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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78화 (178/180)

178화

178화

‘선일씨?’

찰나의 순간 뒤면 목숨을 잃는 아득한 상황 속에서 어째서인지 그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눈을 떠라.

하윤은 망설임 없이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눈을 떴다.

무조건적인 신뢰.

그것이 하윤이 그 소년을, 이선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씨익.

“잘했어.”

그녀가 눈을 뜬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대로 귀에 걸렸다.

직후.

투콰아아앙-!!!!!

[크투가]가 세워놓은 손톱에서 엄청난 소음과 함께 열기가 폭발했다.

순간적으로 귀를 막고 싶어지는 굉음에 귀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지만, 어째서인지 폭발에 의한 피해는 없었다.

오히려 열기는 자신에게 거의 닿지 않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던 하윤은 살짝 거무죽죽해진 깃털들이 몸 주위에 밀집해 막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언제 방어막을 친 거지...?’

[짐승의 뿔]에 꿰뚫리기 직전, 분명 죽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었던 걸까.

참으로 따로 노는 마음과 머리였다.

치이이익...!

귀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걷어낸 하윤은 곧이어 이상한 소리가 저 아래에서 들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이상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펼친 날개의 방어막에 의해 하윤이 열기에 의해 입은 피해는 피부와 옷이 살짝 그슬리는 것으로 끝났으니까.

그러나.

“으아아아-!”

신정율의 몸을 뺏은 [크투가]는 아니었다.

츠즈즈즈즈....!

어느샌가 그가 뺏은 신정율의 손톱은 핏빛 광기가 아니라 황금과 순백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화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끄아악!!”

마치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크투가].

이전까지 데미지를 받아도 작은 신음 이상으로는 지르지 않던 그가 고통에 물든 채 몸부림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투 중에서 유일하게 큰 데미지를 입은 모습에 하윤은 날개를 방어 태세로 돌릴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크투가]의 기세가 순간 약해짐으로써 자신이 살 수 있는 생로(生路)가 생겨나자 하윤은 망설임 없이 마력을 움직였다.

촤아악-!

허공에서 느껴지던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이 바뀌었는데도 [크투가]는 공격을 이어갈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덕에 하윤은 날개와 몸의 방향을 틀어 안정적으로 방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윽...!”

지상으로 내려오고도 날개로 몸을 막고 있던 하윤의 입에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통증이 느껴지는 어깨를 자세히 보니 미세한 상처가 하나 있었다.

신정율은 분명 무방비한 상태였기에 완벽하게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손톱이 주변에 미치는 피해가 엄청나.’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라! 네가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죽으면 나도 끝이라고!

‘...미안해요.’

하윤이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곱씹으며 조용히 참고 있었을 때, 폭식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폭식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 하윤은 담담하지만, 은근히 기가 죽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여태까지 적개심만 가지고 있던 두 사람, 아니 한 인간과 한 악마였으나 각자의 목숨이 서로에게 달려있으니 감정은 잠시 집어넣어야만 했다.

이후 하윤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는 걸 확인한 폭식이 한숨을 푹 내쉬며 툴툴거렸다.

-이상한 짓 좀 그만하고 치료에나 전념해.

‘공격은 안 해도 돼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 몸 안에 있는 천사의 힘으로 상처부터 회복하고 큰 공격을 날릴 준비를 해.

‘알았어요.’

하윤이 머릿속에 울리는 폭식의 말에 그대로 수긍한 순간, 곧바로 날개의 변화를 눈치챘다.

기회가 났다는 생각에 마무리 일격을 날리기 위해 합쳤던 세라프의 날개와 폭식의 상징체로 다시 나눠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력을 몇 개로 나눠 따로 조종하는 건 마법사가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

그런 어려운 컨트롤을 당연하게 하윤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몸에 폭식이 붙어 한 몸에 두 개의 정신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컨트롤을 하는 건 폭식이었지만 말이다.

씨익.

폭식은 오랜만에 사용하는 듯한 자신의 상징체에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지었다.

마치 팔다리가 수천수만 개로 늘어나는 느낌.

다룰 수 있는 신체 기관이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그녀는 하나도 어지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 일이든 모두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로움만이 폭식의 정신에 안착했다.

-애초에 치료는 그 비둘기들이 하는 거지.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아. 이 [폭식]에 어울리는 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를 싸그리 흡수하는 거다.

스스스슷-!

