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164화
마지막 특별 조건이 학생들의 워치로 전달되기 정확히 3분 전.
끼익.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체육관 정문의 철문이 열리며 안으로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큰 역할을 해줄 [강적], 신정율과 쥬세피나 바르사였다.
체육관 안에는 몇 시간 전에 도착해 있던 성강이 그들의 기척을 느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왔군요.”
“시간 약속은 잘 지켜야죠.”
쥬세피나는 귀여운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오늘 그녀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평소 학교에서 일할 때의 정돈되지 않은 산발과 괴짜 같은 옷차림이 아니라 단정한 머리 스타일에 로브와 외알 안경을 쓴 상태였다.
그야말로 정석적인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어서 쥬세피나는 입을 열며 고개와 몸을 동시에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바로 뒤에는 따라오던 신정율에게 향해 있었다.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요?”
형제님.
싱긋 웃으며 말하는 쥬세피나는 마지막 단어를 밖으로 내뱉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이 세상을 바꾸려는 그들은 서로에게 형제이고 자매였다.
같은 신을 모시지는 않지만, 자신이 모시는 신과 같은 존재가 신정율의 몸에 깃들어 있었으니.
그렇기에 걱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이 정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계약은 무효로 돌려도 좋네.”
“아, 저는 괜찮습니다. 밤에 잠을 살짝 설쳐서 이러는 것뿐입니다.”
쥬세피나가 한 말에 이끌려 젊은 청년의 얼굴을 눈으로 살펴본 성강이 말을 건넸다.
그러자 신정율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 됐군.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시작하지.”
신정율의 대답에 성강은 무뚝뚝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어서 성강은 가볍게 몸을 굽혀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단전에서 이어진 마력이 손바닥을 통해 체육관 바닥에 흘러 들어갔다.
직후.
우우웅.
바닥으로 들어가는 마력과는 반대로 바닥에서는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이 살짝 찌푸려질 정도로 밝은 청색의 빛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쥬세피나와 신정율의 바닥에서만 나타났다.
빛은 언뜻 보면 무분별하게 흘러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빛은 실시간으로 특수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려진 문양은 지극히 기하학적이면서도 청명한 하늘을 그대로 본떴다.
5대 가문 중 하나인 공마(空魔)의 유클리가에서 직접 만들어준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흐음~ 오랜만이네.”
“이건... 공마의?”
대한고에서 근무하며 마법진이 기동하는 광경을 수차례 보았던 쥬세피나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와는 다르게 신정율은 유클리가의 마법을 보고 피곤한 얼굴로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지금이야 천외천의 말석을 차지한 [마투사 신정율]이었지만 본래 그는 형이나 조카딸과 같은 마법사다.
“신기하죠?”
“그렇네요.”
넋을 잃고 마법진을 바라보는 신정율의 귀에 쥬세피나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다른 마법사의 마법까지 공부하며 발전하지만, 2년 전까지 세상과 단절한 상태로 살아왔던 그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다른 마법사라고는 형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연구를 할 기회가 없었다.
신정율이 연구할 수 있었던 마법은 고전 책들에나 나오는 것들이었다.
영상에 나오는 마법은 그 효과만 보이지, 실질적인 원리는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에요.”
텔레포트가 거의 준비되었다는 걸 확인한 쥬세피나가 실시간으로 마법을 분석하는 신정율에게 속삭였다.
평소와 비슷한 나른한 음성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 신정율과 눈이 마주친 쥬세피나는 미소를 지었다.
“불꽃은 피조차 태워버릴 만큼 뜨거우니까요.”
싱긋.
화염술사에게 불이 뜨겁다니.
그리고 그 불꽃이 피조차 태워버린다니.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말일까.
옆에 있던 신정율은 그녀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느낌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의문을 참지 못한 신정율이 급하게 쥬세피나에게 의미를 물으려 했을 때.
“텔레포트 기동.”
화아아아!
성강의 무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푸른 하늘이 그를 집어삼켰다.
***
그 시각.
“갑자기 나와서 시작하자니. 무엇을 말이냐?”
“메시지를 봐, 형.”
선일은 손을 뻗었다.
무투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녀린 소년의 손가락은 형의 왼쪽 손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월과 황신영, 유리는 그의 손이 워치가 아니라 메시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조건에 대해 공표한다.]
[조건의 이름은 강적.]
[이미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전에 보았던 두 사람이 강적으로 등장한다.]
[그럼 건투를 빈다.]
사선도 안에 있는 모든 학생의 워치에는 이런 딱딱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마지막 특수 조건은 일요일에 대면했던 강적의 출현이었다.
“...네놈이 연합을 하자고 했던 이유가 설마.”
“그 설마야.”
강적 잡아야지?
