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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72화 (17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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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투콰앙!

콰지직...!

파바바박-!

폭발과 분쇄, 수많은 날붙이가 폭풍을 이뤘다.

스물도 지나지 않은 학생들의 공격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힘이다.

촤악!

학생들의 공격에 대응하듯 죽은 피처럼 진득한 기운이 분수처럼 치솟으며 거칠게 날아들었다.

피에 미친 짐승처럼 격한 기운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운이 아니었다.

“...미친 것들.”

저 멀리 숨어 전황을 지켜보던 신하윤, 아니 신하윤의 몸을 장악한 폭식이 혀를 내둘렀다.

바깥 특유의 기운도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력하지만, 어린 녀석들의 수준도 우습게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멀리서 소리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 그녀가 살아있었던 시대에 살아갔던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이라는 사실을.

“참나... 나 때는 저런 무기들도 없었고 제대로 된 기술들도 없었는데 요즘 것들은 왜 이렇게 잘나진 거야. 감질나게 말이야.”

폭식은 조용히 꿍얼거리며 흙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저렇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당장에라도 저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먹어 치워 허기를 달래고 싶어진 폭식이 진심으로 탄식했다.

그녀는 간간이 느껴지는 태양의 힘을 보며 눈빛에 살기를 띄웠다.

“하필이면 저 녀석이 그 여자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탈출도 못 하고... 하아... 짜증 나네.”

폭식은 신하윤의 얼굴로 잔뜩 찡그리며 짜증을 표출했다.

대악마의 대적자인 대천사의 기운처럼 자신들을 억제하는 힘이 강력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악마의 입장에서는 ‘달의 초월자’ 또한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했다.

천적이라 말할 수 있는 천사는 악마들을 상대로는 완벽한 우위를 가졌기에 압박할 수 있다.

허나 ‘달의 초월자’는 경우가 달랐다.

달은 인간들의 세상을 보호하는 든든한 수호자이자 인계의 위협이 되는 적들에게는 냉철한 사냥꾼이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물건도 악을 약화하고 봉인하는 성향을 가졌다.

“에휴... 내 인생, 아니 악마생 왜 이렇게 됐지.”

폭식은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부활한 뒤 자신의 자리를 뺏은 그 자식에게 복수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일 정도.

물론 그녀는 소박하다고 생각했으나 여기서 말하는 맛있는 음식은 수준에 차는 강자들이었고 자신을 몰락시킨 원수는 악마인지 뭔지도 모를 존재였다.

“도망갈 방법도 없으니까 큰일이네.”

신하윤을 포기하기에는 이만한 재능의 인간을 버리기가 너무나 아깝고, 그렇다고 몸을 빼앗기에는 이선일이 가진 손거울이 문제다.

전성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힘으로는 악마는커녕 약한 몬스터나 마찬가지.

현재 제약을 받는 이상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방법은 본체인 신하윤과 계약하는 것뿐.

“야, 너 언제 나오냐?”

대충 손으로 휘적거리며 뒷머리를 헝클어트린 폭식이 투덜거렸다.

자신이 잡힌 이후로 사라진 신하윤이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무의식 속에 갇힌 건지 아니면 나올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없으면 이 상황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에휴...난 모르겠다.”

하염없이 신하윤을 기다리는 것도 지쳐가던 폭식은 근처에 보이는 나무에 머리를 기댔다.

찌뿌둥한 몸을 비틀며 대충 자리를 잡고 눈을 감은 그녀는 한숨 자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살 떨리는 전장에서 벗어나 전투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폭식의 시야가 암전하기 시작한 순간.

두근.

두근.

그녀의, 신하윤의 심장이 강렬한 박동을 일으켰다.

이후 곧바로 밀물처럼 몰려오는 거대한 감정의 변화가 느껴졌다.

주르르륵...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 폭식은 가냘픈 손으로 뺨을 문질렀다.

작은 손가락에는 여기저기 물기가 묻어났다.

사선도에 들어왔던 이후 여기저기 굴러다니느라 더럽고 메말라진 뺨에 어느새 한 줄기의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허!”

