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147화
응애-!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그때는 현재보다 빈부의 격차가 훨씬 심한 데다가 신분까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삶을 연명할 수도 없는 시대.
그러나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이 매우 특별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직감한 이유가 본능뿐이었다면 단순한 아이의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어째서인지 가족 같은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날, 그를 받은 노파가 말했다.
-경하드립니다. 천명을 가리키는 유성이 이치대로 떨어지지 않고 솟아오른 날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물었다.
그는 많은 학문을 연구하는 위대한 학자였으나 아쉽게도 점성술에는 조예가 없었다.
원래라면 출신도 알지 못하는 노파의 말을 믿지 않았을 테지만, 혈육이 생긴 그의 이성은 이미 환희라는 감정으로 인해 마비되었다.
-이 아이는 하늘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 천명을 극복해 그 위에 우뚝 설 인물이 될 미래를 가리킵니다.
-호오... 그런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지어미에게 건넨 아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게 칠해진 밤하늘 중간에는 노파의 말대로 하나의 유성이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저 하늘 끝에 닿을 것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이 자신의 아들을 뜻한다니.
아이의 찬란한 미래를 떠올린 남성의 입에서는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 참 맘에 드는구나.
-예, 주인님. 이 아이, 아니 도련님은 이제 이름이 온 역사에서 적혀 후대까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쿡쿡쿡... 그거 상상만 해도 설레는구나.
-아부!
남성이 웃자마자 그의 품 안에 있던 아기가 웃었다.
마치 그들의 대화가 즐겁다는 것처럼 말이다.
-허허...
-도련님도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아이가 웃자 남성도 따라 웃었고, 그 옆에서 노파가 거들었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아이는 전부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이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남성이 느끼는 건 혈육의 정과 그에 대한 기쁨.
그리고 노파가 느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향한 탐욕.
모든 감정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방금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이라 보기에는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꺄아!
-좋느냐?
아이는 다시 한번 웃었다.
아니, 웃음을 연기했다.
타인은 물론 그를 낳은 부모조차 알 수 없는 절대적인 연기.
태생적으로 아이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타인의 감정은 알았지만, 자신의 감정은 모르는 그런 인간.
어딘가 한구석이 고장 난, 그렇기에 특별한 운명을 가지게 된 아이였다.
-아이의 이름은 뭘로 하겠습니까, 부인.
-...라고 하지요.
안타깝게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안타까운 것이 맞는 표현인지도 잘 모르겠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우리 아들 대단하네.
유망한 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문과 가까이 지냈다.
막 걸어 다니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미래의 세상을 열기 위한 가능성의 학문인 과학.
현재의 세상에 쓰이는 숫자들의 학문인 수학.
과거의 세상을 돌이켜 보는 학문인 역사 등등.
고명한 학자인 아버지와 끊기지 않는 지식들, 그리고 학문과 가까운 환경은 아이의 견문을 넓히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성장했다.
-역시 우리 아들이구나.
-벌써부터 이 이론을...
-도련님은 천재이십니다!
여러 말을 들으며 자라난 아이는 어느덧 소년이 됐다.
몇 년 동안 그는 여러 지식들을 습득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식을 배우는 동안 소년의 천재성은 가감 없이 통째로 드러났고, 주변 사람들의 감탄이나 존경, 경외 같은 감정과 시기와 질투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이후로 또다시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와아-!
이제는 장성한 아이는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
유들유들한 인상의 미청년이 된 아이는 외모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사람의 환호성은 자연스레 터져나왔다.
-현명한 선택이네요, ...씨.
-이건 혁신적인, 아니 혁신 그 자체인 발견입니다, ...씨!
-...경, 전쟁을 끝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님! 평화를 불러와 고맙습니다!
정치인들은 그를 타고난 지도자라고 말했고, 학자들은 그를 세기의 천재라고 불렀다.
병사들은 그를 역전의 용사라고 칭송했고, 시민들은 그를 구국의 영웅이라 소리쳤다.
신분을 막론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질투심을 가졌던 사람은 자신들이 닿지 못하는 위치까지 올라간 그에게 벽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감정 따윈 재미없고 뻔한 거였으니까.
