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157화
첫 번째 특별 점수 시스템 [현상금]이 공개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학생들은 현상금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제적당하기 싫어 다른 학생들을 피해 다니더라도 영원히 마주치지 않을 리가 없다.
시험은 어쨌든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었으니까.
간간이 전투는 이뤄졌다.
그로 인해 승리한 자는 상대의 포인트를 빼앗았다는 사실.
패배한 자는 자신의 포인트가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경악스러운 시스템의 정체는 순식간에 학생들에게 퍼져나갔다.
“몬스터 처치는 시시각각으로 바뀌는데 적 처치 현상금의 순위는 변동이 거의 안 일어나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천막에서 벗어나 늪지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던 유리가 짐짓 가볍게 말했다.
“뭐... 당연하지. 제적이 걸린 이상 쫄보 마인드로 시험을 치루는 게 이로울 테니까. 거의 안 싸울걸?”
그 말대로였다.
현상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해도 피바람은 불지 않았다.
아니, 딱히 사선도에 눈에 보일 만한 변화는 없었다.
기껏해야 목숨이 2개 남았던 학생들 일부가 원 코인 남은 학생들과 처지가 같아졌다는 것과 학생들 사이에서 수많은 연합 혹은 일시적인 동맹이 늘었다는 거 정도?
딱 그뿐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선일의 예상대로였다.
‘적을 처치해도 순위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라고 적었었지.’
첫 번째는 말한 대로 학생들이 싸움을 서로 피하기 때문.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 명이 함께 상위권 학생을 처치할 경우 그에게 존재하는 현상금이 분배된다는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쪽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섬 안에서 소문은 금방 퍼진다.
돌아다니다가 다른 학생과 조우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가 연합을 했다 한들 다른 학생과 내통하는 경우도 간간이 있으니까.
‘아무리 늦어도 한두 시간 정도 뒤에는 온 섬에 전부 퍼지겠지.’
이후 완전히 소식이 퍼지고 나면 점수에 눈이 먼 학생들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연합할 것이다.
이전에 말했던 대로 철저한 수 계산.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응?”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선일의 반응에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후 그녀의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예상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며 선일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유리나, 너 혼자만 타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분명 유리는 워치에만 시선을 두고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가볍게 달리고 있는 자신의 속도를 따라붙는 걸까.
그 답은 그녀가 앉아있는 물체에 있었다.
스륵.
유리는 차가운 날붙이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녀가 입학할 때부터 지닌 칼리번 같은 롱소드가 아닌 검날의 폭이 매우 넓은 대검이었다.
찰캉...
이어서 선일이 말을 뱉자마자 대검이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그 모습이 고작 무생물이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았기에 선일은 살짝 열받았다.
아니, 고작 무생물은 아니지.
악사영에서 등장하는 저 검의 정체는 그녀의 아버지이자 마탑주인 ‘아서’가 소유한 자아를 가진 아티팩트, 즉 에고소드였으니까.
“갈리틴, 놀리지 마.”
유리는 에고 소드인 [갈라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헤헤, 부러워?”
“...아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럽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사선도는 엄청나게 넓다.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인도였지만, 그 크기는 서울과 비슷했다.
게다가 섬의 특성상 밤에는 북극처럼 추워지고 낮에는 열대야처럼 더워진다.
그 말인즉슨 텔레포트나 워프 같은 공간 계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몸뚱아리 하나만으로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받아들이기엔 표정이 힘들어 보이는데?”
유리는 선일의 뺨에 살짝 흘러내리는 한 줄기의 땀을 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 잡은 천막부터 늪지까지는 20킬로미터에 육박한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발걸음으로는 네다섯 시간 걸리는 거리이다.
그토록 먼 거리를 소모될 마력도 아까워서 맨몸으로 달리면서 쉬지도 않으니.
‘안 힘든 게 이상하지.’
“...아주 조금 부럽네.”
발을 멈추지 않는 선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유리는 음흉하게 웃었다.
마치 숨겨진 무언가를 꺼내라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선일은 그녀에게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많이 부러워.”
씨익.
선일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유리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그제야 아까 전에 보았던 그의 여유로운 미소를 갚아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네, 갈라틴? 태워주자!”