헛숨을 뱉으며 눈물을 손으로 닦아낸 폭식이 어이없다는 듯이 조소했다.

갑자기 흐르는 눈물과 드럼처럼 강렬한 진동의 심장박동.

이런 변화를 일으킨 감정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몸의 원래 주인인 신하윤, 그녀의 의지였다.

“...쯧! 이제야 오네.”

한번 세차게 혀를 찬 폭식이 투덜거렸다.

자신이 빼앗은 몸에 신하윤의 감정이 표출된다는 의미.

그건 바로 원래 주인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다.

직후.

슈화아아악-!

세상을 뜬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폭식의 시야가 의식의 저편으로 암전하기 시작했다.

***

폭식의 기척이 줄어들었을 때, 선일과 선월은 여전히 신정율과 대치 중이었다.

두 사람과 같이 싸웠던 유리와 황신영은 이미 리타이어해 형제의 뒤에서 기절한 상태였다.

무슨 이유인지 두 소녀가 착용한 팔찌는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상처를 회복하는 효과도, 사용되는 순간 사선도 어딘가로 보내버리는 무작위 텔레포트도 마치 먹통이 된 것처럼 사용되지 않았다.

‘대한고에서 보급해준 물건 중 딱 두 개만이 불량일 확률은 없어.’

한국 최고의 명문 학교가 보급하는 물건들은 전부 장인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최상급 물건들이다.

그런 물건이 고장이 날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울 확률에 가깝다는 말이다.

게다가 유리와 황신영, 두 사람의 부상이 치유가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무언가가 팔찌를 방해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까 내가 다친 순간부터 이상해진 건 확실한데...’

애초에 두 사람의 부상보다 큰 피해를 본 선일 역시 팔찌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팔찌라면 그가 신정율의 공격을 허용한 순간부터 소모됐어야 하니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빠르게 생각을 이어가던 선일의 머릿속에 몇 가지 가설들이 떠올랐지만 확실시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악사영에서는 신정율이 사용하는 기운에 이런 힘이 존재한다는 언급은 없어.’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세 개.

극악의 확률로 생각되는 고장이거나.

신정율과 같은 외부자의 쥬세피나가 무슨 수작을 부렸거나.

또는 악마숭배자인 연구자가 몰래 몇 명의 아티팩트에 손을 댔거나.

‘고장일 리는 없으니 쥬세피나나 레크라의 가능성이 큰대. 소리로 듣건대 쥬세피나는 반대편에 있으니 레크라가 한 짓이겠네.’

젠장.

선일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

원작의 중요한 전력들을 작전에 사용하는 이상 그나마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크나큰 착각을 한 선일의 맘에 해일과 같은 후회가 밀려와 파동을 일으켰다.

바로 그때.

“이선일.”

생각을 이어가던 선일의 옆에서 이선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상황도 네 계획의 일부냐.”

동생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 이선월.

선일과 함께 신정율과 대치하던 그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이선월의 부상은 뒤에 쓰러진 두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찢어지는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이선월은 말을 하면서도 애써 격한 숨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신정율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내며 터진 손바닥은 피를 흘리며 덜덜 떨려왔고, 게다가 그의 애검인 달미르의 검신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온통 금이 간데다가 마력까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만신창이.

“아티팩트가 발동하지 않는 거나, 다른 녀석들이 상처를 입은 거 모두 네 계획에 포함된 거냐고 물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선월의 목소리에 선일은 단언할 수 없었다.

이 세계의 주인공이 뱉는 의심.

세상을 밖에서 바라보는 작가 ‘강선일’이었다면 그 말에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계를 소설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라면 주연들의 위기를 극복시킬 변수 혹은 장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인 ‘이선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소설 같은 환상이 아닌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운 현실이었다.

쿠웅.

“...”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하지 ‘못’했다.

다시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자 유연하게 흘러가던 사고와 의지가 둑에 가로막힌 것처럼 멈춰 무겁게 느껴졌다.

“이선일.”

머리로는 이 세상을 현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어째서 나는 그들을 장기말과 같은 등장인물로 생각한 걸까.