그나마 지식을 배우는 일은 잠깐의 무료함 정도는 떨쳤으나 이제는 그것도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식에 다다르며 머리를 채웠지만, 마음을 채우지는 못했으니까.
-하아...
-천명을 거스른 자가 네놈인가.
그렇게 하루하루 지루하게 살아가던 아이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더러운 누더기 천으로 온몸을 칭칭 두르고 있는 그의 외형은 비루했지만, 느껴지는 기세와 풍겨오는 분위기는 한낱 방랑자 따위가 아니었다.
아이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나는 신의 자식이자 그분의 피조물이며 동시에 사자(使者)다. 그리고 오늘 너는 선택받았다.
자신을 허무의 사자라고 소개한 그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미치광이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대충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궁금해졌다.
그는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뭘 선택받았다는 거지?
-이 세계를 완전히 바꿀 새로운 인물이자 신, 아니 초월자라 불리는 녀석들에게 간섭받는 이 세계를 정화할 사도로 네가 선택되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모든 지식에 통달했던 그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
그 점에 흥미가 돋았던 아이가 물었다.
-...어째서 나지?
-네놈의 힘은 허무 그 자체, 마음이 없다.
-그래?
하하.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없다라.
자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참 기분이 묘했다.
-아.
설마 방금 내가 기분이 묘하다고 생각한 건가.
신기하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각이 바로 감정인데.
저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도감이라 해야할까.
아니, 이건 안도감 따위가 아니다.
어떤 단어로도 이 감정을 정의하지 못한다.
파앗!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다.
아이의 눈엔 그 모습이 마치 우주를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외부에서 심연을 즐기며 만물을 지배하는 눈먼 우리의 왕.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역겨운 태양에게 증오하는 우리의 신.
-텅 빈 마음을 채우려 들지 않는 유일신.
-그분의 진명을 말하기엔 우리 같은 미물은 뱉을 수조차 없다. 그러나 감히 내가 뱉는다면...
허무.
그분의 또다른 이름은 허무이다.
스르륵...
아이를 찾아온 누군가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 온몸이 먼지처럼 변했다.
격에 맞지 않는 와중에 그분의 이름을 불렀기에 벌을 받은 것이다.
평범한 인간은 공포를 느낄만한 광경이었지만, 아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무자비한 축복.
아이는 그런 신에게 매료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사락.
사라락...!
한 국가는 먼지로 변해 역사에서 소멸했다.
***
-신관님.
-신관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신관은 눈을 떴다.
오랜만에 어릴 때의 꿈을 꿨던 기분이 좋았다.
아아, 그때의 기억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이 처음 그분을 영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그의 심장을 거세게 강타했다.
스윽.
신관이 몸을 일으키자 그를 불렀던 검은 남자, 리치가 다가갔다.
그를 향해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 신관은 몸을 일으켰다.
“다른 사람들이 다 모였길래 모시러 왔다가 답이 없으시길래 그냥 들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제가 늦은 게 잘못인걸요. 민폐를 끼쳤네요.”
“많이 피곤하시면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신관의 말에 리치가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신관이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었다.
시꺼먼 옷은 신전에서 살아가는 성직자들의 옷이라기보다는 고대에 존재했던 제사장의 복장과 비슷했다.
이어서 형제들을 맞을 준비를 완전히 끝마친 신관이 먼저 앞에서 걸었다.
그리고 그 뒤를 리치가 지켰다.
고오오...
그들은 그리 오래 걷지 않았다.
둘이 간 곳은 저번에 레크라가 보았던 거대한 문 앞이었다.
평소에는 신관 정도나 드나드는 공간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
남녀노소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모여있는 그들은 각각 외부자나 오래된 자들을 섬기는 형제자매들이었다.
과거 자신 혼자서 시작했던 허무의 피조물들은 어느덧 이렇게 늘어났다.
싱긋.
신관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웃음은 연기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진심으로 감정을 내비칠 때는 목소리든 마음이든 자신의 신을 향할 때밖에 없다.
“다들 제 부름에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관은 말을 꺼냈다.
그의 미성에 수십의 사람들이 전부 숨을 죽였다.
고분고분한 신의 자식들을 보며 그의 입가에는 썩은 미소가 지어졌다.
신관은 그대로 오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부른 이유는.”
증오하는 태양의 사도가 나타났습니다.