선일의 목소리는 마치 ‘휴가 때는 어디에 놀러 가는 게 좋을까?’라는 대화를 꺼낸 것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주제에 대한 무거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미쳤냐? 우리끼리 강적을 잡자고?”
“그래.”
묵직한 충격에서 빠져나온 황신영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고 선일은 담담히 대답했다.
“하!”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선일이 중간고사 안에서 자신의 연합으로 들어오라 권유했을 때, 해줘야 할 일은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명령이 없을 때는 평범하게 점수를 올리다가 딱 한 번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일이 내놓은 조건은 바로 자신이 연모하는 선월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해주겠다는 것뿐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선월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고, 그렇기에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었다.
결국 이런 미래를 모르고 받아들였으니 어쩌면 업보와도 같았다.
후회를 하면서도 거절할 수 없었던 황신영은 세차게 혀를 찼다.
“쳇!”
[‘황신영’이 당신에게 짜증을 냅니다.]
‘짜증 내도 어쩌겠어.’
자기가 선택했는걸.
선일은 설정창이 보여주는 황신영의 감정을 읽으며 속으로 흑막 같이 웃었다.
물론 ‘표정 숨기기’가 그의 음흉한 표정을 가려졌기에 남들에게는 평범한 미소처럼 보여졌다.
“그래서 누굴 목표로 하는 거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질문자는 다름 아닌 선월이었다.
물론 갑자기 강적과 싸울 거라는 이야기를 아무런 언질 없이 들었다면 그조차 조금은 고민했을 테다.
하지만 선월은 자신의 동생이 연합을 제안할 때 이미 내용에 대해 간략히 들었었다.
**
‘중간고사에 나올 강적에 대해 들었지?’
‘그래. 한 사람은 3학년 교사, 다른 한 분은 천외천이라더군.’
‘형, 나는 이번 시험에서 형이 도와줬으면 해. 강적을 사냥할 거거든.’
‘미쳤군.’
처음 선월은 망설임 없이 답을 내렸다.
요즘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어도 지금의 이선일은 분명하게 자신보다도 약하다.
그런데 강적과 싸운다니.
아니, 싸우는 것도 아니라 사냥한다니.
가장 약한 천외천이라 하더라도 S급 헌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작 학생‘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말 그대로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녀석과 내가 숨겨둔 힘을 쓰든 뭔 짓을 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정확한 능력을 모르는 3학년 선생과 천외천이자 2년 전의 영웅을 상대로 고작 학생들의 연합이 통할 리 없다.
그만큼 강적과 우리의 차이는 심했다.
‘물론 천외천이 아닌 3학년 교사를 상대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발상이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들은 전부 수준급 이상의 헌터들이다. 그중에서도 3학년 교사는 전부 S급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냐.’
‘그렇기는 하지.’
선월은 선일의 제안에 이성적으로 반박했고 그는 간단하게 수긍했다.
강적들을 사냥하겠다는 말은 어쩌면 하늘의 별을 따오겠다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아니 그 이상의 허언이다.
그런 말을 너무나 쉽게 뱉은 녀석이 하는 말이 이제는 믿어지지 않았다.
직전에 말했던 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을 진짜 아는지, 애초에 존재는 하는지 의심이 갔다.
그대로 당연히 제안 또한 거절을 했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
흠칫.
아니, 하려 했다.
형의 시선은 어느새 그렇게도 싫어했던 동생의 눈에 가있었다.
어머니를 닮은 갈색 눈동자가 아버지와 닮은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형은 보았다.
동생의 어두운 눈동자 안에 들어있는 굳은 결의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진심이야.’
동생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도 망설이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담담히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알리는 중이었다.
만약 둘의 사이가 학교에 들어오기 전과 같았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가운 형은 어느새 음흉한 동생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형은 짧게 물었다.
딱 세 음절만으로도 자신의 모든 의미가 전달되었다.
‘지금은 설명할 수 없어. 다만 하나는 말해줄게.’
고작 나 혼자서는 안 돼.
다른 사람들이 필요해.
형의 힘이 필요해.
항상 부드러웠던 동생은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차갑게 내뱉었고.
항상 차가웠던 형은 조용히 듣다가 마지막에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끌시끌한 연회의 밖에서는 누군가를 구원할 계획이 아주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구원의 당사자조차 모르는 소년의 힘이었다.
**
“좋은 질문이야.”
직전까지 천막 안쪽에서 나오지 않았던 동생이 주먹을 쥐었다.
항상 동생이 끼고 있던 백색 장갑이 순식간에 건틀릿으로 변했다.
적색과 자색의 철갑.
두 개의 건틀릿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적어도 자신의 검, 달미르의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만전의 상태.
동생이 입을 열었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더없이 담백하고.
더없이 부드럽게.
“우린 천외천을 상대할 거야.”
비상식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