건만 맞는다면 영혼이나 본연의 격까지 모조리 흡수할 수 있는 힘.

어쩌면 저 먼 우주에 있다는 블랙홀이라는 것과 동일시되는 상징과 동시에 [폭식]의 아이덴티티이다.

-이 모든 걸 눈동자 속에 빨아들여라. 이 앞에 있는 건 삼켜라. 모든 것은 내 권능이자 동시에 네 힘이니까.

“네.”

권능의 명칭을 듣는 순간, 하윤의 새하얀 코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몸을 짓누르는 부담에 눈빛 또한 흐려졌지만, 그 직후 몸에 남아있는 대천사의 힘이 치유를 담당했다.

-내가 움직이는 흐름대로 마력을 유지해. 인간인 너 혼자의 힘으로는 저 이물질의 힘은 흡수하지 못하니까. 아무리 클리포트라고 해도 말이지.

끄덕.

하윤은 간단한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폭식의 말대로 저 이름 모를 힘을 착실히 흡수하고 있다.

마치 존재 자체를 없애려는 것처럼.

그렇게 하윤은 천사의 날개를 펼친 채 악마를 불러냈다.

바로 그때.

콰아앙-!!!!

가이키델 안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이름 모를 힘이 미친 듯이 밀집되더니 피가 뒤섞인 거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크아아아!!!! 이 개 같은 버러지들이! 감히 나를!”

싸우면서 깨달았지만, 하윤은 다시금 신정율이 자신이 알던 그 삼촌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아니, 아예 다른 존재일 것이 분명했다.

원수라고 하지만 신정율은 전투 중에서도 어째서인지 나를 배려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른 존재가 된 것처럼 인격이 완전히 달라졌고, 그 힘은 더욱 거칠어졌다.

아마도...

‘그 순간.’

자신이 악마의 계약자가 된 순간부터.

동시에 하윤의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신정율이 자신의 의지로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라면.

만약 아버지가 악마의 피해자가 아니라면.

만약.

저 존재가 그를 죽이도록 의지한 거라면.

휙휙!

하윤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생각을 버렸다.

신정율의 안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분명한 원수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를 죽이고 나를 재앙으로 가둔 장본인.

그렇기에 어떤 이유로라도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분명 그랬을 텐데.

‘대화를 해보렴.’

하필이면 왜 지금.

이 빌어먹을 악연에 점을 찍는 순간에 아빠의 말이 떠오르는 걸까.

“다 죽일 거다! 본체를 끌고 와 모든 것을 피로 물들일 거다! 제일 먼저 네놈들을 산채로 찢어발겨 세상 곳곳에 그 살점들을 흩뿌려주마!”

저렇게 미친 듯이 발광하는 존재여도 신정율이다.

세간에는 영웅, 그러나 내게는 이 세상에 절대 같이 공존할 수 없는 원수.

그런 존재와 대화를 나누라니.

아무리 아빠의 마지막 말이라도 거부할 것이었다.

하윤은 다시금 그렇게 마음 먹었다.

하지만.

“하윤아!!!!!!”

그녀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를 죽여!”

“뭐...?”

하윤은 다시금 돌아온 듯 보이는 신정율의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확실하다.

다시금 신정율의 인격이 돌아온 것이었다.

“얼른! 내가 이 괴물을 잡고있는 동안!”

신정율은 조금 벙찐 표정의 조카를 보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몸 안에 깃든 [크투가]와 그 본체와의 연결을 억지로 끊었다.

그는 많은 우연이 겹쳤기 때문에 잠시나마 [크투가]와의 싸움에서 인격을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정율은 인간이다.

많은 피해를 무릅쓰고 초월자와 같은 존재에게 억지로 간섭했기에 곧 있으면 그의 영혼은 갈기갈기 찢겨질 것이다.

그 전에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

[크투가]라는 오래된 자를.

그리고 나를.

-망설일 시간 없다. 보아하니 지금 이물질이 잠시 밀려난 것 같군.

“...알아요.”

-힘이 조금 부족하겠지만, 저 뒤에 있는 녀석들의 힘을 빌리면 되겠지.

“알겠다고요.”

하윤은 무언가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명히 지금이다.

언제나 상상해왔던 신정율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시간.

