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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소녀를 찾고 있죠?”
“...뭐?”
갑작스레 튀어나온 소년이 하는 말에 신정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순간 잘못 들은 건가 하고 그의 얼굴을 쳐다봤으나 소년은 여전히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신정율은 그 미소를 보며 꺼림칙함을 느꼈다.
분명 온화하고 부드러운 웃음이건만 알 수 없는 속내가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내가 하윤이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단순히 추측성으로 뱉었다기에는 너무나 정확했다.
‘악마 강림’ 이후로 신정율과 신하윤이 서로 친인척 관계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별다른 행보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윤은 그를 볼 때마다 한없이 살의에 가까운 적개심을 보였기 때문에 쉽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마력의 흐름은 없었어.’
이 말은 즉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마법, 마인드리딩(Mind Reading)은 아니다.
자신이 광기를 다룬다고 해도 마법사였을 때의 경험이 어디 간 건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상한데...’
신정율은 도저히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가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깨달았다.
자신이 하윤을 찾는다는 사실을 단순히 통찰력으로만 알아챈 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악마의 소녀라는 걸 하윤이를 지칭하는 게 맞는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어지럽게 부유하며 신정율의 신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씨익.
그때, 소년이 웃었다.
마치 복잡한 건 떠올리지 말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서 소년은 의심을 감추지 못하는 신정율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찾고 있었잖아요, 신하윤.”
정확하게 이름을 듣고 나서야 신정율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정리한 생각은 지극히 일부였다.
면전에서 이를 뱉는 목적이나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알지 못하니 거의 알아낸 게 없으니 말이다.
허나 신정율은 소년이 그 정도만으로 충분히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란 걸 깨달았다.
“...어떻게 알았지?”
“흐음... 아마 책에서 봤던 거 같은데요?”
신정율의 물음에 소년은 능글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사실 회피한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소년은 이 세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작가’라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가 한 말이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등장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책에서 봤다라... 참 재미있는 책인가 보구나.”
“정반대에요. 재미도 없고 뻔한 클리셰 반복에 사람들은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 그런 책이 있다니 보고 싶구나.”
“못 볼 겁니다.”
“어째서지?”
신정율은 평범하게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그 이상은 소년이 침묵했기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애초에 따라갈 방도도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년의 말을 듣다 보면 어딘가 일그러진 것처럼 들려왔으니까.
그러면서도 농담이나 장난이 아닌 진실을 노래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대화를 이어가야 할까, 아니면 처리하는 게 나을까.
그가 선일을 상대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순간, 몸을 잠식한 광기가 움직였다.
울렁울렁.
광기에는 형태와 의지가 존재한다.
클리어라는 미치광이들이 받드는 신에 따라 광기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의 의지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적을 죽이라던가, 생명을 바치라던가, 피를 채워놓거나 먹이를 내놓으라는 둥.
대부분의 의지들은 포악하고 잔혹하며 이기적이었다.
신정율이 다루는 광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이용해 밖으로 나오는 광기의 의지는 다른 광기들처럼 포악하고 잔인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꿀렁!꿀렁!꿀렁!
‘으윽...!’
지금 꿀렁대는 광기는 평소와 달리 격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일 때는 [붉은 짐승]으로 해방했을 때뿐인데.
신정율은 광기의 의지를 읽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찰나라고 부르는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광기의 의지를 알아냈고.
‘...하하하!’
이후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속으로 터트렸다.
지금 몸 안에서 느껴지는 광기의, [붉은 짐승]의 의지.
그건 상대에게 뻗는 적의나 살의가 아니었다.
위험한 신호를 보내는 경계심과 같은 하늘 아래 같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에게 향하는 혐오였다.
“...”
“...”
짧은 시간 동안 침묵이 지나갔다.
신정율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광기에게 속으로 조소를 날렸고, 소년은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만을 짓고 있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미묘한 분위기를 깬 건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신정율씨. 아니.”
외부자의 개.
흠칫!