정신을 분리한 폭식이 하윤의 마력 코어에 간섭하자 폭식의 상징체들이 한층 더 강하고 신속하게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검은 벌레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평범한 학생의 눈에 비추어졌다면 모두 혐오스러움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인간 중 평범함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끄드드득.

폭식의 상징체는 단 한 순간의 움직임만으로 신정율의 몸뚱이에 이빨을 들이밀었다.

아무리 대악마의 상징체라 해도 ‘오래된 자’나 ‘외부자’의 축복을 받는 존재들에겐 공격이 잘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현재 폭식은 더더욱 약해진 상태.

원래라면 ‘오래된 자’에게 쉽게 통할 리가 없다.

하지만.

‘세계의 수호자인 [태양]의 힘은 다르지.’

‘외부자’나 ‘오래된 자’를 인간의 세포에 비유하자면 한마디로 정리해 병원균이다.

신체에 몰래 침투해 병들고 생명을 갉아먹는 존재들.

그런 사악한 세균들이 있다면 그놈들에게 저항하는 건강한 백혈구 또한 존재하기 마련.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그들에게 절대적인 상성을 가진 존재.

그것이 바로 많은 초월자 중 몇몇에만 해당하는 [수호자]라는 초월자다.

‘젠장...! 그 꼬마 진작에 죽였어야 했건만!’

[크투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자세히 보니 [크투가]에게 붙어있던 백금색의 성스러운 불꽃이 우뚝 솟은 손톱을 타고 내려와 그의 몸까지 전이되고 있었다.

[수호자]의 힘은 세계를 오염시키는 존재들을 차단하며 제재한다.

‘그런 [수호자]의 수장인 [태양]의 힘을.’

고작 ‘오래된 자’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으적으적...!

선일이 쏘아낸 공격에 당해 약해진 신정율과 하윤의 관계는 한순간에 역전되었다.

그러나 [크투가]와 [벨제바브]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

고작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광기를 흡수하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신의 귀여운 상징체의 이빨이 확실히 닿는다.

후우우우...

‘느껴져.’

어머니가 남겨줬던 힘이 순식간에 소멸하고 있는 것도.

본래 자신의 마력과 비교했을 때, 훨씬 사악하고 이질적인 힘이 강해지는 것도.

그리고 원수인 신정율의 상태가 점점 변화하고 있는 것도 모두 느껴진다.

위잉.

웅웅웅웅.

셀 수 없는 수의 벌레들이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감각이 귓속에서 느껴진다.

사락.

사라락.

셀 수 없는 수의 깃털들이 천천히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 온 피부에 닿는다.

끄득.

끄드득.

셀 수 없는 수의 상처들이 점점 늘어나고 벌어지는 피붙이의 상태가 눈동자 속에 담겼다.

주르륵.

이제 조금씩 끝이 보이는 굴레를 오감으로 느낀 하윤의 뺨에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만감이 교차한다.

그렇게 없애고 싶어했던 힘이건만.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그렇게 남아있으면 했던 힘이건만.

어째서 목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걸까.

그렇게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이건만.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까.

치이익....

드드드드득-!

“끄아아아! 이 버러지 같은 세상 속에 갇힌 놈들이 감히 이 [크투가]를!”

온화하던 신정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친 욕설을 뱉었다.

인간 세계에 녹아든 수많은 ‘외부자’와 ‘오래된 자’ 중에서도 가장 불같은 성정을 가진 존재가 바로 [크투가]였다.

쿠콰콰콰-!!!!!

[크투가]가 소리치자 광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주변이 순식간에 초토화될 만큼 강력한 살의.

그럼에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크투가]는 곧바로 외우주에 있는 본체의 힘을 끌어오려 했다.

하지만.

우뚝.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불가능했다.

“이놈...?!”

이후 [크투가]의 얼굴이 당혹감과 공포로 물들었다.

무언가에 의해 본체와의 연결이 끊겼다.

이유를 알아보려고 했을 때, [크투가]의 정신 속에서 익숙한 남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신정율이었다.

‘하..하하하! 이제는 사라질 때야. 이 괴물아.’

-이...이!

“심연 앞에서 찢어 죽일 천한 미물놈이! 커허헉...!”

고작 이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장난감이라 생각했던 신정율의 조롱에 [크투가]는 악에 받쳐 외쳤다.

참을 수 없었다.

고작 한 세계의 미물 따위가 본체와의 연결을 차단했다는 것이 너무나 수치였다.

“으아아아!!!!”

키득.

