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156화
삐빅!삐빅!삐빅!삐빅!삐빅!삐빅!
중간고사가 시작한 지 정확히 24시간이 지났을 때, 학생들의 손목에 있는 워치가 동시에 울렸다.
하나같이 동시에 움직인 그들은 직감했다.
이번 메시지의 내용이 바로 시험에 특수 조건에 대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투둑.
워치에 도착한 메시지는 학생들의 이름이 쭉 나열된 표였다.
학생들은 침묵을 유지한 채 표를 내렸다.
짧은 시간 동안 표에 집중한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들이 느낀 기시감을 다른 학생이 모를 리 없었다.
“표가 반복되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유리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메시지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학생들의 이름이 다시 한번 반복된다.
또 하나의 표.
언뜻 보면 잘못 올라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몇몇 최상위 학생의 등수만 비슷할 뿐 위에 있는 표와 똑같은 배열이 아닌 데다가 이름 끝에 붙어있는 숫자들이 달랐으니까.
이 말이 무슨 의미이냐.
“표 두 개가 같은 게 아니구나.”
“맞아.”
유리의 옆에서 조용히 마력을 가다듬던 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워치를 바라보고 있던 선일.
그는 두 개의 표를 비교하며 자신이 썼던 설정과 달라진 부분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선일이 한참 동안 집중하고 있었을 때 옆에서 유리가 고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흐음... 도대체 무슨 기준일까?”
“그건...”
삐빅!
삐빅!
삐빅!
선일이 그녀의 혼잣말에 무의식적으로 답을 해주려던 찰나에 타이밍 좋게 워치가 울렸다.
연속적으로 워치에 갱신되는 알림.
모두 성강의 메시지였다.
[특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을 알려주지.]
[조건의 이름은 ‘현상금’이다.]
[다들 그 표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을 거다.]
[표는 적을 처치한 수에 따른 순위에 따른 것과 몬스터를 처치한 수에 따른 순위로 나뉘어 있다.]
[특수 조건 현상금은 그 표들과 관련이 있다.]
[그럼 건투를 빈다.]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워치는 미동조차 없었다.
특수 조건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유리의 눈동자에는 의문이란 감정이 피어났다.
“이게 다 뭔 말이야?”
‘역시.’
그러나 선일의 눈은 달랐다.
작가였던 만큼 현상금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조건에 대해 자연스레 추측한 척 연기하며 옆에 있는 유리에게 설명했다.
“아마 내 예상에는 이 시스템은 학생들끼리의 전투를 유도하는 거 같아.”
“원래도 그랬잖아.”
그 말을 들은 유리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선일은 유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이 뱉은 말은 이 중간고사에서 가장 당연하고 중요한 법칙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단순히 싸움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닐 거야.”
“응? 그게 무슨 의미야?”
유리의 질문에 선일은 짐짓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정확한 규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예상해보자면 자신보다 높은 순위의 학생을 잡으면 보너스 점수를 주는 방식인 것 같아서.”
선일은 의문으로 끝냈지만, 사실은 정확한 설명이었다.
아마 머리가 좋은 학생이라면 대충 눈치는 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개의 표와 현상금이라는 시스템의 연관 관계를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상금은 아니지.’
몬스터를 많이 사냥할수록, 학생들을 많이 처치할수록 점수는 더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첫날까지는 그 포인트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현상금 순위가 책정되고 공시된 순간, 포인트를 서로 빼앗을 수 있다.
‘그렇기에 특수 조건을 알려주기 전에 표를 공표한 거지.’
표의 순위가 높을수록 다른 학생들에게는 사냥감으로 되어간다.
그리고 사냥감이 된 학생들은 적들에게서 자신의 포인트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적게는 10퍼센트부터.
많게는 50퍼센트까지.
자신과 싸우는 상대방의 순위 차이가 높을수록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배율은 커진다.
‘그래서 일부러 첫날에는 안 죽였지.’
첫날 그를 노린 여러 명의 학생들.
아무리 선일이 실력을 숨겼다고 한들 그런 쭉정이 같은 놈들 열 명 스무 명이 몰려와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주연급이 아닌 정도라면 쉽게 제압해 목숨을 하나씩 깎아도 됐겠지만 선일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일부러 목숨은 남기고 부상을 남겼지.’
팔찌가 소모되면 몸의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만, 두 번의 기회 중 하나를 쉽게 날리게 된다.
