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166화
강적.
말 그대로 아주 강력한 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강적이라는 말은 그나마 싸움이 성립할 수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지.
모든 사람의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절대 적이라고 부를 수 없다.
드드드득...!
지진에 이어 이번에는 이상한 소음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거대한 고목이나 단단한 바위가 말 그대로 뜯기는 소리.
이후 소음이 끝나자 또 다른 소리가 귀를 때렸다.
콰직!
마치 단단한 돌을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파열음이다.
섬 한구석에 퍼진 소음은 그 근처에 있던 탈락하지 않은 학생들이 전부 들을 수 있을 만큼 시끄러웠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하나 같이 착각이었다.
‘내가 잘 못 들었나?’라는 착각.
콰직!
하지만 그들은 착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착각에서 깨어났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똑같은 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바위가 그들을 덮쳤으니까.
슈우우욱!
처음에는 그저 태양을 가리는 작은 점이었을 뿐이다.
당연히 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렇기에 행동이 늦었다.
결국 바위의 크기가 대충 농구공만 해졌을 때, 학생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보았다.
저런 건 운석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머릿속에서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콰앙!
바위는 그대로 지척에서 떨어졌다.
강렬한 충격에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넘어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는 순간, 그들은 현실을 깨달았다.
“도...도망쳐!”
무리의 대장 역할을 맡은 학생이 소리치자 그제야 학생들은 움직였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느려진 건 시각 하나만이 아니었으니까.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들의 온몸 또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만큼 느려졌다.
결국 바위를 마주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콰앙!
바위는 제일 먼저 가장 큰 무리를 지은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터져나갔다.
그 자리에 적중한 학생들의 몸이 한순간에 마력을 발산하며 사라졌다.
팔찌가 한 개든 두 개든 상관없이 전부 탈락한다.
소유자를 보호할 때 소모되는 데미지를 넘어선 것이다.
“으아아악!”
“와 씨!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X발!”
장정 10명은 모여야 들 수 있는 바위가 눈앞에서 폭죽처럼 터지고.
거기서 파생된 돌조각들이 회오리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비산한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충격을 일으켜 하나둘씩 학생들을 섬 밖으로 내쫓는다.
“꺄하하하하!”
이어서 웃음소리가 학생들의 귀를 채웠다.
높고 카랑카랑한 여성의 웃음에는 악의와도 흡사한 광기가 물씬 느껴졌다.
천천히 입자로 변하며 탈락하는 학생들은 직감했다.
하늘의 바위들이 전부 저 여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쿠우웅...
쿠웅...
섬 한구석에서 바위들이 떨어지며 일어난 미약한 진동은 섬 전체에 잔뜩 퍼졌다.
그 말인즉슨 진원지의 정반대 쪽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지진.
바위가 떨어지는 곳과 멀리 떨어진 학생들은 진동을 듣고 몸을 떨었다.
쿵쿵거리는 지진에 숨을 삼킨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학생의 상식선에서는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전에 말했던 대로 사선도는 웬만한 도시 이상으로 크고 넓다.
애초에 폐허 도시가 섬의 지형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어찌 저기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말 그대로 비상식적인 힘이다.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설마 저기 강적 둘 다 있는 거 아냐?”
“그렇지... 않을까?”
“에이 아무리 천외천이라도 저런 충격이 말이 돼? 둘 다 있겠지!”
누군가가 뱉은 희망의 말에 학생들이 호응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쥬세피나 바르사가 어떤 자인지, 신정율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어린 학생들이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외면한 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자신들을 옥죄는 괴물 혹은 재앙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학생들이 천천히 움직이려던 순간.
촤악!촤악!촤악!촤악!
무언가가 학생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색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나지만 형태를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이는 없었다.
아니, 기억을 해도 이미 늦었다.
화아아...
이미 검은색과 닿았던 학생들은 입자로 변해 사선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니까.
시험에서 탈락했다는 증거였다.
“무슨...!”
촤악!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낸 건장한 소년을 한차례 검은빛이 스쳐 지나갔고.
화아아...
소년은 검은빛과 대조되는 밝은 입자로 변해 학교로 돌아갔다.
탈락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학생들이 당황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방어를 취했다.
당황했을 뿐이지, 바보는 아니었던 학생들은 어디서 날아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한군데로 뭉쳤다.
아무리 봐도 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요즘 학생들은 나이에 비해 뛰어나네요. 바로 진을 잡는 거 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정한 미성에 학생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학생들의 위에서 마력으로만 떠있는 남성, 신정율이었다.
“다 좋은데 조언 하나 하자면. 적이 없을 것 같은 하늘이나 땅 아래도 경계하는 게 좋아요. 세상에는 기상천외한 능력을 가진 적이 존재하니까요.”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조언을 하는 남성과 방금 전의 학생들을 공격한 인물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멈추고 몸이 굳었다.
입가에 두꺼운 마스크를 착용한 신정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냥감을 보며 순간적으로 올라오려는 광기를 가라앉힌 그가 상공에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앙!
거꾸로 몸을 돌린 신정율은 하늘이 땅바닥이라도 되는 것처럼 발을 박찼다.
벙찐 학생들을 향해 돌진하던 그의 로브가 검은 잔상을 남겨 마치 먹구름처럼 보였다.
“후우...”
