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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61화 (16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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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저벅.

하늘을 날고 있던 소녀가 한 걸음씩 내려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아... 아직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존재감을 쓰기는 싫었는데... 너.”

어떻게 보상할 거지?

섬짓!

그녀가 입을 열자 늪지의 공기가 변했다.

초월자의 힘, 존재감, 비중.

이 모든 것이 압도적이다.

위그드라실의 분신을 직접 마주했을 때와는 결이 다르다.

“...꿀꺽.”

선일은 반사적으로 침을 삼켰다.

같은 초월자이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엘프들의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느낌.

인간의 공포를 집어삼키고 생명의 학살을 즐기는 인류 최악의 적.

웬만한 헌터들도 두 눈 뜨고 버티지 못하는 사악의 한 축을 맡는 존재.

그것이 바로 칠 죄의 악마다.

“곱게 죽어라.”

화륵!

하윤의 손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직후 등 뒤에 있던 검은 날개가 길어지며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특이한 형태의 육각형이었다.

세로를 이루고 있는 변은 평범했지만, 위쪽에 있는 삼각형보다 아래쪽의 삼각형이 훨씬 길쭉해 상하로 비대칭이 만들어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육각형의 안에는 열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원들이 생겨났다.

츠즈즈즈...

직후 검은 불꽃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찔거리며 검은 육각형 쪽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지옥의 불꽃은 원 안쪽에서 꾸물거리며 무언가를 새기기 시작했다.

원 안에 적힌 것은 다름 아닌 문자였다.

필멸자는 읽을 수 없는 기괴한 문양.

문양을 새기는 것으로 끝으로 신하윤의 몸을 빌린 하윤이 따스한 눈빛으로 등 뒤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나무를 불러내니 꽤나 힘이 드는구나.”

그녀의 손은 허공에 만들어낸 육각형을 쓰다듬었다.

몇천 도는 손쉽게 올라가는 불꽃을 만졌음에도 그녀의 손은 더없이 깨끗했다.

폭식은 본신의 힘을 전부 회복하지 못한 채 하윤의 몸을 뺏었음에도 여유로워 보였다.

오히려 그런 상태를 만드는 데 성공했던 선일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처음 보는 기술이야.’

악사영을 적었지만 이런 기술은 그도 알지 못하는 기술이었다.

딱 봐도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힘.

도대체 저게 어딜 봐서 나무라는 걸까.

“뜨거운 벌레야, 각오는 되었느냐.”

신하윤의 몸을 빌린 폭식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경직된 선일의 얼굴을 확인한 것이다.

이어서 폭식은 말 대신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체한 선일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선언했다.

“클리포트(Qliphoth) 시동.”

키이잉...!

목소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육각형이 주변의 빛을 빨아들였다.

빛뿐만이 아니었다.

공기, 생기, 마력.

[클리포트의 나무]는 범위가 닿는 모든 것들을 게걸스레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폭식]이라는 명칭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힘이었다.

‘위험하다.’

화아...!

폭식이 사용한 알 수 없는 기술에 얼굴을 한층 더 굳힌 선일이 마력의 양을 한 층 더 끌어올렸다.

그러나 곧 그는 한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뭐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폭발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선일은 곧 마력이 평소보다 빠르게 소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적양권에는 이상이 없었다.

단전에 자리를 잡은 천류체의 문제였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정황상 [클리포트의 나무]는 권능을 소모해 사용하는 기술이다.

저 악마의 권능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폭식(暴食)]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며 흐름을 읽는 천류체와 어떤 면으로는 비슷한 힘이다.

‘천류체로 흡수하는 마력보다 폭식이 흡수하는 기운의 양이 훨씬 많아.’

천류체는 대단한 힘이지만 초월자의 권능에 비할 바는 아니다.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는 건 저쪽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적양권을 통해 쏘아낸 마력은 흡수를 못 한다는 점인데...’

최상위 속성인 태양.

그것은 악마에게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폭식이 완전한 상태였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지금은 희망이다.

활로를 찾은 선일은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뚫어내야 하지.’

장기전으로 본다면 분명 유리한 건 선일이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육각형은 기운이 사라질수록 천천히 소멸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예상하건대 폭식이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이 늪지에서 사라진다면 저 기괴한 육각형 또한 사라질 것이다.

본능과 직감이 동시에 이야기하니 확실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저 화력을 어떻게 버티느냐는 건데!’

선일은 어느새 눈앞까지 도달한 지옥불을 보며 갈라틴을 들었다.

위이이잉...!

치이이이이익!

하늘을 가득 채운 검은 불꽃이 쏘아지며 잉잉거리는 불쾌한 소음이 귀에 들어와 집중을 방해했다.

아직 완전체가 아니라 한 발 한 발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고 빠른 데다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마치 이지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쏟아지는 것이라면 태양의 힘으로 강화한 갈라틴으로 방어하거나 황혼으로 요격하면 된다.

하지만 저 기술은 궤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데다가 본능적으로 빈틈을 찾아 공격이 들어왔다.

게다가 자신의 마력은 소모되는 와중에 폭식은 저 X 같은 육각형으로 힘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쳇!”

성가신 기술에 선일이 혀를 세차게 차며 빠르게 움직였다.

황혼은 무게가 0에 가까웠지만, 덩치가 큰 갈라틴은 신체를 강화한 선일도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가벼운 무기를 다루며 회피에 주력하는 그는 무거운 추라는 페널티를 들고 전투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폭식이라 한들 본체는 신하윤.

어쩌면 이 세계에 빙의한 후 처음 친구가 된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상처입히기 싫어서 갈라틴을 빌린 거였는데.

