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55화 (155/180)

155

선일이 ‘신수의 알’에게 새로운 면을 본 후 짧은 시간이 지났다.

“...도대체 그게 무슨 꼴이냐?”

꼬박 하룻밤 동안 산을 모조리 정찰하고 돌아온 선월이 물었다.

그가 선일을 바라보는 눈빛은 평소의 냉소가 아닌 황당 또는 당혹이라는 감정이었다.

“하하...”

하지만 선일은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피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가관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무복은 하나같이 어질러져 있군. 네놈이 그러고도 천검이가의 적통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선월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동생을 순식간에 쏘아붙였다.

악사영을 집필하며 수없이 이선월이라는 캐릭터를 적어왔던 선일은 이런 미래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천검이가의 초대 가주님이 적어두신 가훈을 잊은 거냐?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선일은 직전까지 했던 생각들을 전부 철회했다.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선일의 귀에 반가운 기계음이 들어왔다.

동시에 안면 근육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띠링!

[스킬:표정 숨기기가 활성화됩니다.]

‘...고맙다.’

선일은 적절한 타이밍에 표정 숨기기를 발동한 설계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어렸을 때부터 10년 넘게 고아원 원장님의 잔소리와 수많은 어른들의 헛소리를 들으며 단련시켰던 그는 스스로를 굳게 믿고 있었다.

단단하게 벼려진 강철 멘탈로 인해 생겨난 자신감.

그 누가, 어떤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하더라도 유하게 흘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 제발...’

이번만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형의 잔소리를 우습게 보았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결국 선일은 작게 숨을 뱉은 후 선월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형, 내가 좀 더 조심할 테니 그만해주면 안 될까?”

찰칵.

그 말을 들은 순간 선월은 달미르의 검집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어서 그는 검 끝을 아래로 둔 채로 바닥을 가볍게 내리쳤다.

의도한 걸까.

아니면 우연인 걸까.

한시라도 검을 가만두지 못하는 게 선월의 습관이란 설정을 알고 있는 선일의 이성은 전자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본능은 후자를 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이어서 선월이 말했다.

“뭐라고 했지?”

“아니야. 내 생각이 짧았던 거 같아.”

순간 목덜미에 서늘한 땀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선일은 조용히 말을 정정했다.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니 어쩌면 눈치채고 있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걸.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초대 가주님이 적은 열 세 번째 가훈에 대해 말하고 있었어.”

“잘 기억하는군. 그럼 계속하지. 다음 가훈은...”

띠링.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잔소리를 듣기 시작한 선일의 귀에 다시 한번 기계음이 들렸다.

자연스레 시야 앞에 떠오르는 푸른 텍스트를 읽은 그는 순간 울컥했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는.

[‘신수의 알’이 주인의 꼴을 보고 폭소합니다.]

[‘신수의 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인을 보며 아주 아주 아주 소량의 측은함을 느낍니다.]

신수의 알이 지금 주인인 선일을 보며 웃는다는 내용이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알은 이런 성격까지 철 없는 아이를 닮았다.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 선일.

알이 그냥 웃는 거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이렇게 화가 나는 이유는 바로 신수의 알이 이런 꼴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으득.

반사적으로 이를 간 선일은 아까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거대 참새 머리 위에서 보았던 새롭게 올라온 메시지.

텍스트를 보자마자 선일은 순간 얼어붙었고, 거대 참새는 그렇게 만들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은 참새는 힘차게 날개짓하며 앞으로 날아갔고 선일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마력으로 신체 전반부를 강화해 다치지 않았지만...

‘이런 꼴이 됐지. 젠장.’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아냐, 형. 잘못 들은 거야.”

선일이 이빨을 가린 작은 소리를 들은 선월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어느새 검집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은 검 손잡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선일은 위협적인 선월의 모습에 경직된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면 신수의 알을 꼭 혼내겠다고 결심했다.

‘음 어떻게 할까.’

며칠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집에서 커튼을 치고 있을까.

아니면 인벤토리 안에서 반성하게끔 며칠 동안 꺼내지 말까.

둘 다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둘 다 알의 입장에서 잔인하긴 하지만 말이다.

[‘신수의 알’이 주인의 말에 화들짝 당황합니다.]

[‘신수의 알’이 다시는 안 놀리겠다고 약속합니다.]

분명 인벤토리 안에 있는 알의 시무룩한 모습이 느껴졌다.

귀여운 모습에 살짝 얼굴이 풀리려던 선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더 생각 좀 해볼게.’

“그건 그렇고.”

바로 그때 선월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그는 잔소리를 마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몬스터들에게서 이상한 점이 보이더군.”

“어떤 점인데?”

선일은 선월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모르는 척 연기했다.

표정 숨기기가 그의 연기에 힘을 더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 해도 뚫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지하급 던전을 가면 보스를 할 만한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은 상태더군.”

“그래? 확실히 뭔가 이상하기는 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예상대로였다.

중간고사의 무대인 사선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개척지대였다.

신기하게도 지도나 GPS에 잡히지 않았던 사선도.