그렇다고 부상을 계속 유지하면 점수를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데다가 귀찮은 적들까지 상대해야만 한다.
그야말로 외통수.
‘게다가 나를 적대하지 못하도록 실력도 대충 보여줬으니 나를 찾아올 리는 없겠지?’
제적되기 싫다면 말이야.
뒤에 이어지는 생각을 지워버리며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은 선일.
물론 유리, 황신영, 이선월 같은 천재들과 같은 연합을 맺은 이상, 현상금이 빼앗길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잔인하네...”
“프로의 세계라면 훨씬 잔인하지 않을까? 이득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게 길드나 가문이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리고.”
이후 유리의 음성에 선일이 자연스레 호응했다.
이런 시스템이 가리키는 바는 꽤 많았다.
철저한 수 계산.
다른 학생과의 협업.
그리고.
“자신만 이득을 얻기 위해 남을 배신하는 것도 있겠지.”
싸아아...
선일이 흐릿하게 뱉은 뒷말을 들은 유리의 표정에 서리가 어린 것처럼 싸해졌다.
남장을 했음에도 빼어난 미모를 숨길 수 없던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자 마법사 특유의 냉정함이 새어 나왔다.
이어서 유리는 팔찌에서 코넨이 제작한 검 한 자루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
선일은 부드럽게 웃으며 양손을 머리까지 들어 올렸다.
그제야 유리는 검을 내려
“나 진짜 믿는다?”
“그래그래. 믿어도 돼.”
“...이럴 때 보면 속을 모르겠다는 말이지.”
그렇게 말은 하지만 다행히 유리의 감정은 신뢰였다.
특전인 설정창으로 확인했으니 확실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되게 성가시게 됐네. 나 그래도 꽤 많이 상대했는데.”
“유감이네.”
“선일이 너는 몇 등이야.”
“적 처치는 최하위.”
“네가?”
“안 믿겨?”
“당연한 거 아니야?”
현상금이라는 잔인한 시스템이 시작되었음에도 두 사람은 가볍게 담소를 나눴다.
둘은 이미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유리가 물었다.
“그러면 몬스터는?”
“직접 찾아볼래?”
선일은 웃음기 띈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해하는 유리를 보니 뭔가 놀리고 싶어졌다.
“귀찮은데~.”
유리는 말끝을 늘이며 선일을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포기했다.
이미 선일의 눈이 장난기로 화악 물들었기 때문이었다.
“칫.”
결국 혀를 찬 그녀는 포기하고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환한 불빛과 함께 유리의 눈이 표에 고정되었다.
그러나 중간이 넘을 때까지 선일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표가 끝날 무렵에야 이름을 찾은 유리는 두 번째 표가 몬스터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두 번째 표를 바로 확인하자마자 유리는 그를 쳐다보았다.
“으응...?”
그녀의 시선에서 소년의 입가는 시원스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어서 선일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몇 등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
그의 질문에 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등수와 그 옆에 있는 숫자를 보자마자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너...”
“하하.”
선일의 표정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유리의 눈에는 뻔뻔함을 넘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표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위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선일의 이름.
그 끝에는 정확히 245가 적혀져 있었다.
거대한 쇠망치가 머리를 때린 것처럼 어지러워진 유리가 물었다.
아까 전에 느껴졌던.
공기를 울리던 거대한 마력이 떠올랐다.
“...아까 전의 마력이 다 선일이 네가 한 거였어?”
“하하.”
선일은 부끄럽다는 것처럼 웃었다.
유리는 그의 웃음에 반응하지도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잠에 빠져있었음에도 느껴졌던 마력은 범상치 않았다.
그녀가 잠에서 일어난 이유도 그 힘과 뒤이어 들려왔던 굉음 때문이니까.
‘어, 잠깐...’
이어서 기억을 힘겹게 되살린 유리는 이상한 점을 하나 찾았다.
어째서인지 아까 전 느꼈던 마력은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유리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에이 설마. 아니겠지.’
유리는 그 생각을 곧장 착각이라 치부했다.
방금 떠오른 생각은 그녀의 상식으로는 절대 가능할 리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1등은 누구이려나?”
이어서 헛소리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유리는 표를 위로 넘겼다.
직후 여유롭게 표를 올리던 그녀의 눈빛이 다시금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