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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쿠웅!
투두두두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굉음들과 숲속을 밝게 비추는 밝은 빛.
대부분 빛은 아무 색도 갖추지 않은 하얀색이었지만, 간혹 특이한 색깔의 빛이 하얀 허공을 그렸다.
헌터의 전투란 이런 것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신체와 손에 쥐어진 무기, 그리고 몸 안을 가득히 채우는 활력과 충만감.
마지막으로 단련한 기술들과 마력.
“하아하아...!”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가 잔뜩 튄다.
그들은 피가 튀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진한 땀을 흘렸다.
“죽어!”
“너나 뒤져, 이 미친놈아!”
숨소리를 털어내는 곳과 다른 공간에서는 한 쌍의 소녀와 소년이 전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각자의 힘을 쥐어 짜내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실상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죽으라며 욕설을 뱉고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들의 말은 고작 분위기에 휩쓸린 허세 또는 악에 받친 외침일 뿐이다.
그 순간.
촤악-!
싸우고 있는 자들의 몸에 새하얀 실선이 그어졌다.
다른 인물이 난입한 것이다.
“윽!”
“아악!”
“하하..! 그냥 다 죽어라!”
전투에 난입한 소년은 싸우고 있던 자들을 공격하며 소리쳤다.
원래 있던 고통스러운 침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손목에 있던 두 개의 팔찌 중 하나가 먼지로 변해 허공으로 산화할 뿐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싸움과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적과 직전까지 동료라고 믿었던 배신자.
갑작스러운 재앙과 몬스터 등등 헌터가 목숨을 잃게 되는 모든 요소들이 구현되어 있지만 절대 죽지는 않는다.
왜냐.
시험이니까.
고작 어린애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중간고사니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잔인하게 구현되어 있나.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실제로 흐르는 피와 남아있는 상처들.
전투 도중 느껴지는 열기와 목숨의 위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함과 자신이 이기지 못하는 적에게 느끼는 공포심.
모든 것들이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벅찰 수도 있지만, 배려 따위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른들은 그들을 학생으로 생각하겠지만.
적들은 아니다.
아무리 어리고 경험 없다고 한들.
사악한 존재에게는 한낱 약한 적이자 가지고 놀기에 재밌는 장난감이다.
흉측한 괴물에게는 한낱 작은 먹잇감이자 쉽게 죽어버리는 벌레 혹은 사냥감이다.
그렇기에 미리 경험해야 한다.
목숨이 버려지지 않도록.
동료나 가족을 지킬 수 있도록.
강해지기 위한 경험.
그것이 대한고등학교의.
아니, 헌터를 지망하는 아이들의 중간고사다.
***
타닥.
소년은 숲을 달렸다.
근 한 달 전에 갔다 왔던 혈몽에 존재했던 어둠의 숲과는 다르다.
이곳의 숲은 나무 사이로 간간이 밝은 빛이 들어와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다.
귀를 잘 기울여 보면 말이다.
슈슈슛!
콰콰콰앙-!
화살이나 쇠뇌 같은 날카로운 투사체가 쏘아지는 소리.
그 뒤에 이어지는 폭발음.
촤작.
까앙.
터더덩!
또 다른 곳에서는 날붙이가 뽑히는 소리가.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땅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린다.
“으아아아!!”
“꺄아악!!!”
전장의 노래 위에 덧씌워지는 불협화음.
소년소녀들의 목소리가 울린다.
어떤 소년의 음성은 고통에 의한 비명이었고.
어떤 소녀의 음성은 전투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외침이었다.
누가 이걸 보고 시험이라 부를 수 있을까.
“...미쳤어.”
실전이다.
아니,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시험이다.
삐빅.
소년의 왼쪽 손목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무슨 메시지가 왔을지 신경이 쓰였지만 발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허억허억...”
소년의 폐는 한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력을 쓸 수는 없다.
5일 동안 최대한 살아남으려면 아껴야 한다.
짬짬이 휴식을 취하면서 마력을 회복시키기는 하겠지만, 5일을 내리 버티기엔 충분치 않다.
짤랑.
소년은 손목을 바라보았다.
워치가 있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손목을.
그곳에는 아주 얇은, 어쩌면 줄이라고 헷갈릴 정도로 가냘픈 팔찌 2개가 존재했다.
우우웅.
팔찌에서는 은은하게 마력이 흘러나왔다.
중간고사에 앞서 학생들에게 나눠준 방어마법과 회복마법이 각인 되어 있는 아티팩트였다.
이 팔찌의 이름은 아티팩트의 존재의의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목숨줄.
단어 그대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A급 아티팩트였다.
그런 아티팩트가 2개가 있다는 의미는 즉 이번 시험에서는 한 번 죽더라도 탈락이 아나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막 싸우며 일찍 소모하면 안 된다.
5일 동안의 시험 도중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다.
‘최소한 3일차까지는 두 개를 유지해야 해.’
지금이야 숲 중심에서 난전을 펼치며 서로 싸우고 있지만 머지않아 똑똑한 학생들은 현명하게 싸움을 피하며 거점을 잡을 것이다.