[크투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미쳐 발광할 때, 하윤과 폭식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이제야 좀 먹음직스러워졌네.’

상징체가 가져다주는 권능의 감각에 [폭식]이라는 대악마의 프라이드를 떠올린 [벨제바브]의 눈가에 사악한 빛이 감돌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아니 많이 아쉽다는 건 지울 수 없지만 괜찮다.

영혼은 물론, 다른 악마나 초월자의 격까지 씹어 먹을 수 있었던 전성기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권능은 너무나 무력하지만.

지금 저 녀석의 상태는 그들에게는 분명한 기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힘은 더욱 강대해지니까.’

다시금 전성기 때와 버금가는 격을 회복해 다시금 일어서 세상을 탐할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허나, 영겁의 세월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

그러기 위해서.

‘이 꼬맹이를 지켜야지.’

하윤의 의식과 떨어져 개별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 폭식이 살벌한 눈빛으로 신정율을 노려보았다.

제일 먼저 지나가야 할 첫 번째 난관은 바로 저 녀석이다.

세계를 침범하려 하는 더러운 이물질이자 오랜 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선택한 계약자를 위협하는 적.

그리고 초월자는 계약자와 사도를 지키고 도와야 한다는 율법이 존재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려는 행동은 모두 [태양]이 선택한 맹랑한 소년의 의지가 아니다.’

천천히 정신을 다시 잡은 폭식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오래된 자’를 처리하려는 내 의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태양]이나 [달]과 같은 세계의 수호자나 자신들과 대립하는 희멀건 천사 녀석들이라면 무슨 말을 할까.

분명 정의 혹은 정화라는 말을 내세울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행동을 하려는 나에게도 그 단어들이 통용될까.

‘하하, 그건 분명 아니겠지.’

조소하는 웃음을 폭식은 애써 온몸에 돋으려는 소름을 참아냈다.

나는 악마다.

그것도 악마들이 만든 피라미드의 꼭대기 층에 군림하는 대악마.

아무리 한 번 소멸했다지만 프라이드만은 버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인계를 침범하고 세계를 파괴하려는 사악한 존재에게 정의나 정화 같은 선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 누군가가 자신이 하려는 행동을 선이라고 포장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킥킥.

폭식은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참으로 바보 같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결국 대답은 하나뿐이니까.

씨익.

폭식은, [벨제바브]는 시원하게 웃었다.

애초에 저 이물질이 한 짓은 세 가지.

으득.

첫 번째 계약자를 죽이려 들었고.

으득!

자신의 부활을 방해했으며.

으드드득!!!

미래에 있을 자신의 먹잇감을 감히 탐하고 침해하려 했다.

키이이익!!!!!!

그것만으로 [벨제바브]가 얼마 존재하지도 않는 힘을 끌어다 쓸 명목은 충분하다.

칠죄종 [폭식]의 좌.

재앙과도 같았던 기근의 주인.

과거엔 강대했고, 앞으로는 위대해질 사악의 주인에게 도전한 거슬리는 이물질의 죄질은 무척이나 더럽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다.

-아까 전처럼 내 말을 따라 해라, 계약자.

폭식은 처음으로 하윤을 정식 계약자라 불렀다.

세계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 새겨지는 역사.

그러나 두 사람은

-카발라(????????)의 역설(paradox). 클리포트(Qliphoth)의 두 번째 껍질 카이키델(Chaigidel)이 명한다.

“카발라의 역설 클리포트의 두 번째 껍질 카이키델이 명한다.”

조용하게 말하는 시와 함께 어둠이 내려앉았다.

누군가에게는 장송곡이고, 누군가에게는 서곡이 되는 구절.

이제 몇 구절 안 남았다.

-탐식하라. 그 무엇이든 무한한 식욕이 탐하지 못할 것은 없다.

“탐식하라. 그 무엇이든 무한한 식욕이 탐하지 못할 것은 없다.”

쿠구구구....

[크투가]는 공포를 지워내지 못했다.

자신들과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았던 죽음이 다가온다.

이후 [그녀들]은 조용히 시를 읊었다.

-세상을 삼키고 씹어라.

“세상을 삼키고 씹어라.”

이건 고작 권능 따위가 아니다.

잊혀진 한 악마가 그저 입에 담지도 못할 존재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동시에 세상을 잃었던 한 소녀가 자신의 혈육에게 향하는 복수의 화살이다.

그리고.

스륵.

사랑하는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낸 한 남자의 속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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