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58화 (158/180)

158

158화

싸아악-!

두 사람을 태운 대검이 날랜 새처럼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해서 검에 앉아있던 유리는 익숙하게 앞을 보고 있었지만, 선일은 아니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바이크 같은 이동 수단을 타본 적이 없던 그는 어색함에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물론 헌터의 신체 능력으로는 균형을 쉽게 잃을 리도 없었고, 애초에 넘어지더라도 다치지 않는다.

선일이 쫄은 이유는 단순히 심리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편한 건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시원하지?”

유리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에 스며들었다.

선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뺨에 스치는 공기가 너무나 시원하다.

이런 상쾌한 기분을 자기 혼자만 느꼈다니.

아까 조금 튕겼던 게 후회될 지경이다.

쓰윽.

선일의 반응에 유리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자신의 허리에 감겨있는 온기를 느끼며 입을 열며 대검의 이름을 불렀다.

“갈라틴.”

우우웅...

아래에 있는 대검이 작은 검명과 함께 날을 아주 가볍게 떨었다.

악사영의 세계관에서 에고가 있는 물건과 소유자가 정해지는 방식은 계약이나 종속 같은 것이 아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 비유하자면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고가 있는 아티팩트는 자신에게 잘 대해준 존재나 그 피를 이어받은 자에게만 본능에 따라 자신을 맡긴다.

그리고 지금 갈라틴을 가지고 있는 유리는 임시라고는 하나 아서의 피를 물려받은 정식 후계자다.

“조금만 더 빨리 가줄래?”

웅!웅!

유리의 부드러운 음성에 갈라틴이 몸체를 떨었다.

바람 소리에 살짝 묻히기는 했지만 갈라틴은 인식했다.

입이라는 신체 기관이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대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의지를 표현할 방법은 충분히 존재했다.

“그래그래.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유리는 갈라틴의 검날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분명 차가워야 할 강철에서 이상하게도 온기가 느껴졌다.

우우웅!

티 없이 맑은 검명을 주변에 퍼뜨리는 갈라틴.

어쩌면 달미르와 비견될 만큼 깨끗한 울림을 들으며 선일은 눈을 감았다.

‘잘 따르네.’

유리는 몰랐지만 갈라틴과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거의 매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보았었다.

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아서라는 인간은 자신의 형제를 물려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시작했다.

목표는 그 남자가 속한 자신의 첫 번째 주인들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영광스러운 왕국]이라는 집단의 대표를 만들기 위해서였나.

그들은 선조와는 달리 욕심만을 찾는 그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갈라틴을 포함한 그의 많은 형제들이 아서를 싫어했다.

“헤헤...”

그렇다고 해서 유리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에고 소드들은 딱딱한 원래 주인보다 자신들을 보고 부드럽고 또 사랑스럽게 대해주는 유리를 훨씬 좋아했다.

쿠구구구....!

쌔애액!

순식간에 가속하는 갈라틴.

직전까지만 해도 그저 시원하다는 것뿐이었던 바람은 피부를 벨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칼바람이 되었지만, 그들이 다칠 일은 없었다.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첫 번째 주인의 힘을 끌어올려 몸을 은은하게 감싸는 방어막을 만든 것이었다.

“와아아!!!”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사실과 속이 뻥 뚫릴 만큼 빠른 속도에 유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 앉아있던 선일의 표정은 더없이 굳어있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 긴장한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음을 입으로 뱉으며 인정한 순간, 마음은 편해졌으니까.

그가 얼굴을 굳힌 이유는 늪지 안쪽에서 느껴지는 특수한 기운 때문이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찾고 있었던 사람.

피에 존재하는 불꽃을 권장하는 천사의 축복과 모든 존재를 먹어 치우려는 폭식을 상징하는 악마의 저주.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가 존재하는 소녀의 기척이 이 앞에서 느껴졌다.

‘아직 유리나는 느끼지 못한 거 같네.’

아마 자신이 그녀의 잔향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불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유리나. 한 200미터 앞에서 멈춰 줄래?”

“벌써 다 왔나?”

“응. 속도 조금만 올려줘.”

“갈라틴!”

선일의 부탁에 대답하는 대신 유리는 갈라틴을 불렀다.

작은 주인이 이름을 부르자 대검의 속도가 한 층 더 가속했다.

***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냐.

선일은 자신이 생각했던 그 인물과 마주했다.

무언가에 베인 듯 뺨에 긴 자상이 있는 귀여운 인상의 소녀.

첫날 만났을 때 단발이었던 머리가 어깨 아래로 내려갈 정도로 길어진 그녀를 보며 선일이 입을 열었다.