허나 하윤은 마력을 쏘아낼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움직임을 바꾼 것은 다름 아닌.

“괜찮아.”

신정율, 그였다.

“괜찮아, 하윤아.”

뚝.

괜찮다는 그의 목소리에 사고가 아득히 멀어지며 정지한다.

슬픈 미소를 지은 신정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드드드드...!

그와 동시에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검은 나무가 천지를 울린다,

한 작은 인간의 몸을 빌려 현세에 나타난 지옥의 나무.

[세계수 위그드라실]이라는 또 다른 수호수(守護樹)가 있으나, 지금 소녀가 있는 이 공간에 한해서는 [클리포트의 나무]가 지배한다.

단죄와 복수, 속죄를 위해.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꾸우욱...

단순히 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소녀의 머릿속은 어질러져 있지만, 지옥의 나무는 인간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감정도 의지도 없는 거대한 악은 그저 이곳에 현현한 목적대로 이 공간에 있는 적을 삼킬 뿐이었다.

직후.

쿠구구구구-!!!!!

검게 물든 나무가 사선도에 죽음을 일으켰다.

주륵.

폭식의 권능에 닿은 순간, 신정율은 생살이 벌레에게 뜯기는 고통을 느꼈다.

무의식중으로 ‘이런 통증이 진짜 삶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들게끔 만드는 격통.

인간은 물론 초월자나 외부자 역시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을 고통이었지만.

‘끄으윽...’

신정율은 참아냈다.

눈 속의 핏줄이 터져도, 입술을 깨물다 못해 찢어버려도.

그는 참아냈다.

이 세상에 없는 형과 나를 죽이고자 하는 조카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아.’

2년이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손끝에는 형의 심장을 꿰뚫은 촉감이.

눈동자에는 그런 내 모습을 봤던 조카의 눈빛이.

마음속에는 그들이 내게 느꼈을 공포가.

그러니 나는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 이 고통은 절대 없앨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그때의 일에 대한 죗값이니까.’

어떤 것도 꺾을 수 없을 결의로 눈을 부릅뜬 신정율.

그가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순간.

-그럴 수는 없다!

“으윽!”

으득.

인간과는 격이 다른 존재감이 튀어나온 순간, 하윤이 감당하고 있던 [가이키델]의 힘이 무거워졌다.

[클리포트의 나무]는 본질적인 격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존재.

그가 잠시나마 신정율로 돌아왔을 때는 클리포트가 인간으로 판단했기에 하윤의 마력을 얼마 사용하지 않았지만, 다시 [크투가]로 돌아온 이상 들어가는 힘도 많이 늘어나야 했다.

동시에 하윤의 안에서 폭식이 가지는 부담 또한 늘어났다.

이렇게 간다면...

-힘이 부족하군.

‘힘이.. 부족해.’

한 몸에 공존하던 두 존재는 동시에 느꼈다.

이대로라면 저자를 완전히 끝을 내지 못한다고.

만약 저들이 클리포트에게 풀려난다 해도 부상이 심한 이상 아마 자신들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마지막 한 방이 필요해...’

하윤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깨달았다.

그들의 악연에 찍을 마지막 점 하나는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바로 그 순간, 하윤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목소리들을 들었다.

“형.”

“그래.”

하나는 부드러운 소년, 또 다른 하나는 차가운 소년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하윤이 그걸 깨달은 순간.

“백천창월류 오의.”

우우우우우...

뒤쪽에서 예리하고 새파란 기운이 날아왔다.

달처럼 차가운 귀곡성을 흩뿌리며 아주 아름다운 궤적으로 말이다.

[제1 위상변화(位相變化)]

삭(朔)의 음률.

촤아악-!

순식간에 어두운 섬을 푸른빛으로 밝히며 날아오던 한 소년의 검은 고통에 찢겨가던 한 사내를 정확히 지나갔다.

이후 빛으로 밝혀진 사내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물들어있었다.

“나...나는 ‘오래된 자’ [크투가]다! 이따위 미물 놈들에게 당할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끝났어.”

고통 속에 힘을 놓아버린 사내의 미약한 목소리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나긴 전투의 끝을 점찍는 마지막 한 마디에 지금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은 침묵으로 거대한 존재의 몰락과.

한 사내의 속죄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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