이 무인도를 대한고의 교장과 함께 발견했던 교감 엘레나는 클리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쓸모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이곳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고, 교장은 어딘가 꺼림칙해 탐탁지 않아 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교장은 결국 엘레나의 제안에 승낙했고 그 이후로 계속 대한고의 시험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운이 좋다고만 생각할 테지.’

하지만 작가인 그는 안다.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확히 말하면 학교에 입학한 악사영의 주연들이 첫 번째 중간고사를 보는 시기의 사선도를 말이다.

‘분명 마지막 날에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전개였지. 그것도 신하윤의 삼촌인 신정율이 시험에 참여하는 타이밍에.’

그때는 무지성으로 막 썼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선일은 자신이 악사영의 세계와 특별한 관련이 있다는 추측을 확정지었으니까.

어쩌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특별한 운명.

아니, 목표가 죽음을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기구한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선일은 그런 운명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계속 굴렸다.

촤라라락.

머릿속에 각인된 원작을 빠르게 넘기던 선일.

순식간에 중간고사 에피소드의 후반부까지 넘어갔을 때 선일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선월은 당황했다.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존재감.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아니, 진정한 의미의 괴물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직후 사선도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형체가 산을 뚫고 나왔다.

-재능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 학생인 이선월.

-괴물의 모습은 아직 소년의 눈으로는 보기에는 벅찼다.

-그러나 천재인 그는 본능적으로 감지해냈다.

-이 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라는 사실을 말이다.

‘공백이라고?’

선일은 원작의 문단 속 공백을 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

바로 쥬세피나의 설정창을 보았을 때 소름 끼치는 느낌이다.

‘...설마 외부자란 놈들하고 관련이 있는 건가?’

작품의 배경에 들어와 알게된 새로운 설정들에 머리가 아파진 선일.

이야기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그를 향해 선월이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듣고 있는 건가.”

“응? 아, 미안.”

그제야 눈동자에 빛이 돌아온 선일은 순간 자신이 그의 말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다 보니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생각이 따로 빠지는 경황이 심해진 탓도 있었기에 그럴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지.”

“그냥 대부분의 상황이 뭘 가리키는지 추측하고 있었어.”

“머리 굴리는 건 내게 짜증을 유발하는 네 특기였지.”

선월은 그런 말을 하며 표정을 찡그렸다.

검집으로 내려간 손등의 핏줄을 보니 꽤나 강하게 쥐었나보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에 선일은 조금 안심했다.

입학 전이나 이전의 과거들만 보더라도 분명 서로 대화도 하지 않았는데.

“하하... 조금 아프네.”

“난 널 때리지 않았다.”

“형, 팩트도 폭력이야.”

“진실된 말이 어떻게 폭력이란 말이지.”

“그런 게 있어.”

이제는 이런 식의 대화도 나눌 수 있는 데다가 이렇게 팀까지 할 수 있었다.

강화도 아니, 그 이전부터 어느 순간 선월은 믿을 수 있는 동료, 아니 진정한 형제가 된 것 같다.

‘물론 속은 내가 아니지만...’

속에서 씁쓸한 감정이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선윌은 그 감정을 눌렀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선일은 표정 숨기기로 쓴웃음을 부드러운 웃음으로 바꾸며 물었다.

“특이사항은 이게 끝이야?”

“그래.”

“알았어. 좀 쉬어. 밤새면서 정찰했다며. 황신영은 이미 들어갔어.”

뒤쪽의 천막을 가리킨 선일이 말했다.

이번 에피소드에 가장 큰 전력인 그의 컨디션이 제일 중요했다.

그렇기에 선일은 일부러 가장 편한 자리를 선월에게 양보하려 했는데.

“나도 그러고 싶군.”

그는 자연스레 거절했다.

그냥 거절한 것도 아니고.

스릉.

검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달미르를 꺼내 들면서 말했다.

선일은 갑작스러운 형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결코 티를 내지 않았다.

이선월이라는 인간은 절대 쓸데없이 검을 빼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무언가 오고 있구나.”

끄덕.

게다가 이선월은최근에 벽을 깬 상태.

감각 하나만큼은 확실한 A급 헌터 이상의 수준이다.

그러나 선일 역시 뒤처지지 않는다.

지금은 이 세계를 지키는 든든한 주인공과 한낱 엑스트라 빌런의 차이가 아니니까.

“...완전 떼거지인데?”

감각을 집중해 널리 퍼트렸을 때 느껴지는 기척은 인간이 아니었다.

몬스터.

매우 많은 몬스터였다.

“귀찮군.”

“그러게.”

대충 느끼는 것만 봐도 백은 손쉽게 넘어가는 숫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존재감이 그리 강하지 않는 데다가 발걸음 소리 또한 들리지 않는 정도라는 걸까.

유령이나 귀신 같은 무형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 섬의 특성상 발걸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존재감이 약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약하다는 의미.

모든 파악이 끝난 선일이 입을 열었다.

“깨울 필요는 없겠지?”

“나 혼자여도 상관 없다.”

즉답하는 선월.

어느새 그의 몸에는 푸른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수 있는 상태의 선월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형은 가만히 있어.”

나 뭐 좀 실험해보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