가는 도중 상위권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빈 소년인 왼 손목의 워치를 바라보았다.
시험이 시작된지 30분 후 도착한 메시지는 다름 아닌 지도였다.
헉헉대던 소년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누르자 워치의 화면 위로 섬의 지형이 그대로 드러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이 숲을 벗어난다고 해서 섬의 지형은 끝이 아니었다.
숲, 동굴, 산, 강가, 늪지대, 폐쇄된 도시 등등.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여러 개의 지형이 있었다.
그것도 완전히 실제처럼 만든 실감 나는 시험장이다.
‘일단 최대한 숲을 벗어나자.’
그는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며 목적지를 정했다.
대한고의 중간고사의 본 목적은 단순히 성적을 매기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른 대처와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한 전략.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특별한 상황이든 모두 대비하라는 말이구나...!’
소년은 지도를
아까 달릴 때 봤던 지도를 떠올리면 숲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면 폐쇄된 도시가 있다.
남아있는 식량도 있을 거고, 괜찮은 휴식터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대부분이 숲에서 시작했기에 전투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화아아...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소량의 마력으로 눈을 강화하자 정면에서 흐릿하게 빛이 보였다.
처음 달렸을 때 북서쪽으로 쭉 달렸으니 아마도 빛이 보인다는 건.
‘숲이 끝났어!’
이 투기장 같은 숲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숨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안도감.
70등 안으로 들어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는 부담감.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복잡함으로 머리가 가득 찬 순간.
사라락.
위에 있는 나뭇잎이 떨렸다.
바람 때문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이 느낌은 인간의 기척이다.
휘익.
샤아악-!
괴리감을 느낀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 위에서는 검은 신형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손에 든 장창을 내리꽂으며 말이다.
“아싸! 1킬 적립이요!”
‘아!’
낭패다.
소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았다.
방심하지 않고 감각을 예민하게 했어야 했는데.
잡생각을 하느라 순간 흐트러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씨X!’
소년은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온몸이 얼어붙은 그는 허무하게 목숨 하나를 잃게 생겼다.
아니, 잃을 거다.
완벽한 상황이 갖춰진 기습은 최상위권인 이선월이나 이선일, 유리 정도나 막거나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리스폰이나 해라!”
“으아아아!!!!”
짙은 적의를 가지고 내리꽂히는 창.
소년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다른 학생들처럼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화륵.
귀에서 불꽃이 넘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숲에서 불꽃을 쓰는 미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습격에 당한 소년은 눈치채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기습을 시행한 소년 또한 깨닫지 못했다.
“...세라프.”
작디작은 소녀의 음성이 소년들의 귓가로 날아들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목소리는 소년들이 첫 번째 기회를 잃을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리였다.
직후.
화르르르르륵-!!!!!!!!!
엄청난 화력의 불꽃이 악마가 되어 숲 한구석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
화르르르르!!
숲을 잡아먹는 화마.
한순간이나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은 불꽃을 선일이 모를 리가 없었다.
“...저기 있구나.”
지금 그녀는 평범한 불꽃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불꽃 특유의 붉은색이 아닌 완연한 흑색.
악마들이 사용한다는 지옥불이다.
원래라면 그녀 스스로 리미트를 걸어놨는지 자제하는 듯 보였지만, 악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가감 없이 악마의 힘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쳇!
“...위험한데.”
세차게 혀를 찬 선일이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폭주의 전조가 일어났다.
이어서 선일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그의 뒤에는 무리 지은 학생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서있었다.
물론 전부 눈치채고 있었지만.
“후우...”
선일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에 이런 방해꾼이 나타났다는 점이 너무나 답답하다.
이어서 숨을 뱉음으로써 답답함을 조금 털어낸 그가 학생들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지금 나랑 싸우려고?”
“크크크크! 괜히 강한 척 하지마. 우리한테는 안 통한다?”
선일의 말을 허세라 생각했는지 가장 앞에 있던 소년이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조롱했다.
뒤이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끅끅거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피식.
하늘에서 시선을 돌린 선일은 학생들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잘 보니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다.
악사영에 등장했던 네임드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싫어하고, 들려오는 소문을 못 믿는 학생들이었기에 기억했던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
“급한 일이 있어서 너희 상대는 못 해줄 거 같은데... 그냥 다른 사람 잡는 게 좋을걸?”
“쫄았냐?”
“그렇다고 해주지 뭐.”
선일은 학생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학생들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으득.
스릉-!
선두에 있던 소년에게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후 그가 검을 뽑았다.
“그럼 뒤져! 병X아!”
소년이 악을 쓰며 선일에게 검을 내리쳤다.
너무나 어리석게도 말이다.
“하아...”
선일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부터 이런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닥쳐오니 짜증이 난다.
그렇게 몇 초나 지났을까.
화르륵-!!!!
심장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감각에 몸을 맡긴 선일.
온몸이 가벼워지며 더없이 생기로 가득했다.
직후.
“그냥 가라니까...”
조용히 웃음 지은 선일의 눈빛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