“역시...”

“여... 여긴 어떻게 왔어요?!”

선일의 얼굴을 본 소녀는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뒤이어 갈라틴을 아공간으로 집어넣은 유리 또한 처음에는 소녀의 얼굴을 보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소녀의 모습에 유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하윤아...? 너 상태가...!”

검은 소녀, 신하윤은 말이 없었다.

유리와 선일은 그녀가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임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그녀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나빠 보였으니까.

얼굴은 한 번도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것처럼 피폐해졌고, 새까만 윤기를 내뿜던 머리와 검은 별 같던 눈동자에서는 생기가 사라졌다.

악마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유리는 이유를 몰랐으나 선일은 저것이 폭식의 힘을 사용한 반동, 즉 대가임을 알고 있었다.

“신하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선일의 목소리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윤은 본능적으로 그의 온도가 내려간 이유를 직감할 수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녀는 곧바로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지웠다.

지금까지 봐왔던 선일은 대단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 힘이 어떤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꾸욱.

자신을 부르는 선일의 부드러운 음성에 기대고 싶어졌다.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같이 지냈던 지난 학교생활은 행복했다.

잠시나마 자신의 목숨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과 그에 대한 복수를 잊을 수 있었으니까.

-정신 차려. 네 염원을 포기할 거야? 그놈을 죽이는 것. 그게 네 목표잖아?

하지만 심장에 들어있는 악마가 웃으며 속삭였다.

소중한 친구들을 보았다고 약해진 자신을 향해 비웃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하윤의 반응이 이상하자 악마는 그녀의 몸을 빌려 힘을 일으켰다.

스멀스멀...

‘으윽...!’

“너 왜 그래?!”

거무죽죽하고 불쾌한 기운이 하윤의 등에서 빠져나왔다.

화염이 내뿜는 열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상을 감지한 유리는 소리쳤고, 선일은 보기 드물게 미간을 찡그렸다.

폭식의 마기와 불꽃이 합쳐지며 더욱 위력적인 힘을 내뿜었다.

-저 두 연놈의 힘을 흡수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선일씨하고 유리씨는 안 돼...!’

은근한 목소리로 유혹하는 악마와 그 유혹을 강하게 거부하는 신하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선일과 같이 있었을 때는 조용히 안에 숨었던 악마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선도에 들어오고 나서 많은 생기를 흡수해 존재감을 조금 회복해 권능 일부를 복구한 그녀는 끝없이 차오르는 배고픔에 특별한 인간들의 힘을 눈독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별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저 녀석들의 힘이라면 네 소원에 더욱 가까워질 텐데?

‘그럴 바엔 그냥 내 생명을 가져가요!’

-그것도 나쁘지 않으니 고민되네.

하윤은 잘못하면 두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악마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의지를 꺾지 않은 것임을 깨달은 악마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흐음... 이번엔 내가 양보하지 뭐.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기운이 심장을 감쌌다.

폭식의 권능이 생명력의 집합체인 심장의 기운을 일부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욱씬.

저릿저릿저릿저릿!

‘으아아아아!’

생명력이 빠져나가자 피로로 인한 고통이 배가 되어 신경에 밀려 들어왔다.

그중 뺨과 심장에서 느껴지는 격통이 가장 심했다.

소리라도 치면서 고통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고통을 겪으면 말도 안 나온다던데.

이런 느낌이구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사람이 내 생명력이 빠져나간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버텨야 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악마를 없애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생명줄을 쥐고 있는 이 사악한 존재에게 거스를 수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는 고작 조건을 바꾸는 것뿐이다.

화륵.

생명의 일부를 악마에게 바치자 화염의 형태가 점점 변해갔다.

그녀의 날개 죽지에 밀집되기 시작한 불꽃은 누가 봐도 천사의 날개였다.

다만 그 색이 검었을 뿐.

성스러운 천사를 생각하며 만든 세라프가 타락한 것이다.

‘얼른... 도망쳐요...’

입을 열 힘조차 사라진 신하윤은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 기운은 위험했다.

잘 보면 주변에 불꽃의 여파가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뺏겨 죽음에 이르고 있었다.

하윤의 앞에 있는 유리와 선일 또한 그것을 깨닫고 마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으흠? 재밌네.

악마는 덤덤하게 말을 뱉었다.

하윤은 그 목소리 안에서 느껴지는 더러운 욕망을 느꼈다.

으득.

이로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차린 하윤.

파래진 입술에서 비릿한 피가 흘러내렸다.

저쪽이 내 눈빛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내가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직후.

사락.

콰자자작-!!!

검은 날개가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분쇄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