철컹철컹!
주인의 명령에 몸을 흔드는 대검.
승낙의 의미로 받아들인 선일은 차가운 검날에 앉아 탔고 후에 새로운 감각을 느꼈다.
“와....”
유려한 움직임으로 나무 사이를 종횡무진 헤쳐 나가는 대검.
그 위에 앉은 금발의 소녀와 연갈색 머리의 소년.
마치 원래 선일의 세상에서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유명한 배달부 영화 같은 느낌이라 진짜 환상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아 물론, 애초부터 그는 환상의 세계 속에 있었지만 말이다.
***
그렇게 두 사람이 늪지로 향하고 있었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인물이 있었다.
화르르...
콰앙!
끼에에엑-!
“하아하아...”
거친 숨을 토하는 한 소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윤기 나는 머리칼은 생기가 사라진 것처럼 푸석푸석해졌고,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특히 뺨에 있는 거대한 상처에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통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소녀의 상태는 단순히 지쳤다는 말로 표현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때의 사건 이후, 몸 안에 자리를 잡은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빌렸으니.
이런 상태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쓰윽.
소녀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욱씬!욱씬!욱씬!욱씬!
그러자 뺨에만 국한되었던 통증이 심장까지 내려가며 순식간에 온몸을 관통했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으윽...!”
힘겹게 발을 움직이자 아래에서 아주 얇고 가벼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녀의 발치에는 거대한 동물의 유골이 남겨져 있었다.
방금 그녀가.
아니, 그녀 안에 있는 무언가가 거칠게 처리한 몬스터였다.
“...윽.”
원래라면 피해 갔을 테지만, 그녀의 몸은 무기력했다.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일 힘조차 거의 없었기에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유골을 밟고 넘어갔다.
순간 그녀가 발을 헛디뎌 실수로 해골을 밟았을 때.
파사삭...
온몸에 존재하는 생기, 하물며 영혼까지 사라진 무언가는 순식간에 입자로 변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 광경은 한 초월자가 말했던 윤회라는 영혼의 권리라고는 절대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라진 몬스터의 힘은 지금 소녀의 몸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식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으음~ 아직 조금, 사실 많이 부족하네.
으득.
소녀는 귓가에서 들려오는 무언가의 목소리에 거칠게 이를 갈았다.
객관적으로는 고혹적인 음성처럼 들려왔지만, 그 존재와 같이 살아가는 소녀에게는 더없이 불쾌한 소음이었다,
그나마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아, 그래.
수백 수천 마리의 파리떼가 귓속에서 불쾌하게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봤네?
그런 소녀의 생각을 읽은 무언가가 조소했다.
무언가가 힘을 쓰면 쓸수록 그녀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던 소녀는 자신을 우습게 보는 무언가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소녀 혼자의 힘으로는 피가 이어진 빌어먹을 혈육을 죽이기에 역부족이었으니까.
-얼른 움직여 얼른! 그래야 네 약속을 들어주지 않겠어?
“하아...”
무언가가 자신을 보채는 목소리에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식이라고는 고작 새벽에 잠깐 나무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 끝.
그 잠깐이라는 시간 동안 보았던 꿈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행복하다는 기억만으로 힘이 난다는 건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착각이었나보다.
‘...쉬고 싶어.’
소녀는 휴식이 간절했다.
적어도 1시간이라도.
아니, 10분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조금의 휴식이라 하더라도 지금 자신에게는 사치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마음 편히 쉬고 있는 수는 없어.’
소녀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때 보았던 빌어먹을 작자의 힘은 내 안에 있는 존재도 경계하는 힘이었으니.
그를 죽이려면 더욱더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힘을 축적해야 한다.
“...다음은.”
-서쪽에 맛있어 보이는 게 많네?
무언가는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 상황에서 갑은 무언가였다.
“알았어요.”
힘이 없는 몸을 가누며 일어선 소녀.
그녀가 워치에 있는 지도 프로그램을 펼치고 무언가가 바라는 서쪽을 바라봤을 때.
멈칫.
소녀는 자신이 그리 만나지 않기를 바랬던 얼굴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