안 좋은 선택이었다.

온 힘을 다해 달리던 선일은 흑염이 많이 날아오지 않는 공간에 황혼을 조준했다.

‘래피드 플레어!’

덜컥.

타타타타앙!

방어를 일부 무시하는 저녁의 불꽃이 날카로운 탄환이 되어 검은 천사, 아니 악마에게 향했다.

지금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이었다.

“흐음?”

신성을 가득 머금고 있는 불꽃이 날아옴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쁜 듯 얼굴을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한 번 먹어볼까.”

그녀의 말이 기폭제가 된 듯 등에 돋아있던 검은 날개로부터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지옥의 불꽃보다 훨씬 새까만 기운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위이이잉...!

거리가 멀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하다.

날개짓 소리다.

조류의 날개와는 다르다.

사람의 기운을 역겹게 만드는 이 소리.

파리떼다.

‘벌써 상징체까지 구현하다니...’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막대한 존재감을 소모될 것을 각오해 숙주인 하윤을 빼앗은 건 원작대로였지만, 수준이 다르다.

악사영의 폭식이 이지모드라고 비유하면 지금은 하드모드나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분기점!’

자신은 어쩌다가 이런 기구한 운명에 빠졌을까.

몇 번이나 억울해해도 소용은 없다.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후후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자색의 래피드 플레어가 파리떼와 마주하기 직전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신성에 혀를 날름거린 폭식이 말했다.

“맛있게.”

먹어주마.

콰직.

폭식의 상징체와 저녁의 불꽃이 힘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밀어내는 추세였으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파리가 불꽃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으적으적으적으적.

힘 싸움에서 밀려버린 보라색의 불꽃을 새까만 기운이 둘러쌌다.

끝을 상징하는 황혼의 불꽃이 그저 파리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씹어 먹히는 불꽃을 보며 순간 틈을 보인 선일의 옆에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콰아앙-!

으득!

“크윽...!”

선일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뜨뜻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옆을 보았다.

그의 시야에는 검은 파리 하나가 옆구리에 붙어있었다.

하늘에서 쏘아지던 흑염은 최대한 방어했지만, 상징체는 그러지 못했다.

황혼의 힘을 흡수한 폭식의 수족들은 더욱 강해졌고 또한 난폭해졌다.

싱긋.

“조금 소화가 힘들기는 하지만 꽤나 맛은 있구나.”

“...”

이후 래피드 플레어를 완전히 삼킨 폭식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아름다운 웃음을 지었다.

워낙 귀여운 인상이었기에 그녀의 웃음은 매혹적이었으나 진실은 아는 선일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무표정인 하윤의 얼굴이 저런 격렬한 표정을 지으니 어색함을 넘어 소름까지 돋는다.

이어서 폭식은 주변에서 사납게 날아다니는 파리떼를 보며 따스한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직접 먹는 음식들은 완벽은 아닐지언정 완성도가 꽤나 높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내리고 싶구나. 하나 한 가지가 아쉽다. 내 식사를 방해하는 저놈이 없다면 말이다.”

캬아아악!

파리떼가 주인의 말에 분노하며 포효했다.

과연 저걸 포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아이들은 한 번 맛본 먹이에 집착한다. 네 불꽃이 나의 취향에 딱 맞으니 계속해서 널 따라다닐 것이다.”

“...후우.”

폭식은 숨을 내쉬는 선일을 향해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진미를 먹게 해준 너에게 감사한다. 만약 네놈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내 식사가 되겠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도록 하지.”

모든 공격을 흡수하며 여유로워진 폭식의 눈동자에 광기에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선일은 하윤의 눈이 광기에 완전히 삼켜지면 악마의 힘이 안정화되는 설정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저지해야 한다지만 힘이 부족하다.

황혼에 미리 충전해뒀던 마력들이 ‘래피드 플레어’를 사용하면서 완전히 소모되었으니까.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꾸욱...

“이건 아끼려고 했는데.”

선일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작은 손거울이었다.

폭식은 그가 들고 있는 손거울이 평범한 아티팩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하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이미 몸을 빼앗느라 소모한 존재감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어차피 네가 하는 모든 건 이제는 내게 닿지 않는다. 어째서 저항하려고 하느냐.”

폭식은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언뜻 들으면 포근함과 따스함으로 생명을 맞이하는 안식처처럼 들렸다.

그러나 선일은 그 목소리가 절대 안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곧 네 여유는 사라질 거다.”

이 악마야.

원래는 이 힘을 지금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악사영의 주인공인 이선월이 신하윤 속에 존재하는 악마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특별한 기연.

이건 그가 중간고사의 최악의 적이라고 생각한 쥬세피나와 싸울 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지금은 물러나는 게 최적의 생각이다.

기연을 허튼 곳에 사용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지금 상황이 달라진 이상 신하윤에게서 저 악마를 떼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외부자들은 뭐...

“...될 대로 되겠지.”

화아아...!

마력을 주입하자 손거울이 신성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원래는 ‘주인공’ 이선월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성유물이다.

왜냐고?

그냥 그런 설정이다.

하지만 선일은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우연, 아니 운명이 겹쳤기 때문이다.

화륵.

첫 번째로 그는 달의 형제인 태양의 선택을 받았고.

으득.

두 번째로 하윤의 몸 안에 존재하는 악마의 정체가 힘을 잃은 폭식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방금 말한 두 가지 우연은 마지막 하나와 비교하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세계의 불청객에 불과했던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하면서도 마지막 요소.

그건 바로.

“...덮어쓰기.”

이선일.

아니, ‘강선일’이라는 인간이 이 세계에 대해 수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적었던 작가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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