무리의 중앙에 사뿐하게 착지한 신정율이 몸을 숙이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의 마력은 인간의 피처럼 진한 선홍색이었다.
직후 금속 마스크로 가려진 부드러운 입매가 움직였다.
“666.”
[붉은 짐승]
아이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아주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
허나 마력이 일으키는 현상은 전혀 달랐다.
화륵.
찐득한 핏빛의 마력이 화염이 되어 로브, 손톱, 하물며 마스크까지 옮겨붙은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난폭한 짐승을 연상케 해 학생들에게 공포를 자아냈다.
덜덜덜덜...
너무나 극적인 변화에 학생들은 말문을 잃고 몸을 떨었다.
고작 사춘기를 갓 지난 아이들의 눈에도 신정율의 힘은 영웅의 정도(定度)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륜을 벗어난 사도(邪度)냐?
그건 전혀 아니었다.
대한고의 학생들 대부분은 가까운 사람들이 헌터와 가까운 데다가 저번 강화도 사건에서 사도의 끝인 마인숭배자들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똑같은 감상을 느꼈다.
무(無)
정도도, 사도도.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깥의 존재들이 가진 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나가면 기억을 잃는다 해도 이런 모습은 애들 앞에서 보이기는 싫었는데...”
신정율은 조용히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본질이 흐려졌다.
일부지만 광기를 그대로 표출할 대상이 있다는 시원한 해방감.
이런 모습이 된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더러운 혐오감.
마지막으로 나를 이렇게 만든 존재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깊은 원한.
‘적당히.’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광기를 비율로 따지자면 최대 30퍼센트까지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정확히 1할의 광기로만 [붉은 짐승]을 사용했다.
‘다치지 않게 조절하면서.’
10퍼센트의 광기라면 대충 A급 헌터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제할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의 조카딸과 똑같은 애들을 상처입히려는 행동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애써 마음을 다잡은 신정율은 손을 들어 올린 채 눈을 감았다.
맘 같아서는 이대로 눈감고 숨을 멈추고 싶으나 머릿속을 미친 듯이 헤집어놓는 광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금방 돌아가게 해줄게요, 학생들. 나쁜 기억을 심어줘서 미안해요.”
학생들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사과를 날린 신정율.
이어서 그가 눈을 뜨는 순간, 검은 동공은 핏빛으로 붉게 변해있었다.
그렇게 피투성이 짐승이 사냥을 시작했다.
스칵!스칵!스칵!
콰득!콰득!콰득!
붉은 피가 묻은 손톱이 그들의 몸에 가는 실선을 남겼고.
붉은 피를 핥은 이빨이 그들의 몸에 작은 구멍을 뚫는다.
화아아...!
순식간에 빛으로 변한 학생들 때문에 세상이 밝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웅이라는 작자가 아이들을 희생시켜 일으킨 빛이었다.
“끄아아아!”
“살려주세요!”
“제발 저만 봐주세요. 제발요...”
“...”
학생들의 비명과 목숨 구걸이 신정율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온다.
신정율은 지금이라도 멈출까 고민했으나 그의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붉은 짐승]을 시전 중에 멈추게 된다면 제어할 수 없다는 직감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젠장...!’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괜찮았다.
마인들과 싸울 때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원인은 아마 [붉은 짐승]이 오랜만에 생동감 넘치는 피를 섭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들도 식사를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듯이.
혐오스러운 이 능력 또한 분노하겠지.
지금 학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얼른 돌려보내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30초가 지나갔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신정율과 학생들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하아하아...”
남아있던 학생들 전부가 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붉은 짐승]은 움직임을 멈췄다.
광기를 조절할 틈이 생기자 신정율은 숨을 고르며 짐승을 얌전하게 만들었다.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하지만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는 피는 없었으니 말이다.
“...얼른 꺼져.”
-킥.
[붉은 짐승]은 날카로운 신정율의 말투에 차갑게 조소했다.
그러면서도 잠잠히 명령을 따른 핏빛 기운은 그의 몸속으로 흐물흐물 들어갔다.
“X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더러운 감각에 신정율은 욕설을 뱉었다.
광기를 진정시킨 그는 검은 동공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낀 후 쥬세피나가 떠나간 방향을 쳐다봤다.
‘저쪽도 끝났나 보네.’
역시나 예상대로 진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바위가 우박처럼 쏟아지던 하늘은 깨끗했다.
아니, 깨끗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오늘의 날씨는 더럽게 흐림이었으니까.
휙.
그는 자신이 일으킨 참상을 바라보았다.
선혈이 낭자해 땅을 적신 광경.
2년 전, 그날과 똑같았다.
말 그대로 X 같았다.
머릿속에 흉터처럼 남은 빌어먹을 그날의 기억을 얼른 찢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신정율은 그녀를 찾았던 것이다.
신하윤.
자신의 조카딸.
“어디 있니?”
신정율의 목소리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튀어나왔다.
혼잣말이었지만 조카가 이 말을 듣고 응답해줬으면 했다.
그리고 나를...
“알려줄까요?”
해방되고 싶어하는 그가 과거의 생각을 붙이고 있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 같은 부드러운 말투였다.
쓰윽.
신정율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나무 뒤에서 누군가 나왔다.
갈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부드러운 인상의 소년이었다.
“너는...”
익숙하지 않은 얼굴에 신정율이 의문을 가졌을 때.
영웅의 앞에 등장한 소년, 이선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