‘강선일’이었을 시절과는 다르게 만들어진 소중한 사람들을 그저 글자에 묶여있는 인형으로 생각한 걸까.

“이선일.”

불쾌하다.

혐오스럽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던 내가 그들을 그저 극적인 전개를 이어나갈 장치로만 생각했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자신을 죽이고 싶어질 정도로.

“이선일!”

흠칫!

급작스러운 날카로운 호령에 선일은 나락으로 빠져가던 정신을 잠시나마 돌려놓을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옆을 쳐다본 그의 시선에는 자신을 향해 난폭한 살의를 내뿜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였다.

“네놈은 병X이냐?”

살기를 내뿜고 있던 주인공이 노골적인 욕설을 뱉어냈다.

처음 보는 주인공의 모습에 당황한 선일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충격으로 물든 ‘강선일’의 표정은 스킬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계획이 있다던 네놈의 말은 다 거짓이었나? 그저 남의 손에 버려지고 다른 자들이 처리해주는 걸 기다리는 쓰레기일 뿐이었냐?”

차가운 검을 들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던 주인공이 지금 내 옆에서 귀가 뜨거워질 것 같은 비속어를 내뱉고 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나.

“X발, 여전히 대답은 하지 않는군,”

‘강선일’에게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글자 속에 가뒀다고 생각했던 등장인물의 새로운 모습은 이 세계가 현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글자와는 다르니까.

그 사실이 끝도 없는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던 ‘이선일’의 정신을 깨웠다.

“...하하.”

선일은 웃었다.

옆에 있던 주인공.

아니, 이선월은 그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다.

그럼에도 선일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현실을 소설로 바라봤던 어둑어둑했던 시야가 개어졌다.

이전 세상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가족을 느끼게 해준 백설과 이천야.

익숙하지 않은 적개심으로 자신을 쳐다봤던 황신영.

유일한 제자의 성장을 대견하게 지켜보던 성강.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쉰 목소리로 욕설을 뱉은 이선월.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이선일이라는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봐준 유리와 신하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과 기억들이 소설이 아니라는 걸 확신시켜주었다.

“형.”

“부르지 마라.”

차가운 이선월의 목소리에도 선일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제는 인정하자.

주변 사람은 고작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니고.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장기말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하나하나의 개체다.

“계획에 없었어.”

선일은 옆에 있는 선월에게 인정했다.

자신의 실수를 시원스럽게 터놓은 선일의 말에 선월은 무어라 쏘아붙이려 했지만, 곧 그는 말을 잃었다.

조금 전 모든 의욕과 빛을 잃어버린 동생의 눈.

자신과는 다른 뜨겁고 밝은 빛이 돌아왔다.

“그럼 다르게 묻지. 승산은 있나.”

지치고 상처 입은 온몸은 도리어 가벼워졌고, 사고를 가득 채웠던 더러운 자기혐오와 번뇌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머리가 맑아지자 판단이 돌아왔다.

고작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고 해서 우두커니 멈춰있을 필요가 없다.

띠링.

[스킬:표정 숨기기가 활성화됩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듯한 설계자의 기계음.

동시에 얼어붙었던 그의 얼굴이 평소의 여유로운 웃음으로 변화했다.

“있어. 한 1퍼센트 정도?”

“낮군.”

“뭐... 그렇지?”

짧은 대화를 나눈 선월과 선일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아티팩트는 작동하지 않은 데다가 몸 상태도 좋지 않은 데다가 여전히 앞에는 강한 적이 있다.

그런 위기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답을 나눈 두 사람의 눈빛이 빛을 내뿜었다.

동생은 태양빛처럼 뜨겁고 무거운 빛을.

형은 달빛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빛을.

“승산이 올라갈 확률은?”

띠링!

선일이 형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경쾌한 기계음과 아무것도 없던 허공 앞에 떠오른 새파란 창.

그렇게 시야에 들어온 메시지를 읽은 선일.

이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직후.

“100퍼센트.”

화르륵!

저 멀리서 불꽃의 날개를 펄럭이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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