소년, 선일이 뱉은 말에 신정율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그의 눈에는 처음처럼 경악과 충격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런 신정율을 보던 선일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정확히 예상했던 반응이네.’
신정율이 외부자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알려져 있지 않다.
하물며 다른 천외천이나 조카인 신하윤한테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선일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 해답은 며칠 전 비하인드와의 기억에서 존재했다.
‘상상도 못했지.’
이 세계와 마찬가지로 악사영 속 중간고사의 가장 큰 메인 빌런은 신정율이다.
과거의 선일이 에피소드를 적었을 땐 신정율이 그냥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만 적었는데...
‘악마 강림 사건이 외부자와 관련이 있을 줄은 말이야.’
“하아...”
악사영에서 그를 상대했을 때의 문단을 선일이 복기하는 동안 신정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숨소리에는 기괴하게도 인간에게 짐승 특유의 야성이 스며든 느낌이었다.
이어서 신정율이 고개를 들자 서늘한 살기가 몸을 휘감았다.
오싹...!
“으윽!!!”
선일은 반사적으로 마력을 일으켰지만 천외천의 살의는 그 정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허기가 져 난폭해진 야생동물의 앞에 있는 것처럼 온몸이 굳어버린 선일.
신정율은 피처럼 짙은 안광을 번뜩이며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익숙한 냄새들이 찐득하게 풍겨왔다.
비릿한 쇠냄새와 매캐한 탄내.
빙의 이전부터 잊을 수 없는 빌어먹을 악취.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하하.”
선일은 신정율의 눈동자와 마주하자 압도적인 실력차를 감지했다.
현 상태의 자신이라면 단 한 순간이라도 그의 공격을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확실하게.
본래라면 이런 상대 앞에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떨어지는 것이 맞았다.
“제가 말했잖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선일은 그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걸까.
하나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작금의 말들은 그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싱긋.
그가 이렇게 나와 신정율에게 하윤과 외부자에 대해서 꺼낸 이유.
“책에서 봤다니까요.”
“...뭐?”
약간의 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완벽이란 건 없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심지어 초월자나 악마에게도 하나의 약점은 존재한다.
그중 신정율의 약점은 직전에 언급한 대로 신하윤이었다.
화륵.
흠칫...!
익숙한 불꽃의 소리에 신정율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그가 다루는 광기는 피와 비슷한 색이었지만 본질은 불꽃이다.
인간이 다루는 붉은색의 불꽃도, 악마가 다루는 검은색의 지옥불도 아닌 광기의 혈염(血炎).
하지만 지금 신정율의 팔에 붙은 불꽃은.
촤아아..!
너무나 찬란한 황금색이었다.
“으윽!”
-XXXXXXXX!
신정율이 손목에 붙은 불꽃을 뒤늦게 파악하자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동시에 몸에 깃든 광기가 몸서리치며 소리쳤다.
그러나 광기의 의지를 들을 시간은 없었다.
욱씬.
콰아앙-!!!!!!
갑작스레 복부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강한 충격에 저 멀리 밀려난 것이다.
공격이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갔는지 신정율은 순간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
“커억...!”
“아쉽네요,”
직후 신정율은 선일의 나긋한 목소리에 정면을 쳐다봤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선일의 손에는 어느새 건틀릿이 장착되어 있었다.
오른손에는 백색과 황금빛의 조화가.
왼손에는 자색과 주홍빛의 조화가.
건틀릿은 마치 여명과 황혼의 태양을 그대로 가져온 듯 보였다.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철컥.
선일의 오른손이 갑자기 황금빛 입자로 변하더니 ㄱ자로 형태가 변했다.
평범한 인간들이 사용하는 권총이었다.
헌터나 마인과 같은 여러 능력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총기를 꺼내자 신정율이 눈에 이채를 띄웠다.
그때, 광기가 말했다.
-XX XXXX...!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이었으나 외부자의 선택을 받은 신정율은 한순간에 그 뜻을 알아차렸다.
위험하다.
삶과 죽음의 전장에서 살아가는 헌터는 일상처럼 듣는 말이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광기는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